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만약다음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결코 쉽지 않았던 2021년을 어떻게 사셨나요?

누구에게나 올 한 해 여러 아쉬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아쉬움에 대한 태도는 전혀 다르게 나뉩니다.

 

만약 내가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열심히 운동했더라면.”

만약 내가 그 사람과 그렇게 얽히지 않았다면.”

아쉬움을 만약으로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음 결정은 잘해야지.

다음 해에는 운동을 열심히 해야지.”

다음 만남은 잘 풀어가야지

아쉬움을 다음으로 열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약은 아쉬움을 과거의 후회로 만들고

다음은 같은 아쉬움을 미래의 희망으로 만듭니다.

2021, 뭔가 아쉬울 때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어요?

만약이신가요, “다음이신가요?

 

 


그분

 

거리마다 캐럴이 울려 퍼지는

성탄의 계절입니다.

이 성탄절에 무엇이 가장 크게 떠오르십니까?

그분이 가장 크게 떠오르지 않으신다면 그분은 마음 아프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작은 아기로 우리를 찾아오셨고

누울 자리 없어 말구유에서 나셨고

평생 우리 때문에 온갖 욕을 다 먹으시고

마침내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찬 바람이 이는

성탄의 계절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그분을 깊이 묵상할 시간입니다.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찾아오셨나?

왜 날 위해 죽으셨나?”

 

하늘의 별들은 반짝이고

성탄의 계절은 깊어만 갑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군요.

멀리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찾아오시어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부어주신 그분에게

우리는 무엇을 드려야 할까요.

 

 

 


당신의 크리스마스

 

지난 월요일 저녁,

타주(他州)에서 오신 목사님 부부와 맨해튼에 갔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화려한 장식과 크고 작은 선물 그리고 구세군의 종소리가 길거리에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어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답니다.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지요?”

반짝이는 츄리요!” “즐거운 휴일이요!” “멋진 선물이요!” “신나는 캐롤이요!”

쇼핑이요!” “파티요!” “산타클로스요!”....

그러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일이라고 말하는 학생은.

 

당신의 크리스마스는 어떤 날입니까.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 예수님이 들어오시기에 힘든 날?

내 밖에 스케줄이 너무 바빠 예수님께 예배드리기엔 불가능한 날?

 

설마 당신의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날이 되어버린 것은 아니겠지요.

 

 

 


First in, Last out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고 나중도 있습니다.

올해도 처음이 있었고 이제는 나중이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처음이셨고, 지금 어떤 나중이십니까?

전쟁터, 화재진압 자리, 그리고 모든 헌신의 자리에서

진정한 리더라면 이렇게 말하고 이대로 행동합니다.

 

“First in, Last out.”

맨 먼저 뛰어들고, 맨 마지막에 나온다.”

 

교회뿐 아니라 승리하는 공동체에는 이런 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힘든 자리에 맨 먼저 뛰어들고 맨 마지막까지 버티는

자들이 있는 공동체는 누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올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그동안 너무 잘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맨 먼저 헌신하시고 맨 마지막까지 충성하시는 그대 때문에,

오늘의 우리 교회는 여기에 이 모습으로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가오는 새해에도.

“First in, Last out.” OK?

 

 

 


성경 통독을 마치며

 

지난 21.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마태복음 11절이 zoom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사람의 자손으로 오셨다는 놀라운 이야기.

QBC 성경 통독의 첫날이었습니다.

 

그제 123.

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 말라기서에서 하나님은 반복해 말씀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애절하신지 가늠하기조차 힘들었습니다.

QBC 성경 통독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2021년 한 해를 돌아보니

목까지 차오른 고통의 신음이 쏟아지곤 했던 날도 여러 번 있었지만 다 지나갔습니다.

지나가지 않고 우리 마음에 뿌려져 아름답게 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침에도 밤에도 멈춤 없이 부어진 성경 통독의 말씀입니다.

 

말씀 속에는 없습니다.

목마름이 없습니다. 굶주림이 없습니다. 방황함이 없습니다.

말씀 안에는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성경 통독은 우리에게 말씀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다시 잘 알려주었습니다.

 

 

 


~~ 라파예트 애브뉴 장로교회

 

 

지난 수요일 브루클린의 아주 특별한 곳을 다녀왔습니다.

라파예트 애브뉴 장로교회를 여러 교역자, 장로님들과 함께 방문했던 것입니다.

그곳을 감사함과 설렘을 가지고 찾아갔습니다.

한국 선교 역사의 첫발을 내디뎠던 언더우드 선교사님을 파송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다소 낡긴 했지만 150년 전에 지은 훌륭한 건물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1884년에 한국 장로교 선교회가 조직되어 언더우드 선교사님을 파송하였고

선교사님은 188545일 부활절 아침에 제물포에 도착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역사 가운데 지금도 270여 명의 성도들이 있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감격의 시간도 잠깐, 짙은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교회가 ‘Social Gospel(사회복음)’을 표방하며 인권(人權)이 기준이 되었고 심지어

그 교회의 임시 담임 목사가 동성애자와 결혼 생활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장로교회의 Mother Church 같은 교회가 140년 후에

지도자들이 앞서 보여주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100년 후, 아니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 교회의 현재와 미래가

세속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곳 방문에서 돌아와 줄곧 생각해 보았습니다. 답은 분명했습니다.

교회가 시대의 실용주의를 따르지 말고 역사의 개혁주의를 굳게 지키는 일에

조금도 방심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 교회 현재와 미래의

교역자들과 장로님들이 개혁주의 사상으로 투철해야 함을 절절히 느꼈습니다.

 

 

 

 

말 한마디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이 한마디는

자기를 버리고 타인이 되길 원하던 사람들에게

넓고 깊은 울림을 주어왔습니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는 다 바꾸라

그 한마디가 삼성이란 그룹을 철저히 바꾸었고

그 영향으로 오늘의 세계도 많이 바꾸었습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한마디 말이었습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이 한마디는 홀로 자기를 키워주신 어머니에게

오래전 홍수환 선수가 복싱 세계 챔피언전에서 승리하고 외친 말입니다.

힘들게 자식을 키웠던 모든 어머니에게 큰 위로를,

목표를 잃고 살던 젊은이들에게 큰 도전을 준 한마디였습니다.

 

가서 전하라

예수님의 한마디 말씀은

현실에 안주하던 자들을 무수히 일으켜 사명의 길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 한마디에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지금은 불평하거나 영양가(營養價) 없는 말로 인생을 아깝게 보낼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세상을 변화시킬 나의 말 한마디를 찾아 외칠 때입니다.

 


100% () 200%

 

100% 비바람이 일주일 내내 예고된 어제 토요일 건축 바자회.

그 전날 금요일 밤, 잠을 잘 잤습니다.

잠결에 비바람의 토요일을 기다렸습니다.

꿈결에 교우들이여 어서 오시라고 노래 불렀습니다.

 

끙끙거리며 잠을 못 이뤘을 그 날밤에

놀랍게도 노래 부르며 잠을 잘 잔 이유가 있습니다.

비바람을 막을 준비를 했기 때문입니다.

얼마큼 준비한 줄 아십니까?

 

200%.

비바람이 들이치지 못하도록 주차장 전체를 두꺼운 천으로 감싼 것이 100%.

멋지고 아름다운 작은 불로 수놓은 것이 100%.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환상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100%의 비바람을 200%로 준비했더니

자면서도 웃을 수 있었던 그 여유.

그리고 그 승리의 실체를 어제 생생히 보았습니다.

100% () 200%, 누가 이기겠습니까?

 

 

 

 

 

 


흩어진 사람들

 

흩어진다는 말은 왠지 슬픕니다.

흩어진다는 것은 서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을 자아냅니다.

흩어짐에는 슬픔도 두려움도 있지만, 묵직한 책임에서 벗어나는 편함도 있습니다.

어제 아침 우리는 흩어졌습니다.

 

슬픔이 아닌 즐거움으로, 책임을 벗는 가벼움이 아닌 사명의 묵직함으로 흩어졌습니다.

초대 교회 때 예루살렘에 함께 모였던 사람들처럼 흩어졌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8:4)

우리도 어제 선교회별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흩어졌습니다. 장엄한 모습이었습니다.

교회는 모여서도 교회, 흩어져서도 교회이어야 합니다.

 

내일은 종교개혁 505주년 기념일입니다.

개혁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교회다워야 합니다.

교회다움의 영광은 모여서 예배, 흩어져서 선교할 때 가장 선명히 드러납니다.

 

다음 주일에 있을 행복의 초대는

무엇보다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축복의 날이어야 합니다.

남은 엿새, 흩어진 교회로 전도하다가

다음 주일, 모이는 교회로 예배합시다.

 

 


꼬끼오

 

닭이 운다 꼬끼오

집집마다 꼬끼오

맛을 낼 땐 닭표 간장

꼭 낀다고 꼬끼오

 

아직도 멜로디가 또렷이 기억나는 오래된 닭표 간장 광고 노래입니다.

광고 가운데 닭 소리를 꼬끼오로 표현했습니다.

닭 울음소리는 성경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베드로야----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그 닭 울음소리를 들리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문자는 세계에 없을 것입니다.

자음 14, 모음 10개로 온갖 글을 만들고 세상 모든 소리를 발음할 수 있다니요.

오늘은 한글날입니다. 많은 수난을 겪으면서 지켜온 한글입니다.

온 세상 젊은이들이 한국어로 떼창부르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어 공부 열풍도 세계 곳곳에 이미 붙었습니다.

 

멀잖아 세계 어디서든지 한국말로 설교해도 많이 알아들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외국인들에게 이렇게 설교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꼬끼오 닭 소리를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성령 충만 받을 때 쉬이익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소리 나는 대로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이 자랑스럽습니다.

 

 

 


기억과 감사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주일 ‘행복에의 초대’에 나오신 성도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기억감사라는 단어가 함께 어울려져

제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2022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행복에의 초대를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처음 나오신 분들, 그 소중한 결단과 걸음들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에 나오신 분들, 다시 만난 기쁨의 시간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교우들, 아름다운 수고와 기도를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강아지와 고양이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있답니다.

강아지는 주인이 백 개중에 하나만 잘해도 그것을 고맙게 기억한다고 합니다.

고양이는 주인이 백 개중에 하나만 못해도 그것을 고깝게 기억한다고 합니다.

‘개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말을 알아듣는다면 개들이 크게 섭섭해할 것입니다.

 

기억은 감사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은혜받은 기억이 전혀 없다면 감사할 일도 없겠지만

 

넘치는 은혜를 받은 기억이 있다면, 넘치는 감사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하나님이십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실수에도 불구하고

날 덮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약함에도 불구하고

날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청교도의 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이었습니다.

그들이 타고 온 배의 돗대가 부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파손되지 않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폭풍이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가고자 하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들이 항해하는 가운데 두 명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이 태어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처럼 복되고 아름다운 추수감사주일,

하나님과 청교도들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묵상하며 감사 눈물 흘립니다.


알로하

 

오래전 하와이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꽃목걸이와 ‘알로하’라는 인사를 받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특별한 인사에 큰 환대를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멋진 하와이 정경보다 더 아름다운 환대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습니다.

 

오늘부터 이번 주 내내 우리 교회에 귀한 손님들이 오십니다.

오늘은 한국에서 이재서 목사님과 사모님, 뉴저지에서 강원호 목사님이 오시고

LA에서 조용중 선교사님과 사모님이 오십니다. 내일부터 삼일 동안 KWMC 의장단이,

토요일에는 워싱톤 헬로우십 교회 임직자 20명이 방문할 예정입니다.

 

우리 교우들은 누구든 따듯하고 섬세하고 풍성하게 환대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 오시든지 교우들의 극진한 환대 속에

위로와 힘을 얻고 가시는 모습을 종종 뵙습니다.

 

성경과 청교도 그리고 우리 교회 선진들의 자랑스러운 유산인 추수감사절을 지나자마자

여러 손님 맞을 채비로 분주한 교우들에게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도 있었느니라”

 

하와이에서는 ‘알로하!’한 가지로 인사하지만, 우리는 네 언어로 환영할 수 있답니다.

웰컴! 환잉! 다브로 뽀잘로밧! 그리고 환영합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반갑습니다. 행복에의 초대, 잘 오셨습니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가을을 지내고 계시는지요.

저는 며칠 전 집 앞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 모았습니다. 아직 버리진 않았습니다.

지난봄 푸릇푸릇했던 나뭇잎이, 여름날 우거진 녹음(綠陰)으로,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으로도 변화되다가, 이제는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있기에

그들이 나를 뒤로하고 어디론가 굴러가기 전에 붙잡아 끌어모은 것입니다.

 

바람결에 떨어졌던 낙엽을 모아보니

많은 이야기를 담은 세월의 보따리였습니다.

지나간 시간,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니 후회할 수 없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시간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다가올 시간입니다.

남은 시간을 이전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무엇이 행복할까? 그것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입니다.

낙엽을 쓸 때 스각스각 들리던 소리가

겨울이 다가왔다는 하늘의 음성으로 가까이 들렸습니다.

낙엽으로 벗겨져 가는 나무가 다가올 겨울을 두려워하는 내색도 없이

새로운 봄의 옷을 입혀줄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린다고 가까이서 속삭였습니다.

 

오늘, 행복에의 초대에 오신 모든 분을 격렬하게 환영합니다.

행복에의 초대는 오늘을 넘어 다가올 겨울도 지나, 저 하늘에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사람은 지상에서 최대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거기 빛이 있었고

 

반 고흐는 슬픔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어둠이 짙게 드리워 있었습니다.

그는 빛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그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는 자그마치 별이 11개나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움에 지친 사람은 적어도 미소 짓는 두 개의 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작은 별을 이렇게 부릅니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 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별들의 미소 잊을 수가 없어요

 

동방박사들에게는 하나의 별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동방에서 박사들 귀한 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 따라왔도다

 

빛이 있어야 합니다.

빛이 없다면 길도 잃고 꿈도 잃습니다.

빛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빛 속에 소망이 있습니다.

거기 빛이 있었고라는 주제의 성탄 축하 찬양제가 너무 기다려집니다.

나에게도 그 빛이 꼭 있어야 하겠기에 말입니다.

 

 

 

 


세 가지 답변

 

삶에서 너무 힘든 일을 만난 강병권 선교사님이 세 가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질문에 세 가지 답변을 주셨습니다.

 

강병권 선교사님은 우리 교회 협력 선교사님이십니다.

선교사님의 아내는 정혜란 선교사님이십니다.

30년 아프리카 선교를 마치고 한국에서 AIM(Africa Inland Misssion) 대표

사역하러 돌아오는 길에 정혜란 선교사님이 담도암 4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1년 동안 투병하시다가 지난 916일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첫째 질문은 하나님, 아내를 살려달라고 기도했는데 왜 데려가셨습니까?”

하나님의 첫 번째 답변은 이 땅에서 고침 받아도 또 다시 아프단다.

그래서 아예 아프지 않은 곳으로 데려갔단다.”

 

둘째 질문은 “30년의 선교를 성실히 마친 정선교사에게 왜 상대신 암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두 번째 답변은 이 땅에서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것2022보다

하늘에서 상급 받는 것이 더 좋기에 데려갔단다.”

 

셋째 질문은 아내를 간호한 일 년은 제게 어떤 시간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세 번째 답변은 그 일 년은 너를 훈련시키기 위한 시간이었다.

너의 아내에 대한 이기적인 사랑을 진정한 사랑으로 바꾸기 위한 시간이었단다.”

 

우리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나면 하나님을 향해 던질 질문들이 있을 것입니다.

귀 기울이십시오. 그 답들을 우리 하나님께서 따듯하게 분명하게 일러주실 것입니다.

 

 

 

 

 


남은 몇날동안 무엇을 할까?

 

Merry Christmas!

오늘은 즐거운 성탄절입니다.

다양한 민족이 함께 어울려 다양한 순서로 드리는 성탄예배,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늘 성탄이 지나고 며칠 있으면 새해를 맞게 됩니다.

올해 남은 몇날 동안 무엇을 할까요.?

무엇을 해야 할지 일러주는 음성이 있습니다.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리시는데 내가 뒤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 찬송할지어다---" (3:12)

 

앞으로 가기 전에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찬송하라' 소리가 뒤에서 크게 들립니다.

새해를 맞기까기 몇날동안 해야할 일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올해도 넘치는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지금까지 지내온 주의 크신 은혜' 라고 뜨겁게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미국 땅에 오래 살아도

아무리 다민족 사역을 많이 하여도

대한민국의 정체성마저 지워진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제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16강행이 확정되고 난 후

몇몇 교역자님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어디서나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그날 승리의 주역이었던 손흥민 선수가 이런 웅장한 글을 남겼습니다.

눈물로 쓴 글임이 분명합니다.

 

저희는 포기하지 않았고,

여러분은 우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자기들을 포기하지 않은 대한민국이 있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어도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고 가슴 먹먹하게 자랑스러운 젊은이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본향으로 가는 달음박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던 하나님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까지도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사랑합니다.

 

 

 

 


포기의 구별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결코!”

처질 수상이 자기의 모교에서 연설하였던 내용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멋있습니다.

꿈과 비전 등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포기하라고도 합니다.

그들은 신앙은 누림보다 버림이며, 채움보다 비움이며,

소유보다 포기라고 말합니다.

 

공부해서 남 주냐?”

공부를 독려하는 부모님들의 외침입니다.

그러나 공부는 내가 하는 것이지만,

그 진정한 유익은 남이 갖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 유익의 포기는 쉽지 않지만 많은 이의 풍성한 유익이 됩니다.

권리를 포기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로서 상상이 안 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포기의 연속이 예수님의 삶이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자기를 버리시고, 자기를 죽이시고....

십자가는 포기의 절정이셨습니다.

포기할 것과 포기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는 것이 지혜임이 분명합니다.

 

 

 

 

 

 

 


겨울왕국아 어서 녹아라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생각하라.....

 

그림자조차 얼어붙은 겨울

우리의 마음도, 생각도 얼어붙은 것은 아닌지요.

모든 것이 얼어있었던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 속의 사람들과 같은 것은 아닌지요.

 

계절은 겨울이어도 마음은 봄이면 좋겠습니다.

날씨는 추워도 생각은 따듯하면 좋겠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과 생각의 겨울왕국이 녹아

싱그러운 봄내음이 되고 따사로운 봄바람이 되고 싶습니다.

 

삶을 얼게했던 겨울왕국아 어서 녹아라

얼었던 열정도 다시 일어나고

 

식었던 꿈도 다시 깨어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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