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시 78:72)

포기의 구별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결코!”

처질 수상이 자기의 모교에서 연설하였던 내용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멋있습니다.

꿈과 비전 등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포기하라고도 합니다.

그들은 신앙은 누림보다 버림이며, 채움보다 비움이며,

소유보다 포기라고 말합니다.

 

공부해서 남 주냐?”

공부를 독려하는 부모님들의 외침입니다.

그러나 공부는 내가 하는 것이지만,

그 진정한 유익은 남이 갖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 유익의 포기는 쉽지 않지만 많은 이의 풍성한 유익이 됩니다.

권리를 포기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로서 상상이 안 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포기의 연속이 예수님의 삶이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자기를 버리시고, 자기를 죽이시고....

십자가는 포기의 절정이셨습니다.

포기할 것과 포기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는 것이 지혜임이 분명합니다.

 

 

 

 

 

 

 


나는 가리라

 

신년 특별 새벽기도회가 끝났습니다.

지난 주간 오미크론이 폭풍같이 몰아쳤습니다.

선교지 알마티에서의 위험한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금요일 새벽에는 눈이 수북이 쌓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멈출 수 없었습니다.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눈보라가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험한 파도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모진 바람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뜻을 미리 정했던 다니엘은 어떤 폭풍 앞에서도 주춤거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뜻을 꺾을 어떤 세력도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전진만 있었습니다.

그의 전진에는 늘 승리가 있었습니다.

 

올 한해 어떤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순풍도 있고 역풍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갈까 말까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미리 뜻을 정하고, 그 뜻을 바꾸지 않고 가면 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어떤 비바람, 눈보라, 험한 파도가 있어도 나는 가리라.”

 

 

 

 

 


잊자 그리고 걷자

 

새해입니다.

새 옷을 입으려면 헌옷을 먼저 벗어야 하고,

새 음식을 담으려면 더러워진 그릇을 먼저 씻어야하듯이,

새해를 맞으려면 먼저 지난 것을 깔끔이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 잊어요.

잘했든 못했든 지난해의 일들을 이젠 잊어요.

 

그리고 걸어요.

삶을 성()으로 만들어 그 안에서 빙빙 도는 사람이 있고

삶을 길을 걷는 자로 이해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새해, 우리는 걸어야 합니다.

우리 가는 길, 보이지는 않지만

방향은 분명하고 무엇보다 선한 인도자가 우리 앞에 계시잖아요.

목표 향해 걸어요. 주님만 바라보고 걸어요.

 

지난 해 살아온 것이 은혜요

올해 살아갈 것이 은혜일터이니

걱정 말고 걸어요. 기대하며 걸어요. 끝까지 걸어요.

 

들리시나요?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이.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First in, Last out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고 나중도 있습니다.

올해도 처음이 있었고 이제는 나중이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처음이셨고, 지금 어떤 나중이십니까?

전쟁터, 화재진압 자리, 그리고 모든 헌신의 자리에서

진정한 리더라면 이렇게 말하고 이대로 행동합니다.

 

“First in, Last out.”

맨 먼저 뛰어들고, 맨 마지막에 나온다.”

 

교회뿐 아니라 승리하는 공동체에는 이런 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힘든 자리에 맨 먼저 뛰어들고 맨 마지막까지 버티는

자들이 있는 공동체는 누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올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그동안 너무 잘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맨 먼저 헌신하시고 맨 마지막까지 충성하시는 그대 때문에,

오늘의 우리 교회는 여기에 이 모습으로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가오는 새해에도.

“First in, Last out.” OK?

 

 

 


당신의 크리스마스

 

지난 월요일 저녁,

타주(他州)에서 오신 목사님 부부와 맨해튼에 갔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화려한 장식과 크고 작은 선물 그리고 구세군의 종소리가 길거리에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어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답니다.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지요?”

반짝이는 츄리요!” “즐거운 휴일이요!” “멋진 선물이요!” “신나는 캐롤이요!”

쇼핑이요!” “파티요!” “산타클로스요!”....

그러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일이라고 말하는 학생은.

 

당신의 크리스마스는 어떤 날입니까.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 예수님이 들어오시기에 힘든 날?

내 밖에 스케줄이 너무 바빠 예수님께 예배드리기엔 불가능한 날?

 

설마 당신의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날이 되어버린 것은 아니겠지요.

 

 

 


그분

 

거리마다 캐럴이 울려 퍼지는

성탄의 계절입니다.

이 성탄절에 무엇이 가장 크게 떠오르십니까?

그분이 가장 크게 떠오르지 않으신다면 그분은 마음 아프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작은 아기로 우리를 찾아오셨고

누울 자리 없어 말구유에서 나셨고

평생 우리 때문에 온갖 욕을 다 먹으시고

마침내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찬 바람이 이는

성탄의 계절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그분을 깊이 묵상할 시간입니다.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찾아오셨나?

왜 날 위해 죽으셨나?”

 

하늘의 별들은 반짝이고

성탄의 계절은 깊어만 갑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군요.

멀리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찾아오시어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부어주신 그분에게

우리는 무엇을 드려야 할까요.

 

 

 


성경 통독을 마치며

 

지난 21.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마태복음 11절이 zoom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사람의 자손으로 오셨다는 놀라운 이야기.

QBC 성경 통독의 첫날이었습니다.

 

그제 123.

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 말라기서에서 하나님은 반복해 말씀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애절하신지 가늠하기조차 힘들었습니다.

QBC 성경 통독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2021년 한 해를 돌아보니

목까지 차오른 고통의 신음이 쏟아지곤 했던 날도 여러 번 있었지만 다 지나갔습니다.

지나가지 않고 우리 마음에 뿌려져 아름답게 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침에도 밤에도 멈춤 없이 부어진 성경 통독의 말씀입니다.

 

말씀 속에는 없습니다.

목마름이 없습니다. 굶주림이 없습니다. 방황함이 없습니다.

말씀 안에는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성경 통독은 우리에게 말씀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다시 잘 알려주었습니다.

 

 

 


만약다음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결코 쉽지 않았던 2021년을 어떻게 사셨나요?

누구에게나 올 한 해 여러 아쉬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아쉬움에 대한 태도는 전혀 다르게 나뉩니다.

 

만약 내가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열심히 운동했더라면.”

만약 내가 그 사람과 그렇게 얽히지 않았다면.”

아쉬움을 만약으로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음 결정은 잘해야지.

다음 해에는 운동을 열심히 해야지.”

다음 만남은 잘 풀어가야지

아쉬움을 다음으로 열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약은 아쉬움을 과거의 후회로 만들고

다음은 같은 아쉬움을 미래의 희망으로 만듭니다.

2021, 뭔가 아쉬울 때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어요?

만약이신가요, “다음이신가요?

 

 


내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예쁘던 단풍이 낙엽이 되니 조금 귀찮습니다.

소음 같은 소리가 너무 많아 이런저런 소리 없는 곳에서 살고 싶기도 합니다.

이제 거의 끝나갑니다만 올해의 성경 통독은 부담이 되곤 했습니다.

목사님 설교가 살짝 길어지는 것 같아 살짝 짜증도 납니다.

 

내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낙엽 떨어지는 것을 보았으면

내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음악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내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성경을 눈으로 읽을 수 있다면

내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필립스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좋겠습니다.

 

21보거나 듣거나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의 소원이었습니다.

그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듣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번씩 말하고 듣고 보고 있음에도

당연하듯, 귀찮은 듯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무지개를 볼 수 있고 석양의 노을도 볼 수 있음을.

내 사랑하는 가족과 교우를 바라보고 이야기할 수 있음을.

찬양대의 찬양 소리와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음을.

그리고 늘 은혜로운 것은 아니겠지만(^^) 매 주일 목사님 설교를 들을 수 있음을.

 

 


그는 다시 오지 않아요

 

그는 다시 오지 않아요.”

몇 년 전 천국으로 떠난 남편 이야기를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남편은 다시 오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제는 그곳에 가야만 만날 수 있습니다.

 

아내가 깊은 밤중에 화장실에서 저를 불렀답니다.

너무 아파 저를 부르고 불렀건만 저는 듣지도 못하고 쿨쿨 잠만 잤습니다.

나중에 깨었을 때는 이미 힘든 상황이 지나갔습니다.

아내가 가장 고독했을 때 가장 가까이 있던 남편은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얼굴에 붉고 큰 점이 있는 그분은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누가 자기를 희아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어디 계신지도 모릅니다.

 

허무한 시절 지날 때 깊은 한숨 내쉴 때

그런 풍경 보시며 탄식하는 분 있네

고아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으리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하리라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감사절입니다. 올해 무엇이 감사하신지요?

저는 약하고 무능한 저 같은 사람과 영원히 함께 계시기 위해

약속대로 찾아오신 성령님이 너무 놀랍고 감사하답니다.

 

 


자기 색깔

 

눈치도 없어요.

여전히 힘들고 갑갑한 팬데믹 때인데 말입니다.

이럴 때는 슬쩍 묻혀 지나가는 것도 예의겠건만

어쩌자고 저리 울긋불긋 자기 색깔을 자랑하고 있는지요.

 

깊은 가을 속에 한껏 짙어진 단풍 이야기입니다.

그 전체 어울림이 질투가 날 정도로 아름답긴 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고맙습니다.

회색처럼 뿌연 세상에 자기 색깔을 확연히 드러내어 주어서요.

 

언젠간 색 바랜 낙엽이란 이름으로 떨어지겠지만

단풍은 지금 한껏 자기 색깔로 세상을 물들여놓았습니다.

누구나 인생의 황혼이 있고 저에게도 그런 날이 있겠지만

사는 날 동안만큼은 단풍처럼 나만의 색깔로 살고 싶습니다.

 

그대의 색깔은 무엇입니까?

마이웨이(My Way)를 부른 프랭크 시나트라는 오렌지색이 가장 행복한 색이래요.

오렌지색. 단풍색 중에 있는 아름다운 색이네요.

사실 제가 좋아하는 색깔은 단풍 속에서 찾을 수 없어요.

저 위에서 가끔 펼쳐져 있는 색, 결코 계절을 타지 않는 색.

저는 푸른 하늘을 지나 짙푸른 하늘이 보여주는 청옥색과 어울리고 싶어요.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그대가 좋아하는 색깔을 말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오늘이 벌써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10, 어떻게 지내셨나요.

서른 한번의 시월 중에 어느 날이 가장 멋지셨나요?

각자 다른 이유로 다른 날들을 멋진 날이었다고 하실거여요.

 

저는 10월의 모든 날들이 눈부셨어요.

그래도 어느 날을 꼽자면 날의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교회로 돌아오던 지난 금요일이 멋졌네요.

내가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오던

새벽부터 설레며 빨리 비행기 생각으로 가득 찼었지요.

 

김동규 씨가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좋은 것은 없을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루터에게는 오늘이 10월의 멋진 날이었겠습니다.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어 올린

날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 모두 10월의 어느 멋진 날을 마음의 앨범에 넣으며

11월의 가을로 함께 걸어가요.

 


은퇴하신 은사님이 가르쳐 주신 것

 

그날, 비스듬히 앉아 계셨습니다.

계속 통증이 심하다고 가슴을 만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평소 천천히 식사하셨는데 그날은 더 천천히 또 다 드시지도 못하셨습니다.

식사 후 함께 찍은 사진을 집에 와서 보니 울컥했습니다.

세 곳의 대학에서 총장을 역임하시던 당당한 모습은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폐암 4기의 시간을 보내시는 은사님을 지난 월요일 찾아뵈었습니다.

은사님에게 건강함과 당당함은 보이지 않았지만 평안함은 차고 넘치셨습니다.

 

나를 고쳐주옵소서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답니다.

너무 아프셔서 죽는 게 낫겠다 싶으셨다니 얼마나 간절한 기도셨겠습니까.

고쳐달라는 기도에 응답이 없자 성경의 기도를 다시 묵상하셨고

마침내 예수님의 기도를 깊이 만나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간단하지만 분명한 예수님의 기도. 은사님도 그렇게 기도를 바꾸셨답니다.

그랬더니 몸의 아픔을 뛰어넘는 마음의 평안함이 찾아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십 년 가까이 제게 성경을 가르쳐 주신 은사님이

은퇴하신 후에 온몸으로 체험한 성경적인 기도를 또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은사님이 치료차 한국에 곧 나가십니다.

잘 회복되어 돌아오시어 그 옛날 강의실에서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또 가르쳐 주시길 기다리고 기다릴 것입니다.

 

 


해바라기가

 

해바라기가 말을 걸어옵니다.

가을의 따스한 햇살 아래 활짝 피어난 해바라기가 이렇게 말을 걸어옵니다.

나는 일편단심 해만 따라 다닌다. 넌 누구 따라 다니냐?”

이렇게 대답해봅니다.

해바라기, 넌 해만 따라 다니지? 난 주바라기, 난 주만 따라다녀.”

대답은 했으나 과연 그런지 스스로 멋 적어 얼굴이 붉어집니다.

 

해바라기가 노래도 합니다.

이 가을에 추억의 그룹이었던 해바라기의 노래를 여러 차례 들어보았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그렇습니다. 내게 할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어두운 곳에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해바라기가 많이 아파합니다.

해바라기는 소피아 로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제목입니다.

영화는 사랑과 이별, 만남과 죽음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해바라기 영화가 많이 아픈 건데 괜히 나도 많이 아팠었습니다.

 

해바라기가 춤을 춥니다.

해바라기는 얼 듯 보면 곧게 서 있는 듯 하지만

가만히 보면 바람결 따라 흔들거리며 계속 놀라운 춤을 춥니다.

나도 곧게 서서 계속 춤추는 신비로움을 갖고 싶습니다.

 

 

 


이거 뇌진탕 아닌가?

 

지난 월요일 노회 야외예배가 앨리폰드 공원에서 있었습니다.

예배와 점심 식사 후 목사님들이 두 팀으로 나누어 족구 시합을 펼쳤습니다.

십수 년 전 족구 시합 중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전례(典例)가 있었던 저는 지금까지

족구 경기 금지령(禁止令) 가운데 있는 터라 선수로 뛰지 못하고 심판을 보았습니다.

 

경기 중에 어느 목사님이 공을 받다가 머리가 땅에 닿도록 뒤로 넘어지셨습니다.

매사에 책임감이 강하셨던 목사님의 안경도 벗겨지고 옷에도 흙이 잔뜩 묻는 투혼에

모두 놀랐습니다.

넘어지신 이후 벤치로 물러가 앉으신 목사님이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경기를 마치고야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눈에 이상이 온 것입니다.

잘 안 보이는 것이 뇌진탕 증상 같아 계속 뒷머리를 두들기시며 걱정하셨던 것입니다.

 

얼마 후에 문제의 실마리를 찾으셨습니다.

눈에 초점이 안 맞으신 것은 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넘어지실 때 안경알 한쪽이 빠져나갔는데 그것을 모르셨던 목사님은 한쪽 알 없는

안경을 쓰시고 ~~ 앞이 잘 안 보인다, 이거 뇌진탕 아닌가?” 하며

큰 염려를 하셨던 것입니다. 족구를 마친 목사님들은 안경알을 찾으러 함께 나섰고

풀밭에 잘 숨어 있던 안경알을 곧 찾게 되었습니다.

 

저도 살면서 육적으로 영적으로 곧잘 넘어집니다.

앞으로는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날 때 빠트린 것이 없는지 잘 살펴보려고 합니다.

자칫하면 안경알 없음뇌진탕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이제는

 

지난 목요일 신학교에서 설교 디자인수업이 있었습니다.

그때 모든 학생-그 수업의 학생들은 목사님 아니면 전도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설교자로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말씀해 보세요.”

장점을 말씀하실 때는 겸손함이, 단점을 이야기하실 때는 아쉬움이 묻어났습니다.

 

문제는 모든 분들의 단점이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목회 경력도 인생의 연수(年數)도 만만치 않은 분들의 오래된 단점이니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그래도 고쳐야 할까요?

다시 마음을 먹고 단점을 고치고 고치려 한다면 어느 정도 효과는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받아 들어야 할까요?

단점을 고치려는 노력 대신 그것을 받아들이고 잘 활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목회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여전히 아쉽거나 부족한 모습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실 것인가요?

10월은

그래도를 선택하셔서 아쉬운 점을 단단히 고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이제는을 선택하셔서 부족한 면을 쿨 하게 받아들일 시간이기도 합니다.

 

 

 

 


School Crossing Guard

 

학교에는 누가 누가 있지요?”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든 아이들의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선생님이요.”

식사 만들어 주는 분이요.”

 

어느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들이 zoom으로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그렇게 질문하였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힌트까지 주며 계속 물어보았습니다.
또 있습니다. 학교까지 길을 안전하게 건너게 해주는 분은 누굴까요?“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모두는 손을 든 아이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아이는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Jesus!“

선생님은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School crossing guard!”라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zoom에는 다양한 종교,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당당하게 “Jesus!”라고 대답했던 유치원생 어린이는

바로 우리 교회 교육부에서 자라는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던 제 마음은 감동과 감사로 가득 찼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가장 안전한 school crossing guard는 예수님이십니다.


별이 지다

 

 

또 하나의 별이 졌습니다.

() 조용기 목사님.

다 떨어진 천막에서 다섯 명으로 시작한 목회,

70만 명이 넘는 세계 최대의 교회로 성장시킨 목사님.

숫자보다 더 큰 영향력을 이 땅에 남기시고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한국교회 1세대 목사님들을 비난하긴 쉬어도

그들처럼 살아 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의 기도와 믿음, 희생과 열정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교회 그리고 한국교회가 감당해온 세계선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50년 친구이셨다는 극동방송의 김장환 목사님께서 천국환송예배 설교를 맡으셨습니다.

설교 중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 목사, 매 주일 수십만 명의 성도들이 앞 다투어 성전에 모이는 비결이 무엇이요?”

김 목사님은 하루에 얼마나 기도하시나요?”

하루 다 합하여 한 시간이 안 될 것 같은데....”

나는 하루에 기도 5시간씩 합니다.”

 

 

작년 4월에는 우리 목사님.

9월에는 조용기 목사님.

그 외에 많은 1세대 목사님들이 앞서거니 뒷 서거니 한 분씩

우리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귀한 별들이 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자리를 지켜야 할 2세대 목사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자문(自問)해 봅니다.

부모님들이 그리운 추석을 앞두고 그들에게 부끄럽고 그들에게 감사하여 눈물짓습니다.

 

 

 

 

 

 

 

 

 

 

 

 

 

 

 

 


플레루가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일에 개입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충만케 하셨습니다.

지난 주간에 있었던 일들이었습니다.

 

교회에는 일일 부흥회가 있었고

신학교에는 개강부흥회와 특강이 있었습니다.

사실, 시작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집회마다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시간에는 세 종류의 시간이 있습니다.

크로노스: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입니다. (다윗이 목동으로 지내던 시간)

카이로스: 일상의 시간에 하나님이 개입하신 시간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시간)

플레루: 하나님의 뜻이 충만하게 완성되는 시간 (다윗이 마침내 왕이 된 시간)

 

하나님은 크로노스로 살고 있던 우리에게 카이로스로 찾아오셨습니다.

그 카이로스만도 감사한데 플레루의 충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내 삶에 개입하시고 또 충만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어떤 크로노스를 지난다고 하여도 낙심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카이로스와 플레루가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다프뉴마

 

9월의 첫날은 매우 거칠게 시작되었습니다.

슬쩍 지나가도, 아예 오지 않았어도 뭐랄 사람 아무도 없건만

아이다는 자기가 누군지 잘 보란 듯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다는 산들바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다는 강력한 태풍이었습니다.

집들은 침수되고 나무들은 부러지고 전선들은 끊어지고

차들은 이리저리 널브러졌고 사람들은 많이 죽었습니다.

아이다가 지나간 자리는 비통의 황무(荒蕪) 함이었습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습니다.

성령의 바람을 프뉴마라고 부릅니다.

프뉴마는 태풍이라는 말로도 다 담아내지 못할 더 강력한 바람입니다.

프뉴마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이다와 견줄 수 없는 것들이 남습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날 주소서----”

 

프뉴마는 황무한 곳에 돌이킬 수 없는 회개, 변화, 능력, 부흥의 새날을 일으킵니다.

9월을 어떻게 사시렵니까?

아이다로 더는 울지 말고 프뉴마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의 바람, 프뉴마여 불어오라!”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9 Next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