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시 78:72)

“받았으니 주어야 해요.”

자기 가족 중에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받은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받았으니 주어야 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분의 말은 이렇게 계속되었습니다.

“내 가족이 다른 이의 장기를 받아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받았으니 나도 남에게 무엇인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받았으니 주어야 해요.”

큰 은혜를 받고도 거기서 머문 채로 사는 사람이 하도 많은지라 당연한 것 같은 그분의 말이 크게 울림을 주었습니다.

 

뜨거웠던 여름은 가고 거리마다 9월의 바람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이 가을의 문턱에서 누군가의 물음도 우리 마음에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당신은 그분의 생명을 받으셨는데 당신은 다른 이에게 무엇을 주시나요?”

 

오늘 오후에는 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 이 취임식 예배가 있습니다.

장영춘 목사님은 32년 동안 학장님으로 신학교를 통해 후학들에게 사랑과 가르침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저에게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목사님이 섬겼던 자리를 이어 섬기면서 제게 꼭 필요한 말과 결단은 "받았으니 주어야 해요.”인 것 같습니다.


지난 주간 어느 모임에서 만난 l 목사님.

본인이 어려서부터 배운 기타 솜씨가 대단하였답니다.

그 탁월한 솜씨에 수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답니다.

대천해수욕장에서 멋들어지게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 그 솜씨에 놀란 젊은이 수십 명이 금방 모여드는 일은 일도 아니었답니다.

 

군대 제대하면서 스스로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놀아 볼까?”

기타 치며 인기 끌어 인생을 멋지게 놀아보려는 꿈을 막 펼치려던 어느 날, 탈곡기 앞에서 장난하다 왼손이 끌려들어가 손가락들이 너덜너덜해졌답니다.

재활치료를 통해 왼손 모습은 돌아왔지만 그 손가락으로 더는 기타 코드를 잡을 수 없었답니다.

 

군대 생활 중에 만난 군목 목사님이 어렵사리 모은 돈을 봉투에 넣어 주면서 이것으로 신학 공부를 시작하라고 했건만 그 돈도 스멀스멀 다른 곳에 다 썼답니다.

 

l 목사님의“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놀아 볼까?”라는 꿈은 산산이 깨어졌지만 그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신학의 길, 목회의 길로 이끄시어 기타로 사람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사람을 이끌게 하시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꿈이 깨어지는 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축복의 길임이 분명합니다.


“으아아아앙~~~~~~”

팝콘을 맛있게 먹던 하늘이가 손에 있던 팝콘을 놓고 갑자기 우는 것입니다.

한 손가락을 입에 넣고 입천장을 다급히 만지는 것을 보니 팝콘 끝의 얇고 달콤한 노란 딱지(?)가 입천장에 붙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늘이 옆에서 이야기하고 있던 저희 부부와 사돈 부부가 화들짝 놀랐고 며느리가 급히 물을 가져다주며 물을 마시면 괜찮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이는 가져다준 물을 마시지 않고 손가락을 넣은 채 계속 울다가 “칵칵”하며 마른기침을 몇 차례 하였습니다.

 

몇 분 동안의 소동 끝에 마침내 작게 녹아버린 그 달콤한 노란 딱지를 입에서 끄집어내며 큰 손녀 하늘이가 울음 섞인 소리로 한 말이 이것입니다.

“more popcorn please.”

 

모두 놀랐습니다.

그토록 고생시킨 팝콘을 입에서 꺼내자마자 또 달라 하는 아이의 어이없음에....

모두 들었습니다.

“죄를 후회하고도 그 죄를 반복해서 짓는 모습 같아요.”라는 며느리의 말을....

모두 보았습니다.

작은 아이의 모습 속에서 죄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고도 또다시 그 죄를 반복해서 짓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죄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게 합니다.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죄보다 더 크신 분을 의지하면 됩니다.

아시죠? 그 분.


큰 아들이 섬기는 교회(westgate church) 담임목사님을 몇차례 뵈었는데 그 때마다 사려 깊음과 따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의 아들이 6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홀로 가스 공사를 하는데 가스가 새어나와 그 어려운 일을 당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지금까지 마음 아파하시면서 가끔 이야기 하신답니다.

“내 아들이 죽어 갈 때 아빠를 불렀을 텐데… 내가 아무 것도 못해 주었네요.”

 

작은 아들이 치아가 안 좋아서 제가 언젠가 한 마디 했습니다.

“왜 이렇게 치아 관리를 못했니?”

아들도 스스로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답을 찾았습니다.

“제가 이가 아파 병원 가야할 때, 아빠가 안계셨는데요.”

그리고 보니 작은 아들이 한창 자라날 청소년 때에 제가 돌봐준 것이 없었습니다.

아들이 미국에서 아빠를 힘들어 찾았을 때, 저는 언제나 한국에 있었으니까요.

 

육신의 아버지가 살아 계시든 아니든 아버지 부재(fatherlessness) 현상은 이 땅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진통입니다.

그런데 여기 이런 아버지가 계십니다.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58:9)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무섭고, 슬프고, 아파서“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 언제나“내가 여기 있다”라고 대답하시고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을 펼치십니다.

휴가지에서의 밤은 깊어 갑니다.

끌어 안고 온 짐도 많고, 가서 펼쳐야 할 일도 많아 뒤척이다 일어났지만 “내가 여기 있다”의 아버지가 계시기에 그 모든 짐 몽땅 아버지께 맡기고, 저는 이제 다시 잠자리에 들려고 합니다.

 

카작스탄 사람들은 이름을 두 개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정식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어렸을 적부터 친근하게 부르는 애칭입니다.

알마티 퀸즈장로교회의 알렉산더라는 남자 청년의 애칭은 샤샤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알마티 퀸즈장로교회를 출석했던 샤샤는 사춘기 때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습니다.

그 샤샤가 교회로 돌아 왔습니다.

어떻게 교회로 돌아오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귀찮아서(?) 왔습니다.

사람들이 자꾸 돌아오라는 연락이 너무 귀찮아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샤샤 형제의 의미 있는 답변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굴잔 전도사님(현지 예배와 단기선교팀 통역자)이 거들며 이야기 합니다.

“돌아 왔을 때 교회에서 찬양대원으로 봉사하라고 사명을 주었지요.

사명을 받고 나서부터는 교회에 깊이 뿌리를 내렸고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몇 년을 찬양대원으로 섬기던 샤샤는 지금 찬양대 지휘자이며 경찬팀의 리더입니다.

지난주일 알마티 퀸즈장로교회 26주년 기념 예배 때 샤샤는 러시아권 찬양대의 찬양을 지휘하였습니다.

단기선교팀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깊은 영성에 잠긴 찬양대는 찬양의 절반을 정확한 한국말로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내 영 기뻐 노래합니다

이 소망의 언덕 기쁨의 땅에서 주께 사랑드립니다

오직 주의 임재 안에 갇혀 내영 기뻐 찬양합니다....”

 

돌아온 샤샤는 악보도 없이 능숙하게 한국말로 스스로 찬양도 하고 또 찬양대를 지휘하기도 하였습니다.

단기선교팀을 돕기 위해 샤샤는 자기 일을 며칠 내려놓고 기쁨으로 선교사역에 동참하였습니다.

돌아온 샤샤는 더 이상 시시하게 살고 있지 않답니다.


나단 푸시는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 네 가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마음껏 흔들 수 있는 깃발이 있는가?

둘째, 목놓아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는가?

셋째, 목숨 바칠 신조가 있는가?

넷째, 목숨 걸고 따를 지도자가 있는가?

 

젊은이들에게만 필요한 질문은 아닐 것입니다.

모두에게 물어져야 할 질문이며 특히 모든 사람은 자기가 부를 노래가 있어야 합니다.

 

더운 여름이라고“덥다, 더워. 너무 더워” 라는“덥다 song”만 반복하여 부르시겠습니까?

이 여름에도 단기 선교의 깃발을 흔들며 저마다 사명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 초여름 시작되어 뜨거운 이 여름날까지 멈추어지지 않는 노래가 있는데 오늘은 필라에서, 시앤립에서, 그리고 알마티에서도 이어져 울려 퍼집니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더운 여름, 예배의 자리 사명의 자리를 지키며 단기 선교팀을 중보하는 퀸장의 성도들을 생각하며 힘을 내어, 우리 모든 단기 선교팀원들은 오늘도 사명의 노래를 목놓아 부르겠습니다.


지난 화요일 새벽, 다급히 플러싱 병원으로 갔습니다.

20년 전에 우리 교회에 등록한 한 교우가 병실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교회에 몇 차례 나오셨을 뿐 실상은 주님과 교회로부터 멀리 떠나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방광암 말기에, 그 전날 뇌졸중(stroke) 까지 맞게 되었습니다.

양손은 묶여 있었고 마치 모든 의식을 잃은 듯하였습니다.

그런 상태로 예배드릴 수는 없어서 눈을 떠보시라 하니 놀랍게도 그 말을 알아들으시고 눈을 뜨셨습니다.

정말 말을 알아들으시면 표시해보라고 하였더니 손을 움직이셨습니다.

사도행전 16장 30-31절 말씀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하며 구원자 예수님을 믿으시면 눈을 깜박이시라고 했더니 하실 수 있는 대로 가장 눈을 크게 뜨시고“깜박깜박”이셨습니다.

 

그 후에도 계속 복음의 내용을 확인할 때마다 입으로 크게 아멘 하시듯이 눈을 크게 깜박이셨습니다.

사실 그날 심방은 오전 10시로 잡혀 있었습니다.

뭔가 급한 마음으로 새벽 예배 후 7시로 당겨서 갔고, 우리가 떠난 후에 그는 다시 의식을 잃었고, 지난 목요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금요일과 토요일 장례예배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깜놀(깜짝 놀람)했습니다.

그가 택한 백성을 포기하지 하지 아니하시고 마침내 찾고 찾으시는 하나님과 마지막 순간에 깜멘(깜박이므로 아멘을 표시)으로 신앙을 고백한 교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주, 깜놀과 깜멘이 만나 하늘을 함께 날았습니다.


라면 좋아하십니까?

라면을 멀리하지만, 꼭 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tv 드라마 등에서 누군가 후후 불면서 라면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 저도 그 사람처럼 그렇게 라면을 먹고 싶습니다.

라면 하나 먹는데도 감격(?)스럽게 먹는다면 그 영향력이 작지 않습니다.

 

시인이 별, 바람, 꽃에 감격하지 않고 시를 쓴다면 누구도 그 시를 읽지 않을 것입니다.

감격 없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는 것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닙니다.

승리에 감격스러운 환호가 없다면 그 어떤 운동경기도 곧 퇴출당할 것입니다.

 

감격이 없는 사람은 울분도 없습니다.

진리를 보고 감격하지 않는 사람은 불의를 보고 울분을 쏟을 리 없습니다.

감격도 울분도 없는 사람에게 그 어떤 선한 것도 기대하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에는 감격과 울분의 이중창이 있어야 합니다.

은혜에 감격해 하고, 죄에 분노하는 감정이 없다면 뜨거운 신앙생활이 아닌 싸늘한 종교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감격도 울분도 없었다면 십자가 앞으로 가보십시오. 그리고 거기에 머물러 있어 보십시오.

예수님 은혜의 감격, 내 죄악의 울분이 터져 나와 마침내 혼자서 감격과 울분의 이중창을 목 놓아 부를 것입니다.

내 삶에서 울려 퍼지는 감격과 울분의 이중창은 이상한 변덕이 아니라 살맛 나는 세상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화음입니다


세계 뮤지컬의 본고장 맨해튼 가까이에 살아가는 여러분.

세계 4대 뮤지컬을 아십니까?

그중에“라이언 킹”,“맘마미아”는 들어갈까요, 안 들어갈까요?

저는 그 넷 중에 있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그것들은 없고요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레미제라블, 그리고 캣츠가 4대 뮤지컬이라고 합니다.

 

지난 목요일 서부에서 오신 전교인 여름수련회 강사님을 모시고 뮤지컬 보러 갔습니다.

여러 공연 중에 시간과 표가 맞는 것이“오페라의 유령”이어서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오페라 극단의 여주인공 크리스틴을 두고 펼쳐지는 사랑이야기입니다.

크리스틴의 오랜 남자 친구 라울과 팬텀이 크리스틴을 사랑하는데 팬텀은 흉측한 얼굴 때문에 가면을 쓰고 지하에서 살아가는 유령 같은 존재입니다.

라울과 크리스틴의 깊은 사랑 때문에 결국 팬텀이 라울에게 크리스틴을 놓아주면서 막이 내립니다.

 

숨어있었기에 대부분의 사람이 볼 수 없었던 팬텀이 확실히 존재했듯이 우리들에게도 보이지는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적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기에 의식하거나 긴장하지 않아 그에게 번번이 당할 수 있습니다.

 

은혜로운 전교인 여름 수련회가 끝난 다음 날 본 뮤지컬이 보이지 않는 존재의 이야기이었는데, 그것이 세계 4대 뮤지컬 중의 첫 번째인 “오페라의 유령”이었습니다.

전교인 여름 수련회가 끝났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크리스천인 우리의 깊은 사랑 때문에 우리를 삼키려던 보이지 않는 적이 결국 우리를 포기하는 모습이 ending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고오올~~~~~~~~

또 고고오오오올~~~~~~~

믿기지 않는 일이 지난 수요일 일어났습니다.

세계 57위 한국축구가 세계 1위 독일축구를 2:0으로 무너뜨린 것입니다.

조금 과장된 표현이지만 개미 같은 한국이 코끼리 같은 독일을 들어 올린 것입니다.

 

“코끼리를 들어 올린 개미”라는 제목의 우화(寓話) 같은 책이 있습니다.

개미가 코끼리를 들어 올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빈스 포센트가 지은 이 책에서는 들어 올립니다.

여기서 개미는 사람에게 있는 5% 의식이며, 코끼리는 사람에게 숨겨진 95%의 잠재의식을 의미합니다.

 

내게 깨어 있는 5%의 의식이, 마냥 잠자고 있는 95%의 잠재의식을 들어 올려

더어어~~~~~~~~~~

또 더더어어어어~~~~~~~~~

믿기지 않는 놀라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깨어있는 5%가 되어 무언가에 취해 잠자는 95%의 사람들을 흔들어 일으켜야 합니다.

 

오늘 있을 qbc 전체 특강과 내일부터 있을 전교인 여름 수련회는 내 안에서 쿨쿨 잠자는 코끼리를 깨울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코끼리를 들어 올린 개미”이야기는 내게 우화(寓話)가 아니라 실화(實話)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 200구를 북한으로부터 돌려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곧 모든 사람들이 확인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유해는 너무 많습니다.

 

비목(碑木)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한명희씨가 한국 전쟁에서 희생된 무명용사들의 비목(碑木) 꽂힌 돌무덤을 보며 그들을 생각하며 쓴 시(詩)입니다.

그 시에 장일남씨가 곡(曲)을 입혀 많은 한국인들이 애창하는 곡이 되었습니다.

저도 뺨에서 가슴으로 눈물을 흘려보내며 수없이 부르곤 하였습니다.

 

내일은 6월 25일, 남침(南侵)에 의한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어언 68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어머니도 그립고, 친구도 보고 싶으나 자유를 지킨다는 가치 때문에 깊은 계곡에서 죽어간 우리 젊은이들, 이름도 몰랐던 한국 땅에서 한국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죽어간 이국(異國)의 청년들, 그들이 지펴준 자유의 횃불을 잘 들고 있다가 다음 세대에 잘 전해 주어야 할 터인데...

 

자유를 사랑하다 이름 모를 비목 아래 잠든 젊은 영웅들의 유해라도 속히 가족 품에, 그들의 조국 품에 돌아가야 합니다.

그들을 찾는 그들의 조국이 있듯이, 우리의 영원한 조국, 하나님 나라는 진정한 자유의 복음을 위해 살다 죽어 십자가 아래 묻힌 영웅들을 찾고 또 찾고 있답니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 때면 저는 애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밤에 저를 꼭 데려가 주십시오.

이 땅에 살아 있는 것이 너무 힘이 듭니다.”

 

지난 목요일, 필라델피아에 사시는 이규성 원로장로님을 심방하였습니다.

공원 같은 집에서 아드님 가족과 함께 사시는 장로님 내외분을 심방하여 예배드리고, 자리를 옮겨 준비하신 풍성한 식사를 마친 자리에서는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

해방 후, 나이 어린 학생 때 5년을 북한 공산당 치하에서 믿음을 지키신 이규성 장로님과 허경화 장로님의 이야기는 충격 이상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을 반동분자라고 핍박하는 공산당 때문에 평일은 물론 교회를 다녀온 다음 날이면 더욱 혼나고, 매 맞고, 자아비판을 강요당하셨다는 두 분의 이야기는 마음을 졸이게도 하였고 아프게도 하였습니다.

기독교인과 사귀는 자도 반동분자로 몰렸기 때문에 두 분과 사귀려는 친구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학교에서 쫓겨나셨던 이규성 장로님은 그 어려운 시절, 서산(西山)에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 때면 이렇게 애절히 기도하셨답니다.

 

“하나님, 오늘 밤에 저를 꼭 데려가 주십시오.

이 땅에 살아 있는 것이 너무 힘이 듭니다.”

 

하나님은 어린 소년의 기도대로 그 때 데려가지 않으시고 산 넘어 월남(越南)케 하셨고, 물 건너 이민(移民)케 하시어 퀸즈장로교회가 세워져 가는데 믿음의 초석(礎石)이 되게 하셨습니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다 서산에 떨어진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를 데려가지 않으신 이유가 분명 있으실 것입니다.


나오미는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저도 한 사람 정도는 사랑 할 수 있어요.”

목사인 아버지 고이치는 외동딸 나오미에게 말합니다.

“사랑한다는 건 용서하는 것이란다.

한두 번 용서하는 게 아니라 끝없이 용서하는 것이지.”

 

미우라 아야꼬의 책“양치는 언덕”에서 나오는 내용입니다.

건달 같은 료이치와 결혼하겠다는 나오미는 부모님의 만류에 “저도 한 사람 정도는 사랑 할 수 있어요.”라고 자신만만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음을 나오미는 살면서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가 가르쳐 주셨던“사랑은 용서”임을 절절히 체험하기까지 나오미에겐 수많은 눈물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내 사랑의 그릇은 어느 정도일까?”

“정말 나는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스스로 답하기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은 용서, 끝없는 용서로 빚어지는 것이 분명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당신을 용서합니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아니,“당신을 끝없이 용서합니다.”라는 말이어야 합니다.

한 사람에게도 이렇게 말하기가 힘든 나, 나 한 사람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끝없는 용서로 사랑하시기에 너무나 힘드셨을 예수님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6월의 어느 날입니다.


힘들긴 하지만 난 외롭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겐 그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그대의 이름은,

선교회, 청장년부, 청년부, 교육부 그리고 em, cm, rm.

사랑하는 아름다운 이름이여....

부르고 또 불러도 여전히 그리운 이들이여....

올해도 멈출 수 없는 긴 나의 여정에,

동반을 자청하고 나선 그대 있음에 나는 결코 고단치 않습니다.

 

어제 바자회가 끝났습니다.

어제가 오기 여러 날 전부터,

나의 손을 따듯하게 잡아 같이 춤을 추어 준

그리고 끊임없이 나를 기도로 안아 울고 웃어 준

그대 있음에 나는 한 없이 행복합니다.

 

그대 같은 나의 친구가 또 어디 있으리오.

그대 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더 알게 되었고

그대 있음에 아버지의 마음을 더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대여,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그대의 배웅 가운데 하나, 둘, 나의 먼 길을 떠나려 합니다.

나의 이름은,

그대의 섬김과 사랑을 듬뿍 받은

2018년 단기선교랍니다.


지난 주간에는 우리 교단 총회가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의 예배를 통해 많은 은혜도 받았고, 숱한 회의(會議)를 통해 교단의 여러 현안도 잘 처리하였습니다.

총회 폐회 예배 때 마지막에 부른 찬송은 222장이었습니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사망권세 이기도록 지켜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때까지 계심 바라네

 

총회장님의 설명에 따르면 작년 5월 총회 후 올해 총회 때까지 일 년 동안 네 분의 목사님과 한 분의 사모님이 천국 가셨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일 년 동안 또 누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만났다가 오늘 헤어지는 사람 중에 이 땅에서 또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헤어지는 그 사람,

혹시 이 땅에서 다시 못 만나더라도 천국에서는 다시 만나야 합니다.

 

내 삶에 승차했던 어떤 사람이 금방 내리든 아니면 조금 오래 같이 가든 언젠가의 헤어짐이 영원한 이별의 순간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헤어지기 전에 꼭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어딜 가든 하나님과 함께 있다가 어디서든 다시 만날 때는 예수님 앞에서 만나는 것 맞죠?”

 

모두 일어서서 부른 폐회 예배의 마지막 찬송은, 총대들의 헤어짐의 아쉬움을 넘어 총대들의 사명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며 총회 장소에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지난 목요일 한글 서예 작품전에 갔었습니다.

우리 교회 권사님들의 작품을 비롯하여 여러 작품이 깊은 내용과 바른 글씨체로 마음의 감동과 생각의 정돈을 주었습니다.

그곳에 출품한 분들을 지도하신 선생님의 작품도 있었습니다.

내용은 안중근 의사(義士)의 어머니가 쓴 글이었습니다.

 

... 옳은 일 하고 받은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대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뭔가 울림이 있으시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습니다.

여태까지 제가 가본 서예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종이에 글을 쓴 것입니다.

작품이 써진 종이 위 여기저기에 먹물이 뚝뚝 떨어져 번져있는 것입니다.

그 선생님이 사연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누군가 하얀 종이 위에 실수로 먹물을 흘렸는데 그것을 버리지 않고 그 위에 글을 쓴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먹물 사이에 쓰인 애절한 글들을 보니 그 먹물들은 실수로 떨군 먹물이 아니라 안중근 의사 어머니의 눈에서 떨어진 굵은 눈물 같았습니다.

 

아직 버리지 마십시오.

구겨져 버릴 것들이 작품이 될 수 있고 감동을 자아낼 수도 있습니다.

한 작가의 손에서도 그렇게 바뀔 수 있다면 하나님의 손에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버려지는 것이 당연했던 저와 여러분이 그분의 손에서 변화되었듯이 그만 버리려고 생각했던 것, 하나님 손에 맡겨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앞길이 까마득한 신학생 남편 때문이었는지, 엄격한 시어머니 아래서의 시집살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가 보고 싶었는지, 신혼 초 아내는 많이 울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두 번째 이유가 가장 컸을 것입니다.

제가 가난한 신학생인 줄 알고 결혼했고, 같은 교회 다니셨던 친정어머니는 주일날이면 뵐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셨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엄격하셨습니다.

아니 엄격하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1남 5녀의 자녀가 있는 집에 시집오셔서 대충 말씀하시고 적당한 태도로는 집안 살림을 이끄실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말을 많이 아끼셨고 행동으로 교훈을 많이 주셨습니다.

 

아프셨던 어머니의 생애 마지막에는 많은 시간을 한국과 미국에서 며느리와 보내셨습니다.

제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 사역하던 2006년 3월 어느 날 요양원에 계신 어머님을 아내와 함께 찾아뵈었습니다.

그 날 어머니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환한 표정과 따스한 목소리로 외치듯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보세요. 우리 며느리 참 예쁘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저는 의아해했습니다.

아들에 대해 한 말씀도 안 하시고 며느리 이야기만 하시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이 세상에서 들었던 어머님의 마지막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며느리 참 예쁘지요?”

23년간 어머님의 마음속에 숨겨둔 마지막 말씀에 아내는 또다시 울었답니다.


“자~자~~애들은 가요!”

어렸을 적에 간혹 듣곤 했던 말입니다.

누군가의 주위에 어른들이 몰려 있을 때, 뭔가 궁금해서 저 같은 아이들도 까치발을 들고 그 안을 보려 했습니다.

훗날 그들의 이름을 알았지만, 그 안에는 야바위꾼의 책상이 펼쳐있었고 카드 석 장이나, 주사위를 조그만 공기 사발 세 개로 덮어가면서 어느 하나에 돈을 걸게 했습니다.

그런 사기 치는 모습을 애들에게만은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인지, 사기 치는 것이 순수한 애들 눈에 발각될 것이 두려워서인지, 야바위꾼 앞에서 바람 잡는 아저씨들이“애들은 가라”고 외칩니다.

 

애들은 가라고 했기에 망정이지 그곳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면 저도 집으로 돌아와 카드나 주사위로 부단히 야바위를 연습하여 잠시라도 그 바닥에 발을 들였을지 모를 일입니다.

 

애들은 보는 대로 배우고 따릅니다.

폭력적 가정에서 폭력적 아이가 자라 무서운 어른이 되고, 사랑의 가정에서 사랑의 아이가 자라 따듯한 어른이 됩니다.

 

“흔들리는 둥지에 성한 달걀 없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달걀의 안전과 미래는 그 둥지에 달려있음이 분명합니다.

부모의 믿음이 흔들리는 가정에서 견고한 믿음을 가진 아이들이 자라나길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흔들리는 둥지에 성한 달걀이 없다는 것이 상식적인 이치라면 무언가 아이들이 문제가 있다고 탓하기 전에 부모 된 우리가 우리를 먼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부모는 아이들의 둥지이니까요.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은 원래 한 나라였습니다.

나라가 둘로 깨어지고 오랫동안 서로에 대한 반목과 갈등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들에겐 평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는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평화를 만들 수 있는 분은 한 분이셨습니다.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겔 37:19)

 

그 평화를 위해서 왕이 둘이 되면 안 되었습니다.

두 왕이 있는 곳에 진정한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겔 37:22)

 

진정한 평화는 무엇보다 먼저 각자 더러운 우상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겔 37:23)

 

그리고 그들만의 평화가 최종 목적으로서는 부족했습니다.

그들만의 평화를 넘어 더 중요한 목표가 있어야 했습니다.

서로 하나되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평화의 궁극적 방향이어야 했습니다.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겔 37:26)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염려 다 맡기라 주가 돌보시니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뜨와리 뚜와^^)”

저는 지금 그 노래의 장소인 나성(la)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아내의 언니와 형부를 만나 오랜만에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언니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30여 년 전에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언니 가족이 la에 이민을 왔는데 그 아이가 두 살을 넘긴 즈음인 어느 주일날 아침, 교회를 갈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너무 아파 남편에게 아이와 함께 교회에 다녀오라고 하고 자신은 화장실로 들어갔답니다.

거기서 자궁외임신이 되었던 둘째 아이가 유산되면서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귀로는 소리가 다 들리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언니는 실신한 사람처럼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었답니다.

화장실에 들어간 아내를 보고 아이와 함께 교회를 가려던 남편이 그때 마침 울린“따르릉”전화 벨소리를 듣고, 나가다 말고 그 전화를 받았답니다.

한국에서 오래전에 알긴 알았지만, 전혀 친하지도 않았고 평생 전화도 한 통 없었던 어떤 사람이 수소문해 전화번호를 알았다며 뉴욕에서 전화를 걸어온 것입니다.

보통 통화와는 다르게 긴 통화를 마친 남편이 다시 교회를 가려다가 화장실에 들어간 아내가 오랫동안 나오지 않은 것을 이상히 여겨 화장실 문을 열어 보았고, 피를 하염없이 흘리며 쓰러진 아내를 발견하여 급히 911을 불러 병원으로 옮겨가 극적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 날 전화가 없었다면, 그 날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그 날 통화를 짧게 했더라면, 남편과 아이는 교회로 곧바로 떠났을 것이고 언니는 홀로 죽었을 것이랍니다.

놀라운 것은 그날 전화를 건 사람은 그 이전에도 전화를 건 적이 없었지만, 그 이후에도 지금까지 전화 온 적도 없고 다시 연락도 안 되었답니다.

그 날 그 시간에“따르릉”하고 전화를 건 어떤 사람은 도대체 누구였을까요?

그리고 우리의 삶에도“따르릉”이야기가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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