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시 78:72)

지난주, 멀리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주 오랜만이었습니다.

만난 지는 십 수년, 통화한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전화하는 즉시 우리는 그 오랜 시간이 서먹하지 않게 함께 시간여행을 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물론 과거의 이야기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직 녹슬지 않은 저의 '아재 개그'를 간간히 섞어 이야기하니 친구는 스마트폰이 깨지듯 웃었습니다.

 

그 친구는 노숙자 사역을 합니다.

그 친구가 위로해 줄 사람은 많아도 그 친구를 위로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힘들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 날 친구와 함께 터뜨린 웃음은 분명코 한 겨울에 핀 봄날의 기쁨이었습니다.

그 날 저는 박인수 씨가 부른 이 노래를 들었습니다.

 

많지 않아도

그리고 자주 만날 수 없어도

나에게 친구가 있음은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멀리 있어도 가만히 이름 불러볼 수 있는

친구가 나에게 있음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내 좋은 친구를 만날 때면

웃음마다 봄날 기쁨입니다

보고픈 친구를 생각할 때면 그리움은

잔잔한 행복입니다

 

 

바쁘셔도 잠시 옛 친구에게 전화해 보세요.

그와 함께 웃노라면 한 겨울인데 봄날의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누가 지혜론 사람입니까? 할 것과 말 것을 구분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용감한 사람입니까? 할 것과 말 것을 결단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할 것과 말 것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할 것을 하면 귀(貴) 해집니다.

할 것을 말면 천(賤) 해집니다.

말 것을 말면 정(淨) 해집니다.

말 것을 하면 추(醜) 해집니다.

 

기뻐하세요. 기뻐하면 열려요. 축복의 통로가

기대하세요. 기대하면 커져요. 하늘의 소망이

기도하세요. 기도하면 몰라요. 낙심의 탄식을

 

비교하지 마세요. 비교하면 열려요. 서글픈 미래가

염려하지 마세요. 염려하면 커져요. 불안한 마음이

불평하지 마세요. 불평하면 몰라요. 한없는 은혜를

 

할 것과 말 것을 혼돈(混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할 것과 말 것에 갈등(葛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할 것과 말 것도 타협(妥協)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요 11:53)

그들은 할 것과 말 것을 구분하지 못하여 잘못된 것을 결단하고 실천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불행했고 암흑의 역사를 빚었답니다.

 

 

어디에 있을까요?

할 것과 말 것을 구분하고, 결단하고, 실천하여

자신의 행복과 빛의 역사를 만드는 그들은.


2019.01.06 00:00

[2019-1-6] 첫 단추

옷을 입을 때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 단추를 꿸 곳이 없고 옷 모양새는 아주 우스워집니다.

새해의 첫 단추가 이상하면 올해의 전체도, 그 마지막도 이상하게 됩니다.

당신에게 새해의 첫 단추는 무엇입니까?

건강? 재물? 학위? 결혼?

 

“단지 15분”이라는 어느 연극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장래가 유망한 청년이 박사논문을 제출하여 놓고는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의사의 진찰 결과 그는 15분 후면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죽기 10분이 남았을 때 우편배달부가 편지를 가져왔는데 억만장자인 그의 삼촌이 죽었으므로 와서 재산을 상속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9분이 남았을 때에 도착한 것은 박사학위 논문 합격 통지서였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애인에게서 결혼을 승낙하는 편지도 배달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15분은 다 되어 죽게 되었답니다.

 

새해에 사람마다 건강, 재물, 학위, 결혼 등등이 필요하지만 이 땅의 것들이 새해의 첫 단추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성도들에게 그럴 수 없습니다.

성도들의 첫 단추는“위엣 것”이 되어야 합니다.

 

위엣 것을 첫 단추로 삼으면 올해의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뒷 순위의 가치를 첫 단추로 삼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다가“위엣 것”은 밀리고 밀려 끝내 꿸 자리도 없을지 모릅니다.

당신이 새해에 입을 옷이 5개 구멍밖에 없는 옷이라고 합시다.

“위엣 것”은 당신의 몇 번째 단추입니까?


최근에 언제 날아가는 새를 보셨나요?

저는 지난 목요일 청년대학부와 함께 겨울수련회 가는 길에서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새떼를 보았습니다.

그들에겐 방향과 속도에 있어서 모두가 함께하는 감탄할 질서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또 중요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어느 새도 뒤돌아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인이 이미 갈파한 대로 새는 날아가면서 결코 뒤돌아 보지 않습니다.

사도바울도 이렇게 외쳤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빌3:13)

롯의 아내가 뒤돌아보다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한 해가 다 저물어 갑니다. 마지막 시간과 함께 아쉬웠던 것도, 잘못된 것도, 꽤 괜찮았던 것도 다시 오지 못할 과거로 점점 사라져 갑니다.

앞으로 날아가는 새처럼 뒤돌아 보지 말아야 합니다.

사라지는 것들 다시 보겠다고 뒤돌아 보다가 우리조차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를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묶여있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또 비바람이 몰려올 것입니다.

때때로 먹구름이 펼쳐지기도 할 것입니다.

앞으로 만날 일들이 저만큼 오고 있는데 뒤만 돌아보고 땅을 칠 겨를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희망의 날개를 활짝 펴서 높이 치솟아 앞으로 날아 갑시다.

우리 앞의 어떤 먹구름이나 비바람도 점 같이 보이다가 점점 지나가도록.

 

지금은 21일, 금요일 이른 새벽입니다.

창밖에 비를 동반한 바람 소리가 무서울 정도로 요란합니다.

저는 방 안에서 글을 쓰고 있지만 한 겨울에 불어대는 저 비바람을 밖에서 직접 맞이한다면 누구라도 많이 서럽고 두렵고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 일정한 범위 밖에 있는 자들을 아웃사이더라고 부릅니다.

그들의 이름이나 처한 위치는 무언가 소외되고 어딘가 힘겨움을 보여줍니다.

사람이 사는 어느 곳이든 아웃사이더는 존재합니다.

이천 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때 베들레헴 지역 밖에서 한 밤을 보내던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당시에 그 사회에서 아웃사이더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인류 최대의 소식이 들려졌습니다.

한 밤에, 밖에 있던 그들이 구주의 탄생 소식을 천사로부터 직접 들은 것입니다.

그들은 구주를 급히 찾아뵙고 돌아가는 길에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들이 성탄 새벽송의 효시(曉示)였을 것입니다.

나는 아웃사이더라고 주눅 들고 슬퍼할 일만이 아닙니다.

세상 나라의 아웃사이더가 하늘나라의 인사이더가 되는 것이 성탄이기 때문입니다.

 

컬럼은 다 써가는 데 비바람은 유리 창밖으로 더 거세집니다.

문득 박인환 시인의“세월이 가면”이 생각나는군요.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그 옛날, 겨울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분주하곤 했습니다.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 때문이죠.

겨울나기 준비의 최고봉은 역시 김장김치를 담그는 것이었습니다.

식구 수에 따라 100포기 200포기, 또 그 이상을 담그게 됩니다.

잘 담근 김장 김치는 온 겨울을 든든하고 행복하게 해주었지요.

밥에는 물론, 칼국수, 수제비 같은 밀가루 음식에도 제격이었답니다.

 

김장김치를 만드는 전(全) 과정에 참여해 본 적은 없지만 오가며 김장김치 만드는 것을 보면서 잘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배추 절임과 김장 속 버무림이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거친 김장김치들이 장독 속에 들어가고 땅에 파묻혔다가 적절한 때에 꺼내져 한 포기씩 또는 반 포기씩 상위에 얼굴을 내밀게 됩니다.

 

겨울나기 김장김치에만 아니라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면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절임과 버무림입니다.

절임이란 배추로 더 이상 뻣뻣하지 않고 부들부들하게 만듭니다.

우리 각자가 배추 절임처럼 겸손해져야 합니다.

버무림이란 여러 김치 속 재료들을 함께 섞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가 함께 너도나도 없이 어울려져야 합니다.

 

절임과 버무림이 잘 되면 인생 겨울나기 준비는 ok입니다.

이렇게 한 번 외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나는 절여지고 우리는 버무려진다.


키 153m, 몸무게 48kg.

40대까지만 해도 몸이 허약해 골골했던 출판 편집자.

무언가 제대로 할 수 없던 자신의 바닥난 체력이 부끄러워 시작한 운동을 매일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천천히, 조금씩, 꾸준히 하다가 지금은 50살이 넘어 철인 3종(옥외수영, 사이클, 마라톤) 경기를 취미 삼게 된 이영미 씨의 이야기를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강연 프로그램)에서 들었습니다.

 

그의 강연 가운데 천천히, 조금씩, 꾸준히 운동하라는 말이 너무 와닿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체력 약한 그 누구도 몸짱으로 만들어 주는 보석 같은 세 단어들입니다.

매일 천천히, 조금씩, 꾸준히 운동한다면 모두의 몸 안에 깊이 잠자고 있던 건강이 조금씩 깨어나 마침내 놀라운 강인함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언젠가 제주도에 있는 세계적인 분재정원(盆栽庭園)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수십 년 전 돌로 가득했던 척박한 땅이 아름다운 나무들로 가득한 정원으로 바뀌는 과정에 필요했던 것은 다름 아닌 천천히 조금씩 꾸준히 이였음을 기억합니다.

 

지금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영적 성장이든, 공부를 하든, 사업을 하든, 직장 생활이든, 가정을 돌보든, 아니면 건강을 회복하려거든 매일 천천히 조금씩 꾸준히 해보세요.

그 어떤 분야이든 극심한 스트레스 없이 머잖아 견고한 결과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저부터 매일 천천히, 조금씩, 꾸준히^^


파가니니를 아십니까? 니콜로 파가니니.

10대 초 이전의 연주기법을 다 마스터하고도 계속 하루 10시간 이상 격심한 연습으로 새로운 연주기법을 습득해 17세에 큰 명성과 부를 이루었던 이탈리아 바이올리니스트.

그런 일찌감치의 성공이 오히려 파국에 이르게 했다가 다시 일어난 사람.

 

그에게 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의 연주회 때 바이올린 줄이 하나씩 끊어지면서 마지막 한 줄이 남았지만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 남은 줄 하나로 화려한 연주를 마쳤다는 이야기.

 

11월 달력을 뜯어내셨다면 이제 달랑 한 장만 남아 있는 달력.

그 한 장 남은 달력을 바라보며 “올해도 이렇게 아쉽게 끝나네....” 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달력 한 장이라도 남아 있다면 아직 올해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달력 한 장으로 멋진 올해의 마무리를 하십시오.

그렇다면 보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도 깜짝 놀랄 2018년 피날레를.

 

가나 혼인 잔치가 큰 어려움에 빠져 낭패의 잔치로 막을 내릴뻔 했으나 거기 계신 한 분 예수님 때문에 happy ending 잔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잊지 마십시오.

한 줄 바이올린 줄도 소망이 되고, 한 장 달력도 소망이 될 수 있다면, 한 분 주님은 가장 확실한 소망이심을.


없다 song을 아십니까?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민 20:6下)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처한 환경을 둘러보며 이곳에 다섯 가지나 없다고 외칩니다.

 

영국의 조지 허버트라는 사람은 자기에게는 너무 많은 것이 있다고 하면서 자기의 마음에 없는 한 가지를 이렇게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한 가지만 더 주시옵소서

감사하는 마음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부족한 것이 있다면 “환경”에 있는 “그 어떤 것들”이 아니라 “마음”에 꼭 있어야 할 “감사”가 아닐까요?


죽기를 연구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삶이 너무 힘들었을 때 죽기를 살짝 생각해 본 적이 있으셨을지는 몰라도 그 누구도 본격적으로 죽기를 연구해 본 적은 없으실 것입니다.

 

며칠 전 찾아가 만난 분이 몸이 아픈 것을 비관하여서 한 달 이상을 본격적으로 죽기를 연구하였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담담하고 상세하게 일러 주셨는데, 병실에서 뛰어내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머리를 벽에 세게 부딪히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몸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어~어~ 이제는 살아야 하나?”를 생각하셨답니다.

 

아직 그분은 몸의 한 부분이 아프십니다.

그 아픈 곳을 부여잡고 여전히 힘들어하셨습니다.

그날 저는 말씀을 전하면서 그분의 안 아픈 곳을 하나하나 집어가면서 물었습니다.

“여기 아프세요?” “아뇨.”

“여기는 어떠세요?” “괜찮아요.”

“여기는요?” “안 아픈데요.“

“안 아프신 곳이 훨씬 많으시군요?” “....그렇네요.”

 

그분은 이제 죽기를 연구하길 포기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 대신 잘 살기를 각오하였음을 보았습니다.

“빨리 나아서 교회 갈게요.”

교회와 담쌓고 살던 그분이, 그의 병실을 나서는 우리에게 아픈 곳을 잡고 있던 그 손으로 사랑의 표시를 몇 차례 하였습니다.

그분의 병실 창문 밖에는 올해의 첫눈이 하얗게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밥을 빨리 먹습니다. 밥만 빨리 먹는 것만은 아닙니다.

빨리 걷고 빨리 말하고.... 모든게 빠릅니다.

 

저 스스로 많이 질문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왜 모든 것을 빠르게 하려는지 말입니다.

모든 빠름에는 쉼표의 미학이 없어 볼품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빠름, 특별히 빨리 먹는 모습이 보여주는 수많은 볼품 없음 가운데도 두 가지 고상한(?) 의미가 있음을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면서 드디어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미래가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 미래로 빨리 가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미래가 항상 궁금합니다.

“이 시간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런 물음이 제 안에 깊숙이 자리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밥을 먹고 주님을 위해 죽고, 교인들이 주는 밥을 먹고 교인들을 위해 죽으라는 선배 목사님의 가르침도 제 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미래로 빨리 가려고 빨리 먹는다는 것은 어이없는 논리일 수 있지만, 혹시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동안은 별로 그렇지 않았더라도 주님이 다시 오실 미래의 촉박한 시간 앞에, 빨리 밥을 먹고 주님과 교인을 위해 일할 시간을 조금 더 확보하는 것이 가능할지 말입니다.


“벌컥 벌컥”제가 물을 마실 때 나는 소리입니다.

저는 평생 이렇게 물을 마시면서 감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주변에 얼마든지 있는 물을 가져다가 벌컥 벌컥 마시는 것이 제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물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렇게 물을 마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며 감사할 일인지 최근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난여름, 그동안 말로만 듣던 아프리카의 열악한 물 사정을 실감 나게 깨닫고 나서 전교인 수련회에서 전 성도들이 아프리카에 우물 파주기 특별 헌금을 드렸고, 그 헌금으로 이미 두 개의 우물을 팠으며 또 한 개의 우물 파기와 큰 물탱크를 설치하는 일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한 모금의 물도 없던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답니다.

 

지난 목요일 밤, 아내와 함께 보스턴의 한 병원에 입원하여 암 치료 중인 남위홍 집사님과 그를 간호하고 있던 남편 석뢰 교우님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치료하는 과정 중에 식도가 많이 상하게 된 남 집사님은 사람들이 물 한 모금 먹는 것이 너무 부럽다며 그 물 한 모금에 감사하지 못했던 지난 삶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나직이 말했습니다.

 

“한 모금 물”도 없는 곳....“물 한 모금”의 감사를 잃은 자....

지난 주일 있었던 행복에의 초대에 km, em, cm, rm에 나온 90명 가까운 새 신자들에게는 한 모금의 물이 아닌 풍성한 성령의 생수로 다시는 갈함이 없고, 그동안 물 한 모금의 감사를 잃었던 저와 또 저와 비슷한(?) 자들에겐 뜨거운 감사가 회복되는 감사의 달 11월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저에게는 두 손녀가 있습니다.

큰 손녀 이름은 하늘이고 둘째 손녀 이름은 마음이입니다.

그 손녀들의 이름을 제가 지어주었습니다.

제가 지었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잊어버릴 리 없습니다.

멀리 살고 있습니다만 영상 통화할 때 이름을 불러주면 좋아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사실,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제가 더 기쁩니다.

 

우리의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아십니다.

우리의 이름을 잊지 않고 부르십니다.

오늘 행복에의 초대를 맞아 그동안 오래 나오신 분, 오랜만에 나오신 분, 그리고 처음 나오신 분.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이름을 알고 부르십니다.

 

내 이름 아시는지 궁금하면 물어보세요.

“저~~ 내 이름 아시나요?”

“사랑하는 내 자녀야. 알다마다.

나는 저 하늘의 수많은 별의 이름도 다 안단다.

내가 너를 태어나기 전에도 알았고, 내가 너를 지명하였고, 심지어 내 손바닥에 네 이름 새겨 놓았단다.”(시147:4,사43:1,49:16, 렘1:5)

 

내 이름 아는 사람 아무도 없어도, 내 이름을 알지만 불러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하나님 아버지는 내 이름을 아시고 늘 불러주십니다.

내 이름을 부르시며 스스로 감격해 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

그분은 변함없으신 나의 아빠 아버지이십니다.


정말 뉴욕에는 봄과 가을이 사라진듯 합니다.

며칠전만 해도 에어컨이 필요했는데 이제는 히터를 틀것을 생각하게 될 정도로 날씨가 제법 차가와졌습니다.

하루의 기온차도 크니 감기 걸리기에 제격인 날씨인데, 우리 교우 모두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덧 행복에의 초대가 한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모든 성도, 모든 부서가 한 마음이 되어 이 거룩한 행사에 진력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동안 몇차례의 노방 전도가 있었는데 오늘 오후에는 전체 부서, 전체 회중이 함께하는 전도대회가 main street 도서관 앞에서 있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인 전도가 오늘도 펼쳐집니다.

 

교회가 채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원하심 입니다.

교회가 채워지려면 먼저 채워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도입니다. 기도가 그 교회당에 차야합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일곱번 채워졌을 때 하늘에서 큰 비가 내려 온 땅을 적시었듯이 우리의 기도가 먼저 차야 교회에 사람들도 차게 됩니다.

 

내일부터 가을 새벽 부흥회가 열립니다.

기도를 채웁시다.

교회당 안에 사람이 가득 차도록.

기도를 채웁시다.

우리 가정을 향한 하늘의 문이 열리도록.

기도를 채웁시다.

성큼 다가온 영적인 겨울을 넉넉히 이기도록.

그렇습니다.

차야 찹니다.


8분이면 충분했습니다.

80년의 난제를 해결하는데 말입니다.

무슨 일이냐고요? 들어보세요.

 

지난 화요일, 우리 교회 나오시는 분이라는 말만 듣고 환자분을 찾아갔습니다.

가서 뵈니 등록은 안 하셨지만 한 동안 예배에 참석하셨던 성도였습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서 엉치 옆뼈를 우두득 부숴 놓았답니다.

괜히 문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쫓아 들어갔다고 후회도 하고, 너무 아프다고 호소도 하시는 그 분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다음 심방 장소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쉽게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 가운데 놀라운 내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기 나이는 80세가 다 되어 가고 모태신앙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하나님은 믿어지는데 예수님은 안 믿어진다고 하였습니다.

80년을 교회 다녔는데 예수님이 안 믿어진다는 그 말이 안 믿길 정도였습니다.

위로의 말씀 대신 백지 위에“다리”그림을 그려가면서 예수님을 말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인간이 죄 때문에 떨어져 있는 그림을 그리고, 그다음에 하나님과 떨어진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하나님께 갈 수 있는 다리로서 돈, 지위, 지식, 인격 등은 불충분하고, 하나님이 보내 주신 유일한 천국 가는 다리(길)로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고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이렇게 말하는데 8분 정도 걸렸습니다.

통증으로 힘겹게 예수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분이 깜짝 놀랄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이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다치게 하신 이유이군요.”

80년의 어둠이 걷히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말한 8분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분명합니다.

예수님을 말하면 어디서나 기적은 일어납니다.


부엌살림 하다보면 골칫거리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 중에 하나가 찬밥이 남아도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찬밥을 어떻게 하시나요?

아낌없이 버리시거나 속절없이 냉장고에 놔두시는 분도 있지만, 그 찬밥에 주물주물 손대어 화려한 별미(別味)로 바꾸시는 분도 있습니다.

 

지난 4일,

la 다저스 구장에서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이 있었습니다.

la 다저스 소속 우리나라 류현진 선수가 1차전 선발로 나와 7회 동안 한 점도 주지 않는 빼어난 피칭으로 승리투수가 되었습니다.

작년에도 la 다저스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었습니다.

그 때 류현진 선수는 정규 멤버가 되지 못하고 구경만 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작년에 그는 찬밥 신세였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포스트시즌 첫 게임에 팀의 제 1선발로 나서 승리한 것입니다.

찬밥의 화려한 변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도 집안에서 말째로서 찬밥신세였습니다.

다윗은 찬밥신세라고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집안의 찬밥이 온 세상의 왕으로 등극하는 화려한 변신이 있었습니다.

 

찬밥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찬밥도 여태 맛 못 보았던 뜨신 밥으로 화려하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 집안의 찬밥, 그 누군가 있지요?

버리지 마세요. 놔두지 마세요.

찬밥이 화려하게 변신하여 별미가 될 수 있는데, 왜 찬밥을 언제나 차갑게만 대하시나요?


하트하트오케스트라를 아십니까?

발달장애 청소년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입니다.

지난 주일 밤, 카네기 홀에서 있었던 2018 세계찬양대합창제에 초대받아 한국에서부터 먼 길을 와서“나 같은 죄인 살리신”등을 연주하며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모든 청소년들 한명 한명이 자기의 악기를 진지하게 연주 했습니다만, 그 중에 팀파니를 치는 청소년은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아시는 대로 팀파니는 몇 개의 큰 북으로 구성되어 있고 연주 중에 몇 차례 아주 짧게 참여합니다.

 

여태껏 보아 온 팀파니 연주자들은 가만히 있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화려하게 연주에 합류한 후, 또 한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달랐습니다.

자기가 직접 연주하는 시간이 아닐 때에도 허공을 치며 연주에 동참했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며 허공을 쳤을지 궁금했습니다.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친구들과의 호흡을 헤아리고 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그 친구에게는 허공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보이는 팀파니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공기(空氣)에게도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다그치는 것도 같습니다.

곰곰이 보면 주님에 대한 사랑을 한 순간도 쉴 수 없다는 몸짓 같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카네기 홀의 허공을 치던 그 친구의 모습이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지난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040 찬양부흥 집회가 있었습니다.

매일 저녁마다 독특한 순서들이 있었습니다.

목요일 밤에는 이번에 큰 주제인“the one”의 이름을 딴 “one 특별찬양”팀의“즐거운 모임”이라는 짧은 뮤지컬이 있었습니다.

 

전체 기획부터 섬세한 부분까지 잘 준비되었고, 무대에서 보여준 “one 특별찬양팀”의 뮤지컬은 짧지만 깊은 울림을 준 작품이었습니다.

저도 그 뮤지컬에 당당히(?) 한 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의 배역은 골리앗이었습니다. 저의 생김과 골리앗의 이미지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교우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아무튼 골리앗의 역할을 맡아 몇 번의 연습과 실제 공연에 참여하면서 골리앗의 눈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골리앗의 눈으로 보니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겁쟁이였습니다.

골리앗의 큰 목소리에 벌벌 떠는 것이었습니다.

“으하하하 너희들이 믿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맞아?”

골리앗의 조롱에 아무도 나서지 못하였는데 저기 조그만 다윗만이 내 앞, 골리앗 앞으로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이라는 골리앗의 눈에 기독교인들이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 세상은 온통 골리앗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3040 찬양부흥 집회에 함께하면서 다윗 같은 기개(氣槪)가 우리 3040 세대에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골리앗의 눈으로 보니 수많은 다윗들이 일어나 있는 것이 보여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참 기쁘셨을 것입니다.


지난 11일, 화요일 저녁은 우리 교회, 그리고 우리 교회를 넘어서까지 이민 교회 역사(歷史)의 한 페이지가 기록된 날입니다.

우리 교회 서리집사 안수집사 시무장로의 사역을 잘 감당하시다가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여 신학 공부를 마치고 만 70세가 되는 해에 선교 목사로서 안수를 받으신 전성호 목사님.

그리고 다민족 선교의 꿈을 안고 우리와 함께 그 길을 걷다가 우리 교단 안에서, 아마도 다른 한인 이민교회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 힘들 중국인 최초로 안수를 받으신 첸위지 목사님.

 

하나님께서 친히 계획하시고 펼치신 이 새로운 역사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정체성과 새로운 방향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한 모퉁이에 불과한 뉴욕의 한인 이민자라는 정체성에서 하늘의 복을 우리가 사는 땅과 저 열방에까지 흘려보내야 하는 하늘 소명자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깊은 의미로 기록된 지난 화요일의 역사 페이지는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모두 하늘 소명자로 새로운 역사를 계속 써나가야 합니다.

우리 앞에 어떤 어려움이 있고, 우리 안에 어떤 아픔이 있다 하여도 담대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늘 소명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분명합니다.

하늘 소명자의 이야기를 기록할 붓은 기도의 눈물, 수고의 땀, 그리고 희생의 피가 담긴 벼루에 적셔야만 써갈 수 있다는 것이.


아프리카 대륙에 몇 나라가 있는 줄 아십니까?

많은 분이 아시는 대로 54개 국가입니다.

그중에 53개 국가 정상들이 지난 3일과 4일에 중국 베이징에 모여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 정상회의”를 가졌습니다.

한 나라가 참석하지 않았는데, 그 나라의 이름은 스와질랜드(swaziland)입니다.

아니, 에스와티니 왕국(kingdom of eswatini)입니다.

얼마 전에 그 나라 왕 음스와티 3세가 자기 마음대로 나라 이름(그 이름에 소문자를 대문자 앞에 쓰는 것 좀 보세요)을 바꾸었습니다.

 

그 나라는 인구가 백만 명을 조금 넘는 나라인데 아프리카 54개 국가 중 중국과 수교하지 않고, 대만과 수교하여 지내는 유일한 국가입니다.

큰 나라 중국을 거절하고 작은 나라 대만을 선택한 것, 왕 맘대로입니다.

 

이번에 신학교 가을학기 개강부흥회 강사님으로 오신 분이 그 나라 eswatini medical christian university의 김인환 총장님입니다.

총장님에 따르면 그 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왕 마음대로라고 합니다.

대학교 졸업식이 오전 10시에 열린다고 광고하여 다 모였어도, 그 왕 맘대로 오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정오 12시든 오후 1시든 그때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명색이 왕이니까, 그 왕 맘대로 해도 국민들이 별로 뭐라고 하지 않는답니다.

그런데 세상 왕 맘대로는 모든 것이 불안불안 합니다.

다분히 자기감정대로 움직이면서 국민들을 난처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왕, 영원한 우리 왕, 하나님이 맘대로 하시는 것은 언제나 옳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보다 그가 늦으시는 것은, 우리가 선택하는 보기에 큰 것보다 다른 것을 선택하시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진짜 좋은 것이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왕 맘대로”그것이 최고의 선택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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