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인간삭제

 

 

 

사람들 대부분은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모든 상처를 깔끔이 잊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잊으려 하면 돋아 오르는 것이 아픈 상처이기도 합니다.

 

모든 상처를 깨끗이 지울 수는 없을까요? 놀랍게도 있습니다.

 

 

 

인간삭제 사업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자기의 과거를 깨끗이 지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사업이라고 합니다.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과 기록이 남아있지 않게 하는 완벽한 인간삭제

 

일본에서 번창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만간 한국과 미국, 그리고 세상에 퍼질 위험한 사업 같기도 합니다.

 

 

 

미국에 그런 사업이 등장하면 달려가 상담받고 싶으십니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기대만큼 완벽히 삭제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다음 말씀을 들어보십시요.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우리의 아픈 과거를 지워주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해 주시는 분이 있으십니다.

 

가을,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서있으면 우리 쓰린 상처를 완벽히 삭제해 줍니다.

 

보혈이 떨어지는 십자가 아래 있으면 누구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답니다.

 

 


고발과 콩알

 

 

 

한국의 조상들은 콩을 심을 세알을 심었답니다.

 

알은 벌레나 새가 먹으라고

 

알은 이웃에게 나누려고

 

마지막 알은 자신이 먹으려고

 

 

 

콩알하나마다 아름다운 희망을 품고 있었고

 

세콩알이 어울려 멋진 노래를 만들곤 했습니다.

 

 

 

지금은 슬프게도 한국은 거의 원한에 가득 고발 공화국

 

드라마나 현실에서 고발 중독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여야 정치 지도자들의 서로를 향한 고발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아이들 조차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급우들을 서슴없이 고발합니다.

 

 

 

선진들이 물려준 세콩알의 정신이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놀랍게도 선진들의 마음을 품은 '세콩알' 이름의 기업도 있습니다.

 

고발과 콩알, 선택 속에 한국의 그림은 더욱 달라질 같습니다.

 

'세콩알' 아니라 '네콩알'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 교회가 너무 그립습니다.

 

 


Beyond Utopia (이상적인 나라를 넘어)

 

유토피아는 토마스 모어가 1516년에 펴낸 소설의 제목입니다.

여기서 유토피아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나라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그런 이상향(理想鄕)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그런 나라를 만들겠노라 앞다투어 공약으로 내놓곤합니다.

 

‘Beyond Utopia’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유대인 제작자가 만든 탈북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3대 김씨 세습을 이어가는 저들이 북한을 유토피아라고 속이고 있습니다.

굶어 죽는 곳, 억압받는 곳이 어찌 유토피아일 수 있습니까?

 

영화 ‘Beyond Utopia’는 북한은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한 사람이라도 구출해 내겠다는 목숨 건 이야기 ‘Beyond Utopia’

그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은 놀랍게도 목사님을 비롯 크리스천들입니다.

그 영화의 출연과 제작의 주인공들이 지금 우리 교회를 방문중에 있습니다.

 

북한 주민이 자기들이 있는 곳을 유토피아로 착각하듯이, 한국에도 미국에도

자기들이 사는 곳을 유토피아로 잘못 생각하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더 늦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건져내어 ‘Beyond Utopia’

곧 천국으로 이끌어야 하겠습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길이신 예수님께로

 

 


그녀의 태도

 

사람은 그 사람이 가진 능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 사람에게 닥친 상황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능력과 상황이 어느 정도 영향력은 있겠지만 미미(微微)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그 사람의 태도입니다.

 

그녀가 만난 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통했습니다.

그녀에게 없는 것이 많았습니다.

남편도 없었고 돈도 없었습니다.

익숙한 고향집을 떠난 지도 오래입니다.

 

없는 것이 많았던 그녀에게 확실히 있었던 것은 긍정적인 태도였습니다.

그의 이런 태도는 쓰라린 과거를 회상하며 형성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녀는 시어머니가 걷고자 한 “The Way”의 미래를 볼 수 있었기에

‘The Way’ 앞에서 암울한 현실을 뛰어넘는 승리자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입니다.

‘The Way’를 따르던 룻은 마침내 “The Way’의 족보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The Way’를 선명히 보는 자는 태도가 선명하고 또 그런 삶을 삽니다.

 

50주년을 맞아 지금 내 앞에 펼쳐진 ‘The Way’ 곧 예수님.

그녀가 그랬듯이 ‘The Way’에 대한 나의 태도가 나의 인생이 됩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의 시작은 아침이고 하루의 끝은 저녁입니다.

동이 트는 아침,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활기찹니다.

노을 지는 저녁, 하루의 끝은 아름답긴 하지만 늘 피곤합니다.

 

창조 때는 달랐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루의 시작은 저녁이었고, 하루의 끝이 아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원래의 하루는 시작보다 끝이 더욱 힘이 넘칩니다.

 

오늘은 교회학교 졸업 예배가 있는 주일입니다.

졸업생들에게 오늘은 시들한 저녁이 아니라 가장 희망찬 아침과도 같습니다.

이들에게 찬란한 아침 영광의 빛이 비추일 것입니다.

이들은 우울한 세상을 희망으로 바꾸고 빛으로 채울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졸업생들이 있기까지

교사님들의 헌신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모님들의 수고가 마르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성도님들의 기도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축복합니다.

 

 

 

 

 


고독한 숫사자

 

초원의 제왕(帝王) 사자도 외로울까요?

외롭답니다. 적어도 숫사자는.

암사자보다 현격히 떨어지는 평균수명을 사는 숫사자는 나이가 들면서

무리를 지어 지내는 암사자와 새끼 곁을 떠나 홀로 다니곤 합니다.

모계(母系) 중심인 사자들의 사회이기 때문일까요?

 

누구에게도 없는 멋진 갈기와 누구도 범접지 못할 힘이 여전히 있어도

고독한 숫사자의 걸음과 눈망울은 애잔하기만 합니다.

 

고독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로, 공동체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외치지는 말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는 싫어. 교회는 결코 안 나갈거야

나는 교회는 나가지만 다른 사람들과 절대 어울리지는 않을거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도 고독한 숫사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어 함께 웃고 함께 울며 그날까지 함께 가야 합니다.

나 홀로 멋진 그리스도인은 없답니다.

어울려야 그리스도인이고 그 모습이 아름답담니다.

 

 

 

 

 

 


흘러내리는 침

 

흘러내리는 침을 삼키실 수 있으십니까? 행복하시군요.

사랑하는 가족과 허그(hug)하실 수 있으십니까? 축하드립니다.

아침에 두 눈이 떠지십니까? 멋지시군요.

숨을 스스로 들이 마시기도 하시고 내쉬기도 하실 수 있습니까? 대단하십니다.

 

장 도미니크 보비라는 여인은 그렇게 못했습니다.

세계적 여성잡지 편집장이었던 보비는 43세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전신마비가 되어 단지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왼쪽 눈꺼풀만으로 알파벳을 표현하였고, 15개월 동안 20만 번의 깜빡이는

눈꺼풀을 읽어낸 대필자 크로드 망디발을 통해 잠수복과 나비라는 책을 썼습니다.

 

몸은 비록 잠수복을 입은 것처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지만

그의 영혼은 나비처럼 훨훨 날았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 좌절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흘러내린 침을 삼킬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의 책 서문에 썼답니다,

그는 그의 책 출간 8일 만에 심장마비로 그가 꿈꾸던 나비가 되어 날아갔답니다,

 

지금 흘러내리는 침을 삼키실 수 있으십니까?

~~그대, 행복한 사람이시여!

 

 


활기찬 여름나기

 

많이 지칠만한 더운 여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쳐만 가는 이때에 활기찬 여름나기할 방법이 없을까요? 있습니다.

 

다음 문구와 비슷한 내용을 식당이나 상점에서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Your satisfaction is our constant vitality.

당신의 만족은 우리의 변함없는 활력제입니다.

 

소비자들이 만족할 때 지쳤던 사업자에게 활기찬 힘이 솟는다는 것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킹덤미션 (Kingdom Mission)이 있었습니다.

여러 나라와 동시다발적으로 예배, 교육, 친교 등 많은 사역을 진행하였는데

현지 시간을 고려해 뉴욕에서는 한 밤중에 사역을 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모두 즐겁고 활기찼다는 것입니다. “우째 이런 일이?”

그들의 모습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주님의 기쁨이 나를 힘 있게 합니다.

The Joy of the Lord makes me strong.

 

병원 문을 닫고 참여했던 분은 선교를 위해 지금의 직업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네 식구가 계속 참여하면서 선교는 자기 가족의 소명이라고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진 주님께 기쁨을 드렸던 선교 이야기들....

더운 여름, 우리는 무엇으로 주님께 기쁨을 드릴까요?

그것을 찾아 활기찬 여름나기를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뒷모습

 

엊그제 공항으로 가는 차에 오르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동안의 준비로 많이 지쳤을 터인데,

여러 짐을 메고, 끌고 가니 몹시 힘들었을 터인데,

이곳에 남겨진 일들이 만만치 않아 마음이 심히 눌렸을 터인데,

그들은 아무런 내색 없이 차에 올라 기쁘게 손으로 하트모양을 그리거나

붉은 눈시울로 손을 흔들며 떠났습니다.

 

단기 선교 대원들, 그들은 덥고 열악한 선교지에서 선교사님들과 함께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과 말씀을 뜨겁게 펼칠 것입니다.

이제는 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이 큽니다.

킹덤미션을 통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그들과 조우(遭遇)할 것입니다.

 

사노라면 뒷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뒷모습,

예수님을 따라가는 뒷모습,

성령으로 봉사하는 뒷모습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모두에게는 마지막 뒷모습을 남길 때가 머잖아 찾아옵니다.

우리가 이 땅에 남길 마지막 뒷모습이 어떠할지 자못 궁금합니다.

 

 

 

 

 

 


하나님이 휴가 가신다면

 

기계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것들을 계속 사용한다면 곧 둔탁(鈍濁)해 지거나 끝내 망가질 것입니다.

기계도 그렇다면 사람은 어떠하겠습니까?

사람에게 휴식이란 꼭 필요하며 그것은 재충전의 시간이요 새 출발의 디딤돌입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잠시라도 휴가를 가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세상에는 대혼란이 올 것입니다.

누가 광대한 우주를 오차 없이 돌아가게 할 것이며,

누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피조물을 보호하시겠습니까?

 

기가차게 이렇게 외치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하나님, 당신이 더 이상 필요 없으니 당장 우리를 떠나시오’ (21:14 참조)

 

이 무슨 해괴(駭怪)한 망언이며, 교만의 극치(極致)입니까?

 

이 뜨거운 여름, 잠시의 휴가도 없이 우리를 주목하고 돌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도 결코 휴가 보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감사와 찬양은 휴식 없이 항상 드려야 하겠습니다.

 

 

 

 

 

 

 


사랑이 식기 전에

 

결혼 생활을 막 시작하려는 사위에게 장인(丈人)이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내 딸에 대한 사랑이 식거든, 미워하지 말고 내 딸을 그대로 내게 돌려주게나.

내 딸을 때리고 싶거든, 손찌검하지 말고 내 딸을 그대로 내게 돌려주게나.

내 딸을 버리고 바람을 피우고 싶거든, 버리지 말고 내 딸을 그대로 내게 돌려주게나.

 

많은 어려움 속에 곱게 키워낸 딸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사랑은 잘 식습니다.

그리고 그 식은 사랑이 아름다왔던 관계를 파멸로 이끌기도 합니다.

사랑이 식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일생에 몇 번이나 말해야 할까요?

평생 청혼할 때 딱 한 번만 말하는 대단한 남성도 있는데, 이 노래를 들어보십시오.

 

천만번 또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사랑해

 

그렇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해야 할 말이 있다면, ‘사랑해입니다.

평생 천만번 반복 하리라는 다짐으로 해야 할 말이 있다면, ‘사랑해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식기 전에 날마다 사랑합니다, 나의 주님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식기 전에 날마다 사랑해요, 그대를

자녀에 대한 사랑이 식기 전에 날마다 사랑한다, 애들아

성도에 대한 사랑이 식기 전에 날마다 사랑합니다. 성도님

 

예수님도 날마다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행복은 어디에

 

이것이 행복이라오라는 주제로 시작된

2023년 전교인 여름 수련회가 오늘로 막을 내립니다.

행복하십니까?

일주일로는 행복을 못찾았으니 행복을 더 찾아 나서야 하나요?

 

강사 목사님이 말씀을 통해 행복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셨습니다.

구원이 행복이라고.

동행이 행복이라고.

약속이 행복이라고.

 

그렇다면 행복은 멀리 찾아나설 일이 아닙니다.

행복은 이미 내게 있습니다.

내게 있는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이미 물속에 있는 물고기가 물을 찾아 나서는 것과 같습니다.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선명하게 티가 납니다.

그 사람의 얼굴에 행복이 담겨 있습니다.

그 사람의 언어에 행복이 흘러 넘칩니다.

그 사람의 태도에 행복이 한껏 보입니다.

 

그대가 행복한 사람이기를

 

 

 


은혜로운 이별

 

 

내 평생 살아온 길 뒤 돌아보니

짧은 내 인생길 오직 주의 은혜라

주의 은혜라 주의 은혜라

내 평생 살아 온 길

주의 은혜라 주의 은혜라

다함이 없는 사랑

달려갈 길 모두 마친 후

주 얼굴 볼 때

나는 공로 전혀 없도다

오직 주의 은혜라” (손경민 목사님)

 

7월 첫 주일입니다.

2023년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막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짧은 전반전을 돌이켜 보니 오직 주의 은혜이었습니다.

남은 짧을 후반전을 예상해 보니 오직 주의 은혜일것입니다.

 

오직 주의 은혜라라는 곡을 만드신 손경민 목사님.

20131027. 받은 은혜, 받을 은혜를 나누며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내일, 전교인 여름 수련회 강사님으로 다시 만나게 됩니다.

누군가와 헤어져야 한다면 반드시 은혜로운 이별이 필요합니다.

내 인생에 만났다가 헤어진 사람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니까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시간에 여기서!

아니면 달려갈 길 모두 마친 후 영원히 거기서!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유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가고 싶은대로 가고, 말하고 싶은대로 말하고.

교회 안에서도 마음껏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이런 자유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그 대가(代價)를 치르고 누리는 것입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자유는 6.25라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자유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6.25가 누구에 의해, 언제, 그리고 왜 일어났는지 잘 모릅니다.

이런 젊은이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하거나 후회해 본적은 없다.

우리는 그 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그렇게 했다.

내 살던 나라여! 내 젊음을 받아주오. 나 이렇게 적을 막다 쓰러짐은

후배들의 아름다운 날을 위함이니 후회는 없다.’

 

후배들, 곧 오늘날 우리들의 자유를 위해 자기 생명을 주저없이 바친

어느 무명의 학도병(學徒兵) 전사자가 남긴 편지입니다.

오늘은 6.25입니다. 우리의 자유가 무엇을 주고 얻은 것인지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죄로부터의 영원한 자유를 위해

누가 어떤 희생을 치르셨는지 또렷이 기억해야 합니다.

 

 


울보 아버님

 

아버지, 성국이 왔어요.’

말없이 누워계시던 아버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눈물로 쏟아내신 아들을 향한 아버님의 마지막 사랑 표현.

그러시고 곧 아버님은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어느 날 아버님께서 어머님이 묻히신 망우리 공동묘지로 나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아버님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찬송을 부르시면서 눈물지셨습니다.

남북 이산가족 찾기 방송 때에 북에 두고 온 딸을 생각하시면서 흐느끼셨습니다.

그때 아버님 눈에 맺힌 눈물을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아버님은 하나님 앞에서도 한없이 우셨습니다.

매일 새벽, 아버님 옆에 놓인 손수건이 그 눈물이 어떤 것인지 말해주었습니다.

목사님과 성도들을 섬겨야 할 장로님으로서, 여섯 자녀를 먹어야 할 아버지로서,

그 삶과 책임의 무게감 때문에 간청의 눈물이 마르지 않으셨음이 분명합니다.

울보 아버님.

 

오늘은 아버지 날입니다.

아버지들도 잘 운답니다.

아내들과 자녀들이 잘 눈치채지 못할 뿐입니다.

그런데 꼭 아셔야 할 것은,

아버지가 우는 것은 결코 약하기 때문만이 아니랍니다.

 

 

 

 

 

 


놀라운 장터

 

장터는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곳입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익을 추구하는 장터는 없습니다.

아니, 있습니다.

어제 선교바자회가 그랬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잊은 희생뿐인 선교바자였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중심적인 분냄이나 고성(高聲)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 대신 서로를 격려하는 소리나 즐거운 함성은 가득했습니다.

무엇인가 열심히 교환한 장터는 맞지만

그 결과는 자신들의 이익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놀라운 교환이 이루어진 곳이 또 있습니다.

우리의 죄와 예수님의 의가 교환된 곳입니다.

십자가에서 이런 놀라운 교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전적인 희생이 없었다면 이런 교환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제, 놀라운 장터를 지나다니면서

선교회, 중국교포부, 청년, 교육부, 영어권회중, 중국어회중, 러시아권 회중들의

희생을 품은 미소 속에서 십자가 희생과 사랑의 예수님 형상을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의 놀라운 장터는 예수님의 놀라운 십자가에서 배운 것임이 분명합니다.

 

 

 


목사가 이유

 

장로님은 중학교 2학년때 은혜받아 목사가 되기로 서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끝내 목사가 안된 이유가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로님들의 주일 대표기도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어제 새벽, LA 열매 교회에서 말씀을 전한

아침식사는 맛있는 설렁탕이었습니다.

식사를 대접해 주신 열매교회 장로님은  부산 초량교회 출신이셨습니다.

장로님은 중학교 목사가 되기로 서원하고 어른 예배에 참석하셨답니다.

그런데  모든 장로님들의 대표 기도 가운데 빠지지 않는 구절이 있었답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의 피가 흐르고 있는 초량 교회가----"

 

부산 초량 교회는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 시무하셨던 교회입니다.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하신 장로님은 대표 기도를 들으며

목사는 반드시 순교를 해야 하는 줄로 생각하셨답니다.

순교가 두려우셨던 장로님은 목사가 되겠다는 서원을 철회하셨다고 합니다.

 

순교가 목사 됨의 기준이라면 저는 아직도 제대로 목사가 아닙니다.

희생에 인색한 제가 목사의 직분을 고민 없이 유지하고 있음에 놀랐습니다.

목사다운 희생을 없으니 목사의 길을 가지 않으시겠다는 양심고백이

 

저를 계속 부끄럽게 하였습니다.


부르심, 더 큰 그림으로

 

 

총회가 끝났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총회 모든 순서가 잘 진행되었습니다.

총회 기간 동안 교우들이 보여주신 아름다운 헌신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저는 이번 총회에서 하나님이 저를 교단 총회장으로 부르시는 줄 알았습니다.

이미 맡은 일도 많은데 또 총회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적잖이 부담되었습니다.

그런데 총회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총회를 진행하면서

 

 

하나님은 저만을 부르신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더 큰 그림 가운데 부르신 것입니다.

퀸즈장로교회가 교회와 총회만을 섬기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민 땅의 목회자와 사모님을 끊임없이 위로하라고 부르셨습니다.

예배와 찬양의 벅찬 감동을 모든 교회와 함께 하도록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선교적 비전이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 온세상에 보이도록 부르셨습니다.

 

 

어느 사모님이 총회를 떠나시면서 저와 우리 교회에 남겨주신 편지를 읽으며

더 큰 그림으로의 우리를 부르셨음을 보다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기 그 편지가 있습니다.

 

 

 

KAPC 총회와 사랑의 섬김으로 훈련된 뉴욕 퀸즈장로교회의 목사님과 성도님들께 …

 

산골 생활 23년 동안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거대한 도시 뉴욕에서 열린 이번 총회 참석을 하면서 무엇보다 은혜로운 예배와 찬양. 그리고 그동안 늘 목사님 그늘에서 총알받이를 하던 사모들을 특별히 섬겨 주시는 은혜를 입으며 천국 잔치에 참석한 느낌입니다.

 

급하게 준비됐다고 하기엔 믿기 어려울 만큼 너무나 청아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와 악기로, 오빠밴드까지 동원된 힐링 콘서트로 하나 되게 해 주시고 교인들 누구나 드는 코치 핸드백조차도 눈치거리가 되어 몇 번이나 망설이며 숍을 드나들기만 했던 사모들 마음을 읽으신 듯... 이젠  총회에서 받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성경이 들어갈 만한 큼직한 가방을 하나씩 들고 행복하게 숙소로 돌아갈 때는 일울 마치고 돌아와 지난밤 한 시간 자고 뉴욕으로 날아온 피곤도 잊게 했습니다. 

 

한 번도 우리집 식탁에는 올라와 보지 못한 랍스터 한 마리를 들고 그 것이 에피타이저 라는 소리를 들을 땐  ! 내가  이런 삶도 살아보는구나! 마치 하나님이 옆에서 지켜보시며 그동안 수고 했다. 그러니 눈치 보지 말고 어서  맘껏 먹으라며 등 두드려  주시는 그분의 손길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식사를 마치면 카페에서 성심껏 기쁨으로 섬겨 주시고  미국 와서 처음 먹어본 싸만코 아이스크림까지 챙겨 주신 놀라운  카페 또한 천국이었습니다.

 

가는 길목마다 기쁘게 미소를 잃지 않고  손뼉을 쳐 주시면서 격려해 주시던 봉사자들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생일 맞은 사람들에게 손수 만든 귀한 보석 왕관과 장미꽃 그리고 3단 케익까지...외식 없는 사랑으로  잘 섬겨 주셔서 그저 감사하고 송구합니다.

 

때론 어린아이 같이 권위를 내려놓고 함께 웃어 주시고 때론 강력한 영적 파워로 타임 스퀘어에서 인도하신 그 우렁찬 기도의 울림의 선봉에 서서 함께 해 주신 총회장님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총회를 위해 수고하신 분들과 퀸즈장로교회와 성도 여러분께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여 축복합니다!!!

 

이제 받은 그 사랑을 돌려 드리기 위하여 삶의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코로나의 긴 어둠의 터널을 이겨낸 우리에게 풍성한 감사를 안고  돌아가  받은 사랑으로 잘 섬기는 충성된 종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산골 마을 한 모퉁이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사모 드림 -

 

 

 

 

 

 

 

 

 

 


한 단어만 주옵소서

 

한 단어만 주옵소서

팬데믹 이후 온 세상에 필요한 한 단어를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단어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충만이었습니다.

 

충만은 짧은 한 단어이지만 그 끝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충만은 다른 헛된 것들을 몰아내는 힘입니다.

충만은 목마른 자만이 마실 수 있습니다.

충만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권고가 아닌 명령입니다.

 

사실 세상은 이미 충만합니다.

그런데 그 충만은 절망과 슬픔의 충만이요, 어두움과 두려움의 충만입니다.

이런 가짜 충만을 몰아낼 진짜 충만이 필요합니다.

 

이런 진짜 충만은 예수님에게서 옵니다.

교회여,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라는 이번 총회의 주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이 우리 교회와 총회로부터 시작되어

온 세상을 가득히 채우길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세 글자

 

그럭저럭 견딜만한

인생살이 같다가도

세상살이가 힘겨워

문득 쓸쓸한 마음이 들 때

나지막이 불러보는 세 글자

 

(정연복)

 

우리 때문에 강 같은 눈물을 흘린 어머니.

모든 어머니의 눈물로 빚어진 우리들.

누구나 그러시듯이 저도 이토록 나이가 들었는데

어머니 품이 그립습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하루만이라도

이 땅 나들이 나오신다면,

어머니 품에 안겨, 왜 그렇게 일찍 떠나셨냐고 투정부리며

사랑하는 어머니를 놓아드리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럴 리는 없겠기에 그날을 기다리며,

Mother’s Day 아침에 하늘을 향해 먹먹한 마음으로

세 글자를 불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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