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행복한 사람들

 

영화 모가디슈는 실화를 바탕으로 소말리아 내전 당시

남북 대사관 직원들과 가족들이 함께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궁지에 몰린 북한 대사가 그 직원과 가족들을 데리고

대한민국 대사관을 찾아와 갈 곳이 없다며 받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들을 받아주지만 남한 대사관도 영원히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영화는 끝나도 절망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수요일 예배에 설교하신 선교사님 부부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25년 동안 사역하셨던 선교지에서 5년 전에 추방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을 저곳 정처 없이 다니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너무나 맑았습니다.

 

그들은 알았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정처 없어도

그들이 가고 있는 영원한 곳이 어디인지 분명히 알았기에

늦은 수요일 밤, 짐을 실은 차를 타고 떠나는

그들은 어린아이들 같이 즐거워했습니다.

 

비록 오늘 갈 곳은 없어도 영원히 갈 곳을 아는 사람들은

이 땅의 누구도 부럽지 않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인생이 아깝지 않아요

 

신학교 시절 채플 시간.

선배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번역선교사. 이름도 생소했습니다.

선배님은 평생 성경 번역을 위해 헌신하셨다는 말씀에 숙연해졌습니다.

 

지금 세계에 7,000개 언어가 있는데

신구약 성경이 번역된 것은 700개 언어,

신약은 3,000개 가까운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합니다.

말은 있어도 글이 없는 언어가 많기에

성경 번역 선교의 길은 아직 멀고 먼 길인 듯합니다.

 

어떤 번역선교사님은

단지 500명만 사용하는 언어의 성경 번역을 위해

평생 살아가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인생이 아깝지 않아요.”

 

그렇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아니어도 됩니다.

내 삶 전체를 통해 단 한 명이라도 복음을 들을 수 있다면

아깝지 않은 인생, 가치 있는 인생.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우리도 그런 인생을 살고 있나요?

 

 

 


희망을 심는 사람

 

어제, 멋진 날씨 가운데 선교바자회가 있었습니다.

친교실과 마당에 가득히 펼쳐진 각종 먹거리와 물건들이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다양한 언어들과

어우러져 장관(壯觀)을 이루었습니다.

 

모든 세대, 모든 회중이

여러 형태로 선교바자회를 섬겼습니다.

저는 그들을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희망을 심는 사람

 

절망을 노래하는 자들은 거리마다 넘칩니다.

탄식하는 소리는 온 세상을 메웁니다.

이 절망과 탄식의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은 희망을 심는 사람입니다.

 

희망을 심는 사람.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담대한 사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에 함께하는 사람.

바로 그대입니다.

 


안녕, Mark 

 

마크 형제는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우리 곁을 떠난 마크 형제가 주님 품에 안겼음을 알고 있지만,

형제를 많이 그리워할 것입니다.

 

다민족 교회로 가는 길은

힘들 때, 서로 위로하라는 길입니다.

아플 때, 함께 슬퍼하라는 길입니다.

그리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같이 기뻐하라는 길입니다.

 

Mark 형제의 아내가 힘들어합니다.

지금 우리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이 손 잡으라고.

중국어 예배의 형제자매들이 아파합니다.

지금 우리의 어깨를 내주어야 합니다. 여기 기대라고.

 

오늘은 러시아권 예배 설립 6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함께 천성 가는 길에 맞이한 뜻깊은 6주년입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감사의 찬양이 쏟아집니다.

3층 고등부실에서 드려지는 러시아권 예배를 생각하며 미소 짓고,

1층 양순관에서 드려지는 중국어 예배를 기억하며 눈물짓는,

메모리얼 데이를 하루 앞둔 5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Mark, 안녕. 천국에서 만나요.”


이름 모를 소녀, 이름 모를 소년

 

5월의 창문 밖에서 새소리가 들려오는데 문득 그 소녀가 보고 싶습니다.

언제가 그 이름 모를 소녀를 꼭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이 노래에 나오는 소녀는 아니니까요.

  버들잎 따다가 연못 위에 띄워놓고

  쓸쓸히 바라보는 이름 모를 소녀

 

그 소녀는 이 소녀입니다.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왕하 5:2)

 

어린 소녀가 이방 땅에서 어려운 삶을 살면서 자신의 어려움에는 침묵했지만

죽어가던 사람을 살려내는 일에는 담대했던 아름다운 이름 모를 소녀.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왕하 5:3)

 

이름 모를 소녀가 이곳 이민 땅에도 있답니다.

자신을 돌보는 일은 뒤로하고 복음을 위해 땀 흘리는 여선교회 회원들.

선교바자회를 둘러보니 마음이 저밉니다.

아 저기, 자신의 도시락을 내놓았던 이름 모를 소년 같은

남선교회 회원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다가갈 때 가슴이 뜁니다.

  아~~ 이름 모를 소녀여, 이름 모를 소년이여,

  하늘에서는 빛나는 찬란한 이름이여!


끝나는 날이 언제입니까?

 

일부러 들은 것은 아닙니다.

조용한 기도 시간이었기에 또렷이 들렸을 뿐입니다.

지난주 교단총회 새벽기도회 때

옆에서 기도하시던 어느 목사님이 열 번 가까이

끝나는 날이 언제입니까?”라고 하나님께 묻고 또 물으셨습니다.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목사님에게 어려운 일이 있으신 것이 분명했습니다.

갑자기 저의 기도는 어디로 가고 그 목사님의 기도가

끝나는 날이 없을 것이라는 절망이 아니라

끝나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담은 기도이길 바라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끝나는 날이 있습니다.

끝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4:13)

끝나는 날이 없다면 결코 이렇게 말씀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마침표를 찍으시기 전까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으며 기다려야 합니다.

견디며 충성해야 합니다.

 

끝나는 날이 언제인지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두 분 어머니 전상서

 

낳아 주신 어머니께

어머니, 저를 낳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많이 아프시다가 천국 가신 것, 기억납니다.

집이 아니라 병원에 어른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저는 뒤에서 어른들이 우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슬픔이 뭔지 모른 던 철없는 아이에게 아픔으로 기억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성국이는 어떡하고?”

누군가 외쳤던 소리가 아직도 제 귀에 남아 있습니다.

성국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목사가 되었어요.

천국가서 어머니 뵐 때 부끄러운 아들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 너무 보고 싶고 어머니 품에 꼭 안기고 싶어요.

 

길러 주신 어머니께

어머니, 성국이여요. 천국으로 처음 띄우는 편지 같아요.

자신의 입는 것도 먹는 것도 관심이 없으시고

오직 부족한 아들이 바른 목사 되기만을 기도하신 어머니.

어머니는 하나님이 제게 보내주신 크고 아름다운 선물.

드시라 해도 마다하시고 제가 잘 먹는 것만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시던 어머니.

어머니가 즐겁게 방문하셨던 퀸즈장로교회를 기쁘게 섬기고 있어요.

저 때문에 낳실 제 괴로움보다 항상 더 큰 아픔을 겪으시며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엔 주름이 가득이라는

노래가 너무 어울리시는 어머니.

어머니, 저를 길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사랑합니다.

 

 

낳아 주신 어머니, 길러 주신 어머니

어제는 두 분 어머니를 많이 그리워하며 여러 차례 눈물 지었어요.

 

 


한 가지는 말해야 할 텐데

 

어제 아침 한국에서 오신 한국장로교 총연합회 대표회장 한영훈 목사님께서

뉴욕의 여러 연합회 목사님들과 함께 우리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와 장영춘 목사님을 잘 알고 계셨고 뉴욕 방문길에

꼭 퀸즈장로교회를 방문하고 싶으셨답니다

 

연세는 78세이신데 매우 건강해 보이셨습니다.

수많은 사역을 힘 있고 놀랍게 해오신 분입니다.

연륜과 경험에서 묻어나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울림이 있으셨습니다.

그중에 이런 말씀을 진심 어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베푸신 은혜가 컸습니다.

분에 넘치는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는데 훗날 하나님을 뵐 때

나는 너를 위해 아낌없이 부어주었다.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으신다면

한 가지는 말해야 할 텐데 그것이 제겐 없습니다.”

 

속으로 목사님은 많이 있으셔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요 제가 가진 도시락 전부를 드렸어요.”

오병이어의 그 어린이는 당당히 말씀드릴 한 가지만큼은 분명했는데

제게는 하나님께 말씀드릴 그 한 가지를 찾을 수 없어

 

 

 

은혜의 하나님께는 너무 죄송하고, 멋진 어린이에게는 많이 부끄럽습니다.


늦기 전에

 

이름 모를 시인의 절규 같은 시입니다.

 

나의 삶이 이 세상에서 끝날 때 최고급의 꽃을 받는 것보다

친구의 정원에서 잘라 온 한 송이의 장미라도 지금 받고 싶습니다.

나의 심장이 멈추고 내 생명이 끊어졌을 때 많은 찬사를 받는 것보다

한 마디의 친절하고 상냥한 말을 지금 받고 싶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 나의 관 앞에서 흘리는 눈물보다

나의 진실한 친구들로부터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금 받고 싶습니다.

 

지금 나의 옅은 미소를,

지금 나의 꽃 한 송이를,

지금 나의 따듯한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어딘가 있을 것입니다.

 

늦기 전에

그 미소를, 그 꽃을, 그 한 마디를 전해준다면

그는 고독과 절망을 멈추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을 놓치면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봄날이 이렇게 가듯

기회도 이렇게 갈 것입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는 기회를 꼭 잡아요.

옅은 미소, 꽃 한 송이, 혹은 따듯한 한마디 말이면 충분할 수 있답니다.

 

 

 

 

 

 

 

 

 

 


시몬, 왜 숨어요?

 

188545일 부활절,

거센 풍랑을 헤친 한 척의 배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날 언더우드 선교사님과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조선 땅을 밟았습니다.

어두움에 빛이 비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본국에 보낸 첫 선교 보고서에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다. 그날 사망의 철창을 쳐부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조선의 결박을 끊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시몬 베드로는 아펜젤러와 다른 길로 갔습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부활의 목격자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물론 평범한 직업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시몬은 자기의 수치 때문에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잡기보단 숨으려 했습니다.

 

부활의 목격자는 숨을 것이 아니라 나타나야 합니다.

부활은 어둠에 비치는 빛입니다.

그래서 더 짙은 어두움을 향해 가는 시몬에게 묻는 것입니다.

시몬, 왜 숨어요?

 

 

 


주의 발자취를 따라서

 

힘들지 않니?”

어머니가 아들에게 애처롭게 물었습니다.

며느리가 오랫동안 병이 들어 아들이 고생하는 것을 본 어머니의 질문이었습니다.

괜찮아요. 어머니가 아버지가 아플 때 잘하시는 것을 보았는데요.”

그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남편 병간호를 오랫동안 묵묵히 잘했었습니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란 말도 있습니다.

아버지를 닮아가는 아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보고 예수님이 생각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고난 주간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절절히 와닿을 시간입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 (벧전 2:21)

 

결단의 시간입니다

고난의 예수님을 따르기를 포기하시겠습니까,

참고 걸으셨던 예수님의 그 모습 그대로 닮아가며 따라가시겠습니까?

 

 


떡 두 개와 1,000

 

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주일이면 그 아이의 손엔 어머니가 들려준 헌금이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교회 가는 길에 떡 장사 아주머니들이 펴놓은 떡을 보았습니다.

교회에서 헌금 바구니가 앞에 왔을 때 헌금을 드리는 시늉만 했습니다.

손에 쥐고 있던 헌금을 가지고 떡 두 개를 맛있게 사 먹었습니다.

그 아이는 자라 이제 80이 되어갑니다.

그런데 그때 헌금으로 사 먹은 떡 두 개가 지금까지 부끄럽고 죄스러운 것입니다.

 

어느 낭떠러지 사이를 낡은 다리로 건너야 할 사람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다리를 무사히 건너면 감사헌금 1,000불 드리겠습니다.”

건너다보니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기도를 조정했습니다. “하나님, 헌금은 500불입니다.”

다리 끝에 다다를 때 기도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200불을 확실히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며 낡은 다리가 심하게 흔들거리는 것입니다.

그는 급하게 원래대로 기도했습니다. ”아이구 하나님, 왜 그러세요. 1,000불입니다.“

 

앞의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고, 둘째 이야기는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그 아이처럼 하나님의 것을 훔쳐 사 먹고 평생 회개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도,

 

그 사람처럼 하나님께 드린 약속을 마음대로 바꾸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닐까요.


못 찾겠다 꾀꼬리

 

어렸을 적 놀이 중 술래잡기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술래는 어찌하든 숨어 있는 친구들을 하나둘 찾아냅니다만

끝내 찾지 못하면 이렇게 외칩니다.

못 찾겠다 꾀꼬리

 

어느 아빠와 딸이 술래잡기 놀이를 할 때였습니다.

거구의 아빠가 몸을 잘 숨겼는데

쏜살같이 술래인 딸에게로 날아갔습니다.

술래에게서 이런 외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빠!” 딸이 넘어지면서 아빠를 다급하게 부른 것입니다.

 

자녀들이 다급하게 아빠라고 부르는데

더욱 꼭꼭 숨는 아빠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즉시 뛰어나옵니다.

 

못 찾겠다 꾀꼬리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그렇게 길게 외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을 꼭 찾고 싶으면 하늘을 향해 아빠라고 짧게 불러 보십시오.

그 소리를 들은 하늘 아빠는 더 이상 숨어계시지 않는답니다.

그래, 내 딸아, 내 아들아. 나 여기 있다외치시며 단숨에 달려오십니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당신은 누구시길래

그 먼 길을 헤치고 나를 찾아오셨나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알 수 없는 그 길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나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나를 위해 온갖 조롱 다 받으시고, 가시에 찔리시고, 못에 박혀 죽으셨나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먼동 틀 때에 조반을 지어 먹여 주시고,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나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내 마음을 이렇게 송두리째 앗아가셨나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그 여인을 용서하시고, 그 남자를 맞아 주시고, 그 아이에게 안수하셨나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우리로 갓난아이 어린이 청소년 청년 장년 노년이 모여 춤을 추며 찬양하게 하시나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나를 전하라, 네게 줄 상을 가지고 다시 온다. 기다려라.”라고 말씀하시나요.

 

~~ 그 이름 예수

그 아름다운 이름이여.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부르다 죽어도 좋을 내 사랑 내 구세주이시여.

 

 


사순절, 그 만남의 기적

 

일주일이 지나는 사순절에 너무 많은 기적을 보고 있습니다.

 

경이로운 하나님을 만나는 기적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매일 만날 수 있음이 기적입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29:13)

 

엄청난 명품을 만나는 기적입니다.

친교실과 카페에 가 보면 명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십 년간 빚어오신 어마어마하신 분들.

누구를 만나시든 그 만남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명품을 만나는 기적입니다.

 

놀라운 미래를 만나는 기적입니다.

우리는 반드시를 부르며 주여를 외치는 수십 명의 어린이를 매일 만납니다.

그들에게 놀라운 미래의 인물이 담겨 있음을 봅니다.

그들을 나중에 만나려면 긴 줄을 서도 아마 쉽지 않을 것입니다.

 

거대한 축복을 만나는 기적입니다.

어제도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을 받았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그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말은 안 하셔도 기뻐하시는 표정들로 축복을 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순절은 만남의 기적이 있는 뜨거운 현장입니다.

 

 

 

 

 


Master Key

 

오래전 어느 날, 한 영화 제목이 많은 이의 큰 환호를 자아냈었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제목의 영화입니다.

많은 학생을 크게 위로해 주었던 영화 제목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의 창고는 성적 높은 자가 여는 것이 아닙니다.

 

만복의 창고가 하늘에 있습니다.

만복의 창고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요.

히브리어에서 복 받는 자엎드리는 자는 같은 개념입니다.

 

엎드림이 만복의 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엎드림은 만복의 창고를 열 뿐 아니라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Master Key”입니다.

 

내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나오시면 됩니다.

엎드리면 됩니다.

만복의 창고도 열고,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도 만나시길

진정으로 원하신다면.

 

 

 

 

 

 

 


의무를 넘어 감동으로

 

오늘은 우리 교회가 설립된 지 48주년이 되는 기념 주일입니다.

마흔여덟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의무의 숫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 사람들에게 마흔여덟 개의 성읍을 주었습니다.

이 성읍 나눔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의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무에 감동이 더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 중에서 받은 성읍은 모두 마흔여덟 성읍이요

또 그 목초지들이라 이 각 성읍의 주위에 목초지가 있었고 모든 성읍이 다 그러하였더라

(21:41-42)

 

성읍과 함께 그 주변에 목초지를 준 것입니다.

마지못한 성읍 나눔이 아니라 의무를 넘어선 감동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48주년 된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랑에 빚진 자로서 우리의 이웃과 열방에 대한 의무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니, 의무만이 아니라 의무를 넘어선 감동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모든 일을 억지로 하는 듯한 의무에서 멈추지 마시고

 

의무를 넘어 감동까지를 주겠다는 다짐의 48주년 기념 주일이 되어야겠습니다.


공사 중(Under Construction)

 

많이 불편하시지요?

교회 본당을 비롯하여 여러 곳이 공사 중이어서요.

교우들에게 번거로움을 드려 죄송하지만

공사가 가져온 변화가 있었고 또 있을 것입니다.

 

어제는 지하 식당에 페인트칠도 새롭게 하였답니다.

한번 내려가 보십시오.

청년들부터 누구라 할 것 없이 다 같이 힘을 모았답니다.

 

다음 주일에는 북카페 옆에 어린이들을 위한 드림(Dream) 카페가 문을 엽니다.

우리 자녀들이 마음껏 놀고 교제하는 카페가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Dream”을 꿈꾸는 곳,

하늘의 하나님께 내 삶을 드림을 다짐하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 공사 중인 곳이 있는데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여태껏 공사 중입니다.

언제 끝날지 몰라 그 완공 시간을 말씀 못 드립니다.

그러나 멈추지는 않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공사할게요.

참아 주세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많이 외롭겠구나

 

어제 몇몇 분과 두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고등학교 다니는 딸을 가진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저는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학교에서 신앙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학교에서 동성애를 분명하게 반대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하면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거의 왕따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순교자가 따로 없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매일 같이 순교하는 삶을 학교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이야기가 여기 오늘의 미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

얼마나 외로울까요.

얼마나 견디기 힘들까요.

그래도 묵묵히 그 외로움과 어려움을 참아내며

믿음을 지키고 있는 우리 자녀들이

저에게는 모두가 믿음의 스승 같답니다.

 

많이 외롭겠구나제 마음에서 그들에게 한 말입니다.

저들을 꼭 기억하옵소서제 마음에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

 

 

 

 


고통의 골짜기에서 웃다

 

내년 8주년 때는 그런 일이 없을 거예요.”

온몸으로 찬양하다 두세 차례 넘어지려 했던 집사님에게 제가 공개적으로 건넨 말입니다.

올해 새 성전이 완공되면 내년 중국 예배 8주년 감사예배는 넓은 곳에서 드려질 것이니까요.

 

지난주 중국어 예배 설립 7주년 감사예배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순서 가운데 쨘웨이 집사님이 두 딸과 함께한 댄싱 찬양이 있었습니다.

좁은 양순관 무대에서 집사님은 댄싱 중에 몇 차례 넘어질 뻔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집사님은 더욱 밝게 웃으면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날 집사님은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무대가 좁아서 넘어진 것이 아닙니다.

근육 무력증같이 다리가 휘청거려 그랬다는 것을 며칠 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뼈에서 뇌, 그리고 지금은 암이 온몸으로 전이가 되었습니다.

남편을 돌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잠을 편히 못 자는 집사님 자신도 몹시 아픕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홀로 챙겨야 할 세 자녀가 있습니다.

 

집사님은 지금 고통의 골짜기를 걷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잃은 것도 많고, 힘든 것도 많은 고통의 골짜기이지만

집사님은 밝은 미소만큼은 잃지 않았습니다.

깊은 고통 중에 더욱 환한 그의 미소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서 있기조차 힘들 텐데 하나님 앞에서 정성을 다해 춤을 추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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