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시 78:72)

플레루가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일에 개입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충만케 하셨습니다.

지난 주간에 있었던 일들이었습니다.

 

교회에는 일일 부흥회가 있었고

신학교에는 개강부흥회와 특강이 있었습니다.

사실, 시작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집회마다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시간에는 세 종류의 시간이 있습니다.

크로노스: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입니다. (다윗이 목동으로 지내던 시간)

카이로스: 일상의 시간에 하나님이 개입하신 시간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시간)

플레루: 하나님의 뜻이 충만하게 완성되는 시간 (다윗이 마침내 왕이 된 시간)

 

하나님은 크로노스로 살고 있던 우리에게 카이로스로 찾아오셨습니다.

그 카이로스만도 감사한데 플레루의 충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내 삶에 개입하시고 또 충만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어떤 크로노스를 지난다고 하여도 낙심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카이로스와 플레루가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다프뉴마

 

9월의 첫날은 매우 거칠게 시작되었습니다.

슬쩍 지나가도, 아예 오지 않았어도 뭐랄 사람 아무도 없건만

아이다는 자기가 누군지 잘 보란 듯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다는 산들바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다는 강력한 태풍이었습니다.

집들은 침수되고 나무들은 부러지고 전선들은 끊어지고

차들은 이리저리 널브러졌고 사람들은 많이 죽었습니다.

아이다가 지나간 자리는 비통의 황무(荒蕪) 함이었습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습니다.

성령의 바람을 프뉴마라고 부릅니다.

프뉴마는 태풍이라는 말로도 다 담아내지 못할 더 강력한 바람입니다.

프뉴마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이다와 견줄 수 없는 것들이 남습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날 주소서----”

 

프뉴마는 황무한 곳에 돌이킬 수 없는 회개, 변화, 능력, 부흥의 새날을 일으킵니다.

9월을 어떻게 사시렵니까?

아이다로 더는 울지 말고 프뉴마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의 바람, 프뉴마여 불어오라!”

 

 

 

 

 


라라는 얼마 전 한국에서 왔습니다.

라라는 막내 누님과 함께 왔지요.

웬 호강인지 벌써 맨해튼에도 갔었고,

필라델피아 그리고 텍사스까지도 갔다 왔습니다.

엊그제는 미용실도 다녀와서 한결 빛이 납니다.

그런데 라라가 많이 슬퍼합니다.

 

누님이 어딜 나가면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것 같아요.

불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고 물조차 마시지 않지요.

누님의 외손주가 입학한 필라델피아에 딸 내외와 다녀오려면

한참 시간이 걸리는데 그 긴 시간 꼼짝도 하지 않고

누님만을 기다려요.

 

이런 말을 알아들으면 정말 섭섭해할 것 같아요.

“개만도 못한 인간”

주인이 개를 잊거나 버릴 수는 있어도

개들은 주인을 잊지도 버리지도 않는다고 해요.

 

올해 2살 반이 된 강아지 라라.

사람도 오기 힘든 미국에 와서 많은 구경을 하고 있지만

라라는 주인이 없으면 무엇으로도 기뻐하지 않아요.

문 앞에서 그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슬프게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얼마 전 한 권의 책을 받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아가야, 어서 와 많이 힘들었지?”였습니다.

아가만 힘든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저도 힘들었습니다.

 

낳은 아이들을 어떤 이유로든 키울 수 없을 때 그 아이를 위험한 곳에 버리지 않고

“베이비 박스”라는 곳에 담아 두기만 하면 어떻게든 살리고 키우는 이야기.

한국의 이종락 목사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쉽게 넘길 수 없었습니다.

 

그 내용이 책으로 나오기 전에 미국 젊은이에 의해 영화로 먼저 만들었습니다.

그 영화의 제목이“드롭박스(The Drop Box)”입니다.

드롭박스에 맡긴 아이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봄과 양육을 받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속속 캠퍼스로 떠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가정에서 함께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어디에 있든지 우리가 다 키울 수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우리보다 더 사랑하시고 지키시고 돌보시는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의 손에 그들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내일부터 있을 VBS는 예수님이 만드신 또 하나의 드롭박스입니다.

우리 교역자들과 교사들이 예수님의 따듯한 손이 되고 품이 되어 줄 것입니다.

여름날에 수고하실 그들과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도대체 이 무슨 일인가요?

송구영신(送舊迎新) 예배도 아닌데 한 여름날 밤 11시에 개회 예배를 드리다니.

그야말로 개회 예배는 시작일 뿐 밤새 여러 순서가 이어졌습니다.

카자흐스탄, 캄보디아, 파키스탄, 키르키즈스탄, 그리고 한국과 연결하여

교회 여기저기서 청소년 집회, 장년 부흥회, 의료 사역, 어학 교실, 태권도 교실,

음악 교실, 미디어 교실, 각종 세미나, 간증 등이 2박 3일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지난주 목요일부터 어제까지 있었던 킹덤미션 이야기입니다.

 

지난 금요일 아침 알마티 퀸즈장로교회 성도들을 위한 부흥회 때에

러시아권 찬양팀이 이런 찬양을 불렀습니다.

 

주 여기 운행하시네/ 주 경배해 주 경배해/ 주 여기 역사하시네/

주 경배해 주 경배해/ 새 길을 만드시는 분/ 큰 기적을 행하시는 분

그는 우리 하나님/ 약속을 지키시는 분/ 어둠 속을 밝히시는 빛

 

찬양 가운데 새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상념(想念)에 젖었습니다.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팬데믹으로 2021년 단기선교는 캄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두움 가운데서도“킹덤미션”이라는 새 길을 만드셨습니다.

 

지금 삶이 어둡고 캄캄하시다구요? 길이 전혀 안 보이신다구요?

그러시다면 한숨 쉬실 시간 대신에 이 찬송을 부르고 또 불러보십시오.

 

“ 주 경배해 주 경배해 새 길을 만드시는 분 큰 기적을 행하시는 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기적의 새 길을 잘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하네 못하네”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쿄 올림픽이 오늘 폐막됩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선수들이 지난 보름 동안 열띤 경기(競技)를 벌였고

이제는 여러 성적을 가지고 속속 자기들의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배드민턴에서 중국을 이기고 금메달을 딴 대만 선수들이 비행기로 귀국할 때

대만 정부는 전투기 4대를 띄어 그들을 에스코트하면서 환영했다고 합니다.

 

지난 4일, 김요한 선교사님이 이 땅의 여정을 끝내고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김요한 선교사님이 누구시지?”교우들은 대부분 잘 기억 못 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수년 전 진행했던 선교 훈련“미션 퍼스펙트”때 오셔서 강의하셨던

선교사님으로 수십 년간 중앙아시아 선교에 큰 발자취를 남기시고 떠나셨습니다.

이 땅에서 끝까지 충성한 선교사님이셨으니 하늘에서 열렬히 환영받으셨을 것입니다.

 

도쿄 올림픽은 오늘이 끝날이지만 복음 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복음 올림픽은 계주(繼走)와 같습니다.

전해받은 복음의 횃불을 잘 들고 달리다가

다음 세대에 그 횃불을 확실히 전해주고 주님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세대를 이어서 달리다가 땅끝까지 복음이 증거되면 복음 올림픽도 끝납니다.

 

세상 올림픽은 선별된 대표 선수(選手)만 나갈 수 있고

나가서도 후보(候補)로 머물다가 되돌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복음 올림픽은 우리가 모두 대표 선수요 아무도 후보 선수는 없습니다.

 

이번 주는“킹덤미션”이라는 종목에 나설 것인데 모두 손에 손을 잡고 잘 달리고

또 다가오고 다가오는 복음 올림픽 종목들을 잘 치르면

언젠가 그날을 맞이합니다. 끝날, 상 받을 그날을.

 


두 의대생이 길을 걷다가 몸을 구부리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영락없이 디스크를 앓는 분이네”한 학생이 자신만만하게 진단했습니다.

“무슨 소린가? 딱 보니 류마티스 환자일세.”다른 학생이 확신하며 말합니다.

두 학생이 그 사람을 어떻게 도울까 하고 다가갔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 근처에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를 알려 주세요, 많이 급합니다.”

이 정도의 착각은 가볍게 끝날 수도 있지만 아주 위험한 착각도 있습니다.

 

지난 7월 20일 콜롬비아에서 너무나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곳의 유명한 번지점프 장소에서 번지 줄을 매지 않은 한 젊은 여성이

착각하여 뛰어내렸다가 사망하였다는 것입니다.

 

확인해 보세요.

생명 줄에 단단히 묶여 있는가.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구원은 떼어 놓은 당상(堂上)으로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유대인이요, 아브람의 후손이요, 할례를 받았고, 율법에 정통하고, 안식일을

지키고....”자기들에게는 구원의 근거가 많고 확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8월은 선교부의 킹덤미션과 교육부의 VBS가 진행되는 달입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합니다.

선교지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의 생명 줄에 묶여 있는 것이 확실한지.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합니다.

교육부의 한 어린이 한 어린이가 예수님의 생명 줄에 묶여 있는 것이 분명한지.

 

돈 줄, 사람 줄, 재능 줄, 성적 줄 등등 아무리 줄이 많아도

예수님의 생명 줄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그는 머리가 남달리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S대(大)를 입학하였고 졸업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겠습니까?

앞길이 창창하게 열리려는 그때 그는 뜻밖의 일을 만났습니다.

‘근육 무력증’에 걸려 8년간 침상에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한창 일할 나이인 20대에 건강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훗날 헤아려보니 하나님은 건강 대신 놀라운 것을 주셨습니다.

8년간 하나님만 깊이 묵상하다가 건강 회복과 함께 작은 옷 가게를 차렸고

점점 성장한 사업은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는 큰 기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한 가지를 안 주실 때가 있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에 한 흑인 병사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출세를 위해 힘을 구했으나,

당신은 순종을 배우도록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큰일을 하고자 건강을 원했으나,

당신은 그보다 선한 일을 하도록 병고를 주셨습니다.

저는 행복을 위해 부귀를 청했으나,

당신은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가난을 주셨습니다....

 

주님, 비록 제가 당신께 기도한 것을 받지 못했으나,

당신이 저에게 바라시는 모든 것을 주셨으니,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원하는 그것을 지금 왜 안 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 하나를 안 주실 때는 더 좋은 것을 주시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전교인 수련회에 강사로 오셨던 조은아 교수님이 며칠 전 영상을 보내 주셨습니다.

교수님의 부친이신 故 조영택 목사님 임종 예배 영상이었습니다.

사모님과 자녀들, 그리고 손자 손녀들이 함께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그 가운데 목사님께서 자녀들에게 남기시는 유언(遺言)의 말씀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으시고 나를 만드시고 나를 지켜 주십니다.

 세상 가운데서 끝날까지 지켜 주실 것을 꼭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가 대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대장입니다. 대장 노릇 하지 맙시다....”

 

대장이 누구냐에 따라 그 군대는 전혀 다른 운명을 맞이합니다. 

임진왜란 때에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6.25 전쟁 때 맥아더 장군이 없었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망하지 않으려면 어느 모임에서 이건 내가 대장 노릇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싸움에서 이기길 원한다면 하나님을 대장으로 모시면 됩니다.

노(老) 목사님이 일생을 사역하시면서 체득하신 가장 소중한 승리의 비결은

“대장 노릇 하지 맙시다”이셨습니다. 


새벽예배 드리려 교회에 나오다가 보면 여러 풍경을 스치게 됩니다.
먼저 보는 것은 이른 새벽부터 레이스 하듯 서로 바삐 달리는 자동차들입니다.

Highway를 빠져나오면은 철 따라 다른 옷을 입는 나무들도 보입니다.

“잘 잤냐?”라고 말을 걸 때 방긋 한 번 웃고는 나름 아침맞이에 여념(餘念)이 없습니다.

한때 분주하던 삶을 살다 지금은 고요히 누워있는 누군가의 묘지(墓地)들도 지납니다.

 

새벽, 아직 쓰임 받지 않은 길거리 공사 자재들이 지나가는 나를 부럽게 쳐다봅니다.

그러다가 새벽 풍경 가운데 숨 가쁘게 달리는 사람들도 봅니다.

어느 곳을 향해 달리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바람이 불어도 비가 내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리고 또 달립니다.

새벽 풍경 중 빼놓을 수 없는 감동은 바로 그“달리기”입니다.

 

수련회 때 많은 수고를 한 분이 지난 주간에도 여러 일로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분의 계속 수고하심을 언급하였을 때 그분이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천국 갈 때까지 계속 달려야죠.”

아름다운 답변이었습니다.

 

새벽에 감동적인 달리는 풍경이 있듯이

천국 가는 길에 누가 봐도 아름답고 감동적인 풍경을 만들면 어떨까요.

어떤 비바람이 불어도 천국 갈 때까지 우리 모두 함께 달리고 또 달리고,

누구라도 넘어지면 같이 일으켜 다시 달리는 장엄한 풍경 말이죠.

 


어렸을 적 가장 신기했던 물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우개였습니다.
잘못 쓴 글이나 감추고 싶은 내용을 지우개로 지우면 사라집니다.

우리 삶에는 지우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지우고 싶은 삶을 지울 지우개가 있을까요?

 

자기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고 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발로 그림자를 밟았습니다. 그림자도 같이 발로 밟았습니다.

그림자로부터 빨리 도망쳤습니다. 그림자도 같이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림자가 사라졌습니다.

큰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갔더니 그림자는 오간 데가 없어졌습니다.

 

십자가 그늘 아래로 가면 내 삶의 어두운 것들이 다 지워집니다.

이렇게 노래하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셨답니다.

 

십자가 십자가

그 그늘 아래 내 소망이 있네 십자가 십자가
그 그늘 아래 내 생명이 있네 .....
십자가로 만족케 하소서

 

그렇습니다. 십자가 그늘만이 내 삶의 더러움을 씻는 소망입니다.

십자가 그늘만이 새로운 삶을 여는 생명입니다.

 

아~~ 은혜의 놀라운 지우개, 십자가 그늘


오늘이 벌써 6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번 주는 올해의 반환점을 도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올해의 상반기를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보람도 있으시고 아쉬움도 있으실 것입니다.
상반기를 잘 보냈다고 방심해도 안 되고 아쉽다고 낙심할 일도 아닙니다.

 

2021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6개월이나 남아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에 충분하고 넉넉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지금 꼭, 정말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잠시 멈춤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계속 달리라고 부추깁니다.

그래야 성공한다고 몰아댑니다.
성공은 쉼 없이 달린다고 얻는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인의 목표도 아닙니다.
모든 운동 경기가 전반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결국 경기는 후반전을 마쳐야 마지막 승부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의 하프타임은 너무 중요한 시간입니다.
잠시 멈추어 쉬면서 전반전을 돌아보며 새로운 전략을 세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잠시 멈춤의 하프타임이 지나고 일어나는 반전의 후반전을 수없이 보았잖아요.

그러니 우리 모두 냅다 달리지도 말고, 아예 포기하지도 말고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고 하반기를 같이 힘차게 달려요. 함께 놀라움을 누려요.

그러자면 전교인 여름 수련회는 잠시 멈춤의 너무 멋진 시간이 아닐까요?


아버님은 요리사이셨습니다.
물론 전문 요리사도 아니시고 식당을 운영하신 적도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어렸을 적 저의 특급 요리사와 같으셨습니다.

여러 요리를 잘 만들어 주셨는데
제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밀 낭화(
浪花)입니다.

 

밀 낭화가 무엇인지 생소하다는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모두가 잘 아는 음식이고 자주 드시는 음식입니다.
밀 낭화는 밀가루 반죽을 해서 다듬잇방망이 같은 것으로 넓게 편 다음
다시 그 편 것을 몇 겹으로 접어서 칼로 굵게 썰어 끓는 장국에 넣어 만듭니다.

입에서는 후루룩 거리며 뜨거운데
속에 들어가서는 시원한 칼국수가 바로 밀 낭화입니다.

 

아버님이 만드시고 아버님과 함께 먹던 밀 낭화.

적잖은 시간을 들여서 정성스레 만드시던 과정을 보았기에
천천히 아껴 먹어야 했는데 저의 밀 낭화 그릇은 금방 바닥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빈 그릇에 놀랍게도 가득 남아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늘 맛난 것을 먹이시려는 아버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오늘은 아버지 날.

밀 낭화를 맛있게 먹는 어린 아들을 기쁘게 바라보시던

아버님이 그리워 하늘을 바라봅니다.


단기선교 준비가 한창입니다.
끝나지 않은 팬데믹으로 올해도 역시 직접 현장을 갈 수는 없습니다.
작년에도 창의적으로 단기선교를 했었는데
올해는 또 다른 방법으로 현장 선교에 버금가는 단기선교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한 해도 멈춤이 없었던 단기선교 대원들의 선교 이야기는
매년 준비부터 그 열매까지 뭉클하게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단기선교팀의 강력한 배후(背後)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선교바자회입니다.
모든 선교회 회원들과 교육부 그리고 모든 다민족 회중들이 함께하는 선교바자회.

부교역자 시절부터 보아왔던 선교바자회.
저는 보았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예수의 흔적이 있음을.
그들의 몸에, 시간에, 물질에, 직장에, 사업에, 그리고 가족에게 흔적이 있습니다.

여러 형태의 아름다운 예수의 흔적이 곳곳에 짙게 배어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뒤돌아서지 않겠네”

 

이 세상 사람 아무도 몰라주는 예수의 흔적을 가진 사람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예수님이 퉁퉁 부은 손을 어루만져 주실 것입니다.

결리고 아픈 어깨를 토닥여 주실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었니? 얼마나 아팠니? 내가 다 지켜보았단다.

잘했다, 수고했다. 여기 너의 면류관이 있단다.”


“원래는 그 자리에 나오려고 준비했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있었던 러시아권 예배 설립 5주년 감사예배 때
러시아권 형제 5명과 자매 5명이 바디워십을 하기로 준비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자 형제 한 명이 빠진 채 9명 만의 바디워십이 있었습니다.
그 빠진 이유를 후에 송요한 목사님을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함께 바디워십을 준비했던 24세의 형제가

지난 주일 하루 전에 직장에서 사고를 당했습니다.

기계에 오른손이 절단된 것입니다.
다시 봉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이싸”라는 청년은 이란 출신인데 그의 가정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았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하려고

미국으로 이민 오게 되었고 가족 모두가 우리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해했던 것과는 달리 그 가정은 신앙심이 깊은 가정이었습니다.

그 청년의 아버지가 장남의 사고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고난과 신앙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사고를 당한 형제가 병원에서 김치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심방 대원들이 가져다준 갈비탕을 김치와 더불어 맛있게 먹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원망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겨나가려는 아름다운 형제.

 

극심한 어려움 속에서 먼저 한국 음식을 찾은 것은

어떤 비바람이 불어도 다민족 예배의 비전은 놓을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요.

 

 


내일은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입니다.
남북전쟁 때 숨진 군인들을 추모하는 날로 출발하여 지금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군인들을 기억하는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살아간다면 그들의 희생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5년 전 메모리얼 데이 때에 이런 기억도 있습니다.

그날 전교인 한마음 축제는 비가 와서 교회 체육관에서 갖게 되었습니다.
그날 개회 예배 설교는 5분이었는데 20분이나 걸렸습니다.
한국어 설교 한마디를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로 이어서 통역하였기 때문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가득 모여 4개의 언어로 통역되는 예배에 감격했던 그날입니다.

바로 그 전날 있었던 러시아권 설립 예배의 벅찬 감동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많은 날들을 살아가고 있고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우리는 그중에 또렷이 기억하는 날들과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기억할 뿐 아니라 무엇인가로 기억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이긴 소년으로 기억합니다.
한나는 기도하는 여인으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 나온 선교사로,

그리고 롯의 아내는 뒤돌아보아 소금 기둥 된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훗날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너무 고민하지 마십시오.

러시아 말에 이런 말이 있답니다.

 

 

“Живи так, чтобы тебя запомнили.”

“남에게 기억되고 싶은 대로 살아라”


“어느 정도인지는 직접 들어가 보아야 합니다.”
심장혈관 검사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의사도 잘 모르겠다고 하였으니 저도 물론 알 턱이 없었습니다.

지난 목요일 한 시간여의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 보니 혈관이 99%가 막혀있고 1%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 말의 심각성은 시술 후 의사가 보여 준 모니터를 직접 비교하고 실감하였습니다.

 

의사 말대로 동맥혈관 99%가 꽉 막혀있었던 시술 전의 끔찍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심장과 연관된 세 동맥 중 가장 중요한 혈관이라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스탠스를 넣어 혈관의 피가 힘 있게 흐르는 시술 후의 모습도

모니터를 통해 선명히 보았습니다. 사뭇 감격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문제가 있었던 두 혈관 중 다른 하나는 회복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혈관을 회복했기에 생활과 일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동안 셋 중 하나의 혈관으로만 살아오셨다고 놀라워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의사가 밤새 어려움이 없었는지 저의 상태를 살피러 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본 환자 중에 가장 심각했습니다. 동맥 하나는 망가지고
중요한 하나는 1%만 남아 있었는데 벌써 어느 날 갑자기 숨을 멈췄을 것입니다.

제가 밤새 이런 환자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목사님이 믿으시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1%의 기적을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믿음이 없던 의사가 확신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저의 심장이 이런 상태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얼마 전 어깨가 더디게 회복되어 수영을 하다가 가슴이 아픈 것을 느꼈고
병원에 가서 심장에 문제가 있던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수년간 부족한 목사를 향한 교우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던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기도를 들으시고 그 1%의 기적을 허락하셨음을 깨닫고 병원에서 퇴원하였습니다.

 

1%의 기적은 서로 기도하는 우리 교우들에게도 있었고 또 있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신 하나님에게 1%는 사용하시기에 넉넉한 숫자이실 것입니다.


일 중심의 사람이 있고 관계 중심의 사람이 있습니다.
일 중심의 사람은 잠시의 쉼도 사치라며 일을 그 인생의 전부처럼 살아갑니다.

관계 중심의 사람은“일”보다“우리”라는 단어에 더 큰 가치를 둡니다.

 

마리아 앤더슨이라는 유명한 흑인 가수는“나”라는 단어보다“우리”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혼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노래를 부를 때에

나 혼자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작곡을 해주어야 하고
누군가 반주를 해주어야 하고 누군가 도와주어야 내가 노래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나 혼자 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의 무대는 자기의 잘남을 드러내는 무대가 아니라 함께 따듯함을 나누는

무대였습니다. 그가 떠난지 오래이지만 우리라는 따스함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어떤 관계입니까? 누군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우리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라도 느낄 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우리는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 모두 알 수 있는 우리는~~

 

구구절절 아름다운“우리”입니다.

 

오늘 오후 우리는 함께 모여 가정의 달 연합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서로가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영원합니다.

그러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라고 부릅니다.


제 목양실에 본당으로부터 찬송이 들려오고 또 들려옵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경배와 찬양팀의 찬양 연습 소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님은 들려주셨습니다.
일년에도 스무 번 가까이 읽으시던 성경.
목회자가 길을 가기로 결단한
저에게 귀하고 귀한 성경말씀을 늘 들려주셨습니다.

 

저의 서재에는 수천 권의 책이 꽂혀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사랑하는 책은 단 한 권뿐입니다.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성경이 나의 가장 사랑하는 책이 되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을 펼치니 하늘 길도 펼쳐집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을 읽으니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을 연구하니 설교할 수 있게 됩니다.

 

귀한 성경을 사랑하도록 가르쳐 주신 어머니가 많이 그리운 날입니다.


4월의 자락에서 서성이던 5월이,
라일락 향기를 짙게 흩트리며 드디어 우리에게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른다면
조금은 우쭐거리며 납시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지요? 어린이들의 노랫소리이군요.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그동안 많이 눌렸었는지 5일은 우리들 세상이라고 목청을 높여 노래합니다.

연이어 들리는 가슴이 먹먹한 5월의 노래가 있네요.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아

 

5월의 노래는 끝나지 않아요. 존경과 감사가 배인 눈물의 노래로 이어집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찬란한 5월인데 5월의 노래들은 왜 이렇게 마음이 아리지요.

저는 그래도 부를 거예요.
어린이날에는 푸르렀던 지난 어린 시절과 그 때의 친구들을 회상하며,

어머니날에는 낳아 주신 어머니 길러 주신 어머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스승의 날에는 사랑으로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을 감사히 생각하며,

5월의 노래들을 목이 메어도 부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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