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사순절, 그 만남의 기적

 

일주일이 지나는 사순절에 너무 많은 기적을 보고 있습니다.

 

경이로운 하나님을 만나는 기적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매일 만날 수 있음이 기적입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29:13)

 

엄청난 명품을 만나는 기적입니다.

친교실과 카페에 가 보면 명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십 년간 빚어오신 어마어마하신 분들.

누구를 만나시든 그 만남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명품을 만나는 기적입니다.

 

놀라운 미래를 만나는 기적입니다.

우리는 반드시를 부르며 주여를 외치는 수십 명의 어린이를 매일 만납니다.

그들에게 놀라운 미래의 인물이 담겨 있음을 봅니다.

그들을 나중에 만나려면 긴 줄을 서도 아마 쉽지 않을 것입니다.

 

거대한 축복을 만나는 기적입니다.

어제도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을 받았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그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말은 안 하셔도 기뻐하시는 표정들로 축복을 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순절은 만남의 기적이 있는 뜨거운 현장입니다.

 

 

 

 

 


Master Key

 

오래전 어느 날, 한 영화 제목이 많은 이의 큰 환호를 자아냈었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제목의 영화입니다.

많은 학생을 크게 위로해 주었던 영화 제목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의 창고는 성적 높은 자가 여는 것이 아닙니다.

 

만복의 창고가 하늘에 있습니다.

만복의 창고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요.

히브리어에서 복 받는 자엎드리는 자는 같은 개념입니다.

 

엎드림이 만복의 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엎드림은 만복의 창고를 열 뿐 아니라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Master Key”입니다.

 

내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나오시면 됩니다.

엎드리면 됩니다.

만복의 창고도 열고,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도 만나시길

진정으로 원하신다면.

 

 

 

 

 

 

 


의무를 넘어 감동으로

 

오늘은 우리 교회가 설립된 지 48주년이 되는 기념 주일입니다.

마흔여덟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의무의 숫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 사람들에게 마흔여덟 개의 성읍을 주었습니다.

이 성읍 나눔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의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무에 감동이 더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 중에서 받은 성읍은 모두 마흔여덟 성읍이요

또 그 목초지들이라 이 각 성읍의 주위에 목초지가 있었고 모든 성읍이 다 그러하였더라

(21:41-42)

 

성읍과 함께 그 주변에 목초지를 준 것입니다.

마지못한 성읍 나눔이 아니라 의무를 넘어선 감동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48주년 된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랑에 빚진 자로서 우리의 이웃과 열방에 대한 의무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니, 의무만이 아니라 의무를 넘어선 감동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모든 일을 억지로 하는 듯한 의무에서 멈추지 마시고

 

의무를 넘어 감동까지를 주겠다는 다짐의 48주년 기념 주일이 되어야겠습니다.


공사 중(Under Construction)

 

많이 불편하시지요?

교회 본당을 비롯하여 여러 곳이 공사 중이어서요.

교우들에게 번거로움을 드려 죄송하지만

공사가 가져온 변화가 있었고 또 있을 것입니다.

 

어제는 지하 식당에 페인트칠도 새롭게 하였답니다.

한번 내려가 보십시오.

청년들부터 누구라 할 것 없이 다 같이 힘을 모았답니다.

 

다음 주일에는 북카페 옆에 어린이들을 위한 드림(Dream) 카페가 문을 엽니다.

우리 자녀들이 마음껏 놀고 교제하는 카페가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Dream”을 꿈꾸는 곳,

하늘의 하나님께 내 삶을 드림을 다짐하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 공사 중인 곳이 있는데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여태껏 공사 중입니다.

언제 끝날지 몰라 그 완공 시간을 말씀 못 드립니다.

그러나 멈추지는 않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공사할게요.

참아 주세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많이 외롭겠구나

 

어제 몇몇 분과 두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고등학교 다니는 딸을 가진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저는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학교에서 신앙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학교에서 동성애를 분명하게 반대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하면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거의 왕따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순교자가 따로 없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매일 같이 순교하는 삶을 학교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이야기가 여기 오늘의 미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

얼마나 외로울까요.

얼마나 견디기 힘들까요.

그래도 묵묵히 그 외로움과 어려움을 참아내며

믿음을 지키고 있는 우리 자녀들이

저에게는 모두가 믿음의 스승 같답니다.

 

많이 외롭겠구나제 마음에서 그들에게 한 말입니다.

저들을 꼭 기억하옵소서제 마음에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

 

 

 

 


고통의 골짜기에서 웃다

 

내년 8주년 때는 그런 일이 없을 거예요.”

온몸으로 찬양하다 두세 차례 넘어지려 했던 집사님에게 제가 공개적으로 건넨 말입니다.

올해 새 성전이 완공되면 내년 중국 예배 8주년 감사예배는 넓은 곳에서 드려질 것이니까요.

 

지난주 중국어 예배 설립 7주년 감사예배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순서 가운데 쨘웨이 집사님이 두 딸과 함께한 댄싱 찬양이 있었습니다.

좁은 양순관 무대에서 집사님은 댄싱 중에 몇 차례 넘어질 뻔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집사님은 더욱 밝게 웃으면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날 집사님은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무대가 좁아서 넘어진 것이 아닙니다.

근육 무력증같이 다리가 휘청거려 그랬다는 것을 며칠 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뼈에서 뇌, 그리고 지금은 암이 온몸으로 전이가 되었습니다.

남편을 돌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잠을 편히 못 자는 집사님 자신도 몹시 아픕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홀로 챙겨야 할 세 자녀가 있습니다.

 

집사님은 지금 고통의 골짜기를 걷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잃은 것도 많고, 힘든 것도 많은 고통의 골짜기이지만

집사님은 밝은 미소만큼은 잃지 않았습니다.

깊은 고통 중에 더욱 환한 그의 미소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서 있기조차 힘들 텐데 하나님 앞에서 정성을 다해 춤을 추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는 나를 찾는다

 

뉴욕에서 제일, 오래된 교회를 아시는지요?

맨해튼에 있는 올해 설립 101년이 된 뉴욕한인교회입니다.

교회 100년 역사 다큐멘터리 드라마 시사회가 지난 금요일에 있었습니다.

다큐멘터리 드라마 제목이 나라 밖에서 찾은 나의 나라였습니다.

그 당시 이민자들이 잃어버린 나의 나라를 나라 밖에서 찾으려 얼마나 애썼는지,

그 당시 교회는 잃어버린 나라 찾는 운동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영상을 보며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잃은 나라를 찾았지만 정작 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요.

나를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건만 그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잃은 나라를 보고도 무심했던 사람들도 적잖이 있었는데

잃은 나에 대해 무심한 자들도 있답니다.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살아온 수많은 세월,

이제는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도대체 나는 누군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나?

나는 나를 찾아야 합니다.

 

교회가 잃은 나라 찾는 진원지였듯이

성경은 나를 찾는 곳이랍니다.

성경은 나를 바로 보게 하는 거울이랍니다. (1:23)

 

 

 

 


겨울왕국아 어서 녹아라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생각하라.....

 

그림자조차 얼어붙은 겨울

우리의 마음도, 생각도 얼어붙은 것은 아닌지요.

모든 것이 얼어있었던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 속의 사람들과 같은 것은 아닌지요.

 

계절은 겨울이어도 마음은 봄이면 좋겠습니다.

날씨는 추워도 생각은 따듯하면 좋겠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과 생각의 겨울왕국이 녹아

싱그러운 봄내음이 되고 따사로운 봄바람이 되고 싶습니다.

 

삶을 얼게했던 겨울왕국아 어서 녹아라

얼었던 열정도 다시 일어나고

 

식었던 꿈도 다시 깨어나도록


포기의 구별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결코!”

처질 수상이 자기의 모교에서 연설하였던 내용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멋있습니다.

꿈과 비전 등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포기하라고도 합니다.

그들은 신앙은 누림보다 버림이며, 채움보다 비움이며,

소유보다 포기라고 말합니다.

 

공부해서 남 주냐?”

공부를 독려하는 부모님들의 외침입니다.

그러나 공부는 내가 하는 것이지만,

그 진정한 유익은 남이 갖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 유익의 포기는 쉽지 않지만 많은 이의 풍성한 유익이 됩니다.

권리를 포기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로서 상상이 안 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포기의 연속이 예수님의 삶이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자기를 버리시고, 자기를 죽이시고....

십자가는 포기의 절정이셨습니다.

포기할 것과 포기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는 것이 지혜임이 분명합니다.

 

 

 

 

 

 

 


나는 가리라

 

신년 특별 새벽기도회가 끝났습니다.

지난 주간 오미크론이 폭풍같이 몰아쳤습니다.

선교지 알마티에서의 위험한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금요일 새벽에는 눈이 수북이 쌓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멈출 수 없었습니다.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눈보라가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험한 파도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모진 바람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뜻을 미리 정했던 다니엘은 어떤 폭풍 앞에서도 주춤거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뜻을 꺾을 어떤 세력도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전진만 있었습니다.

그의 전진에는 늘 승리가 있었습니다.

 

올 한해 어떤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순풍도 있고 역풍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갈까 말까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미리 뜻을 정하고, 그 뜻을 바꾸지 않고 가면 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어떤 비바람, 눈보라, 험한 파도가 있어도 나는 가리라.”

 

 

 

 

 


잊자 그리고 걷자

 

새해입니다.

새 옷을 입으려면 헌옷을 먼저 벗어야 하고,

새 음식을 담으려면 더러워진 그릇을 먼저 씻어야하듯이,

새해를 맞으려면 먼저 지난 것을 깔끔이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 잊어요.

잘했든 못했든 지난해의 일들을 이젠 잊어요.

 

그리고 걸어요.

삶을 성()으로 만들어 그 안에서 빙빙 도는 사람이 있고

삶을 길을 걷는 자로 이해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새해, 우리는 걸어야 합니다.

우리 가는 길, 보이지는 않지만

방향은 분명하고 무엇보다 선한 인도자가 우리 앞에 계시잖아요.

목표 향해 걸어요. 주님만 바라보고 걸어요.

 

지난 해 살아온 것이 은혜요

올해 살아갈 것이 은혜일터이니

걱정 말고 걸어요. 기대하며 걸어요. 끝까지 걸어요.

 

들리시나요?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이.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First in, Last out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고 나중도 있습니다.

올해도 처음이 있었고 이제는 나중이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처음이셨고, 지금 어떤 나중이십니까?

전쟁터, 화재진압 자리, 그리고 모든 헌신의 자리에서

진정한 리더라면 이렇게 말하고 이대로 행동합니다.

 

“First in, Last out.”

맨 먼저 뛰어들고, 맨 마지막에 나온다.”

 

교회뿐 아니라 승리하는 공동체에는 이런 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힘든 자리에 맨 먼저 뛰어들고 맨 마지막까지 버티는

자들이 있는 공동체는 누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올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그동안 너무 잘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맨 먼저 헌신하시고 맨 마지막까지 충성하시는 그대 때문에,

오늘의 우리 교회는 여기에 이 모습으로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가오는 새해에도.

“First in, Last out.” OK?

 

 

 


당신의 크리스마스

 

지난 월요일 저녁,

타주(他州)에서 오신 목사님 부부와 맨해튼에 갔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화려한 장식과 크고 작은 선물 그리고 구세군의 종소리가 길거리에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어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답니다.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지요?”

반짝이는 츄리요!” “즐거운 휴일이요!” “멋진 선물이요!” “신나는 캐롤이요!”

쇼핑이요!” “파티요!” “산타클로스요!”....

그러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일이라고 말하는 학생은.

 

당신의 크리스마스는 어떤 날입니까.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 예수님이 들어오시기에 힘든 날?

내 밖에 스케줄이 너무 바빠 예수님께 예배드리기엔 불가능한 날?

 

설마 당신의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날이 되어버린 것은 아니겠지요.

 

 

 


그분

 

거리마다 캐럴이 울려 퍼지는

성탄의 계절입니다.

이 성탄절에 무엇이 가장 크게 떠오르십니까?

그분이 가장 크게 떠오르지 않으신다면 그분은 마음 아프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작은 아기로 우리를 찾아오셨고

누울 자리 없어 말구유에서 나셨고

평생 우리 때문에 온갖 욕을 다 먹으시고

마침내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찬 바람이 이는

성탄의 계절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그분을 깊이 묵상할 시간입니다.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찾아오셨나?

왜 날 위해 죽으셨나?”

 

하늘의 별들은 반짝이고

성탄의 계절은 깊어만 갑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군요.

멀리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찾아오시어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부어주신 그분에게

우리는 무엇을 드려야 할까요.

 

 

 


성경 통독을 마치며

 

지난 21.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마태복음 11절이 zoom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사람의 자손으로 오셨다는 놀라운 이야기.

QBC 성경 통독의 첫날이었습니다.

 

그제 123.

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 말라기서에서 하나님은 반복해 말씀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애절하신지 가늠하기조차 힘들었습니다.

QBC 성경 통독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2021년 한 해를 돌아보니

목까지 차오른 고통의 신음이 쏟아지곤 했던 날도 여러 번 있었지만 다 지나갔습니다.

지나가지 않고 우리 마음에 뿌려져 아름답게 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침에도 밤에도 멈춤 없이 부어진 성경 통독의 말씀입니다.

 

말씀 속에는 없습니다.

목마름이 없습니다. 굶주림이 없습니다. 방황함이 없습니다.

말씀 안에는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성경 통독은 우리에게 말씀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다시 잘 알려주었습니다.

 

 

 


만약다음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결코 쉽지 않았던 2021년을 어떻게 사셨나요?

누구에게나 올 한 해 여러 아쉬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아쉬움에 대한 태도는 전혀 다르게 나뉩니다.

 

만약 내가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열심히 운동했더라면.”

만약 내가 그 사람과 그렇게 얽히지 않았다면.”

아쉬움을 만약으로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음 결정은 잘해야지.

다음 해에는 운동을 열심히 해야지.”

다음 만남은 잘 풀어가야지

아쉬움을 다음으로 열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약은 아쉬움을 과거의 후회로 만들고

다음은 같은 아쉬움을 미래의 희망으로 만듭니다.

2021, 뭔가 아쉬울 때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어요?

만약이신가요, “다음이신가요?

 

 


내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예쁘던 단풍이 낙엽이 되니 조금 귀찮습니다.

소음 같은 소리가 너무 많아 이런저런 소리 없는 곳에서 살고 싶기도 합니다.

이제 거의 끝나갑니다만 올해의 성경 통독은 부담이 되곤 했습니다.

목사님 설교가 살짝 길어지는 것 같아 살짝 짜증도 납니다.

 

내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낙엽 떨어지는 것을 보았으면

내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음악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내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성경을 눈으로 읽을 수 있다면

내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필립스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좋겠습니다.

 

21보거나 듣거나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의 소원이었습니다.

그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듣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번씩 말하고 듣고 보고 있음에도

당연하듯, 귀찮은 듯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무지개를 볼 수 있고 석양의 노을도 볼 수 있음을.

내 사랑하는 가족과 교우를 바라보고 이야기할 수 있음을.

찬양대의 찬양 소리와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음을.

그리고 늘 은혜로운 것은 아니겠지만(^^) 매 주일 목사님 설교를 들을 수 있음을.

 

 


그는 다시 오지 않아요

 

그는 다시 오지 않아요.”

몇 년 전 천국으로 떠난 남편 이야기를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남편은 다시 오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제는 그곳에 가야만 만날 수 있습니다.

 

아내가 깊은 밤중에 화장실에서 저를 불렀답니다.

너무 아파 저를 부르고 불렀건만 저는 듣지도 못하고 쿨쿨 잠만 잤습니다.

나중에 깨었을 때는 이미 힘든 상황이 지나갔습니다.

아내가 가장 고독했을 때 가장 가까이 있던 남편은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얼굴에 붉고 큰 점이 있는 그분은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누가 자기를 희아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어디 계신지도 모릅니다.

 

허무한 시절 지날 때 깊은 한숨 내쉴 때

그런 풍경 보시며 탄식하는 분 있네

고아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으리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하리라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감사절입니다. 올해 무엇이 감사하신지요?

저는 약하고 무능한 저 같은 사람과 영원히 함께 계시기 위해

약속대로 찾아오신 성령님이 너무 놀랍고 감사하답니다.

 

 


자기 색깔

 

눈치도 없어요.

여전히 힘들고 갑갑한 팬데믹 때인데 말입니다.

이럴 때는 슬쩍 묻혀 지나가는 것도 예의겠건만

어쩌자고 저리 울긋불긋 자기 색깔을 자랑하고 있는지요.

 

깊은 가을 속에 한껏 짙어진 단풍 이야기입니다.

그 전체 어울림이 질투가 날 정도로 아름답긴 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고맙습니다.

회색처럼 뿌연 세상에 자기 색깔을 확연히 드러내어 주어서요.

 

언젠간 색 바랜 낙엽이란 이름으로 떨어지겠지만

단풍은 지금 한껏 자기 색깔로 세상을 물들여놓았습니다.

누구나 인생의 황혼이 있고 저에게도 그런 날이 있겠지만

사는 날 동안만큼은 단풍처럼 나만의 색깔로 살고 싶습니다.

 

그대의 색깔은 무엇입니까?

마이웨이(My Way)를 부른 프랭크 시나트라는 오렌지색이 가장 행복한 색이래요.

오렌지색. 단풍색 중에 있는 아름다운 색이네요.

사실 제가 좋아하는 색깔은 단풍 속에서 찾을 수 없어요.

저 위에서 가끔 펼쳐져 있는 색, 결코 계절을 타지 않는 색.

저는 푸른 하늘을 지나 짙푸른 하늘이 보여주는 청옥색과 어울리고 싶어요.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그대가 좋아하는 색깔을 말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오늘이 벌써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10, 어떻게 지내셨나요.

서른 한번의 시월 중에 어느 날이 가장 멋지셨나요?

각자 다른 이유로 다른 날들을 멋진 날이었다고 하실거여요.

 

저는 10월의 모든 날들이 눈부셨어요.

그래도 어느 날을 꼽자면 날의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교회로 돌아오던 지난 금요일이 멋졌네요.

내가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오던

새벽부터 설레며 빨리 비행기 생각으로 가득 찼었지요.

 

김동규 씨가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좋은 것은 없을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루터에게는 오늘이 10월의 멋진 날이었겠습니다.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어 올린

날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 모두 10월의 어느 멋진 날을 마음의 앨범에 넣으며

11월의 가을로 함께 걸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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