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못 찾겠다 꾀꼬리

 

어렸을 적 놀이 중 술래잡기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술래는 어찌하든 숨어 있는 친구들을 하나둘 찾아냅니다만

끝내 찾지 못하면 이렇게 외칩니다.

못 찾겠다 꾀꼬리

 

어느 아빠와 딸이 술래잡기 놀이를 할 때였습니다.

거구의 아빠가 몸을 잘 숨겼는데

쏜살같이 술래인 딸에게로 날아갔습니다.

술래에게서 이런 외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빠!” 딸이 넘어지면서 아빠를 다급하게 부른 것입니다.

 

자녀들이 다급하게 아빠라고 부르는데

더욱 꼭꼭 숨는 아빠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즉시 뛰어나옵니다.

 

못 찾겠다 꾀꼬리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그렇게 길게 외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을 꼭 찾고 싶으면 하늘을 향해 아빠라고 짧게 불러 보십시오.

그 소리를 들은 하늘 아빠는 더 이상 숨어계시지 않는답니다.

그래, 내 딸아, 내 아들아. 나 여기 있다외치시며 단숨에 달려오십니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당신은 누구시길래

그 먼 길을 헤치고 나를 찾아오셨나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알 수 없는 그 길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나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나를 위해 온갖 조롱 다 받으시고, 가시에 찔리시고, 못에 박혀 죽으셨나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먼동 틀 때에 조반을 지어 먹여 주시고,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나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내 마음을 이렇게 송두리째 앗아가셨나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그 여인을 용서하시고, 그 남자를 맞아 주시고, 그 아이에게 안수하셨나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우리로 갓난아이 어린이 청소년 청년 장년 노년이 모여 춤을 추며 찬양하게 하시나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나를 전하라, 네게 줄 상을 가지고 다시 온다. 기다려라.”라고 말씀하시나요.

 

~~ 그 이름 예수

그 아름다운 이름이여.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부르다 죽어도 좋을 내 사랑 내 구세주이시여.

 

 


사순절, 그 만남의 기적

 

일주일이 지나는 사순절에 너무 많은 기적을 보고 있습니다.

 

경이로운 하나님을 만나는 기적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매일 만날 수 있음이 기적입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29:13)

 

엄청난 명품을 만나는 기적입니다.

친교실과 카페에 가 보면 명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십 년간 빚어오신 어마어마하신 분들.

누구를 만나시든 그 만남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명품을 만나는 기적입니다.

 

놀라운 미래를 만나는 기적입니다.

우리는 반드시를 부르며 주여를 외치는 수십 명의 어린이를 매일 만납니다.

그들에게 놀라운 미래의 인물이 담겨 있음을 봅니다.

그들을 나중에 만나려면 긴 줄을 서도 아마 쉽지 않을 것입니다.

 

거대한 축복을 만나는 기적입니다.

어제도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을 받았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그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말은 안 하셔도 기뻐하시는 표정들로 축복을 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순절은 만남의 기적이 있는 뜨거운 현장입니다.

 

 

 

 

 


고통의 골짜기에서 웃다

 

내년 8주년 때는 그런 일이 없을 거예요.”

온몸으로 찬양하다 두세 차례 넘어지려 했던 집사님에게 제가 공개적으로 건넨 말입니다.

올해 새 성전이 완공되면 내년 중국 예배 8주년 감사예배는 넓은 곳에서 드려질 것이니까요.

 

지난주 중국어 예배 설립 7주년 감사예배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순서 가운데 쨘웨이 집사님이 두 딸과 함께한 댄싱 찬양이 있었습니다.

좁은 양순관 무대에서 집사님은 댄싱 중에 몇 차례 넘어질 뻔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집사님은 더욱 밝게 웃으면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날 집사님은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무대가 좁아서 넘어진 것이 아닙니다.

근육 무력증같이 다리가 휘청거려 그랬다는 것을 며칠 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뼈에서 뇌, 그리고 지금은 암이 온몸으로 전이가 되었습니다.

남편을 돌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잠을 편히 못 자는 집사님 자신도 몹시 아픕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홀로 챙겨야 할 세 자녀가 있습니다.

 

집사님은 지금 고통의 골짜기를 걷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잃은 것도 많고, 힘든 것도 많은 고통의 골짜기이지만

집사님은 밝은 미소만큼은 잃지 않았습니다.

깊은 고통 중에 더욱 환한 그의 미소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서 있기조차 힘들 텐데 하나님 앞에서 정성을 다해 춤을 추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의무를 넘어 감동으로

 

오늘은 우리 교회가 설립된 지 48주년이 되는 기념 주일입니다.

마흔여덟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의무의 숫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 사람들에게 마흔여덟 개의 성읍을 주었습니다.

이 성읍 나눔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의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무에 감동이 더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 중에서 받은 성읍은 모두 마흔여덟 성읍이요

또 그 목초지들이라 이 각 성읍의 주위에 목초지가 있었고 모든 성읍이 다 그러하였더라

(21:41-42)

 

성읍과 함께 그 주변에 목초지를 준 것입니다.

마지못한 성읍 나눔이 아니라 의무를 넘어선 감동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48주년 된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랑에 빚진 자로서 우리의 이웃과 열방에 대한 의무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니, 의무만이 아니라 의무를 넘어선 감동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모든 일을 억지로 하는 듯한 의무에서 멈추지 마시고

 

의무를 넘어 감동까지를 주겠다는 다짐의 48주년 기념 주일이 되어야겠습니다.


공사 중(Under Construction)

 

많이 불편하시지요?

교회 본당을 비롯하여 여러 곳이 공사 중이어서요.

교우들에게 번거로움을 드려 죄송하지만

공사가 가져온 변화가 있었고 또 있을 것입니다.

 

어제는 지하 식당에 페인트칠도 새롭게 하였답니다.

한번 내려가 보십시오.

청년들부터 누구라 할 것 없이 다 같이 힘을 모았답니다.

 

다음 주일에는 북카페 옆에 어린이들을 위한 드림(Dream) 카페가 문을 엽니다.

우리 자녀들이 마음껏 놀고 교제하는 카페가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Dream”을 꿈꾸는 곳,

하늘의 하나님께 내 삶을 드림을 다짐하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 공사 중인 곳이 있는데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여태껏 공사 중입니다.

언제 끝날지 몰라 그 완공 시간을 말씀 못 드립니다.

그러나 멈추지는 않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공사할게요.

참아 주세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많이 외롭겠구나

 

어제 몇몇 분과 두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고등학교 다니는 딸을 가진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저는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학교에서 신앙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학교에서 동성애를 분명하게 반대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하면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거의 왕따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순교자가 따로 없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매일 같이 순교하는 삶을 학교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이야기가 여기 오늘의 미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

얼마나 외로울까요.

얼마나 견디기 힘들까요.

그래도 묵묵히 그 외로움과 어려움을 참아내며

믿음을 지키고 있는 우리 자녀들이

저에게는 모두가 믿음의 스승 같답니다.

 

많이 외롭겠구나제 마음에서 그들에게 한 말입니다.

저들을 꼭 기억하옵소서제 마음에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

 

 

 

 


나는 가리라

 

신년 특별 새벽기도회가 끝났습니다.

지난 주간 오미크론이 폭풍같이 몰아쳤습니다.

선교지 알마티에서의 위험한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금요일 새벽에는 눈이 수북이 쌓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멈출 수 없었습니다.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눈보라가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험한 파도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모진 바람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뜻을 미리 정했던 다니엘은 어떤 폭풍 앞에서도 주춤거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뜻을 꺾을 어떤 세력도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전진만 있었습니다.

그의 전진에는 늘 승리가 있었습니다.

 

올 한해 어떤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순풍도 있고 역풍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갈까 말까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미리 뜻을 정하고, 그 뜻을 바꾸지 않고 가면 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어떤 비바람, 눈보라, 험한 파도가 있어도 나는 가리라.”

 

 

 

 

 


나는 나를 찾는다

 

뉴욕에서 제일, 오래된 교회를 아시는지요?

맨해튼에 있는 올해 설립 101년이 된 뉴욕한인교회입니다.

교회 100년 역사 다큐멘터리 드라마 시사회가 지난 금요일에 있었습니다.

다큐멘터리 드라마 제목이 나라 밖에서 찾은 나의 나라였습니다.

그 당시 이민자들이 잃어버린 나의 나라를 나라 밖에서 찾으려 얼마나 애썼는지,

그 당시 교회는 잃어버린 나라 찾는 운동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영상을 보며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잃은 나라를 찾았지만 정작 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요.

나를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건만 그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잃은 나라를 보고도 무심했던 사람들도 적잖이 있었는데

잃은 나에 대해 무심한 자들도 있답니다.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살아온 수많은 세월,

이제는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도대체 나는 누군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나?

나는 나를 찾아야 합니다.

 

교회가 잃은 나라 찾는 진원지였듯이

성경은 나를 찾는 곳이랍니다.

성경은 나를 바로 보게 하는 거울이랍니다. (1:23)

 

 

 

 


잊자 그리고 걷자

 

새해입니다.

새 옷을 입으려면 헌옷을 먼저 벗어야 하고,

새 음식을 담으려면 더러워진 그릇을 먼저 씻어야하듯이,

새해를 맞으려면 먼저 지난 것을 깔끔이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 잊어요.

잘했든 못했든 지난해의 일들을 이젠 잊어요.

 

그리고 걸어요.

삶을 성()으로 만들어 그 안에서 빙빙 도는 사람이 있고

삶을 길을 걷는 자로 이해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새해, 우리는 걸어야 합니다.

우리 가는 길, 보이지는 않지만

방향은 분명하고 무엇보다 선한 인도자가 우리 앞에 계시잖아요.

목표 향해 걸어요. 주님만 바라보고 걸어요.

 

지난 해 살아온 것이 은혜요

올해 살아갈 것이 은혜일터이니

걱정 말고 걸어요. 기대하며 걸어요. 끝까지 걸어요.

 

들리시나요?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이.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겨울왕국아 어서 녹아라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생각하라.....

 

그림자조차 얼어붙은 겨울

우리의 마음도, 생각도 얼어붙은 것은 아닌지요.

모든 것이 얼어있었던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 속의 사람들과 같은 것은 아닌지요.

 

계절은 겨울이어도 마음은 봄이면 좋겠습니다.

날씨는 추워도 생각은 따듯하면 좋겠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과 생각의 겨울왕국이 녹아

싱그러운 봄내음이 되고 따사로운 봄바람이 되고 싶습니다.

 

삶을 얼게했던 겨울왕국아 어서 녹아라

얼었던 열정도 다시 일어나고

 

식었던 꿈도 다시 깨어나도록


포기의 구별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결코!”

처질 수상이 자기의 모교에서 연설하였던 내용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멋있습니다.

꿈과 비전 등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포기하라고도 합니다.

그들은 신앙은 누림보다 버림이며, 채움보다 비움이며,

소유보다 포기라고 말합니다.

 

공부해서 남 주냐?”

공부를 독려하는 부모님들의 외침입니다.

그러나 공부는 내가 하는 것이지만,

그 진정한 유익은 남이 갖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 유익의 포기는 쉽지 않지만 많은 이의 풍성한 유익이 됩니다.

권리를 포기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로서 상상이 안 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포기의 연속이 예수님의 삶이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자기를 버리시고, 자기를 죽이시고....

십자가는 포기의 절정이셨습니다.

포기할 것과 포기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는 것이 지혜임이 분명합니다.

 

 

 

 

 

 

 


여러분은 우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미국 땅에 오래 살아도

아무리 다민족 사역을 많이 하여도

대한민국의 정체성마저 지워진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제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16강행이 확정되고 난 후

몇몇 교역자님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어디서나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그날 승리의 주역이었던 손흥민 선수가 이런 웅장한 글을 남겼습니다.

눈물로 쓴 글임이 분명합니다.

 

저희는 포기하지 않았고,

여러분은 우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자기들을 포기하지 않은 대한민국이 있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어도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고 가슴 먹먹하게 자랑스러운 젊은이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본향으로 가는 달음박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던 하나님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까지도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사랑합니다.

 

 

 

 


남은 몇날동안 무엇을 할까?

 

Merry Christmas!

오늘은 즐거운 성탄절입니다.

다양한 민족이 함께 어울려 다양한 순서로 드리는 성탄예배,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늘 성탄이 지나고 며칠 있으면 새해를 맞게 됩니다.

올해 남은 몇날 동안 무엇을 할까요.?

무엇을 해야 할지 일러주는 음성이 있습니다.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리시는데 내가 뒤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 찬송할지어다---" (3:12)

 

앞으로 가기 전에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찬송하라' 소리가 뒤에서 크게 들립니다.

새해를 맞기까기 몇날동안 해야할 일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올해도 넘치는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지금까지 지내온 주의 크신 은혜' 라고 뜨겁게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세 가지 답변

 

삶에서 너무 힘든 일을 만난 강병권 선교사님이 세 가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질문에 세 가지 답변을 주셨습니다.

 

강병권 선교사님은 우리 교회 협력 선교사님이십니다.

선교사님의 아내는 정혜란 선교사님이십니다.

30년 아프리카 선교를 마치고 한국에서 AIM(Africa Inland Misssion) 대표

사역하러 돌아오는 길에 정혜란 선교사님이 담도암 4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1년 동안 투병하시다가 지난 916일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첫째 질문은 하나님, 아내를 살려달라고 기도했는데 왜 데려가셨습니까?”

하나님의 첫 번째 답변은 이 땅에서 고침 받아도 또 다시 아프단다.

그래서 아예 아프지 않은 곳으로 데려갔단다.”

 

둘째 질문은 “30년의 선교를 성실히 마친 정선교사에게 왜 상대신 암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두 번째 답변은 이 땅에서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것2022보다

하늘에서 상급 받는 것이 더 좋기에 데려갔단다.”

 

셋째 질문은 아내를 간호한 일 년은 제게 어떤 시간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세 번째 답변은 그 일 년은 너를 훈련시키기 위한 시간이었다.

너의 아내에 대한 이기적인 사랑을 진정한 사랑으로 바꾸기 위한 시간이었단다.”

 

우리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나면 하나님을 향해 던질 질문들이 있을 것입니다.

귀 기울이십시오. 그 답들을 우리 하나님께서 따듯하게 분명하게 일러주실 것입니다.

 

 

 

 

 


거기 빛이 있었고

 

반 고흐는 슬픔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어둠이 짙게 드리워 있었습니다.

그는 빛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그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는 자그마치 별이 11개나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움에 지친 사람은 적어도 미소 짓는 두 개의 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작은 별을 이렇게 부릅니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 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별들의 미소 잊을 수가 없어요

 

동방박사들에게는 하나의 별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동방에서 박사들 귀한 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 따라왔도다

 

빛이 있어야 합니다.

빛이 없다면 길도 잃고 꿈도 잃습니다.

빛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빛 속에 소망이 있습니다.

거기 빛이 있었고라는 주제의 성탄 축하 찬양제가 너무 기다려집니다.

나에게도 그 빛이 꼭 있어야 하겠기에 말입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반갑습니다. 행복에의 초대, 잘 오셨습니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가을을 지내고 계시는지요.

저는 며칠 전 집 앞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 모았습니다. 아직 버리진 않았습니다.

지난봄 푸릇푸릇했던 나뭇잎이, 여름날 우거진 녹음(綠陰)으로,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으로도 변화되다가, 이제는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있기에

그들이 나를 뒤로하고 어디론가 굴러가기 전에 붙잡아 끌어모은 것입니다.

 

바람결에 떨어졌던 낙엽을 모아보니

많은 이야기를 담은 세월의 보따리였습니다.

지나간 시간,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니 후회할 수 없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시간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다가올 시간입니다.

남은 시간을 이전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무엇이 행복할까? 그것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입니다.

낙엽을 쓸 때 스각스각 들리던 소리가

겨울이 다가왔다는 하늘의 음성으로 가까이 들렸습니다.

낙엽으로 벗겨져 가는 나무가 다가올 겨울을 두려워하는 내색도 없이

새로운 봄의 옷을 입혀줄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린다고 가까이서 속삭였습니다.

 

오늘, 행복에의 초대에 오신 모든 분을 격렬하게 환영합니다.

행복에의 초대는 오늘을 넘어 다가올 겨울도 지나, 저 하늘에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사람은 지상에서 최대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알로하

 

오래전 하와이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꽃목걸이와 ‘알로하’라는 인사를 받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특별한 인사에 큰 환대를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멋진 하와이 정경보다 더 아름다운 환대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습니다.

 

오늘부터 이번 주 내내 우리 교회에 귀한 손님들이 오십니다.

오늘은 한국에서 이재서 목사님과 사모님, 뉴저지에서 강원호 목사님이 오시고

LA에서 조용중 선교사님과 사모님이 오십니다. 내일부터 삼일 동안 KWMC 의장단이,

토요일에는 워싱톤 헬로우십 교회 임직자 20명이 방문할 예정입니다.

 

우리 교우들은 누구든 따듯하고 섬세하고 풍성하게 환대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 오시든지 교우들의 극진한 환대 속에

위로와 힘을 얻고 가시는 모습을 종종 뵙습니다.

 

성경과 청교도 그리고 우리 교회 선진들의 자랑스러운 유산인 추수감사절을 지나자마자

여러 손님 맞을 채비로 분주한 교우들에게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도 있었느니라”

 

하와이에서는 ‘알로하!’한 가지로 인사하지만, 우리는 네 언어로 환영할 수 있답니다.

웰컴! 환잉! 다브로 뽀잘로밧! 그리고 환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하나님이십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실수에도 불구하고

날 덮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약함에도 불구하고

날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청교도의 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이었습니다.

그들이 타고 온 배의 돗대가 부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파손되지 않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폭풍이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가고자 하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들이 항해하는 가운데 두 명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이 태어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처럼 복되고 아름다운 추수감사주일,

하나님과 청교도들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묵상하며 감사 눈물 흘립니다.


기억과 감사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주일 ‘행복에의 초대’에 나오신 성도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기억감사라는 단어가 함께 어울려져

제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2022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행복에의 초대를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처음 나오신 분들, 그 소중한 결단과 걸음들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에 나오신 분들, 다시 만난 기쁨의 시간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교우들, 아름다운 수고와 기도를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강아지와 고양이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있답니다.

강아지는 주인이 백 개중에 하나만 잘해도 그것을 고맙게 기억한다고 합니다.

고양이는 주인이 백 개중에 하나만 못해도 그것을 고깝게 기억한다고 합니다.

‘개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말을 알아듣는다면 개들이 크게 섭섭해할 것입니다.

 

기억은 감사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은혜받은 기억이 전혀 없다면 감사할 일도 없겠지만

 

넘치는 은혜를 받은 기억이 있다면, 넘치는 감사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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