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험한 세상을 이기려면

 

사자와 양은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이 둘이 결코 같이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둘이 멋진 조화를 이루었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5:5-6)

 

예수님은 사자의 위용과 어린 양의 겸손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십니다.

불의 앞에는 강한 사자와 같으셨고 약한 자에게는 부드러운 양의 모습이셨습니다.

그 멋진 조화로움으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세상을 이기려면 강인함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부드러움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그 안에 사자와 양을 동시에 같이 가진 사람이 세상을 이깁니다.

당신은 사자이시면서 동시에 양이십니까?

그러시다면 당신은 이 험한 세상에서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베토벤을 죽였네

 

어느 의과대학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몹쓸 병에 걸려있고, 아내도 심한 병을 앓고 있다.

이들에겐 아이들이 넷 있는데, 하나는 며칠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남은 아이들도 병으로 누워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이 부인은 현재 임신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러자 한 학생이 대뜸 소리쳤습니다.

"낙태수술을 해야 합니다."

교수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는 낙태가 가장 적절한 답변 같지만

이 가정에 다섯 번째 태어난 아이는 다름 아닌 베토벤이었습니다.

베토벤이 아니어도 그래서는 안 되었을 것입니다.

 

카타르에서는 18회 아시안컵 축구 경기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16강 전과 호주와의 8강전은 드라마였습니다.

16강 전에서는 경기 종료 1분을 앞두고 동점골을, 이후 승부차기에서 이겼습니다.

8강 전에서도 패색이 짙어가던 시간에 동점골과 역전골을 넣은 것입니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최후의 시간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제직 수련회에서 강사 목사님은 주옥같은 말씀을 펼치시고 계십니다.

축구에 후반전이 중요하듯 제직에게 반전의 후반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다 이루었다가 예수님의 외침이셨다면,

우리도 끝까지 간다를 외쳐야 합니다. 안 그러면 베토벤을 죽일 수 있습니다.

 

 

 


드디어 의문이 풀리다

 

너무 그리운 교우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휴스턴 한인중앙장로교회 청지기수련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해 주심이 말씀의 현장에서 선명히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청지기수련회는 우리  제직수련회와 내용과 형식이 똑같습니다.

 

45주년 교회의 따듯한 장로님들과 밝은 교역자님들

순박하게 말씀을 사모하는 제직, 순서 맡은 분들이 최선을 다하는 찬양 등이 낯설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몰랐던 담임 목사님께서 저를, 초청하셨는지.

쨔자잔, 드디어 의문이 풀렸습니다. 이곳 교회는 우리 신문사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담임 이재호목사님께서 칼럼을 매주 읽으시면서 저를 초청하고 싶으셨답니다.

 

금요일 저녁 식사대접 해주시던 장로님도 Y 신문방송학과 출신이셨습니다.

자연스레 종이 신문의 역할과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쉽지 않은 가운데 문서 선교를 섬겨오던 제게 위로와 새로운 다짐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문서 선교에 기도와 후원을 아끼지 않으신 교우들과 후원교회, 그리고 필진이 얼마나 고마우신지.

 

이번 금요일부터는 우리의 제직수련회가 열립니다.

혹시 우리 교우들께 무슨 의문이 있으십니까?

수련회 중에 말씀으로 은혜도 받으시고, 의문도 풀리시길 기원합니다.

 

~기대되는 수요일의 일일 부흥회도 있군요. 오는 수요일부터 뵈여요. 저도 갑니다.


고백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있습니다.

고백입니다.

사랑을 고백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언어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능력 있는 말이 있습니다.

고백입니다.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의 용서는 임하고 마귀는 도망갑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익한 말이 있습니다.

고백입니다.

상대방에게 먼저 잘못을 고백하면 모든 것이 회복되고 일이 잘 풀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말이 있습니다.

고백입니다.

고백하기를 주저주저 하다가 후회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선택하십시오. 고백하기를

용기내십시오. 고백하기로

 

 

승리하십시오. 고백하셔서


겨울에 내리는

 

우리가 사는 동네가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겨울이면 눈이 펑펑 쏟아져 사람도 자동차도 며칠씩 다닐 없었습니다.

상점마다 모자, 목도리, 장갑, 부츠 겨울 물품은 없어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그런 정경을 없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비가 계속 내렸습니다.

눈이 와야 때에 비가 내리니 이상 기후에 대한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비를 다르게 생각하고 다시 바라 보았습니다.

새로운 생각으로 바라본 비는 계절을 앞서 찾아온 희망의 전령이었습니다.

 

겨울 틈속에 잠깐 찾아온 비는머잖은 곳에 봄이 있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비는 눈처럼 살포시 내려 앉아있다 슬며시 떠나지 않았습니다.

봄에 틔울 자리를 미리 알아보듯 돌아다니다 기약의 여운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손이 시려워

    발이 시려워

    겨울 바람 때문에----"

 

며칠 손도 발도 시려울 날씨가 예고되어 있긴 해도, 우린 압니다.

 

희망의 봄을 이길 혹독한 겨울이 없음을.


기적의 행진

 

2024년 새해 첫 주일입니다.

첫 주일임에도 신년을 맞은지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작년 마지막 주일 이후 송구영신예배, 신년하례예배,

그리고 닷새 동안의 신년 특별 새벽기도회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어제 새벽 어느 성도께서 짧은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분은 이번 특새를 기적의 행진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금년 신년 특새의 주제로 지금도 기적이 일어난다

그리고 손들면, 드리면, 외치면, 믿으면, 손 떼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퀸즈장로교회는 기적이 일상이 되는 교회,

우리 교회는 오늘도 기적을 체험하는 교회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손들고 기도하는데, 주님께 드리는데, 대적을 향해 외치는데

그리고 믿음으로 행하며, 주님이 일 하시도록 내 손을 떼는데 힘쓰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 빰빰빠-

이제 막 2024년도 기적의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해를 그 어떤 놀라운 기적도 없이 그저 그렇게 사는데 만족하지 마십시오.

날마다 놀라움으로 가득 찰 기적의 행진에, 그대를 열렬히 초대합니다.

 

 

 


그 사람의 뒷모습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낙화, 이형기)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날이듯이, 사람도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 있습니다.

마지막 모습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 그 사람의 뒷모습.

그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 서길웅 집사님. 지난 목요일 교통사고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너무 급작스럽고 안타까운 떠남, 그러나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셨습니다.

집사님이 20년 전(), 교회설립 30주년 아가페 기념호에 이런 글을 쓰셨습니다.

 

직분을 주신 것은 어떤 명예나 권위 의식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청지기 사명의식을 갖고 몸 된 교회를 더욱 든든히 세워 가게

하시기 위한 방편이라고 배웠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동안 표창도 받았는데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받을 상급이 없을 것 같아 두렵고 떨립니다.

 

아니예요, 교회를 이토록 멋지게 섬기시다가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신 집사님을

하나님이 분명히 큰 상급을 준비해 놓으시고 기쁘게 맞이하실 거예요.’

 

 

올해의 마지막 날에 언젠간 남길 우리의 마지막 뒷모습은 어떨지 생각해 봅니다.


휘파람 캐럴

 

작은 강 사이에 프랑스군과과 독일군이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1224일 성탄 전날 밤이었습니다.

프랑스의 한 병사가 휘파람으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습니다.

적막한 강가의 밤에 그 소리는 흘러 흘러갔습니다.

 

두고 온 고향에서의 크리스마스를 그리워하던

전쟁터의 군인들 한명 두명이 따라 부르던 휘파람 캐럴.

아군과 적군 모두가 휘파람으로 캐럴을 부르다가

마침내 같이 성탄 예배를 드렸고, 함께 성탄 파티도 열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성탄 주일이며 성탄 전날입니다.

아직 용서 못한 그 누구가 있습니까?

여전히 다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성탄의 예수님은 싸움을 그치고 그들과 희망과 사랑을 나누라고 하십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포성 대신 찬송이 울려 퍼져야 할 텐데 오늘이 다 지나기 전,

그 찬송을 시작시킬 휘파람 캐럴을 부르시지 않겠습니까?

휘이이익 휘이이익~~~

 

 

 

 

 


사람

 

 

 

올라(안녕하세요)!

 

기도해 주셔서 지난 주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선교회의를 다녀왔습니다.

 

다양한 선교지에서 분투하시던 사역자들이 함께 모여 선교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만나 분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리에서 묵묵히 사역하시는 소중한 사람이셨습니다.

 

 

 

스페인을 사람이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친 표현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끄덕입니다.

 

그는 현재의 정치가도 경제인도 아닌 과거의 예술가입니다.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 바로 사람입니다.

 

그가 건축한 '성가족 성당'  '구엘공원' 등에는 세계의 관광객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는 전차에 치어 치명상을 입었는데 허름한 행색의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택시도 병원도 거절한 그를 간호사가 알아보고 나은 치료를 권했지만 그는 거절했습니다.

 

옷차림만 보고 사람을 차별하는 세태를 온몸으로 꾸짖으며 사고 삼일 만에 죽었습니다.

 

그를 통해 스페인이 벌어들이는 돈은 상상 이상이며 나라 사람들은 가우디에게 끝없이 감사해합니다.

 

 

 

스페인을 살리는 가우디보다 놀라운 분이 계십니다. 세상을 살리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유일한 구원자 한분 때문에 우리는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

 

가는 세월을 그 누구도 잡을 수 없다는 노래도 있습니다.

더욱 서둘러 가는 세월, 연말이 되니 많이 바쁘실 것입니다.

바쁘게 지내다 보면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잊고 지날 수 있습니다.

여기,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잊고 지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문을 열어달라고 계속 두드리시는데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잊어버리고

분주하게 성탄의 12월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올해의 광야길, 얼마나 아팠고 힘들었었나요.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의 이름, 은혜

못 잊어 생각이 나고 또 나야 한답니다.

 

죽는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Memento Mori(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오늘 죽어도 당황하지 않을 죽음,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 죽음을 잘 기억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한 달

 

마지막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단어입니다.

그래도 피할 수 없는 단어, 도망칠 수 없는 시간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마지막 한 달이 남았습니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입니다.

 

연말(年末)의 화려한 유혹과 비열한 변명이

마지막 한 달마저 앗아 가려고 12월이 오기 전부터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차 하면 마지막 12월을 송두리째 빼앗기면서

아무런 열매 없이 12월의 마지막 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한 달, 유혹의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 하늘로 비상(飛上)해야 합니다.

마지막 한 달, 변명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끝까지 도전(挑戰)해야 합니다.

 

최후의 마지막 시각이 멈추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힘내십시오. 잠시 후면 상 받는 그날이 있으니까요.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고전 3:13-15a)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며

 

전쟁으로 천만 이산가족을 남기고 폐허가 되었던 나라.

세계 각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아오다 이제는 원조를 주는 나라.

1988년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을 유치하여 역량을 보여주었던 나라.

경제 10대국일 뿐 아니라 다양한 K콘텐츠를 통해 온 세상을 리드하는 나라.

 

그 나라,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며 1128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일 모레는 프랑스 파리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 장소를 결정하는 날입니다.

시우디아라비아, 이탈리아와 함께 개최 후보지로 나선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처럼

정부, 경제, 시민 단체등이 원팀(One Team)이 되어 유치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다른 나라의 유치전과는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개최지 선정 100일 전, 부산에서 시작된 기도 운동입니다.

한국과 세계의 여러 도시로 기도의 불길을 이어가다가

그제는 뉴욕을 지났고 오늘은 파리에서 역사적인 대장정을 마칩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모든 교회는

자기들의 나라를 위해 애국하는 교회이기도 합니다.

이민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떠나온 대한민국이 잘 되길 바라고

2030 세계 박람회가 세계 선교의 기회가 되길 바라며 기도한답니다.

 

 

 


추수감사절에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오곡백과 황금바다가 넘실대는 들녘을 보아야 합니다.

대추 한알, 곡식 하나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많이 담겼는지.

추수감사절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볼수 없다면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는 만나야 합니다.

오는 목요일 저녁 5시에 만나야 합니다.

밥 한공기에도 벼를 심고 거두고 밥을 짓기까지 여러 손길이 얼마나 많이 닿았는지.

추수감사절에 공동체에 대한 뜨거운 감격이 없다면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는 기대야 합니다.

둘러보니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에 하나님의 경이로운 능력이 얼마나 많이 배였는지.

추수감사절에 능력의 하나님을 겸손히 의존하는 일이 없다면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는 드려야 합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로 드립니다.

전쟁과 사고로 가득한 2023년에도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많이 놀라운지.

추수감사절에 드리는 일년의 감사에 지극한 정성이 없다면 어쩌면 좋습니까.

 

 

 

 

 

 

 

 


주인공과 배경인물

 

주인공이 좋으세요, 배경인물이 좋으세요?

배경인물의 역할은 주인공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니

기왕이면 주인공이 좋겠지요.

그러나 잠깐만요^^

 

저는 지난 주간 그린스보로를 거쳐 LA에 다녀왔습니다.

그린스보로에서는 우리 교단의 목사 장로 기도회가 있었고,

LA에서는 KWMC (The Korean World Mission Council for Christ/

기독교 한인세계선교협의회) 연차 총회가 있었습니다.

 

두 모임에 공통된 주인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셨습니다.

지난 The Way의 주인공도 역시 예수님이셨습니다.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다 배경인물입니다.

 

우리는 배경인물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도 주어진 역할을 성실하게 잘 감당하다가

그만이다 하는 그날에 무대에서 내려가면 됩니다.

무대에서는 주인공이신 예수님만이 영원하십니다.

 

 

 

 


우리는 왕따

 

우리는 왕따

네까짓 이민자하면서 모두가 업신여기고 따돌려도

우리는 다시 돌아갈 길이 없었습니다.

세찬 바람이 모질게 불었지만 날아가지도 않았고, 흩어질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왕따

우리가 왕따임은 견디겠으나 우리를 따라 함께 바다를 건너온 자녀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왕따를 당한다라고 외마디 칠 때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참아라. 힘을 내라는 말밖에 달리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왕따

놀랍게도 거친 뉴욕 땅에 던져진 연약한 우리를 도우신 분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우리를 찾아오신 왕이요 길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왕따

지난주일 저녁,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민자들과 그 자녀들이 모여

그분이 왕따들을 통해 50년 동안 이루신 일들을 감격으로 돌아보고 다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이민 땅의 서러운 왕따로 여기지 않고

르는 예수님의 영원한 왕따로 살기로 말입니다.

 

 


어디가 길이냐

 

꿈길. 워낙 가곡을 좋아한터라, 그만 그 가곡에 세뇌(洗腦)당하였답니다.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님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꿈길에서 만날 줄 알고 꿈꾸는 밤을 기다렸으나

꿈에서도 만날 수 없었고, 만난다 하여도 깨어나니 그 님이 사라졌습니다.

 

나의 길. 프랭크 시나트라가 감미롭게 유혹한 길이 있었습니다. “My Way”

 

And now, the end is near (그리고 이제, 끝이 가까워)----

My friend, I'll say it clear, (내 친구여, 확실히 말할 게)----

I did it my way (그걸 내 방식대로 했다는 거지)

 

나의 길을 가는 것이 멋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의 길을 갈수록 나는 점점 더 공허해졌습니다.

 

예수의 길. 드디어 찾았습니다. 그토록 찼고 찼았던 길이었습니다.

 

안개 속에서 주님을 보네/ 아무도 없을 것 같던 그 곳에서----

주 말씀하시네 내 손 잡으라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 생명이니----

예수의 길 그 좁은 길/ 나는 걷네 주 손잡고

 

어디가 길이냐구요? 이 세상에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답니다. The Way.

 

 

 

 

 

 


가을 비와 함께

 

The Way! 화이팅!

화이팅! The Way!

 

통성기도 후 우렁찬 외침과 함께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어제 아침, “The Way” 초청장을 들고 나가는 교우들의 모습은 결연했습니다.

 

가을 비도 교우들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아니, 가을 비가 끝까지 함께했습니다.

길을 잃은 세상을 향한 하늘의 눈물과도 같은 가을비가

초청장을 나누어 주는 교우들의 머리와 어깨를 거쳐 땅을 흠뻑 적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동네에 오셔서 그려 놓으신 수채화 같은 가을 비속의 교우들.

행여 감기라도 들까 자기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만나길 소망하며 지나는 이에게 미소짓는 교우들.

이 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이 가을에 어디서 또 볼수 있을까 싶습니다.

 

교우들과 함께한 가을 비는

저 옆에서 단풍이 채 물들지 않은 나뭇잎도 떨구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 소리는

상 주시려고 다시 오실 주님의 발자국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였습니다.

 

 

 


참된 평화가 어디있나

 

지금, 온 세상은 충격과 슬픔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잡혀가고----

그 가운데 여성과 어린이까지 포함된 민간인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온 세상을 둘로 나누어 모두의 전쟁으로 만들었습니다.

 

전쟁과 평화는 내면과 가정과 군대에서 전쟁을 겪었던 톨스토이의 작품입니다.

그가 말한 전쟁은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데 도대체 평화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사상 속에 깃들 평화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목놓아 부릅니다.

 

이 세상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있나

 

어떤 현자(賢者)도 평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어느 나라도 세상 모두가 만족할 평화의 길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평화를 아직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 땅에서는 찾을 수는 없지만 그 누군가가 가지고 있고,

그 어디선가에서 내려오는 참된 평화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

 

그분이 아니고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이 허물어지지 않습니다.

그분의 피가 아니고서는 화목의 삯을 지불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면 참된 평화, 충분합니다.

 

 

 

 


환경을 너머

 

 

 

환경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서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칩니다

 

어려운 환경에 정복당하는 자가 많지만 그런 환경을 수단으로 삼는 지혜로운 사람도 있습니다

 

 

 

소아마비, 나쁜 시력, 촛불도 힘이 없던 천식의 환경을 가진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가진 장애는 장애가 아니다. 장애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기적을 만들 것이다"

 

어려운 장애를 뛰어넘는 꿈을 가졌던 사람은 훗날 대통령이 되었던 루즈벨트였습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도 문명에 대해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문명은 안락한 환경이 아닌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난다"

 

 

 

어제는 바자회도 있었고 장례식도 있었습니다

 

어제는 바자회와 장례식에는 어울리지 않을 같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러나 비가 어려움을 자아낸 것이 아니라 멋진 그림들을 그려주었습니다

 

 

 

우리 교회 50년은 크고 작은 어려운 환경이 몰아쳐온 시간이었습니다

 

 

50년은 우리를 붙잡아 주신 주님의 선한 능력으로 힘든 환경을 이겨낸 역사입니다.

 


기다리는 마음

 

우리 교회가 설레이며 기다렸던 대광동문들의 포스메가 남성 합창단

드디어 오늘 오셨습니다. 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환영합니다.

 

자랑스러운 모교 대광고등학교 교내 독창대회에서 애절히 불렀던 곡이 있었습니다.

비록 입상하지는 못했지만 제가 불렀던 "기다리는 마음" 결코 잊을 없습니다.

 

이번에 여러 방문지 가운데 선교지 사량도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어느 부모님의 애절한 마음을 엿보았습니다.

사량도에 들어가려면 통영에서 배를 타야만 합니다.

추석을 맞아 부모님에게 인사드리려 오려던 자식들이 마지막 배가 끊어질 때까지

통영에 도착하지 못할 같다는 소식에 길거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의 눈물겨운 모습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번 건축 바자회를 오랫동안 준비하며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민족 예배당의 완공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마음으로부터 숭고함의 향기가 짙게 번져 나옵니다.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는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지으신 천국에서 우리를 간절히 기다리십니다.

 

아버지의 "기다리는 마음" 안다면 우리의 발걸음은 결코 방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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