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사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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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김성국 담임목사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마가복음 8:22-38

김성국 담임목사

2014-11-09

 

 

             오늘 눈먼 자 소경이 등장합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보지 못한 자가 아니라 후천적으로 보지 못하는 자입니다. 이 소경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본다"라는 단어가 여러번 등장합니다. 이러한 단어들은 여러 차례 보는 차원에 대한 점진 적인 변화, 일방적으로 보는 것, 눈을 뜨고 보는 것, 자세히 보는 것, 확실히 본질까지 보게 되는 변화를 말해 주고 있으며, 이 변화의 절정으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에 이르게 됩니다. 보는 것이 차원이 다릅니다. 만물을 밝히 보는 것, 그것이 바로 소경의 회복의 절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만물을 밝히 본다라는 보는 것의 크라이막스는 어떤 의미로 본문에 있는지 함께 살펴 보고자 합니다. 

1. 기도의 응답을 확실히 받는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너무 잘 알았습니다. 손만 대면 죽은 자로 살아나며, 말씀으로 회복시키시는 이 분이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안수하시며, 혹은 말씀으로 낫게 하면 되는 것인데, 본문을 살펴 보니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그를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아가서 한차례, 두차례 시간이 걸리면서 만물을 밝히 보게 하는 치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이 소경의 간절한 소망에 대한 더딘 응답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능력이 소진 된 것일까요? 예수님의 마음이 지금은 당장 뜨거워 지지 않아서 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 능력이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 마음이 바뀌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그렇게 더딘 응답으로 힘들어 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인데, 이 더딘 응답에는 무엇인가 교훈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손대주시기를 구할 때에, 손을 대거나 말씀으로 바로 치유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의 손을 붙잡고 마을 밖으로 데려가시고 오래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 하십니다. 안수를 하고 또 안수를 해 주시고 싶어하십니다. 바로 치유하실 수 있지만, 바로 기도의 응답을 해 줄 수 있지만, 좀 더 그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를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한 번 응답받고 쉽게 떠나가는 자리가 아니라 전심으로 찾고 찾아오는 기도의 걸음, 그것이 주님께 기쁨인 것입니다. 과정에 더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지 않습니까?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반복적인 애절한 태도를 원하십니다. 계속 되는 기도속에서 우리가 믿음이 더 자라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끝까지 기도의 자리에 남아계시기를 바랍니다. (눅18:1) 

2.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밝히 본다. 

   28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을 때에 베드로는 정답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베드로의 눈이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는 정확히 보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는 눈이 감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들었을 때에 예수님께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비난조로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시며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베드로의 눈이 온전히 열리지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부활의 능력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베드로는 사단의 도구가 되어서 교만과 탐욕 냉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도자로서 눈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볼 때 당황하였습니다. 떨고, 부인하고, 넘어졌습니다. 눈이 열리지 않으면 누구를 인도하겠습니까? 직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눈이 열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진짜로 체험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언제 눈이 열렸습니까? 그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에 십자가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놀라운 설교와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실한 지도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초점이 자기 였고, 어떤 일을 해서 어떤 열매를 받을 까 사람의 인정을 받을 까 기뻐하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서신서들에 그가 본 예수님에 대한 벅차고 뜨거운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만물만 보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만물을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만물에 좌정하신 주 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때에 만물을 제대로 보는 자가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주님의 영광을, 주 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찌 찬송이 터지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세상을 부러워 할 수 있습니까? 다른 것들은 칭송하면서 왜 주님은 칭송하지 않습니까? 주만 바라보는 자,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는 자, 찬송이 회복되고, 믿음이 회복되는 자 되기를 축원합니다. 

3. 심판의 자리를 밝히 본다. 

   만물을 밝히 보는 것은 본질을 보는 것이고 그것을 끝까지 보는 것입니다. 영원의 문제에 대한 시야가 열려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 8:34-35) 역설적인 말씀입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영혼의 문제에 실패하는 자 얼마나 불쌍합니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세상의 명성을 다 얻고도 자기의 생명은 심판대 앞에서 버림 받는 인생이 됩니다. 그런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윈스턴 처칠은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포기하지 마라"라는 심금을 울리는 말을 하며, 영국 국민들에게 그들의 액체 "땀, 피, 눈물" 이 필요하다고 말하였습니다. 모두 다 그의 말을 들으며 조국을 위해서 희생하였습니다. 그는 위대한 연설가,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기록을 보니, 그의 마지막 말은 "희망이 없다"라고 말하며 마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천하를 호령하는 영향력과 모든 것을 누렸어도 자신의 심판대 앞에서의 마지막을 준비하지 못한 어리석은 삶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A.D 162년에 폴리갑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주님을 섬긴 다는 이유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인품과 연로한 나이를 안타까워하며 신앙을 포기하고 핍박 가운데 생명을 구하라고 했던 로마군인들의 말을 들었을 때에 폴리갑은, "나의 주님은 내 생애 86년동안 한번도 나를  버린 적이 없습니다. 나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습니다. 내가 어찌 이런 나의 주님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주님은 단 한분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의 마지막 순교의 자리는 수많은 자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순교를 보며 돌이켰습니다. 타락하고 부패하는 사람인 황제가 아니라 영원하신 분 주님이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고 심판대 앞에 나아간 폴리갑을 주님은 부끄러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심판대 앞에서 주님께서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판대 앞을, 그 날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날을 바라보십시오. 내세를 바라보십시오 만물의 끝자락을 바라보며 주님 오실 날을 준비 하십시오. 그것이 진짜 만물을 바라보는 지혜로운 자의 시야요, 관점이요, 삶의 방향이 될 줄 믿습니다. 곧 겨울 12월이 올 것입니다. 올해의 마지막도 다가올 것입니다. 개인의 마지막도 다가올 것이요, 역사의 종말도 다가올 것입니다. 그 다음은 심판입니다. 그 날에  예수님께서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시고, 모든 천사들 앞에서 “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충성하던 사람이었다. 힘들고 어려워도 나만 바라보고 사랑하던 자가 여기 왔노라.” 라고 하시며 자랑할만한 인물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물을 밝히 본다는 것은 기도의 응답을 확실히 받으며 끝까지 참는 기도하는 자가 되기를, 혹시 한 문이 닫히면, 다른 좋은 길이 열릴 것을 확신을 가지고 기도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 그 삶인 줄 믿습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십자가 부활의 승리의 예수님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 진정으로 만물을 밝히 보는 것입니다. 만물의 끝, 심판의 자리, 영생의 자리를 밝히 보는 것입니다. 그 출발의 심판 자리를 바라보며 지혜롭게 준비하는 자가 만물을 밝히 보는 치유 받은 자의 삶의 시각인 줄을 믿습니다. 아직까지 영적인 세계를 보지 못한다면 오늘 치유 받으시기를 붙잡으신 예수님의 손길을 느끼며 진정으로 보는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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