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미국 뉴욕 엘리폰드파크(Alley Pond Park)는 필자가 섬기는 퀸즈장로교회에서 20분 남짓이면 갈 수 있다. 265만㎡(80만1800여평)나 되는 넓은 공원이다. 지난 토요일 경배와 찬양팀 모임 초청을 받아 그곳에 갔다.

교회 일을 보고 늦게 출발했는데 모임 장소가 아니 다른 곳으로 갔다. 그 넓은 곳 중에 그들이 모이는 장소가 어딘지 스마트폰으로 받았지만, 그것을 따르지 않고 ‘아마 여기서 모일 것’이라며 내게 익숙한 장소로 갔다.

결국, 한참을 헤매다가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그때 다시 한번 다짐했다. 생각대로 살지 않고 ‘지도’(성경)대로 살겠노라고. 도착 후 예배도 드리고 식사도 하고 기도의 시간을 갖고 그곳을 떠났다. 그들은 계속 남아서 친교 시간을 더 갖겠다고 했다.

그날 경배와찬양팀 리더에게 들었는데 그들은 매주 토요일 모여서 기도와 친교의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연습 시간 못지않게 친교 시간, 기도 시간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분위기였다.

예배에는 찬양대와 관현악, 그리고 경배와찬양팀 역할이 크다.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일이기에 연습이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수차례 연습이면 충분한가. 아니다. 더더욱 필요한 것은 ‘하나 됨’이다. 찬양대나 관현악, 그리고 경배와찬양팀이 예배의 자리에서 아무리 호흡을 맞춰 소리를 내어도 하나 됨이 앞서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예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대학 때 학교연합 합창대의 메시아 전곡 연주회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학우들이 한 학기 동안 최선으로 연습해서 드디어 연주하게 된 것이다. 그때 서울의 모 관현악대와 협연이 있었다.

전곡 연주라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었다. 전반부에는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휴식 후 있었던 후반부에는 실망이 컸다. 휴식 시간에 화장실에서 조금 전 메시아를 연주하던 이들이 상소리를 섞어가며 이야기하고 심지어는 여러 연주자가 담배를 빠끔빠끔 피우는 것을 봤다. 자기들이 조금 전 연주했던 메시아를 진실로 경외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관현악대는 학교 합창단과 연습도 부족했을 터이니 마음이 ‘하나 됨’을 위한 그 어떤 시간도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회 이면의 모습을 몰랐을 때와 달리 그런 실상을 보고 또 생각해 보니 똑같은 그들이 연주하는 2부에는 전혀 감동되지 않았다.

예배에는 여러 사람이 여러 소리로 참여한다. 예배에는 여러 악기가 있고 목소리도 있다. 그들이 하나가 돼 소리를 낼 때 하나님이 그 예배에 임재하신다.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백이십 명이 함께 서 있다가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대하 5:12~13)

모든 예배의 소리는 그 예배의 자리에서 불쑥 내는 것이 아니다. 음악 전공자라도 그럴 수 없다. 예배에서 그 소리를 내기 전에 영적인 지도자요 소리에 익숙한 자로부터 겸손히 ‘소리 냄’을 배워야 한다.(대상 15:22) 그리고 그 ‘소리 냄’은 마음의 ‘하나 됨’과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