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해바라기가

 

해바라기가 말을 걸어옵니다.

가을의 따스한 햇살 아래 활짝 피어난 해바라기가 이렇게 말을 걸어옵니다.

나는 일편단심 해만 따라 다닌다. 넌 누구 따라 다니냐?”

이렇게 대답해봅니다.

해바라기, 넌 해만 따라 다니지? 난 주바라기, 난 주만 따라다녀.”

대답은 했으나 과연 그런지 스스로 멋 적어 얼굴이 붉어집니다.

 

해바라기가 노래도 합니다.

이 가을에 추억의 그룹이었던 해바라기의 노래를 여러 차례 들어보았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그렇습니다. 내게 할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어두운 곳에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해바라기가 많이 아파합니다.

해바라기는 소피아 로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제목입니다.

영화는 사랑과 이별, 만남과 죽음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해바라기 영화가 많이 아픈 건데 괜히 나도 많이 아팠었습니다.

 

해바라기가 춤을 춥니다.

해바라기는 얼 듯 보면 곧게 서 있는 듯 하지만

가만히 보면 바람결 따라 흔들거리며 계속 놀라운 춤을 춥니다.

나도 곧게 서서 계속 춤추는 신비로움을 갖고 싶습니다.

 

 

 


이거 뇌진탕 아닌가?

 

지난 월요일 노회 야외예배가 앨리폰드 공원에서 있었습니다.

예배와 점심 식사 후 목사님들이 두 팀으로 나누어 족구 시합을 펼쳤습니다.

십수 년 전 족구 시합 중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전례(典例)가 있었던 저는 지금까지

족구 경기 금지령(禁止令) 가운데 있는 터라 선수로 뛰지 못하고 심판을 보았습니다.

 

경기 중에 어느 목사님이 공을 받다가 머리가 땅에 닿도록 뒤로 넘어지셨습니다.

매사에 책임감이 강하셨던 목사님의 안경도 벗겨지고 옷에도 흙이 잔뜩 묻는 투혼에

모두 놀랐습니다.

넘어지신 이후 벤치로 물러가 앉으신 목사님이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경기를 마치고야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눈에 이상이 온 것입니다.

잘 안 보이는 것이 뇌진탕 증상 같아 계속 뒷머리를 두들기시며 걱정하셨던 것입니다.

 

얼마 후에 문제의 실마리를 찾으셨습니다.

눈에 초점이 안 맞으신 것은 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넘어지실 때 안경알 한쪽이 빠져나갔는데 그것을 모르셨던 목사님은 한쪽 알 없는

안경을 쓰시고 ~~ 앞이 잘 안 보인다, 이거 뇌진탕 아닌가?” 하며

큰 염려를 하셨던 것입니다. 족구를 마친 목사님들은 안경알을 찾으러 함께 나섰고

풀밭에 잘 숨어 있던 안경알을 곧 찾게 되었습니다.

 

저도 살면서 육적으로 영적으로 곧잘 넘어집니다.

앞으로는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날 때 빠트린 것이 없는지 잘 살펴보려고 합니다.

자칫하면 안경알 없음뇌진탕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이제는

 

지난 목요일 신학교에서 설교 디자인수업이 있었습니다.

그때 모든 학생-그 수업의 학생들은 목사님 아니면 전도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설교자로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말씀해 보세요.”

장점을 말씀하실 때는 겸손함이, 단점을 이야기하실 때는 아쉬움이 묻어났습니다.

 

문제는 모든 분들의 단점이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목회 경력도 인생의 연수(年數)도 만만치 않은 분들의 오래된 단점이니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그래도 고쳐야 할까요?

다시 마음을 먹고 단점을 고치고 고치려 한다면 어느 정도 효과는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받아 들어야 할까요?

단점을 고치려는 노력 대신 그것을 받아들이고 잘 활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목회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여전히 아쉽거나 부족한 모습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실 것인가요?

10월은

그래도를 선택하셔서 아쉬운 점을 단단히 고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이제는을 선택하셔서 부족한 면을 쿨 하게 받아들일 시간이기도 합니다.

 

 

 

 


School Crossing Guard

 

학교에는 누가 누가 있지요?”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든 아이들의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선생님이요.”

식사 만들어 주는 분이요.”

 

어느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들이 zoom으로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그렇게 질문하였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힌트까지 주며 계속 물어보았습니다.
또 있습니다. 학교까지 길을 안전하게 건너게 해주는 분은 누굴까요?“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모두는 손을 든 아이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아이는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Jesus!“

선생님은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School crossing guard!”라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zoom에는 다양한 종교,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당당하게 “Jesus!”라고 대답했던 유치원생 어린이는

바로 우리 교회 교육부에서 자라는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던 제 마음은 감동과 감사로 가득 찼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가장 안전한 school crossing guard는 예수님이십니다.


별이 지다

 

 

또 하나의 별이 졌습니다.

() 조용기 목사님.

다 떨어진 천막에서 다섯 명으로 시작한 목회,

70만 명이 넘는 세계 최대의 교회로 성장시킨 목사님.

숫자보다 더 큰 영향력을 이 땅에 남기시고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한국교회 1세대 목사님들을 비난하긴 쉬어도

그들처럼 살아 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의 기도와 믿음, 희생과 열정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교회 그리고 한국교회가 감당해온 세계선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50년 친구이셨다는 극동방송의 김장환 목사님께서 천국환송예배 설교를 맡으셨습니다.

설교 중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 목사, 매 주일 수십만 명의 성도들이 앞 다투어 성전에 모이는 비결이 무엇이요?”

김 목사님은 하루에 얼마나 기도하시나요?”

하루 다 합하여 한 시간이 안 될 것 같은데....”

나는 하루에 기도 5시간씩 합니다.”

 

 

작년 4월에는 우리 목사님.

9월에는 조용기 목사님.

그 외에 많은 1세대 목사님들이 앞서거니 뒷 서거니 한 분씩

우리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귀한 별들이 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자리를 지켜야 할 2세대 목사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자문(自問)해 봅니다.

부모님들이 그리운 추석을 앞두고 그들에게 부끄럽고 그들에게 감사하여 눈물짓습니다.

 

 

 

 

 

 

 

 

 

 

 

 

 

 

 

 


플레루가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일에 개입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충만케 하셨습니다.

지난 주간에 있었던 일들이었습니다.

 

교회에는 일일 부흥회가 있었고

신학교에는 개강부흥회와 특강이 있었습니다.

사실, 시작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집회마다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시간에는 세 종류의 시간이 있습니다.

크로노스: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입니다. (다윗이 목동으로 지내던 시간)

카이로스: 일상의 시간에 하나님이 개입하신 시간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시간)

플레루: 하나님의 뜻이 충만하게 완성되는 시간 (다윗이 마침내 왕이 된 시간)

 

하나님은 크로노스로 살고 있던 우리에게 카이로스로 찾아오셨습니다.

그 카이로스만도 감사한데 플레루의 충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내 삶에 개입하시고 또 충만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어떤 크로노스를 지난다고 하여도 낙심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카이로스와 플레루가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다프뉴마

 

9월의 첫날은 매우 거칠게 시작되었습니다.

슬쩍 지나가도, 아예 오지 않았어도 뭐랄 사람 아무도 없건만

아이다는 자기가 누군지 잘 보란 듯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다는 산들바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다는 강력한 태풍이었습니다.

집들은 침수되고 나무들은 부러지고 전선들은 끊어지고

차들은 이리저리 널브러졌고 사람들은 많이 죽었습니다.

아이다가 지나간 자리는 비통의 황무(荒蕪) 함이었습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습니다.

성령의 바람을 프뉴마라고 부릅니다.

프뉴마는 태풍이라는 말로도 다 담아내지 못할 더 강력한 바람입니다.

프뉴마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이다와 견줄 수 없는 것들이 남습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날 주소서----”

 

프뉴마는 황무한 곳에 돌이킬 수 없는 회개, 변화, 능력, 부흥의 새날을 일으킵니다.

9월을 어떻게 사시렵니까?

아이다로 더는 울지 말고 프뉴마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의 바람, 프뉴마여 불어오라!”

 

 

 

 

 


라라는 얼마 전 한국에서 왔습니다.

라라는 막내 누님과 함께 왔지요.

웬 호강인지 벌써 맨해튼에도 갔었고,

필라델피아 그리고 텍사스까지도 갔다 왔습니다.

엊그제는 미용실도 다녀와서 한결 빛이 납니다.

그런데 라라가 많이 슬퍼합니다.

 

누님이 어딜 나가면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것 같아요.

불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고 물조차 마시지 않지요.

누님의 외손주가 입학한 필라델피아에 딸 내외와 다녀오려면

한참 시간이 걸리는데 그 긴 시간 꼼짝도 하지 않고

누님만을 기다려요.

 

이런 말을 알아들으면 정말 섭섭해할 것 같아요.

“개만도 못한 인간”

주인이 개를 잊거나 버릴 수는 있어도

개들은 주인을 잊지도 버리지도 않는다고 해요.

 

올해 2살 반이 된 강아지 라라.

사람도 오기 힘든 미국에 와서 많은 구경을 하고 있지만

라라는 주인이 없으면 무엇으로도 기뻐하지 않아요.

문 앞에서 그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슬프게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얼마 전 한 권의 책을 받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아가야, 어서 와 많이 힘들었지?”였습니다.

아가만 힘든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저도 힘들었습니다.

 

낳은 아이들을 어떤 이유로든 키울 수 없을 때 그 아이를 위험한 곳에 버리지 않고

“베이비 박스”라는 곳에 담아 두기만 하면 어떻게든 살리고 키우는 이야기.

한국의 이종락 목사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쉽게 넘길 수 없었습니다.

 

그 내용이 책으로 나오기 전에 미국 젊은이에 의해 영화로 먼저 만들었습니다.

그 영화의 제목이“드롭박스(The Drop Box)”입니다.

드롭박스에 맡긴 아이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봄과 양육을 받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속속 캠퍼스로 떠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가정에서 함께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어디에 있든지 우리가 다 키울 수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우리보다 더 사랑하시고 지키시고 돌보시는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의 손에 그들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내일부터 있을 VBS는 예수님이 만드신 또 하나의 드롭박스입니다.

우리 교역자들과 교사들이 예수님의 따듯한 손이 되고 품이 되어 줄 것입니다.

여름날에 수고하실 그들과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도대체 이 무슨 일인가요?

송구영신(送舊迎新) 예배도 아닌데 한 여름날 밤 11시에 개회 예배를 드리다니.

그야말로 개회 예배는 시작일 뿐 밤새 여러 순서가 이어졌습니다.

카자흐스탄, 캄보디아, 파키스탄, 키르키즈스탄, 그리고 한국과 연결하여

교회 여기저기서 청소년 집회, 장년 부흥회, 의료 사역, 어학 교실, 태권도 교실,

음악 교실, 미디어 교실, 각종 세미나, 간증 등이 2박 3일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지난주 목요일부터 어제까지 있었던 킹덤미션 이야기입니다.

 

지난 금요일 아침 알마티 퀸즈장로교회 성도들을 위한 부흥회 때에

러시아권 찬양팀이 이런 찬양을 불렀습니다.

 

주 여기 운행하시네/ 주 경배해 주 경배해/ 주 여기 역사하시네/

주 경배해 주 경배해/ 새 길을 만드시는 분/ 큰 기적을 행하시는 분

그는 우리 하나님/ 약속을 지키시는 분/ 어둠 속을 밝히시는 빛

 

찬양 가운데 새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상념(想念)에 젖었습니다.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팬데믹으로 2021년 단기선교는 캄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두움 가운데서도“킹덤미션”이라는 새 길을 만드셨습니다.

 

지금 삶이 어둡고 캄캄하시다구요? 길이 전혀 안 보이신다구요?

그러시다면 한숨 쉬실 시간 대신에 이 찬송을 부르고 또 불러보십시오.

 

“ 주 경배해 주 경배해 새 길을 만드시는 분 큰 기적을 행하시는 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기적의 새 길을 잘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하네 못하네”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쿄 올림픽이 오늘 폐막됩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선수들이 지난 보름 동안 열띤 경기(競技)를 벌였고

이제는 여러 성적을 가지고 속속 자기들의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배드민턴에서 중국을 이기고 금메달을 딴 대만 선수들이 비행기로 귀국할 때

대만 정부는 전투기 4대를 띄어 그들을 에스코트하면서 환영했다고 합니다.

 

지난 4일, 김요한 선교사님이 이 땅의 여정을 끝내고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김요한 선교사님이 누구시지?”교우들은 대부분 잘 기억 못 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수년 전 진행했던 선교 훈련“미션 퍼스펙트”때 오셔서 강의하셨던

선교사님으로 수십 년간 중앙아시아 선교에 큰 발자취를 남기시고 떠나셨습니다.

이 땅에서 끝까지 충성한 선교사님이셨으니 하늘에서 열렬히 환영받으셨을 것입니다.

 

도쿄 올림픽은 오늘이 끝날이지만 복음 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복음 올림픽은 계주(繼走)와 같습니다.

전해받은 복음의 횃불을 잘 들고 달리다가

다음 세대에 그 횃불을 확실히 전해주고 주님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세대를 이어서 달리다가 땅끝까지 복음이 증거되면 복음 올림픽도 끝납니다.

 

세상 올림픽은 선별된 대표 선수(選手)만 나갈 수 있고

나가서도 후보(候補)로 머물다가 되돌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복음 올림픽은 우리가 모두 대표 선수요 아무도 후보 선수는 없습니다.

 

이번 주는“킹덤미션”이라는 종목에 나설 것인데 모두 손에 손을 잡고 잘 달리고

또 다가오고 다가오는 복음 올림픽 종목들을 잘 치르면

언젠가 그날을 맞이합니다. 끝날, 상 받을 그날을.

 


두 의대생이 길을 걷다가 몸을 구부리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영락없이 디스크를 앓는 분이네”한 학생이 자신만만하게 진단했습니다.

“무슨 소린가? 딱 보니 류마티스 환자일세.”다른 학생이 확신하며 말합니다.

두 학생이 그 사람을 어떻게 도울까 하고 다가갔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 근처에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를 알려 주세요, 많이 급합니다.”

이 정도의 착각은 가볍게 끝날 수도 있지만 아주 위험한 착각도 있습니다.

 

지난 7월 20일 콜롬비아에서 너무나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곳의 유명한 번지점프 장소에서 번지 줄을 매지 않은 한 젊은 여성이

착각하여 뛰어내렸다가 사망하였다는 것입니다.

 

확인해 보세요.

생명 줄에 단단히 묶여 있는가.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구원은 떼어 놓은 당상(堂上)으로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유대인이요, 아브람의 후손이요, 할례를 받았고, 율법에 정통하고, 안식일을

지키고....”자기들에게는 구원의 근거가 많고 확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8월은 선교부의 킹덤미션과 교육부의 VBS가 진행되는 달입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합니다.

선교지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의 생명 줄에 묶여 있는 것이 확실한지.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합니다.

교육부의 한 어린이 한 어린이가 예수님의 생명 줄에 묶여 있는 것이 분명한지.

 

돈 줄, 사람 줄, 재능 줄, 성적 줄 등등 아무리 줄이 많아도

예수님의 생명 줄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그는 머리가 남달리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S대(大)를 입학하였고 졸업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겠습니까?

앞길이 창창하게 열리려는 그때 그는 뜻밖의 일을 만났습니다.

‘근육 무력증’에 걸려 8년간 침상에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한창 일할 나이인 20대에 건강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훗날 헤아려보니 하나님은 건강 대신 놀라운 것을 주셨습니다.

8년간 하나님만 깊이 묵상하다가 건강 회복과 함께 작은 옷 가게를 차렸고

점점 성장한 사업은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는 큰 기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한 가지를 안 주실 때가 있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에 한 흑인 병사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출세를 위해 힘을 구했으나,

당신은 순종을 배우도록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큰일을 하고자 건강을 원했으나,

당신은 그보다 선한 일을 하도록 병고를 주셨습니다.

저는 행복을 위해 부귀를 청했으나,

당신은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가난을 주셨습니다....

 

주님, 비록 제가 당신께 기도한 것을 받지 못했으나,

당신이 저에게 바라시는 모든 것을 주셨으니,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원하는 그것을 지금 왜 안 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 하나를 안 주실 때는 더 좋은 것을 주시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전교인 수련회에 강사로 오셨던 조은아 교수님이 며칠 전 영상을 보내 주셨습니다.

교수님의 부친이신 故 조영택 목사님 임종 예배 영상이었습니다.

사모님과 자녀들, 그리고 손자 손녀들이 함께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그 가운데 목사님께서 자녀들에게 남기시는 유언(遺言)의 말씀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으시고 나를 만드시고 나를 지켜 주십니다.

 세상 가운데서 끝날까지 지켜 주실 것을 꼭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가 대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대장입니다. 대장 노릇 하지 맙시다....”

 

대장이 누구냐에 따라 그 군대는 전혀 다른 운명을 맞이합니다. 

임진왜란 때에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6.25 전쟁 때 맥아더 장군이 없었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망하지 않으려면 어느 모임에서 이건 내가 대장 노릇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싸움에서 이기길 원한다면 하나님을 대장으로 모시면 됩니다.

노(老) 목사님이 일생을 사역하시면서 체득하신 가장 소중한 승리의 비결은

“대장 노릇 하지 맙시다”이셨습니다. 


새벽예배 드리려 교회에 나오다가 보면 여러 풍경을 스치게 됩니다.
먼저 보는 것은 이른 새벽부터 레이스 하듯 서로 바삐 달리는 자동차들입니다.

Highway를 빠져나오면은 철 따라 다른 옷을 입는 나무들도 보입니다.

“잘 잤냐?”라고 말을 걸 때 방긋 한 번 웃고는 나름 아침맞이에 여념(餘念)이 없습니다.

한때 분주하던 삶을 살다 지금은 고요히 누워있는 누군가의 묘지(墓地)들도 지납니다.

 

새벽, 아직 쓰임 받지 않은 길거리 공사 자재들이 지나가는 나를 부럽게 쳐다봅니다.

그러다가 새벽 풍경 가운데 숨 가쁘게 달리는 사람들도 봅니다.

어느 곳을 향해 달리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바람이 불어도 비가 내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리고 또 달립니다.

새벽 풍경 중 빼놓을 수 없는 감동은 바로 그“달리기”입니다.

 

수련회 때 많은 수고를 한 분이 지난 주간에도 여러 일로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분의 계속 수고하심을 언급하였을 때 그분이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천국 갈 때까지 계속 달려야죠.”

아름다운 답변이었습니다.

 

새벽에 감동적인 달리는 풍경이 있듯이

천국 가는 길에 누가 봐도 아름답고 감동적인 풍경을 만들면 어떨까요.

어떤 비바람이 불어도 천국 갈 때까지 우리 모두 함께 달리고 또 달리고,

누구라도 넘어지면 같이 일으켜 다시 달리는 장엄한 풍경 말이죠.

 


어렸을 적 가장 신기했던 물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우개였습니다.
잘못 쓴 글이나 감추고 싶은 내용을 지우개로 지우면 사라집니다.

우리 삶에는 지우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지우고 싶은 삶을 지울 지우개가 있을까요?

 

자기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고 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발로 그림자를 밟았습니다. 그림자도 같이 발로 밟았습니다.

그림자로부터 빨리 도망쳤습니다. 그림자도 같이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림자가 사라졌습니다.

큰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갔더니 그림자는 오간 데가 없어졌습니다.

 

십자가 그늘 아래로 가면 내 삶의 어두운 것들이 다 지워집니다.

이렇게 노래하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셨답니다.

 

십자가 십자가

그 그늘 아래 내 소망이 있네 십자가 십자가
그 그늘 아래 내 생명이 있네 .....
십자가로 만족케 하소서

 

그렇습니다. 십자가 그늘만이 내 삶의 더러움을 씻는 소망입니다.

십자가 그늘만이 새로운 삶을 여는 생명입니다.

 

아~~ 은혜의 놀라운 지우개, 십자가 그늘


오늘이 벌써 6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번 주는 올해의 반환점을 도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올해의 상반기를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보람도 있으시고 아쉬움도 있으실 것입니다.
상반기를 잘 보냈다고 방심해도 안 되고 아쉽다고 낙심할 일도 아닙니다.

 

2021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6개월이나 남아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에 충분하고 넉넉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지금 꼭, 정말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잠시 멈춤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계속 달리라고 부추깁니다.

그래야 성공한다고 몰아댑니다.
성공은 쉼 없이 달린다고 얻는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인의 목표도 아닙니다.
모든 운동 경기가 전반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결국 경기는 후반전을 마쳐야 마지막 승부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의 하프타임은 너무 중요한 시간입니다.
잠시 멈추어 쉬면서 전반전을 돌아보며 새로운 전략을 세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잠시 멈춤의 하프타임이 지나고 일어나는 반전의 후반전을 수없이 보았잖아요.

그러니 우리 모두 냅다 달리지도 말고, 아예 포기하지도 말고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고 하반기를 같이 힘차게 달려요. 함께 놀라움을 누려요.

그러자면 전교인 여름 수련회는 잠시 멈춤의 너무 멋진 시간이 아닐까요?


아버님은 요리사이셨습니다.
물론 전문 요리사도 아니시고 식당을 운영하신 적도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어렸을 적 저의 특급 요리사와 같으셨습니다.

여러 요리를 잘 만들어 주셨는데
제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밀 낭화(
浪花)입니다.

 

밀 낭화가 무엇인지 생소하다는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모두가 잘 아는 음식이고 자주 드시는 음식입니다.
밀 낭화는 밀가루 반죽을 해서 다듬잇방망이 같은 것으로 넓게 편 다음
다시 그 편 것을 몇 겹으로 접어서 칼로 굵게 썰어 끓는 장국에 넣어 만듭니다.

입에서는 후루룩 거리며 뜨거운데
속에 들어가서는 시원한 칼국수가 바로 밀 낭화입니다.

 

아버님이 만드시고 아버님과 함께 먹던 밀 낭화.

적잖은 시간을 들여서 정성스레 만드시던 과정을 보았기에
천천히 아껴 먹어야 했는데 저의 밀 낭화 그릇은 금방 바닥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빈 그릇에 놀랍게도 가득 남아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늘 맛난 것을 먹이시려는 아버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오늘은 아버지 날.

밀 낭화를 맛있게 먹는 어린 아들을 기쁘게 바라보시던

아버님이 그리워 하늘을 바라봅니다.


단기선교 준비가 한창입니다.
끝나지 않은 팬데믹으로 올해도 역시 직접 현장을 갈 수는 없습니다.
작년에도 창의적으로 단기선교를 했었는데
올해는 또 다른 방법으로 현장 선교에 버금가는 단기선교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한 해도 멈춤이 없었던 단기선교 대원들의 선교 이야기는
매년 준비부터 그 열매까지 뭉클하게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단기선교팀의 강력한 배후(背後)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선교바자회입니다.
모든 선교회 회원들과 교육부 그리고 모든 다민족 회중들이 함께하는 선교바자회.

부교역자 시절부터 보아왔던 선교바자회.
저는 보았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예수의 흔적이 있음을.
그들의 몸에, 시간에, 물질에, 직장에, 사업에, 그리고 가족에게 흔적이 있습니다.

여러 형태의 아름다운 예수의 흔적이 곳곳에 짙게 배어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뒤돌아서지 않겠네”

 

이 세상 사람 아무도 몰라주는 예수의 흔적을 가진 사람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예수님이 퉁퉁 부은 손을 어루만져 주실 것입니다.

결리고 아픈 어깨를 토닥여 주실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었니? 얼마나 아팠니? 내가 다 지켜보았단다.

잘했다, 수고했다. 여기 너의 면류관이 있단다.”


“원래는 그 자리에 나오려고 준비했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있었던 러시아권 예배 설립 5주년 감사예배 때
러시아권 형제 5명과 자매 5명이 바디워십을 하기로 준비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자 형제 한 명이 빠진 채 9명 만의 바디워십이 있었습니다.
그 빠진 이유를 후에 송요한 목사님을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함께 바디워십을 준비했던 24세의 형제가

지난 주일 하루 전에 직장에서 사고를 당했습니다.

기계에 오른손이 절단된 것입니다.
다시 봉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이싸”라는 청년은 이란 출신인데 그의 가정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았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하려고

미국으로 이민 오게 되었고 가족 모두가 우리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해했던 것과는 달리 그 가정은 신앙심이 깊은 가정이었습니다.

그 청년의 아버지가 장남의 사고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고난과 신앙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사고를 당한 형제가 병원에서 김치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심방 대원들이 가져다준 갈비탕을 김치와 더불어 맛있게 먹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원망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겨나가려는 아름다운 형제.

 

극심한 어려움 속에서 먼저 한국 음식을 찾은 것은

어떤 비바람이 불어도 다민족 예배의 비전은 놓을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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