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거기 빛이 있었고

 

반 고흐는 슬픔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어둠이 짙게 드리워 있었습니다.

그는 빛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그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는 자그마치 별이 11개나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움에 지친 사람은 적어도 미소 짓는 두 개의 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작은 별을 이렇게 부릅니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 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별들의 미소 잊을 수가 없어요

 

동방박사들에게는 하나의 별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동방에서 박사들 귀한 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 따라왔도다

 

빛이 있어야 합니다.

빛이 없다면 길도 잃고 꿈도 잃습니다.

빛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빛 속에 소망이 있습니다.

거기 빛이 있었고라는 주제의 성탄 축하 찬양제가 너무 기다려집니다.

나에게도 그 빛이 꼭 있어야 하겠기에 말입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반갑습니다. 행복에의 초대, 잘 오셨습니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가을을 지내고 계시는지요.

저는 며칠 전 집 앞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 모았습니다. 아직 버리진 않았습니다.

지난봄 푸릇푸릇했던 나뭇잎이, 여름날 우거진 녹음(綠陰)으로,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으로도 변화되다가, 이제는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있기에

그들이 나를 뒤로하고 어디론가 굴러가기 전에 붙잡아 끌어모은 것입니다.

 

바람결에 떨어졌던 낙엽을 모아보니

많은 이야기를 담은 세월의 보따리였습니다.

지나간 시간,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니 후회할 수 없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시간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다가올 시간입니다.

남은 시간을 이전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무엇이 행복할까? 그것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입니다.

낙엽을 쓸 때 스각스각 들리던 소리가

겨울이 다가왔다는 하늘의 음성으로 가까이 들렸습니다.

낙엽으로 벗겨져 가는 나무가 다가올 겨울을 두려워하는 내색도 없이

새로운 봄의 옷을 입혀줄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린다고 가까이서 속삭였습니다.

 

오늘, 행복에의 초대에 오신 모든 분을 격렬하게 환영합니다.

행복에의 초대는 오늘을 넘어 다가올 겨울도 지나, 저 하늘에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사람은 지상에서 최대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알로하

 

오래전 하와이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꽃목걸이와 ‘알로하’라는 인사를 받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특별한 인사에 큰 환대를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멋진 하와이 정경보다 더 아름다운 환대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습니다.

 

오늘부터 이번 주 내내 우리 교회에 귀한 손님들이 오십니다.

오늘은 한국에서 이재서 목사님과 사모님, 뉴저지에서 강원호 목사님이 오시고

LA에서 조용중 선교사님과 사모님이 오십니다. 내일부터 삼일 동안 KWMC 의장단이,

토요일에는 워싱톤 헬로우십 교회 임직자 20명이 방문할 예정입니다.

 

우리 교우들은 누구든 따듯하고 섬세하고 풍성하게 환대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 오시든지 교우들의 극진한 환대 속에

위로와 힘을 얻고 가시는 모습을 종종 뵙습니다.

 

성경과 청교도 그리고 우리 교회 선진들의 자랑스러운 유산인 추수감사절을 지나자마자

여러 손님 맞을 채비로 분주한 교우들에게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도 있었느니라”

 

하와이에서는 ‘알로하!’한 가지로 인사하지만, 우리는 네 언어로 환영할 수 있답니다.

웰컴! 환잉! 다브로 뽀잘로밧! 그리고 환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하나님이십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실수에도 불구하고

날 덮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약함에도 불구하고

날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청교도의 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이었습니다.

그들이 타고 온 배의 돗대가 부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파손되지 않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폭풍이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가고자 하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들이 항해하는 가운데 두 명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이 태어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처럼 복되고 아름다운 추수감사주일,

하나님과 청교도들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묵상하며 감사 눈물 흘립니다.


기억과 감사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주일 ‘행복에의 초대’에 나오신 성도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기억감사라는 단어가 함께 어울려져

제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2022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행복에의 초대를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처음 나오신 분들, 그 소중한 결단과 걸음들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에 나오신 분들, 다시 만난 기쁨의 시간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교우들, 아름다운 수고와 기도를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강아지와 고양이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있답니다.

강아지는 주인이 백 개중에 하나만 잘해도 그것을 고맙게 기억한다고 합니다.

고양이는 주인이 백 개중에 하나만 못해도 그것을 고깝게 기억한다고 합니다.

‘개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말을 알아듣는다면 개들이 크게 섭섭해할 것입니다.

 

기억은 감사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은혜받은 기억이 전혀 없다면 감사할 일도 없겠지만

 

넘치는 은혜를 받은 기억이 있다면, 넘치는 감사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꼬끼오

 

닭이 운다 꼬끼오

집집마다 꼬끼오

맛을 낼 땐 닭표 간장

꼭 낀다고 꼬끼오

 

아직도 멜로디가 또렷이 기억나는 오래된 닭표 간장 광고 노래입니다.

광고 가운데 닭 소리를 꼬끼오로 표현했습니다.

닭 울음소리는 성경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베드로야----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그 닭 울음소리를 들리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문자는 세계에 없을 것입니다.

자음 14, 모음 10개로 온갖 글을 만들고 세상 모든 소리를 발음할 수 있다니요.

오늘은 한글날입니다. 많은 수난을 겪으면서 지켜온 한글입니다.

온 세상 젊은이들이 한국어로 떼창부르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어 공부 열풍도 세계 곳곳에 이미 붙었습니다.

 

멀잖아 세계 어디서든지 한국말로 설교해도 많이 알아들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외국인들에게 이렇게 설교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꼬끼오 닭 소리를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성령 충만 받을 때 쉬이익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소리 나는 대로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이 자랑스럽습니다.

 

 

 


흩어진 사람들

 

흩어진다는 말은 왠지 슬픕니다.

흩어진다는 것은 서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을 자아냅니다.

흩어짐에는 슬픔도 두려움도 있지만, 묵직한 책임에서 벗어나는 편함도 있습니다.

어제 아침 우리는 흩어졌습니다.

 

슬픔이 아닌 즐거움으로, 책임을 벗는 가벼움이 아닌 사명의 묵직함으로 흩어졌습니다.

초대 교회 때 예루살렘에 함께 모였던 사람들처럼 흩어졌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8:4)

우리도 어제 선교회별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흩어졌습니다. 장엄한 모습이었습니다.

교회는 모여서도 교회, 흩어져서도 교회이어야 합니다.

 

내일은 종교개혁 505주년 기념일입니다.

개혁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교회다워야 합니다.

교회다움의 영광은 모여서 예배, 흩어져서 선교할 때 가장 선명히 드러납니다.

 

다음 주일에 있을 행복의 초대는

무엇보다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축복의 날이어야 합니다.

남은 엿새, 흩어진 교회로 전도하다가

다음 주일, 모이는 교회로 예배합시다.

 

 


100% () 200%

 

100% 비바람이 일주일 내내 예고된 어제 토요일 건축 바자회.

그 전날 금요일 밤, 잠을 잘 잤습니다.

잠결에 비바람의 토요일을 기다렸습니다.

꿈결에 교우들이여 어서 오시라고 노래 불렀습니다.

 

끙끙거리며 잠을 못 이뤘을 그 날밤에

놀랍게도 노래 부르며 잠을 잘 잔 이유가 있습니다.

비바람을 막을 준비를 했기 때문입니다.

얼마큼 준비한 줄 아십니까?

 

200%.

비바람이 들이치지 못하도록 주차장 전체를 두꺼운 천으로 감싼 것이 100%.

멋지고 아름다운 작은 불로 수놓은 것이 100%.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환상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100%의 비바람을 200%로 준비했더니

자면서도 웃을 수 있었던 그 여유.

그리고 그 승리의 실체를 어제 생생히 보았습니다.

100% () 200%, 누가 이기겠습니까?

 

 

 

 

 

 


말 한마디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이 한마디는

자기를 버리고 타인이 되길 원하던 사람들에게

넓고 깊은 울림을 주어왔습니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는 다 바꾸라

그 한마디가 삼성이란 그룹을 철저히 바꾸었고

그 영향으로 오늘의 세계도 많이 바꾸었습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한마디 말이었습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이 한마디는 홀로 자기를 키워주신 어머니에게

오래전 홍수환 선수가 복싱 세계 챔피언전에서 승리하고 외친 말입니다.

힘들게 자식을 키웠던 모든 어머니에게 큰 위로를,

목표를 잃고 살던 젊은이들에게 큰 도전을 준 한마디였습니다.

 

가서 전하라

예수님의 한마디 말씀은

현실에 안주하던 자들을 무수히 일으켜 사명의 길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 한마디에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지금은 불평하거나 영양가(營養價) 없는 말로 인생을 아깝게 보낼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세상을 변화시킬 나의 말 한마디를 찾아 외칠 때입니다.

 


~~ 라파예트 애브뉴 장로교회

 

 

지난 수요일 브루클린의 아주 특별한 곳을 다녀왔습니다.

라파예트 애브뉴 장로교회를 여러 교역자, 장로님들과 함께 방문했던 것입니다.

그곳을 감사함과 설렘을 가지고 찾아갔습니다.

한국 선교 역사의 첫발을 내디뎠던 언더우드 선교사님을 파송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다소 낡긴 했지만 150년 전에 지은 훌륭한 건물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1884년에 한국 장로교 선교회가 조직되어 언더우드 선교사님을 파송하였고

선교사님은 188545일 부활절 아침에 제물포에 도착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역사 가운데 지금도 270여 명의 성도들이 있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감격의 시간도 잠깐, 짙은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교회가 ‘Social Gospel(사회복음)’을 표방하며 인권(人權)이 기준이 되었고 심지어

그 교회의 임시 담임 목사가 동성애자와 결혼 생활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장로교회의 Mother Church 같은 교회가 140년 후에

지도자들이 앞서 보여주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100년 후, 아니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 교회의 현재와 미래가

세속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곳 방문에서 돌아와 줄곧 생각해 보았습니다. 답은 분명했습니다.

교회가 시대의 실용주의를 따르지 말고 역사의 개혁주의를 굳게 지키는 일에

조금도 방심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 교회 현재와 미래의

교역자들과 장로님들이 개혁주의 사상으로 투철해야 함을 절절히 느꼈습니다.

 

 

 

 

성경 통독을 마치며

 

지난 21.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마태복음 11절이 zoom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사람의 자손으로 오셨다는 놀라운 이야기.

QBC 성경 통독의 첫날이었습니다.

 

그제 123.

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 말라기서에서 하나님은 반복해 말씀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애절하신지 가늠하기조차 힘들었습니다.

QBC 성경 통독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2021년 한 해를 돌아보니

목까지 차오른 고통의 신음이 쏟아지곤 했던 날도 여러 번 있었지만 다 지나갔습니다.

지나가지 않고 우리 마음에 뿌려져 아름답게 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침에도 밤에도 멈춤 없이 부어진 성경 통독의 말씀입니다.

 

말씀 속에는 없습니다.

목마름이 없습니다. 굶주림이 없습니다. 방황함이 없습니다.

말씀 안에는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성경 통독은 우리에게 말씀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다시 잘 알려주었습니다.

 

 

 


First in, Last out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고 나중도 있습니다.

올해도 처음이 있었고 이제는 나중이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처음이셨고, 지금 어떤 나중이십니까?

전쟁터, 화재진압 자리, 그리고 모든 헌신의 자리에서

진정한 리더라면 이렇게 말하고 이대로 행동합니다.

 

“First in, Last out.”

맨 먼저 뛰어들고, 맨 마지막에 나온다.”

 

교회뿐 아니라 승리하는 공동체에는 이런 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힘든 자리에 맨 먼저 뛰어들고 맨 마지막까지 버티는

자들이 있는 공동체는 누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올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그동안 너무 잘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맨 먼저 헌신하시고 맨 마지막까지 충성하시는 그대 때문에,

오늘의 우리 교회는 여기에 이 모습으로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가오는 새해에도.

“First in, Last out.” OK?

 

 

 


당신의 크리스마스

 

지난 월요일 저녁,

타주(他州)에서 오신 목사님 부부와 맨해튼에 갔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화려한 장식과 크고 작은 선물 그리고 구세군의 종소리가 길거리에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어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답니다.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지요?”

반짝이는 츄리요!” “즐거운 휴일이요!” “멋진 선물이요!” “신나는 캐롤이요!”

쇼핑이요!” “파티요!” “산타클로스요!”....

그러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일이라고 말하는 학생은.

 

당신의 크리스마스는 어떤 날입니까.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 예수님이 들어오시기에 힘든 날?

내 밖에 스케줄이 너무 바빠 예수님께 예배드리기엔 불가능한 날?

 

설마 당신의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날이 되어버린 것은 아니겠지요.

 

 

 


그분

 

거리마다 캐럴이 울려 퍼지는

성탄의 계절입니다.

이 성탄절에 무엇이 가장 크게 떠오르십니까?

그분이 가장 크게 떠오르지 않으신다면 그분은 마음 아프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작은 아기로 우리를 찾아오셨고

누울 자리 없어 말구유에서 나셨고

평생 우리 때문에 온갖 욕을 다 먹으시고

마침내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찬 바람이 이는

성탄의 계절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그분을 깊이 묵상할 시간입니다.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찾아오셨나?

왜 날 위해 죽으셨나?”

 

하늘의 별들은 반짝이고

성탄의 계절은 깊어만 갑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군요.

멀리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찾아오시어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부어주신 그분에게

우리는 무엇을 드려야 할까요.

 

 

 


만약다음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결코 쉽지 않았던 2021년을 어떻게 사셨나요?

누구에게나 올 한 해 여러 아쉬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아쉬움에 대한 태도는 전혀 다르게 나뉩니다.

 

만약 내가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열심히 운동했더라면.”

만약 내가 그 사람과 그렇게 얽히지 않았다면.”

아쉬움을 만약으로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음 결정은 잘해야지.

다음 해에는 운동을 열심히 해야지.”

다음 만남은 잘 풀어가야지

아쉬움을 다음으로 열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약은 아쉬움을 과거의 후회로 만들고

다음은 같은 아쉬움을 미래의 희망으로 만듭니다.

2021, 뭔가 아쉬울 때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어요?

만약이신가요, “다음이신가요?

 

 


내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예쁘던 단풍이 낙엽이 되니 조금 귀찮습니다.

소음 같은 소리가 너무 많아 이런저런 소리 없는 곳에서 살고 싶기도 합니다.

이제 거의 끝나갑니다만 올해의 성경 통독은 부담이 되곤 했습니다.

목사님 설교가 살짝 길어지는 것 같아 살짝 짜증도 납니다.

 

내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낙엽 떨어지는 것을 보았으면

내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음악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내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성경을 눈으로 읽을 수 있다면

내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필립스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좋겠습니다.

 

21보거나 듣거나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의 소원이었습니다.

그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듣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번씩 말하고 듣고 보고 있음에도

당연하듯, 귀찮은 듯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무지개를 볼 수 있고 석양의 노을도 볼 수 있음을.

내 사랑하는 가족과 교우를 바라보고 이야기할 수 있음을.

찬양대의 찬양 소리와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음을.

그리고 늘 은혜로운 것은 아니겠지만(^^) 매 주일 목사님 설교를 들을 수 있음을.

 

 


그는 다시 오지 않아요

 

그는 다시 오지 않아요.”

몇 년 전 천국으로 떠난 남편 이야기를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남편은 다시 오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제는 그곳에 가야만 만날 수 있습니다.

 

아내가 깊은 밤중에 화장실에서 저를 불렀답니다.

너무 아파 저를 부르고 불렀건만 저는 듣지도 못하고 쿨쿨 잠만 잤습니다.

나중에 깨었을 때는 이미 힘든 상황이 지나갔습니다.

아내가 가장 고독했을 때 가장 가까이 있던 남편은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얼굴에 붉고 큰 점이 있는 그분은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누가 자기를 희아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어디 계신지도 모릅니다.

 

허무한 시절 지날 때 깊은 한숨 내쉴 때

그런 풍경 보시며 탄식하는 분 있네

고아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으리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하리라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감사절입니다. 올해 무엇이 감사하신지요?

저는 약하고 무능한 저 같은 사람과 영원히 함께 계시기 위해

약속대로 찾아오신 성령님이 너무 놀랍고 감사하답니다.

 

 


자기 색깔

 

눈치도 없어요.

여전히 힘들고 갑갑한 팬데믹 때인데 말입니다.

이럴 때는 슬쩍 묻혀 지나가는 것도 예의겠건만

어쩌자고 저리 울긋불긋 자기 색깔을 자랑하고 있는지요.

 

깊은 가을 속에 한껏 짙어진 단풍 이야기입니다.

그 전체 어울림이 질투가 날 정도로 아름답긴 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고맙습니다.

회색처럼 뿌연 세상에 자기 색깔을 확연히 드러내어 주어서요.

 

언젠간 색 바랜 낙엽이란 이름으로 떨어지겠지만

단풍은 지금 한껏 자기 색깔로 세상을 물들여놓았습니다.

누구나 인생의 황혼이 있고 저에게도 그런 날이 있겠지만

사는 날 동안만큼은 단풍처럼 나만의 색깔로 살고 싶습니다.

 

그대의 색깔은 무엇입니까?

마이웨이(My Way)를 부른 프랭크 시나트라는 오렌지색이 가장 행복한 색이래요.

오렌지색. 단풍색 중에 있는 아름다운 색이네요.

사실 제가 좋아하는 색깔은 단풍 속에서 찾을 수 없어요.

저 위에서 가끔 펼쳐져 있는 색, 결코 계절을 타지 않는 색.

저는 푸른 하늘을 지나 짙푸른 하늘이 보여주는 청옥색과 어울리고 싶어요.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그대가 좋아하는 색깔을 말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오늘이 벌써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10, 어떻게 지내셨나요.

서른 한번의 시월 중에 어느 날이 가장 멋지셨나요?

각자 다른 이유로 다른 날들을 멋진 날이었다고 하실거여요.

 

저는 10월의 모든 날들이 눈부셨어요.

그래도 어느 날을 꼽자면 날의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교회로 돌아오던 지난 금요일이 멋졌네요.

내가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오던

새벽부터 설레며 빨리 비행기 생각으로 가득 찼었지요.

 

김동규 씨가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좋은 것은 없을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루터에게는 오늘이 10월의 멋진 날이었겠습니다.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어 올린

날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 모두 10월의 어느 멋진 날을 마음의 앨범에 넣으며

11월의 가을로 함께 걸어가요.

 


은퇴하신 은사님이 가르쳐 주신 것

 

그날, 비스듬히 앉아 계셨습니다.

계속 통증이 심하다고 가슴을 만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평소 천천히 식사하셨는데 그날은 더 천천히 또 다 드시지도 못하셨습니다.

식사 후 함께 찍은 사진을 집에 와서 보니 울컥했습니다.

세 곳의 대학에서 총장을 역임하시던 당당한 모습은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폐암 4기의 시간을 보내시는 은사님을 지난 월요일 찾아뵈었습니다.

은사님에게 건강함과 당당함은 보이지 않았지만 평안함은 차고 넘치셨습니다.

 

나를 고쳐주옵소서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답니다.

너무 아프셔서 죽는 게 낫겠다 싶으셨다니 얼마나 간절한 기도셨겠습니까.

고쳐달라는 기도에 응답이 없자 성경의 기도를 다시 묵상하셨고

마침내 예수님의 기도를 깊이 만나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간단하지만 분명한 예수님의 기도. 은사님도 그렇게 기도를 바꾸셨답니다.

그랬더니 몸의 아픔을 뛰어넘는 마음의 평안함이 찾아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십 년 가까이 제게 성경을 가르쳐 주신 은사님이

은퇴하신 후에 온몸으로 체험한 성경적인 기도를 또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은사님이 치료차 한국에 곧 나가십니다.

잘 회복되어 돌아오시어 그 옛날 강의실에서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또 가르쳐 주시길 기다리고 기다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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