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잃어버린 주인공을 찾아서

 

심리학 교수 한 분이 4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상테스트를 하였습니다.

성탄절이라는 단어를 주고 생각나는 것을 하나씩 적으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의 대답에는 추리, 선물, 휴일, 캐럴, 산타클로스등이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40개의 대답 가운데 예수님이란 단어는 없었답니다.

아무도 성탄절의 진정한 주인공을 몰랐던 것입니다.

 

주인공을 잃어버린 잔치이야기, 그 학생들만이 아닙니다.

지금도 성탄절의 거리를 걸어보십시오.

형형색색(形形色色)의 치장이 성탄절을 앞두고 거리를 메우고 있지만

정작 성탄의 주인공은 외롭고 쓸쓸한 거리.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다

그럴듯한 말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는 내가 의도하여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음받은 존재이고, 지으신 이의 의도가 있는 존재입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내 인생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연말연시, 가짜 주인공들로 들뜨기 쉬운 성탄절.

이 세상이 잃어버린 주인공을 찾아뵙는 성탄절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는 25, 교회에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성탄의 진짜 주인공을 만나보아요.

 

 

 

 

 


마지막 한 달은

 

202412월이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큰일을 하는 교회라는 표어로 출발한 한 해였습니다.

벌써 마지막 달이 되었습니다.

 

정녕 믿음으로 살아온 한해였던가.

어떤 도전을 하였으며, 어떤 성취를 이루었는가.

아쉬움이 큽니다.

 

마지막 한 달이 남았습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년을 기약하며 주저앉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2024년도의 센 물살이 여전히 우리 앞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물살에 떠내려갈 것 같은 두려움도 있지만

믿음으로 발을 내딛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한다면

마지막 한 달은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데 충분한 시간입니다.

 

 

 

 

 


왕이 나셨도다

 

세상에는 가짜 왕이 너무 많습니다.

왕이 되려는 싸움이 치열합니다.

“내 것은 내 것이다, 네 것도 내 것이야.”

우리도 이런 싸움판에 한명일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아무런 생각없이 말합니다.

“내 방, 내 컴퓨터, 내 옷....”

착각입니다. 부모님이 그 값을 지불했지 자녀들이 지불한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쓰고 있을지언정 자기들의 소유는 아닙니다.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위탁받은 것을 사용할 뿐입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요 통치하는 왕이 단 한 분 있습니다.

그 이름 예수.

 

예수님이 나셨습니다.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더 이상 내가 왕노릇하면 안 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진정한 주인이신 예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왕이 나셨습니다. 놀라운 이름을 가지신 예수님을 송축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11

 

어느덧 11월이 되었습니다.

나뭇잎도 떨어지고 들판의 곡식도 추수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11이라는 숫자를 가만히 보면 결코 외로운 시간이 아닙니다.

112달 중에 이렇게 멋진 숫자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이리로도 저리로도 기울어지지 않은 동일한 숫자 11,

동행의 시간, 11.

 

외로우십니까?

힘드십니까?

내 옆에 계신 분을 다시 바라보십시오.

좋은 친구이신 예수님을 묵상하십시오.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워라

----

내 맘이 아플적에 큰 위로 되시며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11, 많은 것들이 보이고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가는 시간일터인데

친구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또 묵상하며 걷는다면

잊지 못할 2024년도의 멋진 11월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축복

 

미국은 청교도들의 세운 나라입니다.

1620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으로부터 항해 끝에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

항해 길에 위험과 도착한 땅의 어려움 가운데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감사였습니다.

 

그들에겐 황량한 환경이 크게 보이지 않았고 하나님이 크게 보였던 것입니다.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신앙이 청교도들의 신앙이었습니다.

삶은 더할 나위 없이 풍요해진 강대국 미국이지만 감사는 초라해지는 것은 아닌지요.

청교도 나라 미국이 가장 먼저 회복해야 것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입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

 

진정한 축복은 감사드리는 자들의 것입니다.

 

우리 모두, 받은 은혜 잊지 말고 감사하며 진정한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성찬과 세례

 

오늘은 성례주일입니다.

성찬과 세례,

당연한 것인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이 있었기에 성찬과 세례가 있는 것입니다.

 

성찬과 세례의 집례,

당연한 것인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집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찬과 세례를 당연히 여겼던 죄악을 회개하며

눈물과 감사로 예수님이 베푸신 생명의 식탁에 나아갑니다.

 

하늘의 양식을 먹은 답게 세상을 넉넉히 이기겠습니다.


입맛은 그대로

 

어느 마을에 가난한 감사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습니다.

고기가 드시고 싶어 정말 오랜만에 마음을 가지고 소고기 반근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고기를 들고 가시다가 길바닥에 떨어뜨리셨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개가 귀한 고기를 물어가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광경을 안타까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역정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있으셨습니다.

사람들이 할아버지에게 무엇이 감사하시냐고 물었습니다.

"감사하지요. 비록 고기는 없어졌으나, 입맛은 그대로 있으니까요. 하하하"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시는 할아버지의 감사를 꺾을 것은 없었습니다.

 

감사의 달입니다.

올해 살아오면서 잃은 것도 적잖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둘러보십시오. 얻은 것과 남아 있는 것에 풍성함이 보일 것입니다.

입맛은 그대로 있어 감사하신 할아버지처럼, 영적인 입맛이 남아 있다면 감사해야 합니다.

 

영적인 입맛은 기도의 갈망입니다.

나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에 대한 갈망입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모든 것을 잃은 것입니다.

내게 하나님께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여전히 끓어오르십니까.

 

그렇다면 두려워할 것도 염려할 것도 전혀 없습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인 가을은 우리로 겸손케 만듭니다.

무엇인가를 정리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도 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어제 새벽에도 황계덕 권사님이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우리의 남은 날을 잘 계수해야 할 숙연한 계절입니다.

 

남은 시간, 우리 앞에는 세 종류의 일이 놓여 있습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

해도 좋고 안 해도 괜찮은 일.

해서는 안 되는 일.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기에 봄이나 여름처럼 무엇인가 여유롭게

이것 저것 선택하며 지낼 시간이 없습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어제 우리는 반드시 해야 할 일에 함께 마음과 정성을 모았습니다.

 

베드로전서 47절부터는 마지막 때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일러줍니다.

정신 차리고 기도하라.

뜨겁게 사랑하라.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하라.

마지막 고지가 보이는 가을, 기도하며 사랑하며 봉사하며 걸어요.

 

 

 


덩실 덩실

 

 

 

나비는 사이로 다니면서 멋진 춤을 춥니다.

 

벌도 꿀을 만나면 신나게 춤을 춥니다.

 

고래도 칭찬을 들으면 묘기에 가까운 시원한 춤을 춥니다.

 

아버지도 아들이 돌아오자 풍악에 맞춘 춤의 자리를 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우리 자녀들이 기뻐 춤추는 모습을 여러번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덩실 덩실 춤을 추신 적이 있으십니까?

 

성경을 보다 너무 좋아서, 주님을 묵상하다 너무 감격해서 나홀로 춤을 춘적이 가끔 있습니다.

 

오늘도 춤추는 날이 아닐까요.

 

오랜만에 형제자매를 만나니 즐거워서

 

어떤 분은 주안에서 처음 만나기도 하니 반가워서 어깨가 들썩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무엇이 기쁜지 밤새 이상한 춤을 춘다고 합니다.

 

새벽에는 공허와 고통만을 남겨주는 허탈한 춤을.

 

 

 

즐거움이 없는 것인지, 즐거움을 표현 못하는 것인지  진정한 춤이 멈추어진 시대입니다.

 

가장 즐거움인 구원의 즐거움을 덩실 덩실 춤으로 표현하시지 않겠습니까?

 


괜찮다를 넘어

 

아버지는 집을 떠난 아들을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기다림이 바로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탕진한 아들이었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한 가지가 있었답니다.

놀랍게도 아버지의 기다림, 아버지의 사랑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오는 것을 먼저 보았습니다. 그리고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기다리던 아들이 돌아올 때 아버지는 체면을 차리지 않고 달려가 맞았습니다.

아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어찌 이렇게 되었느냐?” 질책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그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며 얼싸안고 입을 맞춘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기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아들에게 용서이상의 것을 주었습니다.

괜찮다, 아들아. 괜찮다.”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 넘어입니다.

네가 돌아와 너무 기쁘다, 같이 즐기자하며 큰 잔치를 베풀어 준 것입니다.

아버지는 실패한 아들에게 잔치를 열어주며 새로운 소망을 불어 넣어 준 것입니다.

 

다음 주일은 행복에의 초대 주일입니다.

기다리는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돌아오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집밖으로 나간 아들만 탕자가 아니었습니다.

집안에 있으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아들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집 안팎의 탕자에게 괜찮다넘어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나는 너희들을 여전히 사랑한다. 너희들을 기뻐한다.

일어나라. 다시 시작이다.”

 

 


가불

 

가불은 월급날에 앞서 미리 그달의 봉급을 일부 또는 전부를 받아가는 것입니다.

돈을 사정이 급하기 때문에 가불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저도 부교역자 시절에 사례비를 가불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재정이 갑자기 필요했었기에 가불을 신청했고

흔쾌히 허락을 받아 요긴하게 사용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 가불이란 제도는 남용하면 어려워 지기도 하지만 적절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불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재정" 가불이 아닌 "염려" 가불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 6:34a)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는 염려하지 않지만 매일 매일 먹고 살아갑니다.

들에 백합화는 염려하지 않지만 매일 매일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신뢰하는 자는 염려대신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새와 꽃도 하나님을 신뢰하건만 사람은 신뢰대신 염려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재정의 가불은 간혹 필요하겠지만 염려의 가불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염려는 주권자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요 자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평생 염려 가불 금지!!!


그녀의 태도

 

사람은 그 사람이 가진 능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 사람에게 닥친 상황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능력과 상황이 어느 정도 영향력은 있겠지만 미미(微微)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그 사람의 태도입니다.

 

그녀가 만난 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통했습니다.

그녀에게 없는 것이 많았습니다.

남편도 없었고 돈도 없었습니다.

익숙한 고향집을 떠난 지도 오래입니다.

 

없는 것이 많았던 그녀에게 확실히 있었던 것은 긍정적인 태도였습니다.

그의 이런 태도는 쓰라린 과거를 회상하며 형성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녀는 시어머니가 걷고자 한 “The Way”의 미래를 볼 수 있었기에

‘The Way’ 앞에서 암울한 현실을 뛰어넘는 승리자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입니다.

‘The Way’를 따르던 룻은 마침내 “The Way’의 족보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The Way’를 선명히 보는 자는 태도가 선명하고 또 그런 삶을 삽니다.

 

50주년을 맞아 지금 내 앞에 펼쳐진 ‘The Way’ 곧 예수님.

그녀가 그랬듯이 ‘The Way’에 대한 나의 태도가 나의 인생이 됩니다.

 

 

 


인간삭제

 

 

 

사람들 대부분은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모든 상처를 깔끔이 잊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잊으려 하면 돋아 오르는 것이 아픈 상처이기도 합니다.

 

모든 상처를 깨끗이 지울 수는 없을까요? 놀랍게도 있습니다.

 

 

 

인간삭제 사업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자기의 과거를 깨끗이 지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사업이라고 합니다.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과 기록이 남아있지 않게 하는 완벽한 인간삭제

 

일본에서 번창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만간 한국과 미국, 그리고 세상에 퍼질 위험한 사업 같기도 합니다.

 

 

 

미국에 그런 사업이 등장하면 달려가 상담받고 싶으십니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기대만큼 완벽히 삭제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다음 말씀을 들어보십시요.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우리의 아픈 과거를 지워주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해 주시는 분이 있으십니다.

 

가을,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서있으면 우리 쓰린 상처를 완벽히 삭제해 줍니다.

 

보혈이 떨어지는 십자가 아래 있으면 누구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답니다.

 

 


고발과 콩알

 

 

 

한국의 조상들은 콩을 심을 세알을 심었답니다.

 

알은 벌레나 새가 먹으라고

 

알은 이웃에게 나누려고

 

마지막 알은 자신이 먹으려고

 

 

 

콩알하나마다 아름다운 희망을 품고 있었고

 

세콩알이 어울려 멋진 노래를 만들곤 했습니다.

 

 

 

지금은 슬프게도 한국은 거의 원한에 가득 고발 공화국

 

드라마나 현실에서 고발 중독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여야 정치 지도자들의 서로를 향한 고발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아이들 조차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급우들을 서슴없이 고발합니다.

 

 

 

선진들이 물려준 세콩알의 정신이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놀랍게도 선진들의 마음을 품은 '세콩알' 이름의 기업도 있습니다.

 

고발과 콩알, 선택 속에 한국의 그림은 더욱 달라질 같습니다.

 

'세콩알' 아니라 '네콩알'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 교회가 너무 그립습니다.

 

 


Beyond Utopia (이상적인 나라를 넘어)

 

유토피아는 토마스 모어가 1516년에 펴낸 소설의 제목입니다.

여기서 유토피아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나라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그런 이상향(理想鄕)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그런 나라를 만들겠노라 앞다투어 공약으로 내놓곤합니다.

 

‘Beyond Utopia’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유대인 제작자가 만든 탈북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3대 김씨 세습을 이어가는 저들이 북한을 유토피아라고 속이고 있습니다.

굶어 죽는 곳, 억압받는 곳이 어찌 유토피아일 수 있습니까?

 

영화 ‘Beyond Utopia’는 북한은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한 사람이라도 구출해 내겠다는 목숨 건 이야기 ‘Beyond Utopia’

그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은 놀랍게도 목사님을 비롯 크리스천들입니다.

그 영화의 출연과 제작의 주인공들이 지금 우리 교회를 방문중에 있습니다.

 

북한 주민이 자기들이 있는 곳을 유토피아로 착각하듯이, 한국에도 미국에도

자기들이 사는 곳을 유토피아로 잘못 생각하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더 늦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건져내어 ‘Beyond Utopia’

곧 천국으로 이끌어야 하겠습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길이신 예수님께로

 

 


활기찬 여름나기

 

많이 지칠만한 더운 여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쳐만 가는 이때에 활기찬 여름나기할 방법이 없을까요? 있습니다.

 

다음 문구와 비슷한 내용을 식당이나 상점에서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Your satisfaction is our constant vitality.

당신의 만족은 우리의 변함없는 활력제입니다.

 

소비자들이 만족할 때 지쳤던 사업자에게 활기찬 힘이 솟는다는 것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킹덤미션 (Kingdom Mission)이 있었습니다.

여러 나라와 동시다발적으로 예배, 교육, 친교 등 많은 사역을 진행하였는데

현지 시간을 고려해 뉴욕에서는 한 밤중에 사역을 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모두 즐겁고 활기찼다는 것입니다. “우째 이런 일이?”

그들의 모습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주님의 기쁨이 나를 힘 있게 합니다.

The Joy of the Lord makes me strong.

 

병원 문을 닫고 참여했던 분은 선교를 위해 지금의 직업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네 식구가 계속 참여하면서 선교는 자기 가족의 소명이라고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진 주님께 기쁨을 드렸던 선교 이야기들....

더운 여름, 우리는 무엇으로 주님께 기쁨을 드릴까요?

그것을 찾아 활기찬 여름나기를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의 시작은 아침이고 하루의 끝은 저녁입니다.

동이 트는 아침,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활기찹니다.

노을 지는 저녁, 하루의 끝은 아름답긴 하지만 늘 피곤합니다.

 

창조 때는 달랐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루의 시작은 저녁이었고, 하루의 끝이 아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원래의 하루는 시작보다 끝이 더욱 힘이 넘칩니다.

 

오늘은 교회학교 졸업 예배가 있는 주일입니다.

졸업생들에게 오늘은 시들한 저녁이 아니라 가장 희망찬 아침과도 같습니다.

이들에게 찬란한 아침 영광의 빛이 비추일 것입니다.

이들은 우울한 세상을 희망으로 바꾸고 빛으로 채울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졸업생들이 있기까지

교사님들의 헌신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모님들의 수고가 마르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성도님들의 기도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축복합니다.

 

 

 

 

 


고독한 숫사자

 

초원의 제왕(帝王) 사자도 외로울까요?

외롭답니다. 적어도 숫사자는.

암사자보다 현격히 떨어지는 평균수명을 사는 숫사자는 나이가 들면서

무리를 지어 지내는 암사자와 새끼 곁을 떠나 홀로 다니곤 합니다.

모계(母系) 중심인 사자들의 사회이기 때문일까요?

 

누구에게도 없는 멋진 갈기와 누구도 범접지 못할 힘이 여전히 있어도

고독한 숫사자의 걸음과 눈망울은 애잔하기만 합니다.

 

고독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로, 공동체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외치지는 말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는 싫어. 교회는 결코 안 나갈거야

나는 교회는 나가지만 다른 사람들과 절대 어울리지는 않을거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도 고독한 숫사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어 함께 웃고 함께 울며 그날까지 함께 가야 합니다.

나 홀로 멋진 그리스도인은 없답니다.

어울려야 그리스도인이고 그 모습이 아름답담니다.

 

 

 

 

 

 


흘러내리는 침

 

흘러내리는 침을 삼키실 수 있으십니까? 행복하시군요.

사랑하는 가족과 허그(hug)하실 수 있으십니까? 축하드립니다.

아침에 두 눈이 떠지십니까? 멋지시군요.

숨을 스스로 들이 마시기도 하시고 내쉬기도 하실 수 있습니까? 대단하십니다.

 

장 도미니크 보비라는 여인은 그렇게 못했습니다.

세계적 여성잡지 편집장이었던 보비는 43세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전신마비가 되어 단지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왼쪽 눈꺼풀만으로 알파벳을 표현하였고, 15개월 동안 20만 번의 깜빡이는

눈꺼풀을 읽어낸 대필자 크로드 망디발을 통해 잠수복과 나비라는 책을 썼습니다.

 

몸은 비록 잠수복을 입은 것처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지만

그의 영혼은 나비처럼 훨훨 날았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 좌절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흘러내린 침을 삼킬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의 책 서문에 썼답니다,

그는 그의 책 출간 8일 만에 심장마비로 그가 꿈꾸던 나비가 되어 날아갔답니다,

 

지금 흘러내리는 침을 삼키실 수 있으십니까?

~~그대, 행복한 사람이시여!

 

 


행복은 어디에

 

이것이 행복이라오라는 주제로 시작된

2023년 전교인 여름 수련회가 오늘로 막을 내립니다.

행복하십니까?

일주일로는 행복을 못찾았으니 행복을 더 찾아 나서야 하나요?

 

강사 목사님이 말씀을 통해 행복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셨습니다.

구원이 행복이라고.

동행이 행복이라고.

약속이 행복이라고.

 

그렇다면 행복은 멀리 찾아나설 일이 아닙니다.

행복은 이미 내게 있습니다.

내게 있는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이미 물속에 있는 물고기가 물을 찾아 나서는 것과 같습니다.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선명하게 티가 납니다.

그 사람의 얼굴에 행복이 담겨 있습니다.

그 사람의 언어에 행복이 흘러 넘칩니다.

그 사람의 태도에 행복이 한껏 보입니다.

 

그대가 행복한 사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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