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추수감사절에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오곡백과 황금바다가 넘실대는 들녘을 보아야 합니다.

대추 한알, 곡식 하나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많이 담겼는지.

추수감사절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볼수 없다면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는 만나야 합니다.

오는 목요일 저녁 5시에 만나야 합니다.

밥 한공기에도 벼를 심고 거두고 밥을 짓기까지 여러 손길이 얼마나 많이 닿았는지.

추수감사절에 공동체에 대한 뜨거운 감격이 없다면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는 기대야 합니다.

둘러보니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에 하나님의 경이로운 능력이 얼마나 많이 배였는지.

추수감사절에 능력의 하나님을 겸손히 의존하는 일이 없다면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는 드려야 합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로 드립니다.

전쟁과 사고로 가득한 2023년에도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많이 놀라운지.

추수감사절에 드리는 일년의 감사에 지극한 정성이 없다면 어쩌면 좋습니까.

 

 

 

 

 

 

 

 


주인공과 배경인물

 

주인공이 좋으세요, 배경인물이 좋으세요?

배경인물의 역할은 주인공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니

기왕이면 주인공이 좋겠지요.

그러나 잠깐만요^^

 

저는 지난 주간 그린스보로를 거쳐 LA에 다녀왔습니다.

그린스보로에서는 우리 교단의 목사 장로 기도회가 있었고,

LA에서는 KWMC (The Korean World Mission Council for Christ/

기독교 한인세계선교협의회) 연차 총회가 있었습니다.

 

두 모임에 공통된 주인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셨습니다.

지난 The Way의 주인공도 역시 예수님이셨습니다.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다 배경인물입니다.

 

우리는 배경인물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도 주어진 역할을 성실하게 잘 감당하다가

그만이다 하는 그날에 무대에서 내려가면 됩니다.

무대에서는 주인공이신 예수님만이 영원하십니다.

 

 

 

 


환경을 너머

 

 

 

환경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서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칩니다

 

어려운 환경에 정복당하는 자가 많지만 그런 환경을 수단으로 삼는 지혜로운 사람도 있습니다

 

 

 

소아마비, 나쁜 시력, 촛불도 힘이 없던 천식의 환경을 가진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가진 장애는 장애가 아니다. 장애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기적을 만들 것이다"

 

어려운 장애를 뛰어넘는 꿈을 가졌던 사람은 훗날 대통령이 되었던 루즈벨트였습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도 문명에 대해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문명은 안락한 환경이 아닌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난다"

 

 

 

어제는 바자회도 있었고 장례식도 있었습니다

 

어제는 바자회와 장례식에는 어울리지 않을 같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러나 비가 어려움을 자아낸 것이 아니라 멋진 그림들을 그려주었습니다

 

 

 

우리 교회 50년은 크고 작은 어려운 환경이 몰아쳐온 시간이었습니다

 

 

50년은 우리를 붙잡아 주신 주님의 선한 능력으로 힘든 환경을 이겨낸 역사입니다.

 


어디가 길이냐

 

꿈길. 워낙 가곡을 좋아한터라, 그만 그 가곡에 세뇌(洗腦)당하였답니다.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님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꿈길에서 만날 줄 알고 꿈꾸는 밤을 기다렸으나

꿈에서도 만날 수 없었고, 만난다 하여도 깨어나니 그 님이 사라졌습니다.

 

나의 길. 프랭크 시나트라가 감미롭게 유혹한 길이 있었습니다. “My Way”

 

And now, the end is near (그리고 이제, 끝이 가까워)----

My friend, I'll say it clear, (내 친구여, 확실히 말할 게)----

I did it my way (그걸 내 방식대로 했다는 거지)

 

나의 길을 가는 것이 멋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의 길을 갈수록 나는 점점 더 공허해졌습니다.

 

예수의 길. 드디어 찾았습니다. 그토록 찼고 찼았던 길이었습니다.

 

안개 속에서 주님을 보네/ 아무도 없을 것 같던 그 곳에서----

주 말씀하시네 내 손 잡으라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 생명이니----

예수의 길 그 좁은 길/ 나는 걷네 주 손잡고

 

어디가 길이냐구요? 이 세상에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답니다. The Way.

 

 

 

 

 

 


가을 비와 함께

 

The Way! 화이팅!

화이팅! The Way!

 

통성기도 후 우렁찬 외침과 함께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어제 아침, “The Way” 초청장을 들고 나가는 교우들의 모습은 결연했습니다.

 

가을 비도 교우들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아니, 가을 비가 끝까지 함께했습니다.

길을 잃은 세상을 향한 하늘의 눈물과도 같은 가을비가

초청장을 나누어 주는 교우들의 머리와 어깨를 거쳐 땅을 흠뻑 적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동네에 오셔서 그려 놓으신 수채화 같은 가을 비속의 교우들.

행여 감기라도 들까 자기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만나길 소망하며 지나는 이에게 미소짓는 교우들.

이 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이 가을에 어디서 또 볼수 있을까 싶습니다.

 

교우들과 함께한 가을 비는

저 옆에서 단풍이 채 물들지 않은 나뭇잎도 떨구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 소리는

상 주시려고 다시 오실 주님의 발자국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였습니다.

 

 

 


기다리는 마음

 

우리 교회가 설레이며 기다렸던 대광동문들의 포스메가 남성 합창단

드디어 오늘 오셨습니다. 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환영합니다.

 

자랑스러운 모교 대광고등학교 교내 독창대회에서 애절히 불렀던 곡이 있었습니다.

비록 입상하지는 못했지만 제가 불렀던 "기다리는 마음" 결코 잊을 없습니다.

 

이번에 여러 방문지 가운데 선교지 사량도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어느 부모님의 애절한 마음을 엿보았습니다.

사량도에 들어가려면 통영에서 배를 타야만 합니다.

추석을 맞아 부모님에게 인사드리려 오려던 자식들이 마지막 배가 끊어질 때까지

통영에 도착하지 못할 같다는 소식에 길거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의 눈물겨운 모습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번 건축 바자회를 오랫동안 준비하며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민족 예배당의 완공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마음으로부터 숭고함의 향기가 짙게 번져 나옵니다.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는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지으신 천국에서 우리를 간절히 기다리십니다.

 

아버지의 "기다리는 마음" 안다면 우리의 발걸음은 결코 방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된 평화가 어디있나

 

지금, 온 세상은 충격과 슬픔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잡혀가고----

그 가운데 여성과 어린이까지 포함된 민간인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온 세상을 둘로 나누어 모두의 전쟁으로 만들었습니다.

 

전쟁과 평화는 내면과 가정과 군대에서 전쟁을 겪었던 톨스토이의 작품입니다.

그가 말한 전쟁은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데 도대체 평화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사상 속에 깃들 평화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목놓아 부릅니다.

 

이 세상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있나

 

어떤 현자(賢者)도 평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어느 나라도 세상 모두가 만족할 평화의 길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평화를 아직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 땅에서는 찾을 수는 없지만 그 누군가가 가지고 있고,

그 어디선가에서 내려오는 참된 평화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

 

그분이 아니고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이 허물어지지 않습니다.

그분의 피가 아니고서는 화목의 삯을 지불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면 참된 평화, 충분합니다.

 

 

 

 


GEM

 

GEM을 아시나요?

젬(gem)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명사) 보석, 보옥, 주옥(珠玉), 일품(逸品) 소중한 사람

(동사) 보석으로 장식하다 (형용사) 뛰어난, 품질이 우수한, 완전한

 

GEM을 아시나요?

Global Expert Missions (지구촌 전문인 선교)의 약자(略字)입니다.

지난 당회(8/31/2022)에서 세운 우리 교회 선교회 이름입니다.

 

GEM을 아시나요?

GEM 선교회는 보석 같은 전문인들을 발굴, 훈련하여

지구촌 전역으로 단기(短期), 중기(中期), 또는 장기(長期)간 파송하게 됩니다.

여기서 전문인(expert)는 바로 당신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가진 당신입니다.

어떤 분야이든 자기 분야에서 탁월함을 보이는 보석같이 소중한 당신을 말합니다.

 

GEM을 아시나요?

하나님께서 케냐와 끼르키스탄에 드넓은 땅과 선교센터 네 곳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곧 그곳을 중심으로 훈련과 사역이 준비되고 펼쳐질 것입니다.

연약한 우리에게 카작스탄과 캄보디아 선교에 이어 다민족 선교, Kingdom Mission,

그리고 GEM선교회를 맡기신 하나님은 감당할 넉넉한 능력도 주실 것입니다.


춤추는 가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첫 소절입니다.

정말 가을은 기도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사알짝 덧붙이고 싶습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그리고 춤도 추게 하소서

 

들썩들썩

교회가 벌써 춤을 추고 있습니다.

가을 건축 바자를 앞두고 교회는 이미 여기저기서 분주히 움직입니다.

저렇게 힘들게 춤을 추셔도 괜찮으실까생각이 드는 것도 잠깐.

 

얼굴에 머금은 미소와 어깨에 깃든 춤사위로 멋진 조화를 이루며

깊은 가을로 걸어가는 교우들이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축복합니다.

 

 


굿바이, Queen

 

내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이 있습니다.

굿바이, Queen

엘리자베스 2세를 향한 작별 인사가 아닙니다.

 

세계 각국 정상들과 수백만 명의 조문객이 런던에 모일 것이고

전 세계에서 생중계를 통해 장례식에 참여할 자를 헤아릴 수 없을 터인데

마지막 인사에 굳이 저까지 나설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내일 또 다른 Queen의 장례식이 있습니다.

정혜란 선교사님. 우리 교회가 협력하여 섬기는 강병권 선교사님의 아내이십니다.

수십 년간 선교만 하시다가 은퇴를 6개월 앞두시고 담도암에 걸리셨습니다.

투병의 극심한 고통 중에 지난 금요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정혜란 선교사님은 아프리카 선교에서도, 투병에서도 에스더 왕비와 같았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선교사님은 어디서나 주님만을 바라보았고 언제나 복음의 증인으로 사셨습니다.

제 눈에 진정한 Queen은 에스더같이 사셨던 정혜란 선교사님입니다.

굿바이, Queen

 

 

 


그래서 그랬었구나

 

얼마 전, 한국에서 둘째 누님이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연세가 높으셨던 둘째 누님이 코비드에 걸리셨고

같이 살고 있던 어린 손주도 코비드에 걸렸습니다.

, 어린 손주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코비드 걸린 손주만이 코비드 걸린 할머니에게

가까이 가서 마음 놓고(?) 마지막 음식을 먹여 드릴 수 있었답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어린 손주가 코비드 걸린 이유가

그래서 그랬었구나라고 헤아려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해가 안 되어도

조금만 지나 보면 선명한 그림이 보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에 이런 고백이 따를 것입니다.

그래서 그랬었구나.”

 

이 땅의 마지막 식사는

하늘의 첫 식사로 이어집니다.

이 땅에서 손주가 가져다준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천국으로 찾아온 둘째 딸과의 첫 식사 때문에

그곳에 먼저 가 계셨던 아버님 어머님은 많이 분주하셨을 것입니다.

 

 

 

 


집으로 가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어제 2022년 킹덤미션이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너무나 많은 이야기로 채워진 시간들,

23일 동안 동고동락(?)했던 형제자매들이

마지막 예배 후, 맛난 점심식사를 하고 모두 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의 수고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밤새도록 아름다운 복음을 온 땅에 뿌리다가

집으로 가자라는 말을 남기고 이제 그들은 모두 돌아갔습니다.

부모님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언젠가 우리도 영원한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수고가 끝난 후,

아버지께서 이제 오라부르실 때,

집으로 가자를 외치며

아버지 하나님이 기다리는 집으로 갈 것입니다.

 

눈물도 아픔도 설움도 없는 아버지 집으로 갈 것입니다.

 

안식과 평화와 기쁨이 있는 아버지 집으로 갈 것입니다.


우아아앙 날마다 우리에게

 

지난 휴가 보스턴의 둘째 아들 가족을 만나러 갔습니다.

반갑게 만난 얼마를 지나 손녀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자던 시간에 낮잠을 짜증 같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우아아앙 아아앙~~' 울음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더 음식은 이미 도착했고 뚜껑도 열었습니다.

먼저 드시라는 가족들의 강력한(?) 권유가 있어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손녀의 울음 속에 울음이 아닌 단어가 섞여 들렸습니다

'우아아앙 날마다 우리에게 아앙'

 

며느리가 울음 속의 내용을 분명히 정리해 주었습니다.

'할아버지, 날마다 우리에게 하고 먹으세요?'

아차 싶어 저는 모아 급히 그리고 크게 불렀습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멘'

 

반복적인 신앙 교육은 언젠가 아이들의 삶이 됩니다.

오늘 오후에는 교회학교 졸업예배가 있습니다.

신앙교육을 위해 희생하시는 교회학교 선생님들,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훈련된 신앙으로 살아갈 우리 졸업생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축복합니다.


당신을 "걸레 " 라고 부른다면

 

 

그분은 끝내 교회를 떠나셨답니다.

 

목사님이 심방 가셔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집사님은 하나님의 걸레 같다 "

 

그 집사님이 교회 구석구석을 잘 쓸고 닦으셨기에 그렇게 부르셨답니다.

 

집사님은 고마움을 담어낸 목사님의 표현을 소화해 내지 못했습니다.

 

 

지난 주간 노회 수련회 중에 어느 목사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자신이 자신의 이름을 지어 그 의미를 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자신의 이름을.라고 지어 부르셨습니다"하나님의 걸레 "

 

교회의 여러 더러움을 닦아내는 걸레가 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지어준 이름으로 일생을 살아갑니다.

 

만일 내 이름을 내가 지을 수 있다면 무엇이라고 지어 부르시겠습니까.

 

그 누구도 자신을 걸레라고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그 기능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얼룩진 곳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깨끗이 닦아내는".하나님의 걸레 "

 

 

그 시간에 어느 사모님은 자신의 이름을.라고 지으셨습니다"에바다 "

 

농아인 동생의 말문을 열어주고 싶으시다고 했습니다.

 

.이제 조용히 자신의 이름을 지어보시십시오.

 

그리고 그 이름과 그 이름의 의미를 가까이 계신 분들에게 들려주십시오

 


진정한 자유인

 

자유는 인간의 기본 권리입니다.

자유가 억압당하면 인간의 삶의 근본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자유는 육체의 자유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유가 육체의 자유에서 끝난다면 방종도 자유가 될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경제의 자유를 한껏 침해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경제의 자유를 힘써 보장하려 애씁니다.

그러나 어떤 제도에서도 경제 자유의 왜곡은 피할 길 없습니다.

누구는 부하고 누구는 가난한 데서 자유는 그 위엄을 잃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육체의 자유, 경제의 자유도 아닌 양심의 자유입니다.

대중교통에는 약자를 배려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해당하는 약자도 아닌데 그 자리를 버젓이 차지하고 있다면

행동의 자유를 내세울 수 있으나, 양심의 자유는 숨어 있어야 합니다.

 

내일은 대한민국이 자유를 되찾은 77주년 광복절입니다.

나의 자유는 어떤 자유인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육체도 누구에게 매여있지 않고, 경제도 가난에 눌려 있지 않으면 좋겠지만

무엇보다 양심이 자유로워야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하나님의 “Next!”

 

우체국 라인에서 기다리는데 창구에서 넥스트!”라는 소리가 들리면,

공항에서 수속하는 직원이 넥스트!”하며 손을 흔들면,

다른 이의 부러움을 뒤로하며 당당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Next가 있기에 즐거운 삶, 기대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부르는 next에도 즐거움과 기대감이 있는데

하나님의 부르시는 next는 어떨까요.

 

하나님이 부르셨던 특새와 VBS를 어제 마쳤는데

오늘 아침에 하나님의 “Next!”라는 소리를 다시 듣고 교회로 달려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계획 없이 “Next!”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시 시작이다!”라는 말씀을 준비하시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Next가 없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초조한 사람입니다.

Next를 모르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Next!”를 따라가다 보면

내 인생과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절묘하신 계획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마지막 “Next!”천국으로 들어오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날까지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하나님의 “Next!”를 잘 듣고 따라야 하겠습니다.

 

 

 

 


10()를 사는 법()

 

10대를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오래된 표현이지만 아직도 유효한 표현인데 흔히 청소년 시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또는 이유 없는 반항의 시기라고 부르곤 합니다.

많이들 그러지 않으셨을까 싶은데(just 추측^^) 저의 10대 때

질풍노도가 누그러지고 이유 없는 반항이 꺾이는 데는 적잖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제 새벽에 본 10대는 달랐습니다.

차원 다른 그들을 킹덤미션 파송예배에서 보았습니다.

어제 여러 회중, 다양한 세대 120명이 킹덤미션에 파송받았습니다.

어린아이들과 청년들도 적잖이 참석하였는데 특히 10대 청소년들이 대거 참여하였습니다.

 

그들은 어제 불쑥 교회 나왔다가 내일 다른 세상에서 노는 10대들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선교에 대한 흔들림 없는 헌신이 오래전부터 이미 서있습니다.

그들은 선교의 다음 세대가 아니라 현재 세대입니다.

그들은 영적 세계에 내일의 주역이 아니라 오늘의 주인공들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리스도를 위한 삶의 비전과 방향이 분명합니다.

오늘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에스더와 그와 측근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보며 우리 교회와 이 시대의 기독교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10대의 시간을 질풍노도와 반항에 낭비하지 않는 그들에게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친구 이야기

 

많지 않아도/ 그리고 자주 만날 수 없어도

나에게 친구가 있음은/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멀리 있어도/ 가만히 이름 불러볼 수 있는

친구가 나에게 있음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내 좋은 친구를 만날 때면/ 웃음마다 봄날 기쁨입니다

보고픈 친구를 생각할 때면/ 그리움은 잔잔한 행복입니다. (친구 이야기/ 조흔파)

 

친구라는 단어만큼 정겨운 단어가 달리 있을까요.

우리 이민자들은 대부분 친구를 멀리 두고 있습니다.

그리움 가운데 친구가 있어도 좋은데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오늘 설교하시는 류동하 목사님은 아주 오랜 신학교 친구입니다.

저보다 한 살밖에 안 많으시지만 언제나 깍듯이 형님이라고 부릅니다.(흑흑)

언제나 만나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많은 성경 이야기를 나누었고 장난도 많이 쳤고

헤어지면 늘 그리웠던 친구입니다.

 

신학교 때나 러시아 선교 때나 영국 유학 때나 담임 목회 때나

현재 섬에서 선교하는 때도 한결같이 자기를 먼저 챙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복음을 먼저 생각하고 이 아우도 변함없이 살피는 의리 충만한 친구 형님.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이 부럽지 않은 친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오늘은 제가 섬기는 강단에서 설교하신다니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우리를 보내신 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제9차 한인세계선교 대회가 잘 마치었습니다.

와싱톤 현장과 뉴욕 교회에서 뜨겁게 함께 해주신 모든 교우께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많은 선교사님의 귀한 말씀과 선교 보고도 들었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선교사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뉴욕으로 오는 길에 말레이시아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 내외분과 대화를 했습니다.

중국에서 25년 넘게 사역하시다가 추방되어 지금의 사역지로 옮기신 것입니다.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이야기 끝에 제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선교사님, 목회자나 교회에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세요?”

잠시 생각하시다가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표현을 어느 교회에서 듣고 마음이 아프셨답니다.

선교사들은 걸어 다니는 청구서야.”선교사님은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를 보내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교회가 선교사를 걸어 다니는 귀찮은 청구서 정도로 본다면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의 뼈아픈 지적에 수긍이 갑니다.

교회가 열심히 선교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선교사님들을 서럽게 만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먹먹한 뉴욕으로의 귀로였습니다.

 

 

 


우리를 다시 살려 주옵소서

 

내일부터 제9차 한인세계선교대회가 와싱톤에서 열립니다.

4년마다 개최되던 선교대회, 팬데믹으로 6년 만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선교사님들의 회복, 선교사 후보생들의 발굴과 헌신, 교회를 각성시키는 도전,

그리고 그 시대와 상황에 적절한 선교전략들을 세워 온 선교 대회입니다.

여기 기도 제목들이 있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참여하는 우리 모든 교우가 안전하게 오고 가게 하옵소서.

우리 글로리아, 경찬, 교역자 찬양 팀들을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대회를 섬기는 분들에게 강건함과 기쁨을 주옵소서.

그곳에 성령의 뜨거운 불이 임하고, 강력한 성령의 바람이 일어나

우리를 다시 살려 주옵소서

한없이 부족한 담임목사, “그러나의 은혜”(6:9, 고전 15:10)로 채워주옵소서.

 

이제 찬양하며 담대히 나아갑니다. 안녕히 계세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백두에서 땅의 끝까지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며/ 주님만 섬기는 나라 되게 하소서

이 땅의 주님 교회 위에/ 하늘의 생기 부어주소서

열방을 치유하는 주 백성/ 주님의 군대를 일으켜 주소서

성령의 새바람/ 이 땅에 불어오소서

주의 영 그 생기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이 땅에 하나님 영광 거하는/ 그런 나라가 되게 하소서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5 Next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