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그대가 그리운 날

 

     곱게 물든 은행나무 길을 걷다가 그리움만 줍고 왔습니다.

     사랑도 지나치면 병이 된다지만 솔직하게 고백하면,

     오늘 그 병에 걸리고 싶더군요.

       -윤보영의 시(詩) 가운데-

 

그대가 벌써 그립습니다.

한 주전에 헤어졌는데 말이지요.

그리움도 병이라면, 오늘 그 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그대 이름은 사순절.

 

캄캄한 새벽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던 차량부,

반갑게 맞이하던 안내부와 조용하게 섬겼던 서기부,

잘 준비된 4개국 찬양가사와 많은 영상들을 기쁨으로 띄워주던 방송부,

늘 뜨거웠던 경배 찬양팀과 정성 어린 반주자들,

초롱초롱한 아이들과 그들과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하던 젊은 부모들,

아름다운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주방과 통역 봉사자들,

은혜로 가득찬 대표기도자와 영성 깊은 목소리의 성경봉독자들,

토요일 찬양에 함께 했던 모든 사랑하는 교육부서와 헌신된 교사들,

여러 아름다운 특별찬양대, 그리고 빛나는 청년들,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지내고 맞이한 부활절에 감격의 찬양을 올려드린 찬양대원들,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준 다민족 회중들,

본이 되는 리더십을 보여주신 장로님들과 충성된 교직원들.

 

놀라지는 마십시오. 올해 사순절을 다시 연장하자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내년 사순절까지 그대가 몹시 그리울 것입니다.

 


웅덩이와 바다

 

 

저에게는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님이 주신 숙제입니다.

김목사, 불같이 뜨겁고 바다같이 넓어야 해.”

때때로 생각해 봅니다. ‘나는 불같이 뜨거운가, 나는 바다같이 넓은가

 

 

바다는 넓어서 모든 것을 다 받아줍니다.

이것 저것 마다하지 않고 다 품어줍니다.

그러고도 무엇이 좋은지 항상 웃으면서 넘실넘실 춤을 춥니다.

바다같은 사람은 가까이 갈수록 푸근해집니다.

 

 

웅덩이는 워낙 작은 데다가 밖에서 무엇이라도 들어가면 곧 흙탕물을 일으킵니다.

바다가 썩는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웅덩이는 시간 문제이지 썩는다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저는 바다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풀지 못한 숙제가 제게만 있나요?

이번 사순절 주제인 내가 사는 이유를 찾으셨는지요.

사순절은 그 숙제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어서 나오셔서 함께 그 답을 찾아갑시다.

지난 주간에는 내가 사는 이유를 찾고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았습니다: 나는 지음받은 자, 나는 약속받은 자, 나는 축복받은 자,

 

 

나는 사랑받은 자, 나는 열매맺는 자, 나는 승리하는 자입니다.


피데스 레포르마타

Fides Reformata

 

피데스 레포르마타

우리가 걸어온 길입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입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피데스 레포르마타개혁신앙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피데스 레포르마타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믿는 것이 피데스 레포르마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찬양하며 사는 것이 피데스 레포르마타입니다.

성경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것은 결코 피데스 레포르마타가 아닙니다.

 

지금, ‘피데스 레포르마타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피데스(신앙)는 피데스인데 언제부터인가 레포르마타(개혁)는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 앞에, 피조물 인간이 자유의지라는 이름으로 맞서려 합니다.

하나님이 그 뜻 가운데 감추어 놓은 일들을 들추어보려는 경망(輕妄)스런 태도는

우리의 선진(先進)들이 보여 준 레포르마타의 삶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이토록 암흑 같은 시기에

우리가 보고, 따르고, 남길 선명한 이정표는 피데스 레포르마타뿐입니다.

 

 

 

 


세게 무릎치며 기도하다

 

교우들의 동업하는 사업의 개업예배 때에 손요한 목사님께서 기도하셨습니다.

모든 기도에서 그렇듯이 목사님의 기도는 힘있게 이어졌습니다.

목사님 기도 중에 저는 무릎을 치며 반응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세게 쳤습니다.

여기까지 너무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새로 개업한 사업은 속 눈썹을 붙여 사람들을 예쁘게 해주는 서비스 사업입니다.

롱아일랜드에 있는 사업장의 이름은 LuLu Lash(룰루 라쉬)였습니다.

손님들이 부르기도 좋고, 외우기도 좋은 이름을 지어 등록까지 마쳤다고 합니다.

설명도 듣고 카운터 앞에 크게도 써 붙인 이름, LuLu Lash.

 

그런데 목사님이 기도 중에 룰루랄라사업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아차 싶으신 목사님은 급히 원래 이름 룰루라쉬로 바꾸어 기도해 주셨습니다.

제가 무릎을 친 것은 원래 은혜로운 기도에의 반응이였지만, 세게 치기 시작한 것은

(너무 죄송한데) 웃음을 참으려는 의도도 살짝 있었습니다.

 

룰루랄라는 행복한 상태를 표현하는 밝고 긍정적인 단어입니다.

저도 룰루라쉬’ shop에 오는 사람마다 룰루랄라하며 돌아가길 축복했습니다.

저의 마음에서 잠자던 단어 룰루랄라

목사님 때문에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오늘 새벽 어깨에 담이 걸려 아직 뻐근하지만, 지금도 룰루랄라하고 있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일주일도 안된 시간인데 우리 교우들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교우들의 뜨거운 기도를 모든 사역의 현장에서 강력히 느꼈습니다.

너무 놀라웠고 깊이 감사드립니다.

 

도착한 날부터 떠나는 날까지 한국은 봄날씨였습니다.

아직 마스크를 사람도 있었지만 길었던 팬데믹의 겨울은 끝났습니다.

자영업자들의 꽁꽁 얼었던 매출에도 봄바람이 불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 부흥의 봄이 왔습니다.

청년들이 부흥을 갈망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린아이와 청소년들이 부모님과 함께 금요일 밤에 몰려나와 기도합니다.

장년들의 예배도 다시금 뜨겁게 회복되고 있습니다.

 

뉴욕에도 이미 부흥의 봄이 왔습니다.

오는 봄을 막을 겨울은 없었습니다.

사순절 부흥의 봄바람은 '내가 사는 이유' 강력하게 일깨우고 있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겨울 옷을 껴입고는 지낼 없는 봄이 벌써 왔습니다.


우정은 무엇을 만드는가?

 

요나단이 왕자인 자기만 생각했다면

어떻게 자기가 이어받을 왕의 자리를 포기할 수 있었겠습니까.

요나단은 자기보다 다윗을 낫게 여기며 자기 생명을 걸고 우정을 이어갔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어도 요나단과의 우정을 잊지 않고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그의 사는 날까지 왕의 식탁으로 초대했습니다.

 

갈렙이 자기의 견고한 위치를 생각했다면

어떻게 85세 때에 여호수아에게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했겠습니까.

자기보다 여호수아를 존중하며 우정을 이어갔습니다.

여호수아는 자기를 존중해준 갈렙을 축복하며 기업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두 사람의 친구 리더십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친구의 우정은 자기 자신들에게 축복일 뿐 아니라

그 시대가 함께 누릴 감동과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이번 수련회와 부흥회의 강사로 오신 권호 목사님과 임도균 목사님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우정을 보여주십니다.

매사에 서로 높이고 배려하며 아끼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두 분은 우정을 통해 아름다운 감동과 놀라운 기적을 계속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다윗과 요나단처럼,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말입니다.

 

 

 

 


저 오늘 쇼파르 불어요

 

입술이 몇 번 부르텄다가 가라앉았습니다.

뿔나팔 쇼파르 부는 연습 때문이었죠.

제대로 된 소리보다 헛바람 소리가 더 자주 나왔지요.

오늘 오후 4시 예배 때에도 어떤 소리가 날지 궁금해요.

 

짧은 연습이었지만 즐거웠습니다.

49년을 지켜 주시고 희년을 맞게 해 주신

하나님께 올려드릴 뿔나팔 소리, 쇼파르 소리.

 

이따가 쇼파르 소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악기로 목소리로 몸으로, 모든 회중의 아이부터 어른까지

존귀하신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요

희년의 자유와 기쁨을 선포할 것입니다.

 

그런데 기쁜 날, 웬 눈물이 흐르는 것일까요.

이곳에 49년 전에 믿음의 씨앗을 뿌리시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우리 퀸즈장로교회를 묵묵히 일구어 오신 존경하는 믿음의 선진들과

지금도 변함없이 충성하는 사랑하는 성도들 때문이 아닐까요.

 

 

 

 

 

 

 


같이 못 가는데요?

 

같이 못 가는데요?”

그 대답을 듣고 저는 살짝 놀랐습니다.

늘 밝은 미소를 가지고 계신 목사님의 무뚝뚝한 답변이라 더 당황했습니다.

 

얼마 전 총회 일로 LA와 산호세를 이틀 동안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저를 밤늦게 ride 해 주신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 오는 5월 뉴욕 총회에는 사모님과 꼭 함께 오십시오.”

 

그때 그 목사님이 주신 답이 같이 못 가는데요.”였습니다.

잠시 어색한 시간이 지난 후에 목사님이 이야기를 이어가셨습니다.

아내는 6년 전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밝은 미소 속에 그런 아픔이 잠겨 있으시다니.... 저는 더 놀랐습니다.

 

사모님은 암으로 2년 투병하시다가 목사님과 세 자녀를 두고 떠나셨답니다.

저도 어머니가 일찍 천국 가셔서 아버님이 홀로 계셨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이 계속되었습니다.

아버님은 김목사님을 키우느라 힘드셨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이 나셨을 것입니다.

저도 언니 오빠와 나이 차이가 많은 어린 막내 딸을 홀로 키울 때,

잘 키워보겠다는 생각으로 항상 힘을 냈었습니다.”

 

이후 묵묵히 차를 운전하셨습니다. 조용한 차 안에서

 

저의 눈물은 눈가에 맺혔지만, 그 목사님의 눈물은 마음에 흘렸을 것입니다.


울지마요 튀르키예

 

눈물이 떨어져 강이 되어 흐르고, 이제는 바다가 되어 넘치고 있습니다.

지난 6일 새벽 지진이 일어나 한순간에 모든 것이 허물어진 튀르키예의 눈물입니다.

지난 한 주간, 온 세상 사람들이 가슴을 졸이며

그 잔해 속에 파묻힌 죽음과 다침과 신음을 보았고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보려고 필사의 구조 작업을 펼치다가 누군가를 건져내면

구조대와 시민들의 가슴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환호가 들려옵니다.

살았다

멀리서 TV로 지켜보던 우리의 입에도 환호가, 눈에는 눈물이 떠나지 않습니다.

 

6.25 전쟁 때, 공산군 남침으로 풍전등화(風前燈火)와도 같았던 대한민국에

14,936명의 군대를 파병해 주었던 친구 나라 터키, 오늘의 튀르키예.

우리를 살리려 대신 죽어 주었고, 자유를 주려고 대신 포로가 되어주었던 튀르기예.

한순간에 부모와 자녀를 잃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며 어서 일어나라고 했던 터키.

 

울지마요 튀르키예.

일어나요 튀르키예.

그때 그대들이 전쟁 가운데 있던 우리들의 손을 잡아 주었듯이

이제 우리들이 지진 가운데 있는 그대들의 손을 잡아 주겠어요.

 

 


택배요!

 

택배요!”

아마존을 통해 주문한 것도 아닌데

매일 아침 새롭게 배달되는 물건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물건을 받아 들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그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성실하신 하나님이 하루도 빼놓지 않으시고

아침마다 새롭게 보내주시는 선물은 무엇일까요?

오늘 내게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언약입니다.

 

택배요!”

사람들이 보낸 택배를 받아도 궁금함과 설렘을 가지고 급히 열어봅니다.

하나님이 매일 아침 새롭게 보내주시는 언약의 내용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오늘의 언약을 빨리 열어보고 싶은 설렘은 없으신가요?

 

~~~~~!”

 

  

 


손수건과 모닥불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힘들 때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어디 가서 실컷 울고도 싶을 것입니다.

달려가 붙잡고 울음을 쏟아낼 친정어머니도 가까이 안 계시니

북받치는 서러움이 더할 것입니다.

 

거기 내 아픔을 알아줄 누구 없소?’ 라며 우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손수건이 필요한데....

제겐 나를 위한 손수건은 있어도

우는 자를 위한 손수건은 없었답니다.

 

추위와 어둠에 떨고 있는 이들에게

따듯한 모닥불이 있어야 하는데....

제겐 나를 위한 핫 팩은 있어도

외로운 자를 위한 모닥불은 없었답니다.

 

이 겨울,

서로 손수건이 되고 모닥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는 자를 위한 손수건.

외론 자를 위한 모닥불.

 

 

 


60세에 총각 결혼하고, 62세에 손주 본 사람

 

여러 분야의 의사들이 자주 병상을 찾아왔습니다.

죽자마자 곧 장기이식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보호자가 아무도 없기에 환자 스스로 이미 여러 장기기증 사인을 해놓은 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진단만큼, 생각만큼 빨리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장암 말기 4개월 시한부 인생으로 진단받아 대장을 많이 잘라내어

소장을 몸 밖으로 빼놓고 살고 있었는데

죽을 시간이 되어도 너무 안 죽으니 장기기증자로서 너무 미안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제목은 빨리 죽여 주옵소서이였답니다.

그러던 그가 죽지 않고 점점 회복되었습니다. 장을 이어 소장도 안으로 넣었습니다.

그의 장기를 기다리다 실망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에게 병문안 왔던 어느 여성분이 그에게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죽다 살아난 사람은 총각, 프로포즈한 분은 결혼한 딸이 있었습니다.

~~딴딴~남자는 초혼, 여자는 재혼인 결혼이 신속히 이루어졌습니다.

남자분이 60세에 결혼했는데 그분의 62세 때에

아내의 딸이 아이를 낳는 바람에 그분은 갑자기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새 생명을 얻고, 새 가정도 얻게 된 그는 하나님 은혜에 감격하여

남은 생을 선교사로 살기 위해 아내와 함께 케냐 나이로비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멋지게 살아가는 두 분을 만나 뵈었습니다. 식사도, 사역도 같이하였습니다.

60세에 총각 결혼하고, 62세에 손주 본 사람은 Peter 강 선교사님이십니다.

 

 

 


헤어질 결심

 

2023, 새해가 되었습니다.

새해에는 누구나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됩니다.

무엇을 하겠다는 새로운 결심에 앞서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헤어질 결심입니다.

 

새해에 새벽기도를 하여 더욱 영적인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려면

새벽잠과 헤어질 결심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새해에 10파운드를 감량하여 멋지고 건강한 모습을 결심하려면

좋아하던 아이스크림, 초콜릿과 헤어질 결심도 먼저 해야 합니다.

 

헤어질 결심은

추리 영화 속에 사람들의 복잡한 내면의 문제를 다룬 영화 제목이기도 합니다.

헤어질 결심은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붙잡으려는 우리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새해의 목표가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지 않기 위해

먼저 헤어져야 할 것과 철저히 결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헤어져서는 결코 안 될 믿음과 헤어지려는 어리석음을

이토록 아름다운 새해에 꿈을 꾸거나 범해서도 안 됩니다.

믿음과는 헤어질 것이 아니라 동행해야 합니다. 새해를 넘어 그날까지.

 

 

 


거절의 미학(美學)

 

거절은 ‘NO!’라고 말하는 것이기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단어 같습니다.

물론 귀찮아서 무조건 거절하는 것도 있겠지만

심사숙고(深思熟考)한 거절은 핵심과 본질에 집중하기 위한 예술의 언어입니다.

 

거절이 없는 사람은 넉넉한 아저씨 마음 좋은 아줌마는 될 수 있어도

결코 최고의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이것저것 다 품고서는 다양한 고급백화점까지는 될 수 있어도

어떤 유행이 불어와도 한두 가지에만 집중하는 명품 가게는 될 수 없습니다.

 

‘NO’를 이렇게 풀어쓴 사람도 있습니다.

NO=Next Opportunity

오늘의 거절이 내일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거절할 때도 있고 거절당할 수도 있습니다.

거절에 담긴 또 다른 기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절할 때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진짜를 거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면 끝까지 지고 가야 할 나의 십자가마저 거절할 위험이 있습니다.

나의 거절이 십자가 없는 삶으로 마감된다면 이런 낭패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마지막 한 달

 

마지막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단어입니다.

그래도 피할 수 없는 단어, 도망칠 수 없는 시간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마지막 한 달이 남았습니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입니다.

 

연말(年末)의 화려한 유혹과 비열한 변명이

마지막 한 달마저 앗아 가려고 12월이 오기 전부터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차 하면 마지막 12월을 송두리째 빼앗기면서

아무런 열매 없이 12월의 마지막 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한 달, 유혹의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 하늘로 비상(飛上)해야 합니다.

마지막 한 달, 변명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끝까지 도전(挑戰)해야 합니다.

 

최후의 마지막 시각이 멈추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힘내십시오. 잠시 후면 상 받는 그날이 있으니까요.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고전 3:13-15a)

 

 

 

 

 


그 사람의 뒷모습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낙화, 이형기)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날이듯이, 사람도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 있습니다.

마지막 모습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 그 사람의 뒷모습.

그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 서길웅 집사님. 지난 목요일 교통사고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너무 급작스럽고 안타까운 떠남, 그러나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셨습니다.

집사님이 20년 전(), 교회설립 30주년 아가페 기념호에 이런 글을 쓰셨습니다.

 

직분을 주신 것은 어떤 명예나 권위 의식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청지기 사명의식을 갖고 몸 된 교회를 더욱 든든히 세워 가게

하시기 위한 방편이라고 배웠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동안 표창도 받았는데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받을 상급이 없을 것 같아 두렵고 떨립니다.

 

아니예요, 교회를 이토록 멋지게 섬기시다가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신 집사님을

하나님이 분명히 큰 상급을 준비해 놓으시고 기쁘게 맞이하실 거예요.’

 

 

올해의 마지막 날에 언젠간 남길 우리의 마지막 뒷모습은 어떨지 생각해 봅니다.


휘파람 캐럴

 

작은 강 사이에 프랑스군과과 독일군이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1224일 성탄 전날 밤이었습니다.

프랑스의 한 병사가 휘파람으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습니다.

적막한 강가의 밤에 그 소리는 흘러 흘러갔습니다.

 

두고 온 고향에서의 크리스마스를 그리워하던

전쟁터의 군인들 한명 두명이 따라 부르던 휘파람 캐럴.

아군과 적군 모두가 휘파람으로 캐럴을 부르다가

마침내 같이 성탄 예배를 드렸고, 함께 성탄 파티도 열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성탄 주일이며 성탄 전날입니다.

아직 용서 못한 그 누구가 있습니까?

여전히 다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성탄의 예수님은 싸움을 그치고 그들과 희망과 사랑을 나누라고 하십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포성 대신 찬송이 울려 퍼져야 할 텐데 오늘이 다 지나기 전,

그 찬송을 시작시킬 휘파람 캐럴을 부르시지 않겠습니까?

휘이이익 휘이이익~~~

 

 

 

 

 


사람

 

 

 

올라(안녕하세요)!

 

기도해 주셔서 지난 주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선교회의를 다녀왔습니다.

 

다양한 선교지에서 분투하시던 사역자들이 함께 모여 선교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만나 분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리에서 묵묵히 사역하시는 소중한 사람이셨습니다.

 

 

 

스페인을 사람이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친 표현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끄덕입니다.

 

그는 현재의 정치가도 경제인도 아닌 과거의 예술가입니다.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 바로 사람입니다.

 

그가 건축한 '성가족 성당'  '구엘공원' 등에는 세계의 관광객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는 전차에 치어 치명상을 입었는데 허름한 행색의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택시도 병원도 거절한 그를 간호사가 알아보고 나은 치료를 권했지만 그는 거절했습니다.

 

옷차림만 보고 사람을 차별하는 세태를 온몸으로 꾸짖으며 사고 삼일 만에 죽었습니다.

 

그를 통해 스페인이 벌어들이는 돈은 상상 이상이며 나라 사람들은 가우디에게 끝없이 감사해합니다.

 

 

 

스페인을 살리는 가우디보다 놀라운 분이 계십니다. 세상을 살리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유일한 구원자 한분 때문에 우리는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

 

가는 세월을 그 누구도 잡을 수 없다는 노래도 있습니다.

더욱 서둘러 가는 세월, 연말이 되니 많이 바쁘실 것입니다.

바쁘게 지내다 보면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잊고 지날 수 있습니다.

여기,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잊고 지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문을 열어달라고 계속 두드리시는데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잊어버리고

분주하게 성탄의 12월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올해의 광야길, 얼마나 아팠고 힘들었었나요.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의 이름, 은혜

못 잊어 생각이 나고 또 나야 한답니다.

 

죽는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Memento Mori(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오늘 죽어도 당황하지 않을 죽음,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 죽음을 잘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왕따

 

우리는 왕따

네까짓 이민자하면서 모두가 업신여기고 따돌려도

우리는 다시 돌아갈 길이 없었습니다.

세찬 바람이 모질게 불었지만 날아가지도 않았고, 흩어질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왕따

우리가 왕따임은 견디겠으나 우리를 따라 함께 바다를 건너온 자녀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왕따를 당한다라고 외마디 칠 때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참아라. 힘을 내라는 말밖에 달리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왕따

놀랍게도 거친 뉴욕 땅에 던져진 연약한 우리를 도우신 분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우리를 찾아오신 왕이요 길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왕따

지난주일 저녁,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민자들과 그 자녀들이 모여

그분이 왕따들을 통해 50년 동안 이루신 일들을 감격으로 돌아보고 다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이민 땅의 서러운 왕따로 여기지 않고

르는 예수님의 영원한 왕따로 살기로 말입니다.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5 Next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