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입맛은 그대로

 

어느 마을에 가난한 감사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습니다.

고기가 드시고 싶어 정말 오랜만에 마음을 가지고 소고기 반근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고기를 들고 가시다가 길바닥에 떨어뜨리셨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개가 귀한 고기를 물어가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광경을 안타까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역정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있으셨습니다.

사람들이 할아버지에게 무엇이 감사하시냐고 물었습니다.

"감사하지요. 비록 고기는 없어졌으나, 입맛은 그대로 있으니까요. 하하하"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시는 할아버지의 감사를 꺾을 것은 없었습니다.

 

감사의 달입니다.

올해 살아오면서 잃은 것도 적잖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둘러보십시오. 얻은 것과 남아 있는 것에 풍성함이 보일 것입니다.

입맛은 그대로 있어 감사하신 할아버지처럼, 영적인 입맛이 남아 있다면 감사해야 합니다.

 

영적인 입맛은 기도의 갈망입니다.

나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에 대한 갈망입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모든 것을 잃은 것입니다.

내게 하나님께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여전히 끓어오르십니까.

 

그렇다면 두려워할 것도 염려할 것도 전혀 없습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인 가을은 우리로 겸손케 만듭니다.

무엇인가를 정리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도 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어제 새벽에도 황계덕 권사님이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우리의 남은 날을 잘 계수해야 할 숙연한 계절입니다.

 

남은 시간, 우리 앞에는 세 종류의 일이 놓여 있습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

해도 좋고 안 해도 괜찮은 일.

해서는 안 되는 일.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기에 봄이나 여름처럼 무엇인가 여유롭게

이것 저것 선택하며 지낼 시간이 없습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어제 우리는 반드시 해야 할 일에 함께 마음과 정성을 모았습니다.

 

베드로전서 47절부터는 마지막 때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일러줍니다.

정신 차리고 기도하라.

뜨겁게 사랑하라.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하라.

마지막 고지가 보이는 가을, 기도하며 사랑하며 봉사하며 걸어요.

 

 

 


덩실 덩실

 

 

 

나비는 사이로 다니면서 멋진 춤을 춥니다.

 

벌도 꿀을 만나면 신나게 춤을 춥니다.

 

고래도 칭찬을 들으면 묘기에 가까운 시원한 춤을 춥니다.

 

아버지도 아들이 돌아오자 풍악에 맞춘 춤의 자리를 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우리 자녀들이 기뻐 춤추는 모습을 여러번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덩실 덩실 춤을 추신 적이 있으십니까?

 

성경을 보다 너무 좋아서, 주님을 묵상하다 너무 감격해서 나홀로 춤을 춘적이 가끔 있습니다.

 

오늘도 춤추는 날이 아닐까요.

 

오랜만에 형제자매를 만나니 즐거워서

 

어떤 분은 주안에서 처음 만나기도 하니 반가워서 어깨가 들썩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무엇이 기쁜지 밤새 이상한 춤을 춘다고 합니다.

 

새벽에는 공허와 고통만을 남겨주는 허탈한 춤을.

 

 

 

즐거움이 없는 것인지, 즐거움을 표현 못하는 것인지  진정한 춤이 멈추어진 시대입니다.

 

가장 즐거움인 구원의 즐거움을 덩실 덩실 춤으로 표현하시지 않겠습니까?

 


괜찮다를 넘어

 

아버지는 집을 떠난 아들을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기다림이 바로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탕진한 아들이었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한 가지가 있었답니다.

놀랍게도 아버지의 기다림, 아버지의 사랑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오는 것을 먼저 보았습니다. 그리고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기다리던 아들이 돌아올 때 아버지는 체면을 차리지 않고 달려가 맞았습니다.

아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어찌 이렇게 되었느냐?” 질책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그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며 얼싸안고 입을 맞춘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기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아들에게 용서이상의 것을 주었습니다.

괜찮다, 아들아. 괜찮다.”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 넘어입니다.

네가 돌아와 너무 기쁘다, 같이 즐기자하며 큰 잔치를 베풀어 준 것입니다.

아버지는 실패한 아들에게 잔치를 열어주며 새로운 소망을 불어 넣어 준 것입니다.

 

다음 주일은 행복에의 초대 주일입니다.

기다리는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돌아오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집밖으로 나간 아들만 탕자가 아니었습니다.

집안에 있으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아들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집 안팎의 탕자에게 괜찮다넘어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나는 너희들을 여전히 사랑한다. 너희들을 기뻐한다.

일어나라. 다시 시작이다.”

 

 


가불

 

가불은 월급날에 앞서 미리 그달의 봉급을 일부 또는 전부를 받아가는 것입니다.

돈을 사정이 급하기 때문에 가불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저도 부교역자 시절에 사례비를 가불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재정이 갑자기 필요했었기에 가불을 신청했고

흔쾌히 허락을 받아 요긴하게 사용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 가불이란 제도는 남용하면 어려워 지기도 하지만 적절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불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재정" 가불이 아닌 "염려" 가불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 6:34a)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는 염려하지 않지만 매일 매일 먹고 살아갑니다.

들에 백합화는 염려하지 않지만 매일 매일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신뢰하는 자는 염려대신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새와 꽃도 하나님을 신뢰하건만 사람은 신뢰대신 염려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재정의 가불은 간혹 필요하겠지만 염려의 가불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염려는 주권자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요 자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평생 염려 가불 금지!!!


그녀의 태도

 

사람은 그 사람이 가진 능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 사람에게 닥친 상황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능력과 상황이 어느 정도 영향력은 있겠지만 미미(微微)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그 사람의 태도입니다.

 

그녀가 만난 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통했습니다.

그녀에게 없는 것이 많았습니다.

남편도 없었고 돈도 없었습니다.

익숙한 고향집을 떠난 지도 오래입니다.

 

없는 것이 많았던 그녀에게 확실히 있었던 것은 긍정적인 태도였습니다.

그의 이런 태도는 쓰라린 과거를 회상하며 형성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녀는 시어머니가 걷고자 한 “The Way”의 미래를 볼 수 있었기에

‘The Way’ 앞에서 암울한 현실을 뛰어넘는 승리자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입니다.

‘The Way’를 따르던 룻은 마침내 “The Way’의 족보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The Way’를 선명히 보는 자는 태도가 선명하고 또 그런 삶을 삽니다.

 

50주년을 맞아 지금 내 앞에 펼쳐진 ‘The Way’ 곧 예수님.

그녀가 그랬듯이 ‘The Way’에 대한 나의 태도가 나의 인생이 됩니다.

 

 

 


인간삭제

 

 

 

사람들 대부분은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모든 상처를 깔끔이 잊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잊으려 하면 돋아 오르는 것이 아픈 상처이기도 합니다.

 

모든 상처를 깨끗이 지울 수는 없을까요? 놀랍게도 있습니다.

 

 

 

인간삭제 사업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자기의 과거를 깨끗이 지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사업이라고 합니다.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과 기록이 남아있지 않게 하는 완벽한 인간삭제

 

일본에서 번창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만간 한국과 미국, 그리고 세상에 퍼질 위험한 사업 같기도 합니다.

 

 

 

미국에 그런 사업이 등장하면 달려가 상담받고 싶으십니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기대만큼 완벽히 삭제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다음 말씀을 들어보십시요.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우리의 아픈 과거를 지워주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해 주시는 분이 있으십니다.

 

가을,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서있으면 우리 쓰린 상처를 완벽히 삭제해 줍니다.

 

보혈이 떨어지는 십자가 아래 있으면 누구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답니다.

 

 


고발과 콩알

 

 

 

한국의 조상들은 콩을 심을 세알을 심었답니다.

 

알은 벌레나 새가 먹으라고

 

알은 이웃에게 나누려고

 

마지막 알은 자신이 먹으려고

 

 

 

콩알하나마다 아름다운 희망을 품고 있었고

 

세콩알이 어울려 멋진 노래를 만들곤 했습니다.

 

 

 

지금은 슬프게도 한국은 거의 원한에 가득 고발 공화국

 

드라마나 현실에서 고발 중독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여야 정치 지도자들의 서로를 향한 고발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아이들 조차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급우들을 서슴없이 고발합니다.

 

 

 

선진들이 물려준 세콩알의 정신이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놀랍게도 선진들의 마음을 품은 '세콩알' 이름의 기업도 있습니다.

 

고발과 콩알, 선택 속에 한국의 그림은 더욱 달라질 같습니다.

 

'세콩알' 아니라 '네콩알'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 교회가 너무 그립습니다.

 

 


Beyond Utopia (이상적인 나라를 넘어)

 

유토피아는 토마스 모어가 1516년에 펴낸 소설의 제목입니다.

여기서 유토피아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나라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그런 이상향(理想鄕)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그런 나라를 만들겠노라 앞다투어 공약으로 내놓곤합니다.

 

‘Beyond Utopia’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유대인 제작자가 만든 탈북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3대 김씨 세습을 이어가는 저들이 북한을 유토피아라고 속이고 있습니다.

굶어 죽는 곳, 억압받는 곳이 어찌 유토피아일 수 있습니까?

 

영화 ‘Beyond Utopia’는 북한은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한 사람이라도 구출해 내겠다는 목숨 건 이야기 ‘Beyond Utopia’

그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은 놀랍게도 목사님을 비롯 크리스천들입니다.

그 영화의 출연과 제작의 주인공들이 지금 우리 교회를 방문중에 있습니다.

 

북한 주민이 자기들이 있는 곳을 유토피아로 착각하듯이, 한국에도 미국에도

자기들이 사는 곳을 유토피아로 잘못 생각하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더 늦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건져내어 ‘Beyond Utopia’

곧 천국으로 이끌어야 하겠습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길이신 예수님께로

 

 


활기찬 여름나기

 

많이 지칠만한 더운 여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쳐만 가는 이때에 활기찬 여름나기할 방법이 없을까요? 있습니다.

 

다음 문구와 비슷한 내용을 식당이나 상점에서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Your satisfaction is our constant vitality.

당신의 만족은 우리의 변함없는 활력제입니다.

 

소비자들이 만족할 때 지쳤던 사업자에게 활기찬 힘이 솟는다는 것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킹덤미션 (Kingdom Mission)이 있었습니다.

여러 나라와 동시다발적으로 예배, 교육, 친교 등 많은 사역을 진행하였는데

현지 시간을 고려해 뉴욕에서는 한 밤중에 사역을 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모두 즐겁고 활기찼다는 것입니다. “우째 이런 일이?”

그들의 모습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주님의 기쁨이 나를 힘 있게 합니다.

The Joy of the Lord makes me strong.

 

병원 문을 닫고 참여했던 분은 선교를 위해 지금의 직업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네 식구가 계속 참여하면서 선교는 자기 가족의 소명이라고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진 주님께 기쁨을 드렸던 선교 이야기들....

더운 여름, 우리는 무엇으로 주님께 기쁨을 드릴까요?

그것을 찾아 활기찬 여름나기를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의 시작은 아침이고 하루의 끝은 저녁입니다.

동이 트는 아침,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활기찹니다.

노을 지는 저녁, 하루의 끝은 아름답긴 하지만 늘 피곤합니다.

 

창조 때는 달랐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루의 시작은 저녁이었고, 하루의 끝이 아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원래의 하루는 시작보다 끝이 더욱 힘이 넘칩니다.

 

오늘은 교회학교 졸업 예배가 있는 주일입니다.

졸업생들에게 오늘은 시들한 저녁이 아니라 가장 희망찬 아침과도 같습니다.

이들에게 찬란한 아침 영광의 빛이 비추일 것입니다.

이들은 우울한 세상을 희망으로 바꾸고 빛으로 채울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졸업생들이 있기까지

교사님들의 헌신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모님들의 수고가 마르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성도님들의 기도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축복합니다.

 

 

 

 

 


고독한 숫사자

 

초원의 제왕(帝王) 사자도 외로울까요?

외롭답니다. 적어도 숫사자는.

암사자보다 현격히 떨어지는 평균수명을 사는 숫사자는 나이가 들면서

무리를 지어 지내는 암사자와 새끼 곁을 떠나 홀로 다니곤 합니다.

모계(母系) 중심인 사자들의 사회이기 때문일까요?

 

누구에게도 없는 멋진 갈기와 누구도 범접지 못할 힘이 여전히 있어도

고독한 숫사자의 걸음과 눈망울은 애잔하기만 합니다.

 

고독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로, 공동체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외치지는 말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는 싫어. 교회는 결코 안 나갈거야

나는 교회는 나가지만 다른 사람들과 절대 어울리지는 않을거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도 고독한 숫사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어 함께 웃고 함께 울며 그날까지 함께 가야 합니다.

나 홀로 멋진 그리스도인은 없답니다.

어울려야 그리스도인이고 그 모습이 아름답담니다.

 

 

 

 

 

 


흘러내리는 침

 

흘러내리는 침을 삼키실 수 있으십니까? 행복하시군요.

사랑하는 가족과 허그(hug)하실 수 있으십니까? 축하드립니다.

아침에 두 눈이 떠지십니까? 멋지시군요.

숨을 스스로 들이 마시기도 하시고 내쉬기도 하실 수 있습니까? 대단하십니다.

 

장 도미니크 보비라는 여인은 그렇게 못했습니다.

세계적 여성잡지 편집장이었던 보비는 43세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전신마비가 되어 단지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왼쪽 눈꺼풀만으로 알파벳을 표현하였고, 15개월 동안 20만 번의 깜빡이는

눈꺼풀을 읽어낸 대필자 크로드 망디발을 통해 잠수복과 나비라는 책을 썼습니다.

 

몸은 비록 잠수복을 입은 것처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지만

그의 영혼은 나비처럼 훨훨 날았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 좌절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흘러내린 침을 삼킬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의 책 서문에 썼답니다,

그는 그의 책 출간 8일 만에 심장마비로 그가 꿈꾸던 나비가 되어 날아갔답니다,

 

지금 흘러내리는 침을 삼키실 수 있으십니까?

~~그대, 행복한 사람이시여!

 

 


행복은 어디에

 

이것이 행복이라오라는 주제로 시작된

2023년 전교인 여름 수련회가 오늘로 막을 내립니다.

행복하십니까?

일주일로는 행복을 못찾았으니 행복을 더 찾아 나서야 하나요?

 

강사 목사님이 말씀을 통해 행복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셨습니다.

구원이 행복이라고.

동행이 행복이라고.

약속이 행복이라고.

 

그렇다면 행복은 멀리 찾아나설 일이 아닙니다.

행복은 이미 내게 있습니다.

내게 있는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이미 물속에 있는 물고기가 물을 찾아 나서는 것과 같습니다.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선명하게 티가 납니다.

그 사람의 얼굴에 행복이 담겨 있습니다.

그 사람의 언어에 행복이 흘러 넘칩니다.

그 사람의 태도에 행복이 한껏 보입니다.

 

그대가 행복한 사람이기를

 

 

 


뒷모습

 

엊그제 공항으로 가는 차에 오르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동안의 준비로 많이 지쳤을 터인데,

여러 짐을 메고, 끌고 가니 몹시 힘들었을 터인데,

이곳에 남겨진 일들이 만만치 않아 마음이 심히 눌렸을 터인데,

그들은 아무런 내색 없이 차에 올라 기쁘게 손으로 하트모양을 그리거나

붉은 눈시울로 손을 흔들며 떠났습니다.

 

단기 선교 대원들, 그들은 덥고 열악한 선교지에서 선교사님들과 함께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과 말씀을 뜨겁게 펼칠 것입니다.

이제는 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이 큽니다.

킹덤미션을 통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그들과 조우(遭遇)할 것입니다.

 

사노라면 뒷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뒷모습,

예수님을 따라가는 뒷모습,

성령으로 봉사하는 뒷모습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모두에게는 마지막 뒷모습을 남길 때가 머잖아 찾아옵니다.

우리가 이 땅에 남길 마지막 뒷모습이 어떠할지 자못 궁금합니다.

 

 

 

 

 

 


은혜로운 이별

 

 

내 평생 살아온 길 뒤 돌아보니

짧은 내 인생길 오직 주의 은혜라

주의 은혜라 주의 은혜라

내 평생 살아 온 길

주의 은혜라 주의 은혜라

다함이 없는 사랑

달려갈 길 모두 마친 후

주 얼굴 볼 때

나는 공로 전혀 없도다

오직 주의 은혜라” (손경민 목사님)

 

7월 첫 주일입니다.

2023년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막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짧은 전반전을 돌이켜 보니 오직 주의 은혜이었습니다.

남은 짧을 후반전을 예상해 보니 오직 주의 은혜일것입니다.

 

오직 주의 은혜라라는 곡을 만드신 손경민 목사님.

20131027. 받은 은혜, 받을 은혜를 나누며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내일, 전교인 여름 수련회 강사님으로 다시 만나게 됩니다.

누군가와 헤어져야 한다면 반드시 은혜로운 이별이 필요합니다.

내 인생에 만났다가 헤어진 사람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니까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시간에 여기서!

아니면 달려갈 길 모두 마친 후 영원히 거기서!

 

 

 

 

 


하나님이 휴가 가신다면

 

기계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것들을 계속 사용한다면 곧 둔탁(鈍濁)해 지거나 끝내 망가질 것입니다.

기계도 그렇다면 사람은 어떠하겠습니까?

사람에게 휴식이란 꼭 필요하며 그것은 재충전의 시간이요 새 출발의 디딤돌입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잠시라도 휴가를 가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세상에는 대혼란이 올 것입니다.

누가 광대한 우주를 오차 없이 돌아가게 할 것이며,

누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피조물을 보호하시겠습니까?

 

기가차게 이렇게 외치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하나님, 당신이 더 이상 필요 없으니 당장 우리를 떠나시오’ (21:14 참조)

 

이 무슨 해괴(駭怪)한 망언이며, 교만의 극치(極致)입니까?

 

이 뜨거운 여름, 잠시의 휴가도 없이 우리를 주목하고 돌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도 결코 휴가 보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감사와 찬양은 휴식 없이 항상 드려야 하겠습니다.

 

 

 

 

 

 

 


사랑이 식기 전에

 

결혼 생활을 막 시작하려는 사위에게 장인(丈人)이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내 딸에 대한 사랑이 식거든, 미워하지 말고 내 딸을 그대로 내게 돌려주게나.

내 딸을 때리고 싶거든, 손찌검하지 말고 내 딸을 그대로 내게 돌려주게나.

내 딸을 버리고 바람을 피우고 싶거든, 버리지 말고 내 딸을 그대로 내게 돌려주게나.

 

많은 어려움 속에 곱게 키워낸 딸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사랑은 잘 식습니다.

그리고 그 식은 사랑이 아름다왔던 관계를 파멸로 이끌기도 합니다.

사랑이 식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일생에 몇 번이나 말해야 할까요?

평생 청혼할 때 딱 한 번만 말하는 대단한 남성도 있는데, 이 노래를 들어보십시오.

 

천만번 또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사랑해

 

그렇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해야 할 말이 있다면, ‘사랑해입니다.

평생 천만번 반복 하리라는 다짐으로 해야 할 말이 있다면, ‘사랑해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식기 전에 날마다 사랑합니다, 나의 주님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식기 전에 날마다 사랑해요, 그대를

자녀에 대한 사랑이 식기 전에 날마다 사랑한다, 애들아

성도에 대한 사랑이 식기 전에 날마다 사랑합니다. 성도님

 

예수님도 날마다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목사가 이유

 

장로님은 중학교 2학년때 은혜받아 목사가 되기로 서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끝내 목사가 안된 이유가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로님들의 주일 대표기도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어제 새벽, LA 열매 교회에서 말씀을 전한

아침식사는 맛있는 설렁탕이었습니다.

식사를 대접해 주신 열매교회 장로님은  부산 초량교회 출신이셨습니다.

장로님은 중학교 목사가 되기로 서원하고 어른 예배에 참석하셨답니다.

그런데  모든 장로님들의 대표 기도 가운데 빠지지 않는 구절이 있었답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의 피가 흐르고 있는 초량 교회가----"

 

부산 초량 교회는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 시무하셨던 교회입니다.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하신 장로님은 대표 기도를 들으며

목사는 반드시 순교를 해야 하는 줄로 생각하셨답니다.

순교가 두려우셨던 장로님은 목사가 되겠다는 서원을 철회하셨다고 합니다.

 

순교가 목사 됨의 기준이라면 저는 아직도 제대로 목사가 아닙니다.

희생에 인색한 제가 목사의 직분을 고민 없이 유지하고 있음에 놀랐습니다.

목사다운 희생을 없으니 목사의 길을 가지 않으시겠다는 양심고백이

 

저를 계속 부끄럽게 하였습니다.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유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가고 싶은대로 가고, 말하고 싶은대로 말하고.

교회 안에서도 마음껏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이런 자유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그 대가(代價)를 치르고 누리는 것입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자유는 6.25라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자유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6.25가 누구에 의해, 언제, 그리고 왜 일어났는지 잘 모릅니다.

이런 젊은이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하거나 후회해 본적은 없다.

우리는 그 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그렇게 했다.

내 살던 나라여! 내 젊음을 받아주오. 나 이렇게 적을 막다 쓰러짐은

후배들의 아름다운 날을 위함이니 후회는 없다.’

 

후배들, 곧 오늘날 우리들의 자유를 위해 자기 생명을 주저없이 바친

어느 무명의 학도병(學徒兵) 전사자가 남긴 편지입니다.

오늘은 6.25입니다. 우리의 자유가 무엇을 주고 얻은 것인지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죄로부터의 영원한 자유를 위해

누가 어떤 희생을 치르셨는지 또렷이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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