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일찍이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를“도전과 응전”이라고 갈파하였습니다.
역사를 멀리 조감하고 깊이 통찰한 자의 간결하고도 심원한 표현입니다.
예기치 못했던 도전들이 힘든 것이기는 하지만
그 도전에 나 몰라라 눈을 감을 수는 없습니다.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타협도 정당한 태도가 아닙니다.

도전에는 단 하나 응전이 있을 뿐입니다.

 

역사는 어려운 도전에 적절히 응전함으로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일구어왔고

반대로 적절치 못한 응전은 역사 속에서 소멸되어 갔습니다.

2020년의 역사도 도전과 응전의 역사였습니다.
지난 11개월 내내 어렵고 어려운 일들이 물밀 듯 우리에게 도전해 왔습니다.

치열한 응전의 이야기가 한둘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역사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롭고 용기 있는 자들을 통해 기록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재앙 같은 도전은 멋진 역사 이야기를 남기라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지금까지 퀸즈장로교회는 그 어떤 도전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올해의 남은 한 달,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에도 여러 도전들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도전을 항상 새롭게 비상하는 도약대로 삼았던 우리는
도전에 감사하며 담대히 응전할 것입니다.


지금은 몰라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펼치시는 일들을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한 없이 지혜로우신 하나님이 2020년에 행하시는 일들을

한계를 지닌 사람들이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몰라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은 변치 않으시기에

교회 문이 열리고 닫히는 이유를
내가 잘 모를 뿐, 무엇이 걱정 되겠습니까?

 

지금은 몰라도
감사가 넘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기에

추수감사 주일인 오늘,
불안의 한숨보다 감사의 찬양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몰라도
언젠간 압니다.

그렇다고 그 언젠가만 기다리며 오늘을 쉽게 살겠다는 것은 아니랍니다.

그래도 오늘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있을 터이니
지금 그것을 부단히 찾아 오늘도 성실히 행하려 합니다.


손가락이 열 개인 이유를 아시나요?

어느 시인은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가가 엄마 배속에서
한달에한번손을꼽아보다가
열 번을 헤아리고 세상에 나오는 가 봅니다.
아가는 자기의 생명을 열 달이나 품어 준 엄마를 잊어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손꼽아 보아요.
열 손가락을 열 번 접었다 펴도 다 헤아리지 못할 것입니다.
받은 축복을 헤아려보지 않고 당연한 것처럼 여기면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가 봅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안녕하세요.
주일 잘 지내고 계시지요.
저는 지금 교우 여러분들의 기도 가운데
이곳 영생장로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혼자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우들의 간절한 기도가

함께함을 매시간 생생히 느끼는 현장입니다. 감사합니다.

어제 아침에는 이곳에 계신 우리 퀸즈장로교회 출신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식사의 시간을 가졌답니다.
이곳에는 우리 교회에서 성장하시고 사역하셨던 목사님들도 계십니다.

복음을 위해 진력하시는 그들을 뵈면서
다음 세대를 향한 우리 교회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았다면 웃음이 그치지 않았던 이야기가 결코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보니 우리 모두는 멀리 흩어져 있어도
여전히 한 가족임을 다시 확인한 시간이었습니다.

퀸장의 가족 됨이 이렇게 귀하다는 것을 멀리(?) 나오니 새삼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가족임이 맞습니다.
그래서 이토록 여러분을 뵙고 싶은 것 같습니다.
이제 곧 필라에서 뉴욕으로 올라갑니다. 가서 뵙겠습니다.

어려울 때 조심하며 지내십시오.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팬데믹의 바람은 거셌습니다.
많은 것들을 앗아간 바람이었습니다.
잃은 것이 많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잃기만 한 것은 아니라 얻은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은 늘 손익을 계산하시지요?

우리도 이제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얻었는지.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의 꿈을 잃었습니다.

꿈을 잃었다고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꿈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것은 굳이 이루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음을 안 것입니다.

부질없는 것을 앗아간 팬데믹은
가장 중요한 것을 얻게 하였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지난주 전 세계의 관심을 끌어모은 미국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 누구든 선거의 결과에서 잃은 것만 가득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선거의 패배를 통해 모든 것이 다 사라진 것 같은 그 자리는
진짜 보석을 얻을 수 있는 놀라운 자리임을 누구도 간과해서는 안 된답니다.


11월 3일 화요일 내일모레는 미국의 Election Day 입니다.

대통령, 상원의원 일부, 하원의원 전체에 대한 선거가 있습니다.

선거는 선택입니다. 그 선택의 결과는 매우 큽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향후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다른 영향을 크게 끼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표퓰리즘을 앞세운 정치가들의 감언이설에 속고
또 눈앞의 자기 이익만을 좇아 선택하기보다
미국 역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더 넓고 긴 안목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선택하려는 사람이
어떤 가치를 가장 중요시 여기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세우는 사람인가,

허무는 사람인가는 분명히 확인해야 합니다.
힘든 상황에도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가,

인권이란 이름으로 법과 질서를 유린하는가.

물론 그런 분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포용과 배려와 경청의 리더십을
선명히 갖추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제 향후 몇 년 또는 그 이상을 좌우할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11월에 선택해야 할 것이 또 있습니다.
그 출구를 알 수 없는 팬데믹이 여전히 11월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때 두려움을 선택할 수도 있고 담대함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때“아직까지 이게 뭐람”하고 불평을 선택할 수도 있고
우리는 이 때“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많도다”하며 감사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불평과 감사,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느냐 보다 더 중요합니다.


503년 전, 곧 1517년 10월 31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 날 독일 비텐베르크 성벽에 95개 조항의 글이 붙여졌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글이었습니다.
마틴 루터가 그렇게 하였고
이 일은 종교개혁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자기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온 세상에 일깨우는 자명종이기도 하였습니다.

루터, 쯔빙글리, 칼빈 등은 종교개혁의 횃불을 밝히 들었고

오늘날까지 그 빛을 온 세상에 비추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했던 것을“The Five Solas”라고 합니다.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Sola Fide (오직 믿음)
Sola Gratia (오직 은혜)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오는 수요일은 종교개혁 기념 찬양 예배로 드립니다.
종교개혁의“The Five Solas”를 주제로 말씀과 찬양 연주가 있을 것입니다.

함께 참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 물음에도 답을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오백 년 동안 종교개혁자들의 후예들이 답했던 것입니다.

그대는 진정“오직 다섯”인가?


어제 장례식을 마쳤습니다.
지난 목요일 새벽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권사님.
며칠 전 아흔한 번째 생신을 지내셨습니다.
어머님의 상황이 안 좋아지신다는 소식을 듣고
유럽에 사시는 따님이 서둘러 뉴욕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 때문에 그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평소 일 년에 두 차례 찾아 뵐 때 걸리던 시간의 몇 배를 보내고야

뉴욕에 도착하여 그리운, 그리고 아프신 어머니를 뵙게 되었습니다.

따님이 미국에 체류하는 시간을 넉넉히 갖지 못한 상황에서

여러 날 식사를 드시지 못하여 점점 쇠약해지시던 권사님은

자신의 건강보다 더 걱정되시는 것이 있으셨습니다.
따님이 자신 때문에 힘들어지지 않으시길 바라신 것입니다.

자신은 하나님 품에 어서 안기고 딸은 어려움 없이

자기가 사는 곳으로 안전히 돌아가길 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라”는 위대한 유언을 따님에게 남기신 권사님.

하나님 품에 안기시던 날 새벽,
따님에게 가슴이 답답하시다는 말씀을 하시고
따님의 손을 잡은 채 따님의 기도 속에

이 땅을 떠나신 권사님은 끝까지 따님을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다 그러신가 봅니다.
살아생전 자신보다 애절히 자녀를 돌보시느라
그 몸이 약하고 약해지신 어머니들은
이 땅에서 호흡이 멈추는 마지막 순간에도 여전히 자녀 걱정이신가 봅니다.


1492년 8월 3일 스페인을 출발하여 그 해 10월 12일
지금의 바하마 제도에 도착한 배가 있었습니다.
그 배가 항해하는 내내 밖에서는 풍랑, 안에서는 불평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배의 항해 일지는 매일 다음과 같은 글로 마감하였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서쪽으로 전진했다.”

아메리카를 발견한 콜럼버스가 이끈 배입니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온 그를 시기한 사람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빈정거렸습니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사람들에게 달걀을 세워보라고 했습니다.
다들 끙끙대며 달걀을 세워보려고 했지만 아무도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콜럼버스가 달걀의 한쪽 끝을 조금 깨뜨려서 세웠습니다.
사람들은“그렇게 라면 나도 달걀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세운 사람은 콜럼버스가 처음이었습니다.

남이 무엇인가 처음 한 것이 쉬워 보여도
실제 처음 그렇게 한 사람은 그 사람뿐입니다.
발상의 전환 없이는 새로운 길을 처음 갈 수 없습니다.

뚝심이 없이는 그 새로운 길을 쉽게 포기합니다.

달걀을 세우듯이 새로운 발상으로 출발한

서쪽으로의 항해를 포기하지 않았던 콜럼버스.
내일은 그의 신대륙 발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도 콜럼버스의 달걀은 서쪽으로 계속 가는데

오늘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들으셨나요?
가을벌레 소리와 함께 왔는데 못 들으셨는가 보군요.
어느덧 다가 온 가을이 아직 우리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머지않아 가을은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우리 곁을 떠날 것입니다.

매년 가을이 우리 곁에 머무를 때
가을이 우리의 손을 붙잡고 이끌어 가는 곳이 있었습니다.

떠들썩한 가을 바자회였습니다.
성도 소리 가을 소리,
음식 냄새 가을 냄새가 한껏 어울려 있던 곳이지요.

그런 바자회가 올해는 힘들 줄 알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 가을에도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우들은 가을을 그냥 보내려 하지 않습니다.
예년처럼 우리 교회 가을 바자회에서 같이 가을 노래를 부르자고 합니다.

저 건너편에서 오랫동안 땅을 다졌던 새 성전이
이제 막 고개를 살포시 들려고 합니다.
어제 시작되어 10월의 매 토요일마다 있을 가을 바자회는
예년보다 규모는 작아도
마음은 이 가을, 그 어느 날의 따가운 햇살보다 더 뜨거울 것이랍니다.


얼마나 추웠을까요?
찬 바다에서.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사랑하는 가족들이.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자기를 건져 줄 사람을.

그는 끝내 그는 그 찬 바다에서 숨졌습니다.
북쪽에서는 총을 쏘고, 남쪽에서는 바라만 보고.
아무도 그를 구하러 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지난주 한반도 저 북녘 바다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 날 그 시간, 그 바다를 지켜본

미상의 비행물체가 하늘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다시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그 사람.

누가 무엇으로 설명하고
누가 무엇으로 변명해도
우리 모두의 애통과 분노를 가눌 길 없습니다.

차갑고 무서운 바다 같은 세상에서 영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그들을 외면하는 사람들은 많고, 그들을 구경하는 자들도 적지 않은데.

그들을 구하러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하늘 하나님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실 것입니다.


올 가을 영성훈련 플러스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올 가을 감사쏭 플러스를 부르고 싶습니다.

들어보셨나요? 먼저“감사쏭”을 들으셔야 합니다.

밝고 경쾌하게 부르지만 내용은 묵직합니다.

그래서 감사 그래도 감사

그러나 감사 그러므로 감사

그렇지만 감사 그럼에도 감사

그러니까 감사 아주 그냥 감사

그리하실지라도 감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이래도 저래도 감사

매일매일 감사 항상 감사

쉬지 말고 감사 범사에 감사

범사에 감사 범사에 감사

감사가 넘치고 있습니다. 너무 멋진 감사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원망 대신, 불평 대신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사 몇 줄 더 넣을 수 있다면 다음 가사를 플러스하고 싶습니다.

있어도 감사 없어도 감사

남아도 감사 모자라도 감사

성공도 감사 실패도 감사

건강도 감사 아파도 감사

살아도 감사 죽어도 감사

여러분들도 플러스 하실 감사 내용이 많으실 것입니다.
가을이 조금씩 깊어집니다. 우리 모두 감사 플러스의 가을을 살아요.


저의 자리는 늘 약함의 자리였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내세울 것이 없는 자리였습니다.

내세우기는커녕 부끄러운 것들이 많았습니다.

올해 초부터 스멀스멀 다가오다 마침내 전 세계에 밀어닥친 코로나 바이러스.

우리도 사순절 중간 즈음부터 온라인 예배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그 무렵부터 저의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떠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교우들의 고통이 커져 갈수록 저의 아픔도 깊어졌습니다.

교우들이 이런저런 시름에 잠을 못 주무시는데
저 또한 잠을 깊이 이루기가 힘들었습니다.

이번 저의 약함의 자리도 은혜의 자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루하루 말씀으로 저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들의 넘치는 사랑과 뜨거운 기도로 흠뻑 젖는 축복의 자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목요일 어깨 수술을 잘 마치고 회복의 시간으로 들어섰습니다.
많은 어려움 가운데 계신 우리 교우들의 회복이 저의 회복보다

더 앞서시기를 사랑과 기도에 빚진 약한 목사의 간절한 기원입니다.


가을에 뭘 하실 거예요?
가을에 하기 좋은 것이 있습니다.
염려입니다.
가을인데 딱히 열매는 없지....
낙엽은 한 둘 떨어지지....
정말 염려가 한 둘이 아닙니다.
시인들에게 가을에는 무얼 하는지 물어보세요.

가을이 내게 말하네
가을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인데 뭘 하느냐고

나상국 시인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하네요.

김현승 시인은 기도할 것이라고 하네요.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제게 염려 많은 가을에 뭘 할 거냐고 물으신다면

찬양으로 답하고 싶습니다.

염려 다 맡기라 주가 돌보시니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가을 뜨락에서 염려를 뽑고 주님의 평화를 가꾸고 싶습니다.


아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아들이 어릴 적에 옆에서 나지막이 자장가를 불러 준 적이 있습니다.

노래 부르는 가운데 아들이 잠들기도 하고
때론 제가 먼저 잠들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아기 착한 아기 소록소록 잠들라

하늘나라 아기별도 엄마 품에 잠든다

어제 아들을 위한 노래를 들었습니다.
팬더믹 때문에 가족만 모인 결혼식에서
아버지가 아들의 결혼을 축하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버지의 노래를 들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아들을 보았습니다.

완전한 사랑 하나님의 사랑 다함이 없는 사랑에 겨워
둘 한 몸 되어 보람 있게 살라 손 모아 주님 앞에 빕니다

하나님도 아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울려 퍼진 이 노래는
아들 예수님이 사역하시면서 힘드실 때마다 큰 힘이 되셨음이 분명합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여러 상황 속에서 아들을 위해 짧게 부르는 아버지들의 노래이지만

그 아들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사닥다리에 올라가 보신 적이 있으시죠?

어떠셨나요?

사닥다리는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줍니다.

사닥다리 아래서는 결코 볼 수 없던 광경을 보게 하고,

결코 할 수 없던 일을 하게 하고, 결코 찾을 수 없던 것을 찾게 하는

보배로운 물건입니다.

 

사닥다리는 큰 어려움을 막기도 하고 사람을 구하기도 합니다.

1층에 세 들어 살 때, 2층에서 연기가 났습니다.

2층에 사는 사람이 불 위에 냄비를 올려놓은 것을 잊고

출타한 것입니다.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 2층 창문으로 진입하여 화재를 막은

사람은 누구인지 이름을 굳이 밝히지 않겠습니다. ^ ^

 

사닥다리는 때때로 위험도 합니다.

그 위로 올라간 사람을 그 아래 있는 자들이

잘 붙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 사닥다리를 밑에서 조금만 흔들어도

위에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위험에 처하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이 땅의 어떤 사닥다리와도 견줄 수 없는

사닥다리가 멋지게 펼쳐집니다.

창세기 28장에 야곱 앞의 사닥다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늘에서 땅까지 세워진 사닥다리를 통해

이 땅 중심의 삶을 살던 야곱이 드디어 하늘 비전을 갖고 살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사닥다리 중, 당신이 경험한 사닥다리는 어떤 사닥다리였나요?

 


오늘은 교육부 졸업 예배가 있는 날입니다.
각 부서에서 신앙교육을 받고 다음 부서로 올라가기도 하고

고등부를 졸업한 친구들 중엔 일부는 타주로 떠나기도 합니다.

졸업의 자리에서 꼭 해야 할 일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난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나의 오늘이 있기까지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교역자님, 부장님, 선생님들의 희생과 수고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부모님의 나를 향한 눈물 어린 기도와 끝없는 헌신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세우려는 모든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졸업의 자리에서 꼭 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은
앞날을 내다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실 일들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부르심과 이끄심에 순종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미래를 바라보십시오.

우리 교회의 자랑스러운 보물 같은 졸업생들이여,
졸업의 자리는 이렇듯
과거에 대한 회고와 미래를 향한 전망의 자리임을 잊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우리 졸업생들이 어디를 가나
하나님의 가호(
加護)하심이 넘치시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문화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연을 훼손하는 것은 문화가 할 일이 아닙니다.
자연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자연에 잠긴 풍성함을 드러내는 것이 문화입니다.

문화 명령은 사람들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랍니다.

이런 까닭에 모든 문화는 종교성을 반드시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문화의 배후에는 하나님에 대한 견해가 필연적으로 있는 것입니다.
어떤 시대의 어느 문화이든 문화는 그 자체의 모습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지를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히스핑거(His Finger)를 들어보셨습니까?
히스핑거는 주님의 손가락을 지칭합니다.
히스핑거는 우리 교회 안에 있는 문화출판사 이름입니다.
히스핑거 몰(Hisfingermall)은 우리 교회 밖에 세운 회사 이름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문화 명령을 효과적으로 잘 수행하고자 세운 기관들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손으로 세상을 창조(Creation)하셨습니다. (시 8:3)
주님은 주님의 손으로 세상을 구원(Restoration)하십니다. (요 8:8)
주님은 주님의 손으로 세상을 통치(Governance)하십니다. (사 40:10-11)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과 통치의 이야기를 문화 영역에서 펼칠
히스 핑거와 히스 핑거 몰에 대한 뜨거운 관심, 기도, 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랍니다.


나폴리 민요 “오 쏠레 미오 (나의 태양)”을 들어보신 적

있으시지요.

적잖은 분들이 그러셨겠지만 저도 들어본 적도 있고

부른 적이 있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가사들이 기억납니다.
멋들어진 선율을 타고 오르던 가사는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오 쏠레 미오 스딴 프론떼 아 테

(나의 태양 너의 얼굴 속에 있다)

오 쏠레, 오 쏠레 미오 (태양, 나의 태양)
스딴 프론떼 아 테! (너의 얼굴 속에 있다)
스딴 프론떼 아 테! (너의 얼굴 속에 있다)

8월의 태양만큼 작렬하는 멋진 태양이 어디 있을까요?

간간히 내리는 소낙비 뒤로 숨긴 하지만
8월의 태양은 온 땅에 가득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속에서 그런 태양을 본다는 것은

너무 벅찬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난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그에게 광채가 임한 것이지요.
우리 얼굴 속에도 태양처럼 광채가 가득 차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중국의 신해혁명 때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을

구분하는 기준이

그 얼굴에 있는 광채였다고 합니다.
자 이제, 태양이 온 땅에 가득한 8월을 맞았으니
우리 얼굴의 광채도 더욱 빛나야겠지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 안 됩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이 더운 여름에도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교육과 선교입니다.

이 여름에도 우리 교회에서 교육과 선교는

멈추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VBS를 통해 신앙을 훈련하는 교육이 펼쳐집니다.
각 교육부서의 준비는 예년에 비해 각별합니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비대면 VBS는

상상 이상의 준비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각부 지도자들과 교사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선교도 여러 선교지의 선교사님들과 Zoom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들을 돕기 위한 선교 바자도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있을 것입니다.

팬더믹 상황을 구실 삼아 흘려보낼 수도 있었을

단기선교를 해외선교위원회를 주축 해서

창의적으로 이어가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올해 8월을 수놓을 신앙 교육과 복음 선교를 흘려보내지 마십시오.

우리가 해야 할 교육과 선교에 어떤 형태이든지 동참한다면
훗날, 가장 어려웠던 2020년의 VBS와 선교를 기억하여 말할 것입니다.

그날, 주님의 칭찬과 위로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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