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나 하나 꽃 피어

 

나 하나, 별 것 있겠느냐며 가끔 자조적(自嘲的)인 말을 던지시나요?

이제 그런 말은 내 입에서 멀리~멀리 보내야 하겠습니다.

하나도 매우 소중하지만, 그 하나가 여럿과 어울리면 또 다르게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 혜안(慧眼)을 가졌던 조동화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내가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른 것 아니겠느냐

 

오늘은 임직 감사 예배를 드리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임직자마다 나만 바라보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내려놓고 최선을 다해 내 꽃을 피우면 됩니다.

그러면 여기저기 함께 핀 꽃들로 우리 교회는 마침내 온통 꽃밭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옛 선진(先陣)들부터 지금의 성도들까지 십자가로 짙게 물들어 있으니

임직자마다 너도나도 그 십자가에 물들면

우리 교회는 더욱 활활 타오는 붉은 산이 되어

세상이 주목하고 세상을 바꾸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사람을 키우다

 

자전(自傳): 자신들이 직접 복음을 전한다.

자립(自立): 자기 스스로 재정을 감당한다.

자치(自治): 자기들 가운데 지도자를 세운다.

중국에서 40(1854-1893) 동안 선교사로 활동하였던 네비어스의 선교정책입니다.

 

이일훈 선교사님은 네비어스의 선교정책을 캄보디아의 선교정책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수많은 예산을 쏟아붓고도 아무런

소득 없이 미군이 철수하자 그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자주국방의 의지가 없는 나라에 미군의 원조(援助)와 철수(撤收)는 재앙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선교사를 의존하는 캄보디아 교회도 선교사가 철수하면

그대로 무너질 것 같아 자전, 자립, 자치의 선교를 펼치고 계신 것입니다.

선교사가 직접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너희 스스로 전해라.

선교사가 직접 재정을 돕지 않는다, 너희 스스로 재정을 만들어라.

선교사가 직접 지도하지 않는다, 너희 스스로 지도하라.”

 

어제 새벽에 말씀을 전해주셨던 이일훈 선교사님은

캄보디아의 지도자를 키우기 위해 교육이 필요함을 역설하셨습니다.

교우들의 기도와 헌신 가운데 완공을 눈앞에 둔 캄보디아 벧엘 국제학교는

사람을 키우는 학교입니다. 너무 필요하고 뜨거운 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Why Me?

 

“Why me?”

하나님, 왜 내게 이런 고난이 일어난 것입니까?”

우리는 고난의 이유를 묻고 싶고, 또 물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원한 답을 듣곤 하십니까?

 

아니지요.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대답을 듣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질문을 받는 것 같습니다.

너 고난 가운데에서도 나를 여전히 신뢰하니?”

 

고난의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고통 가운데 물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으로부터의 대답은 없었으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으셨습니다.

힘드신 일이 있어 “Why me?”라고 하나님께 물으셨습니까?

대답은 없어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거두거나

우리의 가는 길을 멈추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얼마나 아프셨나

 

내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가장 무거운 질문을 고난의 예수님께 던집니다.

예수님, 얼마나 아프셨습니까?”

 

돌아오는 답변은 없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53:7)

침묵이 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아프셨는지 끝까지 말씀을 안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산과 들과 초목은 그 눈물로,

그리고 해는 그 잃은 빛으로 예수님의 처절한 아픔을 절절히 일러줍니다

 

얼마나 아프셨나 못박힌 그 손과 발

죄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 예수님

하늘도 산과 들도 초목들도 다 울고

해조차 빛을 잃고 캄캄하게 되었네

오 놀라운 사랑 크시고 끝없도라

오 주님 사랑에 구원의 강물 넘치네

 

이제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아프신 십자가 위에서 끝까지 침묵하신 이유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봄이 오면

 

산에도 들에도 봄이 왔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짙은 향기를 날리며 여기저기 핀 꽃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모진 겨울바람에도 죽지 않고 견디다가

봄과 함께 꽃들이 아름답게, 굳세게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봄이 내 마음에도 오면 좋겠습니다.

그 꽃이 내 마음에도 피면 좋겠습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꽃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펴~~

 

눈이 시리게 찬란한 진분홍색 진달래 꽃도 좋습니다.

눈이 부시게 고결한 샛노란색 개나리 꽃도 좋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절이 성큼 다가오는데

내 마음에도 봄의 꽃이 어서 활짝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후반전(後半戰)을 달리다

 

얼마 전 지인(知人)으로부터 “Half Time”이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운동 경기에서 하프타임 이후 후반전이 중요하듯이,

인생 후반전의 중요성에 대한 책입니다.

사실 모든 것의 최종승부는 후반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갈렙은 후반전의 사나이들이었습니다.

한나나 에스더도 후반전이 멋있었던 여인들이었습니다.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는 인생의 후반전에 있는 자들의 대결입니다.

윤여정씨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74세 때 수상(受賞)하였습니다.

그들이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더라면 그들과 역사(歷史)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딱 절반, 2024년 사순절 서원 기도회가 어제로 딱 절반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순절의 후반전이 남아 있습니다.

잘 달리다가 멈칫거리면 안 됩니다.

아쉬운 전반전이었다고 후반전을 통째로 포기하면 안됩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설레는 후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늦지 않았습니다.

멋진 후반전을 기대하며 준비하십시오. 다시 신발끈을 잘 조여 매십시오.

그리고 다시 달리는 것입니다. 완주(完走)의 그 날까지.

 

 

 

 

 

 

 


베토벤을 죽였네

 

어느 의과대학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몹쓸 병에 걸려있고, 아내도 심한 병을 앓고 있다.

이들에겐 아이들이 넷 있는데, 하나는 며칠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남은 아이들도 병으로 누워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이 부인은 현재 임신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러자 한 학생이 대뜸 소리쳤습니다.

"낙태수술을 해야 합니다."

교수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는 낙태가 가장 적절한 답변 같지만

이 가정에 다섯 번째 태어난 아이는 다름 아닌 베토벤이었습니다.

베토벤이 아니어도 그래서는 안 되었을 것입니다.

 

카타르에서는 18회 아시안컵 축구 경기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16강 전과 호주와의 8강전은 드라마였습니다.

16강 전에서는 경기 종료 1분을 앞두고 동점골을, 이후 승부차기에서 이겼습니다.

8강 전에서도 패색이 짙어가던 시간에 동점골과 역전골을 넣은 것입니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최후의 시간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제직 수련회에서 강사 목사님은 주옥같은 말씀을 펼치시고 계십니다.

축구에 후반전이 중요하듯 제직에게 반전의 후반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다 이루었다가 예수님의 외침이셨다면,

우리도 끝까지 간다를 외쳐야 합니다. 안 그러면 베토벤을 죽일 수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

  

오늘은 퀸즈장로교회 설립 50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충격적이고도 경이로운 50년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 이야기는 50년 전에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아주 먼 옛날까지.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

퀸장을 향한 계획 있었죠

하나님께서 바라보시고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먼 옛날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계획의 첫 50년이 베일을 벗은 것입니다.

그 첫 50년을 돌아보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고난 가운데 성장하는 웅장하고 멋진 것임을 엿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50년의 커튼이 올라갑니다.

어떻게 될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크게 기대하셔도 됩니다.

아주 먼 옛날의 계획은 지난 50년으로 끝난 것이 아니니까요.

 

 

 

 


출발하라고 보낸 것이 아니라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한 탄자니아 선수 존 스티브 아쿠와리.

출발선을 빠져 나가려는 순간 옆 사람과 부딪쳐 넘어졌습니다.

피가 많이 흐르는 큰 부상을 입었고 의료진들은 그만 뛰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어나 뛰었고 쓰러지면 또 다시 일어나 절뚝 거리며 달렸습니다.

 

날이 어두워 결승점에 도착한 그는 따듯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자들의 질문도 받았습니다.

부상을 입고도 왜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끼?”

그는 눈물과 미소로 대답했습니다.

 

나의 조국이 이 먼곳까지 나를 보낸 것은 마라톤 경주를

출발하라고 보낸 것이 아니라 끝까지 완주하라고 보낸 것입니다

 

출발한 모든 자가 아니라 완주자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습니다.

다 이루었다 예수님의 선언이십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렸다 바울의 외침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내일부터 시작되는 사순절 서원 새벽기도회.

같이 출발해요. 힘들어도 모두 완주해요.

그리고 마지막 날, 완주자의 노래를 뜨겁게 함께 불러요.

 

 

 


험한 세상을 이기려면

 

사자와 양은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이 둘이 결코 같이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둘이 멋진 조화를 이루었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5:5-6)

 

예수님은 사자의 위용과 어린 양의 겸손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십니다.

불의 앞에는 강한 사자와 같으셨고 약한 자에게는 부드러운 양의 모습이셨습니다.

그 멋진 조화로움으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세상을 이기려면 강인함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부드러움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그 안에 사자와 양을 동시에 같이 가진 사람이 세상을 이깁니다.

당신은 사자이시면서 동시에 양이십니까?

그러시다면 당신은 이 험한 세상에서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기적의 행진

 

2024년 새해 첫 주일입니다.

첫 주일임에도 신년을 맞은지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작년 마지막 주일 이후 송구영신예배, 신년하례예배,

그리고 닷새 동안의 신년 특별 새벽기도회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어제 새벽 어느 성도께서 짧은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분은 이번 특새를 기적의 행진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금년 신년 특새의 주제로 지금도 기적이 일어난다

그리고 손들면, 드리면, 외치면, 믿으면, 손 떼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퀸즈장로교회는 기적이 일상이 되는 교회,

우리 교회는 오늘도 기적을 체험하는 교회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손들고 기도하는데, 주님께 드리는데, 대적을 향해 외치는데

그리고 믿음으로 행하며, 주님이 일 하시도록 내 손을 떼는데 힘쓰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 빰빰빠-

이제 막 2024년도 기적의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해를 그 어떤 놀라운 기적도 없이 그저 그렇게 사는데 만족하지 마십시오.

날마다 놀라움으로 가득 찰 기적의 행진에, 그대를 열렬히 초대합니다.

 

 

 


드디어 의문이 풀리다

 

너무 그리운 교우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휴스턴 한인중앙장로교회 청지기수련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해 주심이 말씀의 현장에서 선명히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청지기수련회는 우리  제직수련회와 내용과 형식이 똑같습니다.

 

45주년 교회의 따듯한 장로님들과 밝은 교역자님들

순박하게 말씀을 사모하는 제직, 순서 맡은 분들이 최선을 다하는 찬양 등이 낯설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몰랐던 담임 목사님께서 저를, 초청하셨는지.

쨔자잔, 드디어 의문이 풀렸습니다. 이곳 교회는 우리 신문사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담임 이재호목사님께서 칼럼을 매주 읽으시면서 저를 초청하고 싶으셨답니다.

 

금요일 저녁 식사대접 해주시던 장로님도 Y 신문방송학과 출신이셨습니다.

자연스레 종이 신문의 역할과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쉽지 않은 가운데 문서 선교를 섬겨오던 제게 위로와 새로운 다짐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문서 선교에 기도와 후원을 아끼지 않으신 교우들과 후원교회, 그리고 필진이 얼마나 고마우신지.

 

이번 금요일부터는 우리의 제직수련회가 열립니다.

혹시 우리 교우들께 무슨 의문이 있으십니까?

수련회 중에 말씀으로 은혜도 받으시고, 의문도 풀리시길 기원합니다.

 

~기대되는 수요일의 일일 부흥회도 있군요. 오는 수요일부터 뵈여요. 저도 갑니다.


고백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있습니다.

고백입니다.

사랑을 고백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언어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능력 있는 말이 있습니다.

고백입니다.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의 용서는 임하고 마귀는 도망갑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익한 말이 있습니다.

고백입니다.

상대방에게 먼저 잘못을 고백하면 모든 것이 회복되고 일이 잘 풀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말이 있습니다.

고백입니다.

고백하기를 주저주저 하다가 후회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선택하십시오. 고백하기를

용기내십시오. 고백하기로

 

 

승리하십시오. 고백하셔서


겨울에 내리는

 

우리가 사는 동네가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겨울이면 눈이 펑펑 쏟아져 사람도 자동차도 며칠씩 다닐 없었습니다.

상점마다 모자, 목도리, 장갑, 부츠 겨울 물품은 없어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그런 정경을 없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비가 계속 내렸습니다.

눈이 와야 때에 비가 내리니 이상 기후에 대한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비를 다르게 생각하고 다시 바라 보았습니다.

새로운 생각으로 바라본 비는 계절을 앞서 찾아온 희망의 전령이었습니다.

 

겨울 틈속에 잠깐 찾아온 비는머잖은 곳에 봄이 있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비는 눈처럼 살포시 내려 앉아있다 슬며시 떠나지 않았습니다.

봄에 틔울 자리를 미리 알아보듯 돌아다니다 기약의 여운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손이 시려워

    발이 시려워

    겨울 바람 때문에----"

 

며칠 손도 발도 시려울 날씨가 예고되어 있긴 해도, 우린 압니다.

 

희망의 봄을 이길 혹독한 겨울이 없음을.


그녀의 태도

 

사람은 그 사람이 가진 능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 사람에게 닥친 상황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능력과 상황이 어느 정도 영향력은 있겠지만 미미(微微)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그 사람의 태도입니다.

 

그녀가 만난 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통했습니다.

그녀에게 없는 것이 많았습니다.

남편도 없었고 돈도 없었습니다.

익숙한 고향집을 떠난 지도 오래입니다.

 

없는 것이 많았던 그녀에게 확실히 있었던 것은 긍정적인 태도였습니다.

그의 이런 태도는 쓰라린 과거를 회상하며 형성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녀는 시어머니가 걷고자 한 “The Way”의 미래를 볼 수 있었기에

‘The Way’ 앞에서 암울한 현실을 뛰어넘는 승리자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입니다.

‘The Way’를 따르던 룻은 마침내 “The Way’의 족보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The Way’를 선명히 보는 자는 태도가 선명하고 또 그런 삶을 삽니다.

 

50주년을 맞아 지금 내 앞에 펼쳐진 ‘The Way’ 곧 예수님.

그녀가 그랬듯이 ‘The Way’에 대한 나의 태도가 나의 인생이 됩니다.

 

 

 


인간삭제

 

 

 

사람들 대부분은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모든 상처를 깔끔이 잊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잊으려 하면 돋아 오르는 것이 아픈 상처이기도 합니다.

 

모든 상처를 깨끗이 지울 수는 없을까요? 놀랍게도 있습니다.

 

 

 

인간삭제 사업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자기의 과거를 깨끗이 지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사업이라고 합니다.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과 기록이 남아있지 않게 하는 완벽한 인간삭제

 

일본에서 번창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만간 한국과 미국, 그리고 세상에 퍼질 위험한 사업 같기도 합니다.

 

 

 

미국에 그런 사업이 등장하면 달려가 상담받고 싶으십니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기대만큼 완벽히 삭제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다음 말씀을 들어보십시요.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우리의 아픈 과거를 지워주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해 주시는 분이 있으십니다.

 

가을,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서있으면 우리 쓰린 상처를 완벽히 삭제해 줍니다.

 

보혈이 떨어지는 십자가 아래 있으면 누구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답니다.

 

 


고발과 콩알

 

 

 

한국의 조상들은 콩을 심을 세알을 심었답니다.

 

알은 벌레나 새가 먹으라고

 

알은 이웃에게 나누려고

 

마지막 알은 자신이 먹으려고

 

 

 

콩알하나마다 아름다운 희망을 품고 있었고

 

세콩알이 어울려 멋진 노래를 만들곤 했습니다.

 

 

 

지금은 슬프게도 한국은 거의 원한에 가득 고발 공화국

 

드라마나 현실에서 고발 중독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여야 정치 지도자들의 서로를 향한 고발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아이들 조차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급우들을 서슴없이 고발합니다.

 

 

 

선진들이 물려준 세콩알의 정신이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놀랍게도 선진들의 마음을 품은 '세콩알' 이름의 기업도 있습니다.

 

고발과 콩알, 선택 속에 한국의 그림은 더욱 달라질 같습니다.

 

'세콩알' 아니라 '네콩알'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 교회가 너무 그립습니다.

 

 


Beyond Utopia (이상적인 나라를 넘어)

 

유토피아는 토마스 모어가 1516년에 펴낸 소설의 제목입니다.

여기서 유토피아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나라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그런 이상향(理想鄕)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그런 나라를 만들겠노라 앞다투어 공약으로 내놓곤합니다.

 

‘Beyond Utopia’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유대인 제작자가 만든 탈북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3대 김씨 세습을 이어가는 저들이 북한을 유토피아라고 속이고 있습니다.

굶어 죽는 곳, 억압받는 곳이 어찌 유토피아일 수 있습니까?

 

영화 ‘Beyond Utopia’는 북한은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한 사람이라도 구출해 내겠다는 목숨 건 이야기 ‘Beyond Utopia’

그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은 놀랍게도 목사님을 비롯 크리스천들입니다.

그 영화의 출연과 제작의 주인공들이 지금 우리 교회를 방문중에 있습니다.

 

북한 주민이 자기들이 있는 곳을 유토피아로 착각하듯이, 한국에도 미국에도

자기들이 사는 곳을 유토피아로 잘못 생각하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더 늦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건져내어 ‘Beyond Utopia’

곧 천국으로 이끌어야 하겠습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길이신 예수님께로

 

 


활기찬 여름나기

 

많이 지칠만한 더운 여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쳐만 가는 이때에 활기찬 여름나기할 방법이 없을까요? 있습니다.

 

다음 문구와 비슷한 내용을 식당이나 상점에서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Your satisfaction is our constant vitality.

당신의 만족은 우리의 변함없는 활력제입니다.

 

소비자들이 만족할 때 지쳤던 사업자에게 활기찬 힘이 솟는다는 것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킹덤미션 (Kingdom Mission)이 있었습니다.

여러 나라와 동시다발적으로 예배, 교육, 친교 등 많은 사역을 진행하였는데

현지 시간을 고려해 뉴욕에서는 한 밤중에 사역을 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모두 즐겁고 활기찼다는 것입니다. “우째 이런 일이?”

그들의 모습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주님의 기쁨이 나를 힘 있게 합니다.

The Joy of the Lord makes me strong.

 

병원 문을 닫고 참여했던 분은 선교를 위해 지금의 직업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네 식구가 계속 참여하면서 선교는 자기 가족의 소명이라고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진 주님께 기쁨을 드렸던 선교 이야기들....

더운 여름, 우리는 무엇으로 주님께 기쁨을 드릴까요?

그것을 찾아 활기찬 여름나기를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의 시작은 아침이고 하루의 끝은 저녁입니다.

동이 트는 아침,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활기찹니다.

노을 지는 저녁, 하루의 끝은 아름답긴 하지만 늘 피곤합니다.

 

창조 때는 달랐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루의 시작은 저녁이었고, 하루의 끝이 아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원래의 하루는 시작보다 끝이 더욱 힘이 넘칩니다.

 

오늘은 교회학교 졸업 예배가 있는 주일입니다.

졸업생들에게 오늘은 시들한 저녁이 아니라 가장 희망찬 아침과도 같습니다.

이들에게 찬란한 아침 영광의 빛이 비추일 것입니다.

이들은 우울한 세상을 희망으로 바꾸고 빛으로 채울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졸업생들이 있기까지

교사님들의 헌신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모님들의 수고가 마르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성도님들의 기도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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