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섞어 놓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섞어 놓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로.

하나님은 그때마다 우리에게 일을 주셨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라고 하십니다.(7:14)

자기에게 주어진 환난의 시간을 이렇게 묵상하여 찬송으로 만든 분이 있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고난은 허락된 하나님의

거친 광야를 지날 더욱 낮아지게 하소서

환난의 바람 때에 오직 주만 바라보게 하소서

비록 벼랑 끝에 있다 해도 희망의 놓지 않게 하소서

내게 있는 모든 고난과 시련이 사랑임을 알게 하소서

 

김성조씨가 작사 작곡한 찬송의 제목은 "허락된 고난"입니다.

성도에게 하나님의 허락없이 일어난 고난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놀라운 계획을 담아 고난이 허락된 것입니다.

"허락된 고난" 다른 이름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달았기에 그는 이렇게 살아갑니다.

" 벼랑 끝에 있다 하여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리"

 

나의 벼랑 "" 하나님이 허락하신 희망의 ""입니다.

우리 인생을 "" ""으로 섞어 놓으신 하나님은,

마침내 우리를 희망으로 날아오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 너무 멋진 선물입니다.


그대들은 누구이십니까?

 

눈물이 말라버린 세대에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그대들은 누구이십니까?

 

건축바자회가 엿새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바자회가 오는 토요일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온 교우들이 함께 기도하고 준비하고 수고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면

놀라움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을 위한 일도 그렇게 못할 것입니다.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주님의 기쁨이 되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기쁨은 온 열방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7:9-10)

 

주님이 기뻐하실 하늘나라 다민족 예배의 웅대한 비전을 가슴에 품고,

다민족이 모여 사는 이민 땅에서 그런 예배가 드려지게 하옵소서 기도하며,

플러싱 한 모퉁이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건축바자의 길을 걸으며,

마음과 얼굴을 감동의 눈물로 적시게 하는 그대들은 누구이십니까?

 

 

 


다시 일어서는거야

 

누구에게나 투병의 길은 쉽지 않은 길입니다.

아픈 사람은 자주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저도 지난 금요일 새벽에 고열(高熱)이 있어 응급실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오후 퇴원했습니다.

 

췌장암 발견 이후 세 번 입원해서 길게 또는 짧게 병원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때마다 몸은 힘들었지만 단단히 다져지는 내면의 외침이 있었습니다.

다시 일어서는거야

그리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제가 이렇게 당당하게 외칠 근거는 분명했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예수님의 능력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목사님을 다시 일으켜주옵소서성도들의 간절한 기도가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밤중에 부를 찬송이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송이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얼마 전에 보내주신 글입니다.

사랑하는 김성국 목사님----비록 아직 사방이 어둠이지만 닫힌 동굴이 아닌

열린 터널이니 곧 밝은 날이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동굴 안에 갇힌 자처럼 엎드려 있지 않겠습니다.

열린 터널을 향해 힘있게 걸어가기 위해 일어서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지금 너무 힘들어 쓰러져 계십니까. 이렇게 같이 외칩시다.

다시 일어서는거야.”

 

 


나 돌아가리라

 

나 돌아가리라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과 실행은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

드넓은 바다에서 살다가 마침내 자기가 태어난 강물로 돌아가 죽는다는 연어.

돌아가는 길에 숱한 어려움이 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연어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깊은 감동과 도전을 받습니다.

 

내일 모레이면 추석.

이민자 그 누구도 쉽게 갈 수 없는 고향,

맞아주실 부모님도 아니 계신 경우가 많은 고향,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가야 할 목적지가 없는 사람은

매일 다가오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매일 절망의 시간일 뿐입니다.

찬바람과 눈보라가 세차게 불어오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가야 할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면 오늘도 소망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나 돌아가리라

어디로 돌아가십니까?”

돌아갈 내 고향은 사모하는 주님과 그리던 성도들이 있는 하늘나라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에서 제 11차 다민족 선교대회가 있는 날.

우리에게는 다민족의 아버지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신 영원한 고향이 있습니다.

우리 모든 열방이 함께 손을 잡고 하늘나라로.

 

 

 

 

 


사랑하시겠습니까?

 

사랑하시겠습니까?

 

사랑은 많은 아픔을 가져다줍니다.

사랑함으로써 잃는 것도 많습니다.

그것이 두려워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사랑하고 잃는 것이 더 나으리라

결코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함으로써 많은 것을 잃으셨습니다.

생명까지 내어 주시면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 사랑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사랑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려면은

아무리 잃는 것이 많아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을,

교회를,

성도를,

 

가족을....


멈추지 않는다

 

오늘은 교회학교 졸업예배가 있는 주일입니다.

그동안 성실하게 배우며 풍성한 열매를 맺은 졸업생들을 축하하며 축복합니다.

눈높이를 맞추어 가며 최선의 신앙교육을 펼치신 선생님들의 노고(勞苦)가 컸습니다.

내 자녀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마음으로 함께해 주신 부모님들이 멋지셨습니다.

다음 세대를 향한 온 교회의 관심 어린 사랑과 기도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졸업은 그동안 수고했으니 이제는 쉬고 멈추라는 시간이 아닙니다.

졸업예배는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시간이며

졸업 이후 전개(展開)될 새로운 도전을 향해 힘있게 출발한다는 헌신의 시간입니다.

우리 졸업생들은 졸업과 함께 안주하거나 방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소속된 부서의 이름이 바뀔 뿐, 믿음의 항해는 여전히 계속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어른들로부터 영아에게 이르기까지 공동의 자산(資産)이 있습니다.

우리 졸업생들이 다 들고 있는 불변(不變)의 네비게이션 이기도 합니다.

다름 아닌 성경입니다.

 

성경을 열면 갈 길도 열립니다.

성경을 보면 미래도 보입니다.

성경을 알면 하나님도 알고 나도 알게 됩니다.

우리 졸업생들!

눈이 부시게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성경의 사람들!

 

 


필요한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인가?”

 

엘리사와 나아만은 동시대의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선지자였고

나아만은 아람의 군대장관이었습니다.

엘리사와 나아만은 가지고 있는 것이 서로 달랐습니다.

 

엘리사는 세상의 것은 달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가지고 있었던 성령의 능력을 갑절이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아만은 하늘의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높은 지위와 함께 금은보화를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성령의 능력이라는 수직적 자원이 가득하였고

다른 사람은 지위, 재물, 경력이라는 수평적 자원이 대단했습니다.

누가 그 시대에 더 필요한 인물이었겠습니까.

수직적 자원을 가졌던 엘리사였습니다.

 

수평적 자원은 달리 없어도 괜찮습니다.

성령의 능력이라는 수직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힘있게 펼칠 필요한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집 좀 보여주세요

 

병원에서 퇴원 후 두 분이 번갈아 집을 방문합니다.

한 분은 제가 시술받은 환처를 관리하기 위해 오시는 분이고,

다른 분은 바닥이 난 저의 체력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오시는 분입니다.

성실한 그분들의 태도는 저의 회복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Physical Therapy를 해 주시는 분은 가장 기본적인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잘하라, 팔은 노를 젓는 것처럼 흔들어 주라,

앉아서 발꿈치는 바닥에 대고 발끝을 들어 올리는 운동을 반복하라는 등입니다.

가장 힘들 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교훈이었습니다.

 

그러다 그분이 갑자기 집 좀 보여주세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의아해 하면서 2층의 침실과 화장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괜찮게 보았던 두 개의 카펫을 당장 치우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밟으면 미끄러지기 쉬운 것을 바닥에 깔아 놓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집안에 뜻밖에 위험한 것이 있을 수 있으니 잘 살펴야겠다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에게 결코 보여줄 수 없는 것이 집에 있었습니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125:2)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집을 친히 두르고 계신 것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여러 어려운 일이 믿는 자의 집에서도 일어나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두르고 계신

모든 그의 백성들의 집은 누구도 해칠 수 없는 영원히 안전한 곳이랍니다.

 

 

 


정해진 시간은 어김없이

 

 

정해진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또 지나갑니다.

기다렸던 2024년 전교인 여름 수련회가 정한 날짜에 시작되었고

오늘을 마지막으로 역사의 장으로 넘어갑니다.

수련회는 지나도 강사님이 뿌리신 영원한 말씀은 삼십, 육십, 백배로 자라날 터이니

잔치를 베푸신 하나님께 영광, 말씀을 심어주신 윤영민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정해진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또 지나갑니다.

하나님은 사랑은 영원히 풍성하게 부어지지만

하나님의 시험은 정해진 시간에 가볍게 끝이납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6)

 

영원한 사랑 가운데 정해진 시간을 조금의 오차도 없이

멋지게 경영하시는 하나님을 무한 신뢰하기에

우리는 그 시간까지 잘 버티고 견디면 됩니다. 이렇게 외치면서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비교불가(比較不可)

 

얼마 사택 화단에 물을 주었습니다.

애를 쓰며 물을 주었지만 호스가 뿌릴 있는 곳까지 아주 제한적이었습니다.

다음 비가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뿌리신 물은 땅에 골고루 충분히 부어졌습니다.

사람이 애쓰고 물을 붓는 것과 하나님이 잠시 뿌리시는 비와는 비교불가입니다.

 

7 어느 , 함께 계시던 누님 생신 때에 "축생신"이라는 글자를 벽에 붙였습니다.

제가 가지 색상을 사용하여 써서 붙인 글자를 보시고 멋있다며 누님이 기뻐하셨습니다.

하늘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형형 색상의 수많은 별들을 매달아 놓으셨습니다.

아픈 동생이 붙여 놓은 글자는 아무리 예뻐도 그날만 유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펼치신 우주의 찬란한 별들과는 비교불가입니다.

 

며칠 CT 촬영을 했습니다. 짧게 찍은 사진으로 몸의 여러 상황을 알려주었습니다.

다른 분야가 그렇듯이 의료기술도 혁명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CT 저를 알아내는 것과 영원 전부터 저를 아시는 하나님과는 비교불가입니다.

 

우리는 비교불가이신 절대적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제한적인 것들을 의지한다면 하나님 마음이 어떠실까요.

 

잠시라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비교불가이신 ()이심을.


아버지의 헛기침

 

우리 노회에 유독 헛기침을 자주하시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회의 중에도 예배 중에도 헛기침을 하십니다.

처음에는 "참으시지 그러실까?" 생각했었습니다.

훗날 깨달았는데 목사님의 헛기침은 깊은 가슴 앓이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헛기침은 아픈 가슴을 헤집고 나오는 것입니다.

몸이 아파 나오는 헛기침도 있지만 마음이 아파 나오는 헛기침도 있습니다.

사랑하기에 차마 말로 없어 헛기침을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정상적인 대화를 아들들과 없었습니다.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의 방문을 보고, 집에서 항상 "" 있는 아들 앞에서

가슴속에 있는 말을 헛기침으로 대신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아버지의 헛기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자녀들을 가슴 깊이 사랑하십니까?

헛기침도 다음세대를 향한 의미 있는 대화 방법입니다.

 

비록 그들이 지금은 이해할 없어도 말입니다.


길 떠나는 형제여

 

둘러 보십시오.

크고 작은 가방을 가지고 길을 떠나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물어보십시오.

더운 여름날, 도대체 어디로 가시는 것인지.

혼두라스, 캄보디아, 카자흐스탄, 케냐, 그리고 킹덤미션을 통한 무슬림과 중국.

그 어느 곳도 편한 장소는 아닙니다.

 

한 번만 더 물어 보십시오.

왜 그곳에 가시는지?

모두에게 들을 답은 단 하나일 것입니다.

주께서 가라시니

 

복음을 들고 길 떠나는 형제들이여.

힘드시겠지만 잘 다녀오십시오.

그대들이 가는 곳은 거친 광야,

그러나 그 광야에 샘이 솟아나고 꽃은 우거질 것입니다.

 

그 길이가 길든 짧든, 떠남은 새로운 경험의 시작입니다.

길 떠나는 형제여, 짧은 기간이지만 많은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담아 오십시오.

그대들을 떠나보내고 교회를 굳게 지킬 형제들은 계속 눈물로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 곧 다시 만나 이 여름에 각 처에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신 하나님을 높여 드려요.

 

 

 

 


그대 있음에

 

오늘은 한해의 절반이 막을 내리는 날입니다, 모두 최선을 다해 살아오셨습니다.

지난 6개월, 아니 지난 한달만 해도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요.

 

6월을 돌아보려니 함께 떠오른 노래가 있었습니다.

“----그리운 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선교회여, 그대 있음에 선교바자회가 있었습니다. 땅끝을 불러 손을 잡은.

청소년이여, 그대 있음에 시와 찬미의 밤이 있었습니다. 만물을 불러 손을 잡은.

교우여, 그대 있음에 특별새벽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주님을 불러 손을 잡은.

사역위원회여, 그대 있음에 수료예배들이 있었습니다. 변화된 자를 불러 손을 잡은.

 

선생님이여, 그대 있음에 ‘VBS와 특별집회가 있었습니다. 다음 세대를 불러 손을 잡은.

예배자여 봉사자여, 그대 있음에 예배, 구역, 섬김이 있었습니다. 서로를 불러 손을 잡은.

청년이여, 그대 있음에 곳곳에 따듯한 불이 있었습니다. 귀한 시간을 불러 손을 잡은

어린이여, 그대 있음에 강단 앞에 불이 있었습니다. 부모 언니 동생을 불러 손을 잡은.

 

이제 한해 절반의 막을 여는 날이 서서히 다가옵니다.

우리는 6월에 부르던 노래를 멈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운 주님이여, 존귀하신 주님이 있음에 우리가 있나이다.

우리를 불러 우리의 남은 날들을 손잡고 가소서

 

 

 

 

 


Well Done!

 

새벽을 깨우는 찬양과 기도와 말씀으로 6월의 첫날은 시작되었습니다.

잠시 후 형형색색의 음식과 물건은 친교실부터 교회마당까지 이어져 춤추었습니다.

다양한 언어가 어우러지는 마당으로 중천(中天)의 태양 빛은 부어졌습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바자회 사람들은 모두 그리고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내 증인이 되라는 예수님 말씀을 따라

이 시대에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고자 분투하는 사람들,

편하게 살려하지 않고 선교의 고난에 거침없이 참예한 사람들,

예수님이 보시면서 무어라 말씀하실까 궁금했습니다.

 

“Well Done!”

잘하였도다!”

 

“Well Done!”은 예수님께서 그의 종들에게 주시는 최고의 칭찬입니다.

잘하였도다는 예수님이 그의 자녀들을 자랑스러워하시는 표현이십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증인이라는 존재의 이유를 분명히 할 때,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가 선교라는 우선순위를 놓치지 않을 때,

예수님은 “Well Done!”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또 들려주실 것입니다.

“Well Done! 그 한마디면 우리는 충분합니다.

 

 

 


광야에서 들려오는 노래

 

광야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광야에서 잔잔하게 들려오는 노래가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광야에는 위험을 피할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광야에서 우렁차게 들려오는 노래가 있습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광야에는 마실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광야에서 감미롭게 들려오는 노래가 있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광야에는 머물 자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광야에서 확신 있게 들려오는 노래가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우리가 지금은 비록 적막함과 두려움의 광야에 있지만

다윗이 광야에서 불렀던 그 노래를 잘 따라 부르며 걷노라면

다윗이 그랬듯이 우리의 광야 길도 어느덧 끝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광야에서 부르는 노래를 듣고

광야에 쓰러져 있던 그 누군가가 다시 잘 일어날 것입니다.

 

 

 


약을 먹으려다 문득

 

병원에 갈때마다 반복해서 제게 묻는 것이 있습니다.

이름, 생년월일, 그리고 복용하는 약. 이미 알고 있음에도 매번 확인합니다.

제가 먹는 약이 여럿 있습니다.

지금 제게 가장 중요한 약은 매 4시간마다 먹어야 하는 진통제입니다.

그 약을 제시간에 먹지 않으면 진통이 크게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새벽에 깨어 그 진통제를 찾았는데

다른 약들과 함께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그 약을 집어 먹으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고통보다 천만배 이상 아프셨는데

진통제는 물론 다른 약도 드시지 않으셨다는---

 

나의 죄 때문에 받으신 고통을 묵묵히 참으신

사랑의 예수님을 문득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울면서도 복용시간이 많이 지나갈까 하여 허겁지겁 약을 먹었답니다.

약을 먹고 또 울었습니다.

 

이번에는 자그마한 고통도 잘 참지 못하고 여전히 시간 맞추어

진통제를 먹은 제가 스스로 너무 얄밉고, 예수님께 죄송해서 울은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아프지 않을 천국까지 연약한 인생들에게 약을 보내시어 먹여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너무 고마워 눈물이 잘 멈추지 않았던 그날 새벽이었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님께서 답변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자기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특권의식이나 이해타산이 없습니다.

그는 좋은 일을 하고도 부끄러운 듯 자신을 감춥니다.

모든 것을 자기 혼자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으스대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세상에서 정말 찾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찾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는 사람으로 어린아이를 불러 세우신 것입니다.

아아~~ 예수님이 불러내신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 사랑스러운 우리 자녀들을 함께 축복해요.

그들도 우리도 끝까지 자기를 낮추는 사람으로 살아가

 

모두 천국에서 우리 예수님께 큰 자로 불리길 함께 기도해요.


기억하고 기대하자

 

기도해 주셔서 샌프란시스코 총회, 장로님들과 함께 잘 다녀왔습니다.

이번 제 48회 교단총회의 주제는 기억하고 다시 기대하자였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잘 기억해야, 베푸실 은혜를 또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이 베푸신 풍성한 은혜를.

 

내일은 기억하는 날,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희생한 군인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들은 죽음으로써 말합니다. “내 나라를 이렇게 사랑하노라

기억하십니까? 대한민국과 미국의 오늘을 있게 한 군인들의 고귀한 희생을.

 

오늘의 우리 모두는 숱한 만남을 통해 빚어진 것입니다.

나를 품어주는 가족, 나를 바꿔주는 스승, 나를 위로하는 친구---

오늘은 러시아권 예배 설립 8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입니다.

기대하십니까? 우리가 만난 다민족과 함께 계속 만들어갈 더 놀라운 미래를.

 

여러분의 시력은 어떻습니까? 독수리의 시력은 9.0 라고 합니다.

멀리 보는 독수리와 그렇지 않은 새들과는 기대치가 다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같이 날아오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40:31)

 

기대하십니까? 독수리같이 날아오르면 모든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버팀목

 

앉지도 않습니다.

눕지도 않습니다.

불평도 없습니다.

원망도 없습니다.

 

자기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보듬은 것을 애써 살리려 합니다.

자기 모양새는 하나도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자기가 안고 있는 것이 멋지게 잘자라면 됩니다.

 

자기에게 기댄 것이 아무리 무거워도,

따가운 볕 매서운 풍우가 밤낮으로 몰아쳐도,

미동(微動)도 없이 눈물겹도록 버텨냅니다.

그 이름은 버팀목입니다.

아름드리 자라난 모든 나무는 자기만을 위했던 버팀목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여정에 그런 버팀목이 없었다면 우린 벌써 뒤틀려졌거나 꺾였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그 희생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버팀목 같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 이름은 부모님이십니다.

속만 썩이던 우리에게 이토록 멋진 인생을 주시려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이제야 눈물로 버텨주셨던 사랑의 그 자리가 보입니다.

너무나 그립고 감사한 버팀목 부모님.

 

 

 

 


나 하나 꽃 피어

 

나 하나, 별 것 있겠느냐며 가끔 자조적(自嘲的)인 말을 던지시나요?

이제 그런 말은 내 입에서 멀리~멀리 보내야 하겠습니다.

하나도 매우 소중하지만, 그 하나가 여럿과 어울리면 또 다르게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 혜안(慧眼)을 가졌던 조동화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내가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른 것 아니겠느냐

 

오늘은 임직 감사 예배를 드리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임직자마다 나만 바라보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내려놓고 최선을 다해 내 꽃을 피우면 됩니다.

그러면 여기저기 함께 핀 꽃들로 우리 교회는 마침내 온통 꽃밭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옛 선진(先陣)들부터 지금의 성도들까지 십자가로 짙게 물들어 있으니

임직자마다 너도나도 그 십자가에 물들면

우리 교회는 더욱 활활 타오는 붉은 산이 되어

세상이 주목하고 세상을 바꾸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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