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차가운 날씨 속에 머물러 있다 더디게 온 봄이 자기를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들을 몇 번 둘러보더니만 짐도 풀지 않고 떠날 심사(深思)입니다.

“무슨 급한 일이 있으세요?”

물어보아도 봄날은 그저 웃고 저만치 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는 봄을 붙잡을 수는 없어도 이 봄이 다 사라지기 전에 오래 머물 추억을 마음속에 새겨 놓을 수는 있습니다.

 

가고 있는 봄날의 끝자락에 아름다운 추억을 주님 안에서 함께 만들기 위해 저 한국에서 시애틀에서 버지니아에서 뉴져지에서 그리고 뉴욕에서 아름다운 여성들이 모이셨습니다.

“어머니 학교”라는 이름으로 내일부터 삼 일간 펼쳐질 봄날의 거룩한 여성 축제가 슬쩍 부러워집니다.

가는 봄날과 함께 서러운 이민 땅 어머니들의 눈물과 상처와 아픔도 함께 떠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회복된 자존감과 새로운 사명감의 나무들이 심겨 졌으면 좋겠습니다.

 

살짝 엿본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 봄날이 될 오는 30일 토요일에 있을 “응답하라 4150 콘서트”의 연습장면을요.

재미있고 멋있던데요.

40대, 가장 세상적일 나이의 저들이 가장 신앙적이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가슴 시리게 아름다워서 눈물이 납니다.

저들이 펼칠 이야기와 밴드연주, 노래, 무용, 그리고 음식을 기대하며 몸도 마음도 여전히 40대와 다름없는 저도 꼭 참석하여 마지막 봄날을 만끽하려고 합니다.

 

봄날은 가도 누구나 이날들의 그리움은 남길 수 있고 이날들에서 시작된 변화는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봄날이 가는 것이 마냥 아프지만은 않습니다.

 

자기의 봄날도 바쁘실 터인데 우리의 봄날을 찬란하게 수놓아 주시려고 모든 것 내려놓으시고 멀리서 찾아오신 귀한 손님들, 어머니 학교의 한은경 본부장님과 임은경 진행자님, 송현옥 개설팀장님을 비롯 모든 스태프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웃음이면‘수상한 그녀’이고, 눈물이면‘친정엄마’입니다.

”올해 여선교회연합수련회에서 상영할 영화를 추천하시던 분들의 마지막 제안이었습니다.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어머니 영화, 정말 눈물 많이 나옵니까?”

 

눈물을 다짐받고(?) 드디어 지난 화요일 점심식사 후 팝콘을 하나씩 들고 영화 관람에 들어갔습니다.

그건 영화인데도, 나는 남자인데도 눈물이 막 나려고 할 때 실제 상황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던 분 중에 두 분이 거의 뛰어서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전도사님 한 분이 뒤좇아 가셨습니다.

무슨 일일까 잠시 생각했지만, 다시 영화에 몰입하고 있는데 전도사님이 돌아와 제게 밖으로 잠시 나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기도해주고 위로해줄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뒤로하고 나가 보았더니 영화에서처럼 얼마 전 병을 앓던 자녀를 먼저 보낸 어머니가 함께 나갔던 친구 옆에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묻고 또 물었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우시고, 또 저렇게 눈물을 자아내게 하십니까?

 

저 만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어머니”라는 것이.

아브라함 링컨의 전기(傳記)작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링컨에게 위대한 사람이 되는 조건을 한 가지도 주지 않으셨다.

다만 그에게 빈곤과 훌륭한 신앙의 어머니를 주셨다.

”나폴레옹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여, 위대한 어머니를 가지게 하라.

그리하면 위대한 자녀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

위대한 어머니.

그것은 한 국가가 소유한 보물 가운데 최대의 보배이다.”

 

이 4월에, 저를 낳아 주신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땅에 묻힐 때 여섯 살 반, 철모르던 제가 개나리와 진달래를 손에 들고 뛰어다녔다고 훗날 어른들이 들려주었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와 저도 다른 친구들처럼“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싶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집에는 어머니도 그리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성경적인 어머니를 소망하며 오는 4월 25일 월요일부터 27일 수요일까지“어머니 학교” 가 우리 교회에서 열립니다.

그 날들 중에 하나님은 영화 때문이 아니라 실제 때문에 우는 어머니들을 분명히 품어 주실 것입니다.

이름도 잃어버리고, 밥도 대충 먹고, 남편 때문에 애들 때문에 한없이 속도 끓이고, 친정 엄마 친정 식구 보고 싶어 남몰래 흐느껴 우는.

어머니, 당신은 누구시길래...


“....나는 잊어도 좋다 어둠처럼 까맣게 잊어도 좋다”

이현주 목사님의 詩, “뿌리가 나무에게”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나무를 받쳐주는 뿌리의 끝없는 희생을 노래한 시입니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네가 여린 싹으로 터서 땅 속 어둠을 뚫고 태양을 향해 마침내 위로 오를 때 나는 오직 아래로 아래로 눈먼 손 뻗어 어둠 헤치며 내려만 갔다.”

 

그렇습니다.

나무는 태양의 조명 아래 폼을 잡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면서 잘난 척 하지만 그 나무를 대지 위에 반듯하게 세운 것은 저 어둠 속의 뿌리입니다.

뿌리는 나무가 잘되기만 바랄 뿐 자기는 잊어도 좋다고 말합니다.

 

우리 생애에 뿌리와 같은 존재는 스승이십니다.

우리에게 자양분을 주시고 우리를 붙잡아 주신 우리 선생님들.

어찌나 순종을 잘하는지 우리는 그 분들의 말씀대로 그들을 잊고 오늘까지 살았습니다.

 

오늘은 스승의 날. 더 이상 그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다음 세대가 우뚝 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살아가길 기도하며 어둠 속의 뿌리와 같이 희생하며 살아가시는 무명(無名)의 교회학교 선생님들과 우리를 성경으로, 삶으로 가르쳐주신 모든 어른들에게 우리는 스승을 잊지 않고 있노라고 노래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 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

아아, 고마워라 ♬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


놀라셨죠?

사실 저 쌍둥이예요.

제가 형님이죠.

 

대전에 같이 있었는데 제가 뉴욕으로 다시 올 때 동생도 따라 왔어요.

쌍둥이 동생을 자주 만납니다.

어쩜 그렇게 저와 똑같을까요.

 

쌍둥이 동생 이름이 있어요.

저와 같이 “성”자를 돌림자로 안 써요.

제 쌍둥이 동생이름은 “거울”이여요.

 

거울을 볼 때면 거기에 저와 똑 같은 쌍둥이 동생이 있답니다.

제가 웃으면 “거울”이도 따라 웃고, 밝게 말하면 밝게 말해요.

제가 찡그리면 “거울”이도 따라 찡그리고, 어둡게 말하면 어둡게 말해요.

 

아시는 대로 제가 한 춤 하잖아요.

제가 춤을 출 때 동생도 따라 춤추는데 얼마나 잘 추는지 제가 늘 감탄해요.

그런데 제 동생 거울이가 저보다 먼저 하는 것은 하나도, 하나도 없어요,

 

놀랐어요.

제 동생 이름이 거울인데,

제 동생과 똑같이 거울이란 이름을 자녀로 둔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제 동생 거울이가 저를 꼭 따라 하듯,

자녀라는 거울이도 자기 부모님을 따라 그대로 한대요.

부모가 웃으시면 그 가정의 거울이도 함께 웃고, 우시면 거울이도 함께 운대요.

 

자녀는 부모의 거울,

결코 먼저 웃지 않는 거울이래요.


지난 주간에 우리 교단 총회에 다녀왔습니다.

여러 차례의 예배, 늦은 밤까지의 회의,“삼손”이라는 뮤지컬 관람 등이 있었습니다.

수요일 밤 교단 선교사 파송 예배에는 글로리아 싱어스의 아름다운 찬양 시간도 있었습니다.

총회와 우리 교회 참석자들을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교우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목요일 새벽기도회 때에 미시간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의 은혜로운 설교가 있었습니다.

그 날 목사님의 말씀 제목은“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닮아라”였습니다.

설교 가운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설교자 목사님이 달라스 지역을 방문하셨을 때, 그 지역 어느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슴하셨답니다.

“마른 것들이 더해!”

덧붙인 말씀은 달라스 지역에 120도의 뜨거운 날씨에도 여전히 땀 흘려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더 이상 뺄 것도 없는“마른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운동이 필요한 사람들은 덥다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운동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 마른 사람들이 살 빼겠다고 더 운동하고... 설교 하시던 목사님이 정작 말씀하시고 싶은 것이 있으셨습니다.

 

“기도할 것이 많은 우리들은 기도하지 않는데 기도할 필요가 없으셨던 예수님은 더 기도하셨습니다.”

 

짧은 총회에 참석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들었지만 가장 많이 본 것은 예수님 앞에서의 저의 부끄러운 민낯이었습니다.

“마른 것들이 더해!”라는 짧은 구절과 그 뒤의 교훈적인 말씀들이 저의 건강을 챙기는 일에 경종(警鐘)을 주기도 하였고 기도생활에 대한 깊은 자성(自省)도 갖게 하였습니다.


이제 플러싱은 한인들이 새롭게 이주해 모이는 곳이 아니라 하나 둘 떠나는 곳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플러싱에 있습니다.

교회도 한인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아니면 좀 더 쾌척한 곳으로 이사 갈 수 있겠지만 아직 우리가 복잡한 플러싱에 사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첫째 이유는 부족하지만 퀸즈장로교회가 이곳에서 여전히 한인 성도들의 버팀목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날, 낯선 미국 땅에 도착한 많은 한인들이 그 이민 생활의 첫발을 시작한 곳이 플러싱입니다.

거주지가 꼭 플러싱은 아니었어도 삶에 지치고 미래를 두려워하는 한인들이 퀸즈장로교회에 함께 모여 예배도 드리고 교육도 하고 선교도 하고 교제도 하면서 지금까지 지내왔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한인들 누구든지 새로 오기에 편하고, 계속 오기에 익숙하고, 다시 오기에 고향 같도록 이 자리에 있으려 합니다.

 

우리가 플러싱을 떠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다민족이 함께 어우러진 예수 공동체, 진정한 교회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플러싱은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민족이 사는 곳입니다.

자기 민족만 잘 모이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일까요? 아닙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계7:9-10).”

마침내 완성될 천상의 다민족 공동체를 지상에서 우리 교회가 그 모습을 앞서 보인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오늘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과 크신 은혜 가운데 러시아어권 설립예배가 드려지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시작케 하신 주님이 그 날까지 이 일을 이루어 가실 줄 믿습니다. 내일은 또 전교인 한마음 축제의 날이기도 합니다.

한어,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회중 모두가 주님 안에서 하나임을 서로 돌아볼 날입니다.

다민족 공동체에는 언어, 문화, 관습 등의 차이는 있지만 한 성령 안에서 한 믿음으로 한 주님을 섬기기에 다양성 속에 하나 됨이라는 성경적 역동성이 있습니다.

 

여전히 버거운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는 한인 성도들이 기댈 곳, 그리고 다양한 민족들이 한마음으로 어울릴 곳으로 이 시대의 아름다운 예수 공동체를 일구어가는 우리 퀸즈장로교회는 여전히 플러싱에 있답니다.


저는 두부를 매우 좋아합니다.

제가 두부를 먼저 좋아한 것인지, 어머니가 두부 부침을 많이 해주셔서 그런지 지금까지 두부를 좋아합니다.

저는 된장찌개도 좋아합니다.

어머니가 보글보글 끓여주신 된장찌개를 생각하며 식당마다 맛은 다르지만 된장찌개를 자주 찾는 편입니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저의 밥상에는 아직까지 이해 못할 메뉴가 하나 있었습니다.

소고기를 냄비에 볶아 주신 것입니다.

어디서 그 돈이 나신 것인지, 제가 혼자 앉아 있는 밥상에는 값비싼 그 메뉴가 자주 많이 올라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어머니는 제가 먹는 고기에 거의 손을 안대셨습니다.

어머니는 채식주의자가 아니심에도 고기를 제가 혼자 빠르게 다 먹는 것을 그렇게 대견(?)해 하셨습니다.

 

어느 덧 나이도 들고, 먹을 만한 음식 종류도 많이 있는데 아직까지 어머니의 밥상이 그렇게 그립습니다.

 

“어머니 마음”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사실, 그 노래 1절에 있는“나실제 괴로움”은 어머니에겐 없으셨습니다.

그 노래 2절에 있는“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 주시고”의 추억도 어머니는 없으십니다.

하지만 그 노래 3절에 있는“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은 있으셨습니다.

 

저는“어머니 마음”을 부를 때 3절만 크게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저 때문에 어머니는“나실제 괴로움”보다 더 괴로움을 당하셨고 저를 어머니는“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 주시는”것 보다 더 얼려 주셨기 때문에 저는“어머니 마음”을 1절부터 3절 끝까지 항상 목이 메어 크게 부릅니다.


입 큰 것이 대세인 동물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 목욕탕에서는 입 작은 동물이 입 큰 동물의 등을 밀어 주어야 합니다.

항상 자기 입 큰 것을 자랑하는 개구리가 오랜만에 목욕하러 갔습니다.

개구리가 등 돌리고 열심히 목욕하고 있는 동물에게 말합니다.

“등 돌리고 목욕하는 녀석, 이리와 내 등 좀 밀어라!”

그 때 뒤를 돌아본 동물은 악어였습니다.

개구리는 길고 거친 악어 등을 한참 밀다가 그 짧은 팔이 다 빠질 뻔했습니다.

 

화난 개구리는 입을 크게 째는 수술을 하고 다시 목욕탕에 갔습니다.

누군가 머리 숙이고 샴푸하기에 개구리가 크게 불렀습니다.

“야 임마! 머리 그만 감고 내 등을 밀어라!”

샴푸하다 머리를 든 동물은 하마였습니다.

개구리는 두꺼운 하마 등을 탈진할 정도로 밀고 또 밀어야 했습니다.

 

열난 개구리는 입을 최대한 크게 수술해 달라고 의사에게 부탁했습니다.

한 번 더 입 째는 수술을 하면 그 날 죽을 수 있다는 의사를 윽박질러 개구리는 입을 진짜 크게 째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한 바로 그 날, 개구리는 누군가 걸리면 내 등을 밀 수 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목욕탕에 갔습니다.

그런데 목욕탕 입구에서 개구리는 짼 입이 터져 죽었습니다.

 

목욕탕 입구에 서 있는 간판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금일 휴업”

 

목욕탕에 나의 등 뒤에서 나의 때를 밀어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길에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밀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 안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

 

나의 등 위에서 나를 밀어 주시는 주님에게 없는 것이 있습니다.

“금일 휴업”


당신의 인생을 망치는 방법을 일러 드리려고 합니다.

어렵지 않아요. 다음과 같이 사시면 됩니다.

 

1. 어떤 유용한 기술도 배우지 말라

2. 자기 단련 같은 것은 하지 말라

3. 웬만하면 남의 탓을 하라

4. 모든 것을 부러워하고 어떤 것에도 감사하지 말라

5. 이상한 사람들과 어울려라

6. 연륜과 경험을 존중하지 말라

7. 절대 저축하지 말라

8. 남들에게 아무 신세도 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살아라

9. 자기 수입보다 높은 수준으로 살아라

10. “그러게 내가 뭐랬어”라는 말을 자주해라

 

위의 열 가지는 미국의 경제학자 벤스타인이 정리한 내용입니다만 표현만 다소 다를 뿐, 많은 사람들도 공감하며 말하는 내용들입니다.

 

한 번뿐인 인생을 망칠 수 없습니다. 어른들의 연륜과 경험을 인정하십시오.

감사하십시오.

나는 누군가에 신세를 많이 지고 사는 인생임을 잊지 마십시오.

 

연륜과 경험을 가진 어른, 감사해야 할 그분, 신세를 진 그 누군가 중에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분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들은 삶의 세파를 가족들 앞에서 헤쳐오신 영웅들이십니다.

 

오늘은 아버지 날.

 

육신의 아버지를 업신여기고, 하나님 아버지를 무시하고 살면 확실히 인생을 망칠 수 있습니다.


“15분만 시간 내주실래요?

당신에게 유익을 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요즘 세상이 당당히 요구하는 시간, 15분이랍니다.

15분 전후의 짧은 강연들로 이루어지는 ted (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라는 미국 프로그램은 적게는 수만 명 많게는 수백만 명이 보는 유익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세바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란 한국 프로그램도 15분가량의 다양한 강연을 통해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도 한국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15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5분은 짧은 것 같지만 활용하기에 따라 세상도 바꿀 수 있는 귀하고도 놀라운 시간입니다.

우리의 새벽 기도회는 6시에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번 토요일은 15분 일찍, 5시 45분에 시작하려고 합니다.

2016년 단기 선교 파송예배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단기선교 파송예배는 늘 주일 오후에 드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 익숙함을 바꾸어 토요 총동원 새벽기도회 때에 드리려고 합니다.

기도의 용사들이 뜨겁게 기도하는 시간에 파송예배를 드린다면 더 없이 좋을 것 같아서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단기 선교팀은 가장 더운 여름에 자기 시간을 드리고 자기가 비행기 티켓을 구입하여 선교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사역에 참여하기 위해 봄부터 준비 모임을 가지면서 이미 수많은 시간을 쏟아 부은 분들입니다.

선교 현장에 도달하기까지 몇 차례나 몇 시간씩 공항에서 기다려야 하고 몇 시간 또는 열 몇 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야하고 비행장에서 사역지까지 이동하는 시간도 몇 시간이 걸리곤 합니다.

그것도 가는 도중 별일이 없을 때에 말입니다.

그리고 며칠을 자신을 돌볼 겨를 없이 사역해야 합니다.

돌아오는 길도 그렇게 시간이 걸립니다.

 

오는 토요일 새벽 기도회, “15분만 일찍 와주실래요?”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이 부탁은 결코 무리한 부탁은 아니지요?

우리가 함께 나눈 15분은 단기 선교팀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될 것입니다.

오는 토요일 새벽의 15분은 진정으로 세바시라 확신합니다.


한 초등학생이 교실의 칠판 앞에서 쩔쩔매고 있습니다.

칠판에 쓰여 있는 2+1= 라는 산수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그 학생은 뒤를 돌아보며 눈빛으로 친구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의 친구는 주저 없이 손가락으로 답을 3( )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칠판 앞에서 힘들어 하던 학생이 친구의 손가락을 보고 당당히 답을 쓰고 들어갑니다.

2+1=ok

 

우리도 오랜만에 산수 문제를 풀어볼까요?

5x4=

위 문제의 답을 친구의 도움을 받지 말고 풀어보세요.

5x4=20

맞았습니다.

맞게 쓰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이라고 읽어야 할까요?

모든 사람이“이십”이라고 읽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선교”라고 읽어야 합니다.

 

지난 월요일 전교인 한마음 축제는 교회에서 열렸습니다.

그 전날 설립예배를 드린 러시아어권 형제자매까지 참여하여 영어회중, 중국어회중, 러시아어회중, 한어회중이 함께 예배도 드리고 여러 행사에도 함께 어울렸습니다.

 

개회예배, 폐회예배 때의 설교마다 4개 언어로 통역 되었습니다.

한어로 설교하면 영어로 그 다음 중국어로 또 러시아어로 통역되었습니다.

 

5분짜리 설교를 4개 언어로 전하다보니 20분이 걸렸습니다.

모두가 자기 언어로 들린 5분외에 15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시간이 지루하고 힘들 수도 있었겠지만 4개 언어 회중 모두는 그 기다림이 다민족 선교를 위해 지불해야 할 아름다운 시간인 줄 알았답니다.

그래서 모두가 감격으로 5분짜리 설교를 20분 동안 들었답니다.

5x4= 의 답을“20”이라고 쓰시더라도 우리는“선교”라고 읽어야 합니다


더운 여름, 칼럼도 글씨가 많으면 짜증날 것 같아 그림으로 나갑니다.

잘 보세요. 다음 그림이 어떤 동물로 보이시나요? (더 짜증나시나요?)

2016071001.jpg

오른쪽을 보고 있는 오리. 딩동뎅! 왼쪽을 보고 있는 토끼. 딩동뎅!

오리와 토끼, 둘 다 맞습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뿐입니다.

 

그림 하나 더 보실까요. 책입니다. 어떻게 보이세요?

2016071002.jpg

책 겉표지가 나를 향하고 있다. 딩동뎅!

책 내용을 내가 보고 있다. 딩동뎅!

책 겉표지와 내용, 둘 다 맞습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뿐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관점이 있습니다.

내 관점만 옳다고 주장하면 안 됩니다.

상대방의 관점에도 귀를 기울여 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다민족 선교를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더욱 더 관점에 대한 폭넓은 수용이 필요합니다.

 

진리는 타협할 수 없지만, 관점은 다양성을 수용할수록 풍성하게 살 수 있답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은 누구인가? “조지 워싱톤”

미국의 2대 대통령은 누구인가? ????

에베레스트산을 제일 먼저 올라간 사람은 누구인가? “에드먼드 힐러리”

에베레스트산을 두 번째 올라간 사람은 누구인가? ????

 

“거봐라, 뭐든 일등이 되야해.

이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잖아.”

부모와 세상이 다그칩니다.

이렇듯 우리는 일등 중심 문화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모두가 다 일등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연기자 차인표씨의 인터뷰 본 적이 있습니다.

유명한 연기자며 또 선한 일을 많이 하는 분입니다.

그분의 연기에 대한 평가가 여럿 있었나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인터뷰에서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2류 연기자가 맞습니다.

꼭 1류 연기자만 있어야 합니까?

나같이 발품으로 하는 2류 연기자도 필요합니다.“

 

성경에는 아름다운 2인자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모세 옆의 아론, 여호수아 뒤의 갈렙, 다윗을 앞세운 요나단, 바울에 비껴선 바나바...

성경에서 2인자의 존재감은 “자기 비움”이라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일등, 일류, 일인자만을 찾는 세상이지만 이등, 이류, 이인자도 꼭 필요합니다.

 

당당한 자칭 2류 연기자 차인표씨가 그 인터뷰 중 한 말에 큰 여운이 있었습니다.

“인생은 오늘 하루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안개 때문에 다소 연착된 비행기를 타고 중국내 50여개의 소수 민족이 어울려 살고있는 운남성의 곤명시 공항에 도착했을 때 반가이 맞아 주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현재 곤명시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계신 정성호장로님과 정영숙권사님이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중국선교팀 중에 영어팀과 네일교육팀의 사역 장소에 들러 팀원들과 함께 기도한 후, 마침내 목회자반과 주일학교교사반의 세미나가 열리는 또 다른 장소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곳에는 목회자반과 교사반에 각각 30명 가까운 분들이 기대감을 가지고 모여 있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고령자는 올해 76세의 짱원프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는 사천성에 있는 번옌교회 담임목사님으로 계시다가 은퇴하신 후, 따랑산에 살고있는 소수민족인 이족들을 향해 선교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랑산은 매우 위험한 곳이라고 합니다.

짱원프목사님은 그곳에서 그의 제자 53세의 양홍롄 선교사님과 함께 이번 우리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셨습니다.

 

짱원프목사님의 자녀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버님, 그만 다니세요.

그러다 아버님이 산에서 무슨 일 만나시면 우리가 아버님을 그 험한 산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께서 자녀들에게 분명한 답변을 주셨다고 합니다. “나를 찾지 말라”였습니다.

선교하다 어느 자리에선가 죽을테니 나를 찾을 생각도 하지 말라는 답변이셨답니다.

지난 2009년, 양홍롄전도사님을 따랑산 이족 선교로 부르실 때에도 죽을 각오가 없다면 선교에 아예 나서지 말라고 하셨답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 신발이 닳을까봐 6개월에 한번 정도만 신을 신지, 거의 맨발로 산을 다니신다는 양홍롄선교사님 사역도 가족들이 말릴 수 없으신 사역이셨습니다.

 

양선교사님이 뜻밖의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지금 따랑산에는 두 명의 미국선교사가 11년 동안 사역하고 계신데 지난 10년에 걸쳐 소수민족을 위한 성경번역을 끝내셨다고 합니다.

따랑산은 가족들을 향해“나를 찾지 말라”고 선언한 선교사님들만 계신 곳 같았습니다.

 

목요일의 모든 강의가 끝난 그날 밤, 원래 세미나 강사였던 첸위지 전도사님과 제가 학생이 되었고, 76세와 53세의 그 학생들이 주강사가 되어 사역과 선교 이야기를 들려 주실 때 우리 단기선교팀들도 함께 둘러 앉아 있었는데 모두 피곤해도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답니다.


잊을래도 잊을래도

불고간 바람처럼 잊어버릴래도

별처럼 새삼 빛나는 아름다운 이름이여

잊을래도 그리워 잊을래도 차마 그리워

엄마처럼 다정한 피묻은 이름이여

 

- 김태홍 -

 

엄마 라는 이름은 우리 모두가 잊을래도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피묻은 희생이 담긴 이름, 엄마는 모두에게 그립고도 그리운 이름입니다.

 

이수현. 수많은 일본 사람 사람들이 잊지 못하는 한 한국 청년의 이름입니다.

2001년 1월 26일 저녁 일본 신오쿠보 전철역, 술에 취한 사람이 선로에서 떨어졌습니다.

전철이 그를 향해 달려올 때, 선로에 뛰어내려 그 사람을 구하려다 죽음을 맞이한 한국 청년의 이름이 이수현입니다.

적잖은 일본 사람들은 아직까지 그를 추모하고 있고, 한 일본 영화감독이 그의 희생을 담은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영화제목이“너를 잊지 않을 거야”였습니다.

 

케네스 배. 17번이나 북한을 방문하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2012년 11월, 실수로 북한에 가져간 컴퓨터 파일 때문에 반역죄로 몰려 북한에 735일간 억류 되었던 미국 국적의 신실한 한인 선교사님 이름입니다.

15년 노동교화형을 받은 그는 병원과 노동수용소를 오가는 동안 극심히 어려운 순간을 여러 차례 만났는데 그 때마다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들이 자기를 잊지 않고 있음을 알게 해 준 편지들이었습니다.

그 선교사님이 북한에 억류되었던 2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잊지 않았다(not forgotten)”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그 누군가에게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이름인가요?

그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들을 때 그립고도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아무 이름이나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의 수 많은 이름들 가운데 피묻은 희생자의 이름만이 잊을래도 잊을 수 없는, 별처럼 아름답게 빛나면서도 못내 그리운 이름이 되는 것 같습니다.


김광석은 이십년 전 서른 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가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의 노래를 사랑하고 그리워합니다.

그는 노래로 그 시대의 처절한 삶을 대변했고 위로했습니다.

그의 노래 가운데 “일어나”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검은 밤의 가운데 서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 있을까 불러 봐도 소용없었지

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 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가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그는 어디로 가야할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어둠 속에 쓰러져 있는 인생들에게 일어나라고 절절히 외쳤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자신은 다시 일어날 수 없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으십니까?

스스로 한치 앞을 못 볼지언정 인생은 뜻 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호숫가 물과 함께 썩어질 존재가 아닙니다.

여전히 검은 밤일지라도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불러도 찾아오는 이 없을 거라며 그냥 주저앉아 있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혼자 일어나 성급히 어디론가 발을 내딛지도 마십시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가2:10)

 

맑은 미소를 머금고 따듯한 손을 내밀어 초청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어여쁜 딸아, 사랑하는 아들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얼마나 힘들었느냐.

이제는 일어나서 함께 가야지.

전교인 수련회, 은혜의 강가로...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던 그랜드캐년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끝모르게 펼쳐진 웅장한 협곡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랜드 캐년을 보는 방향은 많아도 그것을 보는 관점은 딱 두가지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창조의 관점과 진화의 관점입니다.

전자의 관점은 하나님을 향해 찬양을 부르게 하고 후자의 관점은 지질학자들의 설명을 듣게 합니다.

“콜로라도 강에 의해 형성된 그랜드캐년의 나이는...”하면서 몇백만년 몇천만년을 갖다 붙이는 것이 진화론자들의 관점입니다.

무슨 이유인지 그랜드캐년 곳곳에 붙어 있는 모든 표지판이나 설명은 진화론을 전제한 것 일색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 앞에서 하늘 바라보지 않고 땅만 바라보고 써낸 진화론자들의 설명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내일은 대한민국의 광복 71주년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빼앗겼던 자유를 다시 찾아 감격해 했던 그 날을 되돌아보기 위해 한국에서는 물론 한국인이 사는 세계 곳곳에서도 기념식이나 기념행사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의 길은 더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자유를 가져야 진짜 자유를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4장 18 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포로가 되어 자유를 잃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진화론의 거짓에 포로가 되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고도 인간적인 관점으로만 해석하려는 자들에게는 벅찬 찬양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진화론뿐만 아니라 모든 거짓에 포로된 자들에게 진정한 해방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기 그 놀라운 해방의 길이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2)

 

리우 올림픽이 서서히 그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각기 자기의 결과를 가지고 모국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경기가 끝났음에도 딱히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0명의 난민 올림픽 팀(refugee olympic team) 선수들입니다.

이번 대회에 전쟁 속에 국가를 잃어버린 난민들이 그저 올림픽 팀이란 이름으로 참석했습니다.

브라질을 떠나 어딘가로는 가겠지만 자기 나라는 아닙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부해안에 지진과 쓰나미가 있었습니다.

그 때 후쿠시마 원전에도 사고가 함께 발생하여 방사능이 방출되었습니다.

그 당시 그 땅을 떠났던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멀리서 말합니다. “돌아갈 곳이 없다.”

 

우리 이민자들도 다 떠나 온 곳이 있건만 곰곰 생각해보니 돌아갈 곳이 달리 없습니다.

이 땅에 돌아갈 곳이 없는 설움은 꾹꾹 참겠지만 인생의 여정이 다 끝났는데도 돌아갈 곳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세상 여정 끝내고 돌아갈 곳이 있음을 알아 노래하는 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귀천/歸天, 천상병)


박물관은 다양한 분야의 여러 자료나 물품을 수집하고, 보관하고, 전시하여 과거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 일깨움을 주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어떤 분야의 박물관들을 가보셨나요?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박물관 한 번 안 가보실래요?

시간이 없어 멀리 못 가신다구요?

가실 수 있어요.

가까이 있기 때문이죠.

그 박물관의 이름은 “내 인생의 박물관”이랍니다.

 

 

내 인생의 박물관을 둘러보면 의외로 물건들, 자료들이 꽤 많이 있을 것입니다.

내 인생의 박물관에 가장 훌륭한 물건이 있다면 각자가 집안 어딘가에 간직하고 있는 빛바랜 사진들일 것입니다.

집안에서 앨범, 또는 사진 상자들을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그것들을 열어보십시오.

일, 이년 된 사진부터 몇십 년 된 사진도 있을 것입니다.

그 사진 속의 자신과 찬찬히 대화를 해보십시오.“야~~ 멋있네,”

“그 때 너 많이 힘들었지,”“그 정도면 잘 살았어”

그 사진의 내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말을 붙여보십시오.

몇 년 동안 시리즈로 만들어 많은 돈을 벌어들인 미국 오락 영화가 있습니다.

원래 그 영화의 타이틀은“night at the museum”입니다만 한국에서 개봉할 때 그 제목을 “박물관이 살아있다”라고 붙였습니다.

이 한국 제목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박물관 안의 역사적인 전시물들이 살아나 일대 소동(?)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박물관에서 둘러본 사진, 편지, 일기, 여러 글, 기억, 그리고 기념적인 물건들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한바탕 소동(?)을 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여러 박물관을 가본 적이 있습니다.

박물관을 둘러 볼 때는 분명히 과거를 향해 걸었는데 그 박물관을 나올 즈음에는 뭔가 의미 있는 미래를 향해 걷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다가오는 가을을 의미 있게 걷기 위해 잠시라도 시간을 내서 내 인생의 박물관을 둘러보심이 어떨지요.

내 인생의 박물관은 하루 24시간 open이고 입장료는 언제나 free 인 것 아시지요?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당신이다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으십니까? 정말로 알고 싶으시다면 이렇게 해보십시오.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그것이 바로 당신을 가장 잘 드러내 줍니다.

저의 이 칼럼 제목을 칼빈대학의 james k. a. smith 교수가 쓴“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당신이다 (you are what you love)”라는 제목에서 가져왔습니다만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사람이 자기가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보물에 그 사람의 마음이 있다는 예수님 말씀은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당신이다”라는 명제를 의미 있게 해주십니다.

 

실제적 그리고 신학적 차원을 떠나서 직설적으로만 표현하자면 골프를 가장 사랑하면 그 사람은 골프입니다.

돈을 가장 사랑하면 그 사람은 돈입니다.

선교를 가장 사랑하면 그 사람은 선교입니다.

찬양을 가장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찬양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것과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에 집착하다가 일생을 마칠 수 없습니다.

부수적인 것과 지나가는 것에 마음을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곧 나”라고 해도 부끄럽지 않을 것을 사랑하십시오.

 

휴가지에서 저도 제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묵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것을 다시 찾았을 때 마치 잃어버렸던 저 자신을 다시 찾은 것 같은 기쁨이 넘쳤습니다.

한동안 잊었다가 다시 찾은 사랑과 쉼에서 얻은 건강을 가지고 뉴욕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립습니다.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5 Next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