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퀸즈장로교회 | 20207월 셋째주 | 719() 패밀리타임 성경: 사도행전 13

 

매일성경 (성서유니온) 묵상순서를 따릅니다

7/20() | 8:1-8

마헬살랄하스바스 (찬송가 86)

이사야의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를 통해 공개적인 징표를 주십니다. 이처럼 반복하여 징조를 주시는 것은 장차 일어날 일이 우연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계획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다가 믿음으로 굳게 서기를 바라십니다.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증인으로 세우십니다. 이 두 증인은 유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유력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단지 믿으라하지 않으시고, 믿게 하려고 징조를 주시고, 그 징조를 보증할 진실한 증인까지 세우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중에도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의존하는 백성을 심판하십니다. 유다는 샘물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만족하지 못하고 당장의 갈증을 해갈할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와 같은 강대국의 힘을 구했습니다. 심판이 임박하지만 그 와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시며 임마누엘의 약속을 보증하십니다.

7/21() | 8:9-22

여호와를 두려워하라 (찬송가 370)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두려움을 떨쳐냅니다. 선지자는 이런 확신을 가지고 열방을 향해 그들의 패망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이야말로 우리가 참으로 두려워할 분입니다. 유다는 앗수르와 애굽을 두려워한 나머지, 둘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했고, 아람과 에브라임의 동맹 위협에도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에게는 그들과 애초에 비교할 수도 없는 강한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세상의 강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의 뜻을 따르는 길이 우리가 살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환란 중에도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유다 백성이 거절한 말씀은 봉함되었고, 그들이 외면한 하나님도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남은 자들이 돌아오리라는 회복의 징표인 스알야숩곁에 있습니다. 이들은 이사야가 소망을 잃지 않고 말씀을 선포할 수 있던 힘입니다.

7/22() | 9:1-7

하나님의 열심 (찬송가 213)

고통받던 백성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시면, 백성은 보호받지 못하여 어둠만 가득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아주 버리지 않으십니다. 때가 되면 흑암에서 다시 그들을 불러모으시고 변방의 고을들까지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둠에 머물며 방황하던 우리를 빛으로 나아오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 빛을 가지고, 이 땅의 그늘진 곳에서 캄캄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해 영과 육신이 말라가는 이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전하는 빛의 전달자가 됩시다. 평화의 나라를 통치할 왕, ‘기묘자, 모사, 전능자,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릴 수 있는 거룩한 칭호입니다. 영영한 평화와 안식이 있는 세상을 기대하며, 주님께 평화의 도구로 우리 자신을 내어드립시다. 나를 주님의 자녀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묵상하며 나를 변화시키시는 주님을 생각합시다.

7/23() | 9:8-10:4

진노를 풀지 않으시고 (찬송가 264)

야곱은 잘못을 꾸짖어도 듣지 않고, 매를 맞아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알고도 벽돌이 무너지면 다음은 돌로 쌓고, 뽕나무가 찍히면 백향목으로 대신하리라며 자신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해도 문제없다는 태도, 하나님 없이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확신은 자만일 뿐입니다. 말씀의 경고를 받아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 굳은 생각과 고집스러운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악행이 불타오를 때, 여호와의 진노가 땅을 불태웁니다. 의로우신 주님은 불법을 행하고 그것을 묵인함으로 약자를 괴롭히는 이들을 내버려두지 않겠다 하십니다. 우리 사회의 입법, 사법기관이 정의롭고 공평한 법을 만들고 집행하여 더 이상 약자가 고통받거나 기본적인 권리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그리스도인으로서 종교적, 사회적 책임을 감당합시다.

7/24() | 10:5-19

오만과 착각 (찬송가 212)

앗수르에 화를 선언하십니다. 경건치 않은 나라를 벌하시려 그들을 택하셨지만, 그들은 제 손에 들린 막대기와 몽동이가 자기 힘과 능력인 줄 착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징계의 매로 삼으신 앗수르는 파괴하고 멸망시키는 몽둥이라 자처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교만에 빠진 그들에게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교만해질 때,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경건치 않는 자들 중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만한 자들은 그들의 영화가 영원하리라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살진 몸을 파리하게 하시고, 그들의 재물을 순식간에 태우실 것입니다. 세상 권력은 그 힘을 바르게 사용하면 하나님의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절대 권력에 취하여 교만해지면 불에 던져질 가시와 덤불이 될 뿐입니다.

7/25() | 10:20-34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찬송가 337)

이스라엘은 언약의 복을 누리면서도 언약의 의무는 저버렸습니다. 그래서 작정된 심판을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소돔처럼 멸하지 않고 얼마를 남겨두십니다. 남은 자는 새롭게 바다의 모래와 같은민족을 이룰 약속의 씨앗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번성한 교회라도 그 복에 합당한 언약적 사명에 소홀하다면, 작정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유다에게 앗수르를 두려워 말라 하십니다. 비록 앗수르가 야곱을 멸망시켰지만, 유다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작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향한 노를 거두시고 그 노를 앗수르에 쏟아 부으실 것입니다. 유다를 혹독하게 징계하시지만, 그들을 향한 사랑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그들을 벌하기도 하시고 용서하기도 하시는 만군의 하나님이십니다.

7/26() | 11:1-16

평화의 왕이 오시리라 (찬송가 414)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한 이상적인 왕을 보내십니다. 그는 다윗 왕가가 실패한 전철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실현하실 메시아입니다. 그는 자의로 통치하지 않고, 여호와의 영이 이끄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십니다. 메시아는 무엇보다 여호와를 경외함을 즐거움으로 삼는 겸손한 왕입니다. 자기 판단을 고집하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께 자신을 굴복시키는 태도가 경외입니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에, 오직 공의와 정직과 성실로 판단하여 겸손한 자를 회복하고 악인을 심판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망했고 유다도 풍전등화의 위기를 겪는 중이지만, 하나님은 이 둘이 메시아의 깃발 아래 모여 하나를 이룰 것이라 하십니다. 태초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신 만물의 연합이 이새의 뿌리에서 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고 그리스도의 정의와 평화를 세상에 보여줄 때, 세상도 기꺼이 그리스도의 기치 아래로 몰려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