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째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2015 년 사순절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고자 한 걸음씩 내디딘 걸음이 머잖아 부활절을 지날 것이요, 그 언젠가는 주님의 존전 앞에도 이를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 물으실 질문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주기철 목사님은 이런 글을 옥중에서 남기셨습니다.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푸른 것이고 백합화는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이 몸이 시들기 전에 주님 제단에 드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이제 당하는 수욕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답하리이까?”
목사님은 주님께서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신다면 무엇이라 대답할까를 늘 생각하면서 이 땅을 사셨습니다.
그러기에 목사님은 5 년의 옥고(獄苦)를 치르면서도 조금도 타협하지 않으시고 47 세이시던 1944 년 4 월, 가장 아름다운 고난의 잔, 순교(殉敎)로 주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아흔 여섯 해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2015 년 삼일절을 맞고 있습니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그 해 열일곱 살 꽃다운 나이의 여학생 유관순은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소망의 미래로 일깨우기 위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러분, 조선의 해방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다 함께 일어나십시오.
하나님도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나는 대한사람이다, 나라를 위해 독립만세를 부르는 것도 죄가 되느냐” 만 18 세가 되기도 전(前)인 1920 년 9 월 순국(殉國)한 어린 소녀의 마지막 말은 이랬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