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길이 까마득한 신학생 남편 때문이었는지, 엄격한 시어머니 아래서의 시집살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가 보고 싶었는지, 신혼 초 아내는 많이 울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두 번째 이유가 가장 컸을 것입니다.
제가 가난한 신학생인 줄 알고 결혼했고, 같은 교회 다니셨던 친정어머니는 주일날이면 뵐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셨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엄격하셨습니다.
아니 엄격하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1남 5녀의 자녀가 있는 집에 시집오셔서 대충 말씀하시고 적당한 태도로는 집안 살림을 이끄실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말을 많이 아끼셨고 행동으로 교훈을 많이 주셨습니다.
아프셨던 어머니의 생애 마지막에는 많은 시간을 한국과 미국에서 며느리와 보내셨습니다.
제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 사역하던 2006년 3월 어느 날 요양원에 계신 어머님을 아내와 함께 찾아뵈었습니다.
그 날 어머니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환한 표정과 따스한 목소리로 외치듯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보세요. 우리 며느리 참 예쁘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저는 의아해했습니다.
아들에 대해 한 말씀도 안 하시고 며느리 이야기만 하시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이 세상에서 들었던 어머님의 마지막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며느리 참 예쁘지요?”
23년간 어머님의 마음속에 숨겨둔 마지막 말씀에 아내는 또다시 울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