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예배는 동사다. 예배는 행하는 것, 움직이는 것이다. 어떤 행동이 그 가운데 있을까. 찬양하다, 기도하다, 설교하다, 봉헌하다 등은 정적인 게 아니라 모두 동적인 행동들이다. 진정한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우상들처럼 아무런 의식 없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니시다. 예배는 경이로운 행동을 이미 보여주신 하나님에 대한 행동(감사, 찬양)이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생생히 말씀하시며 찬양에 기뻐하시며 기도에 응답하신다. 예배에는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동사와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의 동사가 함께 어울려 장관을 펼친다.

 

기독교의 예배는 공허한 명상이 아니라 놀라움으로 가득 찬 이야기의 자리다. 이 땅에서 예배를 동사로 본다면 ‘항해하다’를 빼놓을 수 없다. 예배는 항해다. “항해하는 자들과 바다 가운데의 만물과 섬들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끝에서부터 찬송하라.”(사 42:10)

 

항행하는 자들은 예배드리는 자들이 돼야 한다. 이 땅에서 예배는 천성을 향해가는 항해다. 이 항해는 온갖 풍랑을 만나지만, 그 가운데 펼치시는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들을 목도하고 찬양하다가 마침내 영원한 항구에 이른다.

 

그 항해 중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는 자들 가운데 조직이 있음을 볼 수 있다.(시 107:23~32) 왜 조직이 필요할까. 항해 가운데 여러 역할을 맡은 조직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천국 항해 가운데, 항해 조직 가운데 선장이 계시다. 예수님이 선장이시다.(마 8:23~27) 사랑과 능력이 많으신 탁월한 선장이시다. 그는 사랑으로 배 안에 있는 자들을 품고 능력으로 그 항해의 장애물을 제압하신다.

 

‘그레이하운드’는 2차 세계대전 때 해상수송 중 독일군과 연합군의 치열한 해상전투를 그린 영화다. 그레이하운드는 해상수송선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던 전투함이었다. 연합군의 해상수송을 막기 위해 가끔 얼굴을 드러낼 뿐 숨어서 공격하는 독일의 잠수함과 그레이하운드의 전투장면은 긴장 속에 영화를 보게 했다.

 

톰 행크스는 이 영화에서 그레이하운드의 선장 역할을 맡았다. 그의 리더십은 탁월했다. 그러나 더 눈부신 것은 리더십 안에 있는 그의 믿음이었다. 영화 가운데 몇몇 성경 구절이 짧게 등장한다. 아주 짧은 기도장면도 여럿 있다. 무서운 전쟁영화가 따듯한 종교영화처럼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의 원작은 CS 포레스터의 ‘선한 목자’(The Good Shepherd)다. 힘든 항행 중에 선한 목자 예수님이 우리의 선장이시니 두려워 말라는 메시지를 이 영화는 외치는 것 같았다.

 

1492년 8월 3일 콜럼버스는 세 척의 배를 이끌고 팔로스항에서 인도를 향해 출발했다. 날씨, 음식, 선원들의 불만, 두려움 등 문제가 많았지만 콜럼버스의 항해 일지는 항상 이렇게 끝마쳤다. “오늘도 우리는 서쪽으로 항해했다.”

 

그렇다. 예배는 항해다. 예배는 천성을 향해 전진한다. 유라굴로 같은 광풍이 몰아치지만 낙심하지 않는다. 바울도 유라굴로가 몰아치는 항해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예배의 자리였다. 오늘의 우리도 예배 가운데 몰아치는 의심과 두려움의 영들을 제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을 송축하면서 천성을 향해 간다. 오늘의 항해일지에 우리는 무엇이라 적을까. “오늘도 우리는 천국으로 항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