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맞다, 맞아. 똑같다.” “저 눈 좀 봐, 똑 닮았잖아.” 방송 카메라가 두 사람을 각각 클로즈업했다. 흥분에 찬 수군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생방송 중인 KBS홀에 있던 사람들과 전국에서 시청하던 사람들이 함께 눈물과 탄성을 쏟아냈다.

 

어제가 6월 30일이니까 지금부터 꼭 37년 전, 1983년 6월 30일에 시작해 그해 11월 14일까지 138일, 총 453시간 45분 동안 가장 긴 생방송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던 프로그램, KBS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이야기다.

 

6·25전쟁이 가져다준 크나큰 상처는 이산가족 문제였다. 전쟁 통에 부모·자식이 헤어지고 형제자매를 잃어버린 이산가족의 슬픔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이산가족임을 확인하는 그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찾고자 하는 자들이 서로 닮았냐는 것이었다.

 

예배는 헤어졌던 자들이 만나는 자리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의 뚜렷한 특징이 하나 있다. 서로 닮았다는 점이다. 서로 닮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모든 예배자가 그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닮았기 때문이다.

 

예배자는 예배의 대상과 점점 닮게 돼 있다.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라는 소설에 보면 어느 마을에 사람의 얼굴 모양 같은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모습의 고결함과 온화함은 바라보는 자들에게 평온을 가져다 줬다. 그 바위를 매일 바라보면서 그 모습을 닮은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리던 어니스트라는 소년 자신이 바로 그 바위를 닮은 사람이 돼간다는 이야기다.

 

사람은 자신이 갈망하는 것을 닮아간다는 교훈을 주는 소설이다. 우상숭배자들의 특징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지각이 없다.(렘 5:19~21) 왜 그럴까. 그들이 예배하는 우상이 지각이라곤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 115:4~8)

 

우상숭배자들이 이처럼 자기의 우상을 닮아가듯, 예수님을 예배하는 자는 예수님을 닮아간다.(고전 1:2, 11:1)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그와 닮은 세상의 빛이라 부르신다.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예배는 하나님과 닮음을 확인하는 자리요, 하나님을 더욱 닮아가는 자리다. 예배 가운데 예배자 서로가 이질감을 느끼고, 모든 예배자가 하나님 앞에서 생소함을 감추지 못한다면 그 예배를 어찌 하나님 가족의 모임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30~40년 넘게 하나님을 예배했는데 하나님을 닮아감이 전혀 없다면 그동안 마음속에 숨겨진 다른 것을 예배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처럼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숨을 죽이고 이산가족을 찾는 현장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맞다, 저들이 가족이 맞아”라고 서로 닮음을 보고 흥분해서 말했다. 이처럼 “맞다, 맞아. 서로 똑같다” “저 예배자를 봐, 꼭 하나님 닮았잖아”라는 흥분에 찬 수군거림이 우리의 예배를 지켜보던 천사들 사이에서 번져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