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같이 못 가는데요?

 

같이 못 가는데요?”

그 대답을 듣고 저는 살짝 놀랐습니다.

늘 밝은 미소를 가지고 계신 목사님의 무뚝뚝한 답변이라 더 당황했습니다.

 

얼마 전 총회 일로 LA와 산호세를 이틀 동안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저를 밤늦게 ride 해 주신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 오는 5월 뉴욕 총회에는 사모님과 꼭 함께 오십시오.”

 

그때 그 목사님이 주신 답이 같이 못 가는데요.”였습니다.

잠시 어색한 시간이 지난 후에 목사님이 이야기를 이어가셨습니다.

아내는 6년 전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밝은 미소 속에 그런 아픔이 잠겨 있으시다니.... 저는 더 놀랐습니다.

 

사모님은 암으로 2년 투병하시다가 목사님과 세 자녀를 두고 떠나셨답니다.

저도 어머니가 일찍 천국 가셔서 아버님이 홀로 계셨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이 계속되었습니다.

아버님은 김목사님을 키우느라 힘드셨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이 나셨을 것입니다.

저도 언니 오빠와 나이 차이가 많은 어린 막내 딸을 홀로 키울 때,

잘 키워보겠다는 생각으로 항상 힘을 냈었습니다.”

 

이후 묵묵히 차를 운전하셨습니다. 조용한 차 안에서

 

저의 눈물은 눈가에 맺혔지만, 그 목사님의 눈물은 마음에 흘렸을 것입니다.


울지마요 튀르키예

 

눈물이 떨어져 강이 되어 흐르고, 이제는 바다가 되어 넘치고 있습니다.

지난 6일 새벽 지진이 일어나 한순간에 모든 것이 허물어진 튀르키예의 눈물입니다.

지난 한 주간, 온 세상 사람들이 가슴을 졸이며

그 잔해 속에 파묻힌 죽음과 다침과 신음을 보았고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보려고 필사의 구조 작업을 펼치다가 누군가를 건져내면

구조대와 시민들의 가슴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환호가 들려옵니다.

살았다

멀리서 TV로 지켜보던 우리의 입에도 환호가, 눈에는 눈물이 떠나지 않습니다.

 

6.25 전쟁 때, 공산군 남침으로 풍전등화(風前燈火)와도 같았던 대한민국에

14,936명의 군대를 파병해 주었던 친구 나라 터키, 오늘의 튀르키예.

우리를 살리려 대신 죽어 주었고, 자유를 주려고 대신 포로가 되어주었던 튀르기예.

한순간에 부모와 자녀를 잃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며 어서 일어나라고 했던 터키.

 

울지마요 튀르키예.

일어나요 튀르키예.

그때 그대들이 전쟁 가운데 있던 우리들의 손을 잡아 주었듯이

이제 우리들이 지진 가운데 있는 그대들의 손을 잡아 주겠어요.

 

 


우정은 무엇을 만드는가?

 

요나단이 왕자인 자기만 생각했다면

어떻게 자기가 이어받을 왕의 자리를 포기할 수 있었겠습니까.

요나단은 자기보다 다윗을 낫게 여기며 자기 생명을 걸고 우정을 이어갔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어도 요나단과의 우정을 잊지 않고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그의 사는 날까지 왕의 식탁으로 초대했습니다.

 

갈렙이 자기의 견고한 위치를 생각했다면

어떻게 85세 때에 여호수아에게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했겠습니까.

자기보다 여호수아를 존중하며 우정을 이어갔습니다.

여호수아는 자기를 존중해준 갈렙을 축복하며 기업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두 사람의 친구 리더십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친구의 우정은 자기 자신들에게 축복일 뿐 아니라

그 시대가 함께 누릴 감동과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이번 수련회와 부흥회의 강사로 오신 권호 목사님과 임도균 목사님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우정을 보여주십니다.

매사에 서로 높이고 배려하며 아끼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두 분은 우정을 통해 아름다운 감동과 놀라운 기적을 계속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다윗과 요나단처럼,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말입니다.

 

 

 

 


손수건과 모닥불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힘들 때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어디 가서 실컷 울고도 싶을 것입니다.

달려가 붙잡고 울음을 쏟아낼 친정어머니도 가까이 안 계시니

북받치는 서러움이 더할 것입니다.

 

거기 내 아픔을 알아줄 누구 없소?’ 라며 우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손수건이 필요한데....

제겐 나를 위한 손수건은 있어도

우는 자를 위한 손수건은 없었답니다.

 

추위와 어둠에 떨고 있는 이들에게

따듯한 모닥불이 있어야 하는데....

제겐 나를 위한 핫 팩은 있어도

외로운 자를 위한 모닥불은 없었답니다.

 

이 겨울,

서로 손수건이 되고 모닥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는 자를 위한 손수건.

외론 자를 위한 모닥불.

 

 

 


60세에 총각 결혼하고, 62세에 손주 본 사람

 

여러 분야의 의사들이 자주 병상을 찾아왔습니다.

죽자마자 곧 장기이식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보호자가 아무도 없기에 환자 스스로 이미 여러 장기기증 사인을 해놓은 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진단만큼, 생각만큼 빨리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장암 말기 4개월 시한부 인생으로 진단받아 대장을 많이 잘라내어

소장을 몸 밖으로 빼놓고 살고 있었는데

죽을 시간이 되어도 너무 안 죽으니 장기기증자로서 너무 미안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제목은 빨리 죽여 주옵소서이였답니다.

그러던 그가 죽지 않고 점점 회복되었습니다. 장을 이어 소장도 안으로 넣었습니다.

그의 장기를 기다리다 실망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에게 병문안 왔던 어느 여성분이 그에게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죽다 살아난 사람은 총각, 프로포즈한 분은 결혼한 딸이 있었습니다.

~~딴딴~남자는 초혼, 여자는 재혼인 결혼이 신속히 이루어졌습니다.

남자분이 60세에 결혼했는데 그분의 62세 때에

아내의 딸이 아이를 낳는 바람에 그분은 갑자기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새 생명을 얻고, 새 가정도 얻게 된 그는 하나님 은혜에 감격하여

남은 생을 선교사로 살기 위해 아내와 함께 케냐 나이로비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멋지게 살아가는 두 분을 만나 뵈었습니다. 식사도, 사역도 같이하였습니다.

60세에 총각 결혼하고, 62세에 손주 본 사람은 Peter 강 선교사님이십니다.

 

 

 


거절의 미학(美學)

 

거절은 ‘NO!’라고 말하는 것이기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단어 같습니다.

물론 귀찮아서 무조건 거절하는 것도 있겠지만

심사숙고(深思熟考)한 거절은 핵심과 본질에 집중하기 위한 예술의 언어입니다.

 

거절이 없는 사람은 넉넉한 아저씨 마음 좋은 아줌마는 될 수 있어도

결코 최고의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이것저것 다 품고서는 다양한 고급백화점까지는 될 수 있어도

어떤 유행이 불어와도 한두 가지에만 집중하는 명품 가게는 될 수 없습니다.

 

‘NO’를 이렇게 풀어쓴 사람도 있습니다.

NO=Next Opportunity

오늘의 거절이 내일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거절할 때도 있고 거절당할 수도 있습니다.

거절에 담긴 또 다른 기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절할 때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진짜를 거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면 끝까지 지고 가야 할 나의 십자가마저 거절할 위험이 있습니다.

나의 거절이 십자가 없는 삶으로 마감된다면 이런 낭패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택배요!

 

택배요!”

아마존을 통해 주문한 것도 아닌데

매일 아침 새롭게 배달되는 물건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물건을 받아 들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그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성실하신 하나님이 하루도 빼놓지 않으시고

아침마다 새롭게 보내주시는 선물은 무엇일까요?

오늘 내게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언약입니다.

 

택배요!”

사람들이 보낸 택배를 받아도 궁금함과 설렘을 가지고 급히 열어봅니다.

하나님이 매일 아침 새롭게 보내주시는 언약의 내용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오늘의 언약을 빨리 열어보고 싶은 설렘은 없으신가요?

 

~~~~~!”

 

  

 


헤어질 결심

 

2023, 새해가 되었습니다.

새해에는 누구나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됩니다.

무엇을 하겠다는 새로운 결심에 앞서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헤어질 결심입니다.

 

새해에 새벽기도를 하여 더욱 영적인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려면

새벽잠과 헤어질 결심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새해에 10파운드를 감량하여 멋지고 건강한 모습을 결심하려면

좋아하던 아이스크림, 초콜릿과 헤어질 결심도 먼저 해야 합니다.

 

헤어질 결심은

추리 영화 속에 사람들의 복잡한 내면의 문제를 다룬 영화 제목이기도 합니다.

헤어질 결심은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붙잡으려는 우리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새해의 목표가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지 않기 위해

먼저 헤어져야 할 것과 철저히 결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헤어져서는 결코 안 될 믿음과 헤어지려는 어리석음을

이토록 아름다운 새해에 꿈을 꾸거나 범해서도 안 됩니다.

믿음과는 헤어질 것이 아니라 동행해야 합니다. 새해를 넘어 그날까지.

 

 

 


남은 몇날동안 무엇을 할까?

 

Merry Christmas!

오늘은 즐거운 성탄절입니다.

다양한 민족이 함께 어울려 다양한 순서로 드리는 성탄예배,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늘 성탄이 지나고 며칠 있으면 새해를 맞게 됩니다.

올해 남은 몇날 동안 무엇을 할까요.?

무엇을 해야 할지 일러주는 음성이 있습니다.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리시는데 내가 뒤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 찬송할지어다---" (3:12)

 

앞으로 가기 전에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찬송하라' 소리가 뒤에서 크게 들립니다.

새해를 맞기까기 몇날동안 해야할 일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올해도 넘치는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지금까지 지내온 주의 크신 은혜' 라고 뜨겁게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세 가지 답변

 

삶에서 너무 힘든 일을 만난 강병권 선교사님이 세 가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질문에 세 가지 답변을 주셨습니다.

 

강병권 선교사님은 우리 교회 협력 선교사님이십니다.

선교사님의 아내는 정혜란 선교사님이십니다.

30년 아프리카 선교를 마치고 한국에서 AIM(Africa Inland Misssion) 대표

사역하러 돌아오는 길에 정혜란 선교사님이 담도암 4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1년 동안 투병하시다가 지난 916일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첫째 질문은 하나님, 아내를 살려달라고 기도했는데 왜 데려가셨습니까?”

하나님의 첫 번째 답변은 이 땅에서 고침 받아도 또 다시 아프단다.

그래서 아예 아프지 않은 곳으로 데려갔단다.”

 

둘째 질문은 “30년의 선교를 성실히 마친 정선교사에게 왜 상대신 암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두 번째 답변은 이 땅에서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것2022보다

하늘에서 상급 받는 것이 더 좋기에 데려갔단다.”

 

셋째 질문은 아내를 간호한 일 년은 제게 어떤 시간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세 번째 답변은 그 일 년은 너를 훈련시키기 위한 시간이었다.

너의 아내에 대한 이기적인 사랑을 진정한 사랑으로 바꾸기 위한 시간이었단다.”

 

우리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나면 하나님을 향해 던질 질문들이 있을 것입니다.

귀 기울이십시오. 그 답들을 우리 하나님께서 따듯하게 분명하게 일러주실 것입니다.

 

 

 

 

 


거기 빛이 있었고

 

반 고흐는 슬픔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어둠이 짙게 드리워 있었습니다.

그는 빛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그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는 자그마치 별이 11개나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움에 지친 사람은 적어도 미소 짓는 두 개의 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작은 별을 이렇게 부릅니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 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별들의 미소 잊을 수가 없어요

 

동방박사들에게는 하나의 별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동방에서 박사들 귀한 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 따라왔도다

 

빛이 있어야 합니다.

빛이 없다면 길도 잃고 꿈도 잃습니다.

빛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빛 속에 소망이 있습니다.

거기 빛이 있었고라는 주제의 성탄 축하 찬양제가 너무 기다려집니다.

나에게도 그 빛이 꼭 있어야 하겠기에 말입니다.

 

 

 

 


여러분은 우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미국 땅에 오래 살아도

아무리 다민족 사역을 많이 하여도

대한민국의 정체성마저 지워진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제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16강행이 확정되고 난 후

몇몇 교역자님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어디서나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그날 승리의 주역이었던 손흥민 선수가 이런 웅장한 글을 남겼습니다.

눈물로 쓴 글임이 분명합니다.

 

저희는 포기하지 않았고,

여러분은 우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자기들을 포기하지 않은 대한민국이 있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어도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고 가슴 먹먹하게 자랑스러운 젊은이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본향으로 가는 달음박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던 하나님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까지도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사랑합니다.

 

 

 

 


알로하

 

오래전 하와이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꽃목걸이와 ‘알로하’라는 인사를 받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특별한 인사에 큰 환대를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멋진 하와이 정경보다 더 아름다운 환대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습니다.

 

오늘부터 이번 주 내내 우리 교회에 귀한 손님들이 오십니다.

오늘은 한국에서 이재서 목사님과 사모님, 뉴저지에서 강원호 목사님이 오시고

LA에서 조용중 선교사님과 사모님이 오십니다. 내일부터 삼일 동안 KWMC 의장단이,

토요일에는 워싱톤 헬로우십 교회 임직자 20명이 방문할 예정입니다.

 

우리 교우들은 누구든 따듯하고 섬세하고 풍성하게 환대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 오시든지 교우들의 극진한 환대 속에

위로와 힘을 얻고 가시는 모습을 종종 뵙습니다.

 

성경과 청교도 그리고 우리 교회 선진들의 자랑스러운 유산인 추수감사절을 지나자마자

여러 손님 맞을 채비로 분주한 교우들에게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도 있었느니라”

 

하와이에서는 ‘알로하!’한 가지로 인사하지만, 우리는 네 언어로 환영할 수 있답니다.

웰컴! 환잉! 다브로 뽀잘로밧! 그리고 환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하나님이십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실수에도 불구하고

날 덮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약함에도 불구하고

날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청교도의 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이었습니다.

그들이 타고 온 배의 돗대가 부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파손되지 않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폭풍이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가고자 하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들이 항해하는 가운데 두 명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이 태어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처럼 복되고 아름다운 추수감사주일,

하나님과 청교도들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묵상하며 감사 눈물 흘립니다.


기억과 감사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주일 ‘행복에의 초대’에 나오신 성도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기억감사라는 단어가 함께 어울려져

제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2022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행복에의 초대를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처음 나오신 분들, 그 소중한 결단과 걸음들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에 나오신 분들, 다시 만난 기쁨의 시간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교우들, 아름다운 수고와 기도를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강아지와 고양이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있답니다.

강아지는 주인이 백 개중에 하나만 잘해도 그것을 고맙게 기억한다고 합니다.

고양이는 주인이 백 개중에 하나만 못해도 그것을 고깝게 기억한다고 합니다.

‘개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말을 알아듣는다면 개들이 크게 섭섭해할 것입니다.

 

기억은 감사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은혜받은 기억이 전혀 없다면 감사할 일도 없겠지만

 

넘치는 은혜를 받은 기억이 있다면, 넘치는 감사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반갑습니다. 행복에의 초대, 잘 오셨습니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가을을 지내고 계시는지요.

저는 며칠 전 집 앞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 모았습니다. 아직 버리진 않았습니다.

지난봄 푸릇푸릇했던 나뭇잎이, 여름날 우거진 녹음(綠陰)으로,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으로도 변화되다가, 이제는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있기에

그들이 나를 뒤로하고 어디론가 굴러가기 전에 붙잡아 끌어모은 것입니다.

 

바람결에 떨어졌던 낙엽을 모아보니

많은 이야기를 담은 세월의 보따리였습니다.

지나간 시간,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니 후회할 수 없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시간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다가올 시간입니다.

남은 시간을 이전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무엇이 행복할까? 그것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입니다.

낙엽을 쓸 때 스각스각 들리던 소리가

겨울이 다가왔다는 하늘의 음성으로 가까이 들렸습니다.

낙엽으로 벗겨져 가는 나무가 다가올 겨울을 두려워하는 내색도 없이

새로운 봄의 옷을 입혀줄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린다고 가까이서 속삭였습니다.

 

오늘, 행복에의 초대에 오신 모든 분을 격렬하게 환영합니다.

행복에의 초대는 오늘을 넘어 다가올 겨울도 지나, 저 하늘에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사람은 지상에서 최대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흩어진 사람들

 

흩어진다는 말은 왠지 슬픕니다.

흩어진다는 것은 서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을 자아냅니다.

흩어짐에는 슬픔도 두려움도 있지만, 묵직한 책임에서 벗어나는 편함도 있습니다.

어제 아침 우리는 흩어졌습니다.

 

슬픔이 아닌 즐거움으로, 책임을 벗는 가벼움이 아닌 사명의 묵직함으로 흩어졌습니다.

초대 교회 때 예루살렘에 함께 모였던 사람들처럼 흩어졌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8:4)

우리도 어제 선교회별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흩어졌습니다. 장엄한 모습이었습니다.

교회는 모여서도 교회, 흩어져서도 교회이어야 합니다.

 

내일은 종교개혁 505주년 기념일입니다.

개혁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교회다워야 합니다.

교회다움의 영광은 모여서 예배, 흩어져서 선교할 때 가장 선명히 드러납니다.

 

다음 주일에 있을 행복의 초대는

무엇보다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축복의 날이어야 합니다.

남은 엿새, 흩어진 교회로 전도하다가

다음 주일, 모이는 교회로 예배합시다.

 

 


말 한마디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이 한마디는

자기를 버리고 타인이 되길 원하던 사람들에게

넓고 깊은 울림을 주어왔습니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는 다 바꾸라

그 한마디가 삼성이란 그룹을 철저히 바꾸었고

그 영향으로 오늘의 세계도 많이 바꾸었습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한마디 말이었습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이 한마디는 홀로 자기를 키워주신 어머니에게

오래전 홍수환 선수가 복싱 세계 챔피언전에서 승리하고 외친 말입니다.

힘들게 자식을 키웠던 모든 어머니에게 큰 위로를,

목표를 잃고 살던 젊은이들에게 큰 도전을 준 한마디였습니다.

 

가서 전하라

예수님의 한마디 말씀은

현실에 안주하던 자들을 무수히 일으켜 사명의 길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 한마디에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지금은 불평하거나 영양가(營養價) 없는 말로 인생을 아깝게 보낼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세상을 변화시킬 나의 말 한마디를 찾아 외칠 때입니다.

 


~~ 라파예트 애브뉴 장로교회

 

 

지난 수요일 브루클린의 아주 특별한 곳을 다녀왔습니다.

라파예트 애브뉴 장로교회를 여러 교역자, 장로님들과 함께 방문했던 것입니다.

그곳을 감사함과 설렘을 가지고 찾아갔습니다.

한국 선교 역사의 첫발을 내디뎠던 언더우드 선교사님을 파송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다소 낡긴 했지만 150년 전에 지은 훌륭한 건물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1884년에 한국 장로교 선교회가 조직되어 언더우드 선교사님을 파송하였고

선교사님은 188545일 부활절 아침에 제물포에 도착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역사 가운데 지금도 270여 명의 성도들이 있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감격의 시간도 잠깐, 짙은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교회가 ‘Social Gospel(사회복음)’을 표방하며 인권(人權)이 기준이 되었고 심지어

그 교회의 임시 담임 목사가 동성애자와 결혼 생활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장로교회의 Mother Church 같은 교회가 140년 후에

지도자들이 앞서 보여주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100년 후, 아니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 교회의 현재와 미래가

세속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곳 방문에서 돌아와 줄곧 생각해 보았습니다. 답은 분명했습니다.

교회가 시대의 실용주의를 따르지 말고 역사의 개혁주의를 굳게 지키는 일에

조금도 방심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 교회 현재와 미래의

교역자들과 장로님들이 개혁주의 사상으로 투철해야 함을 절절히 느꼈습니다.

 

 

 

 

꼬끼오

 

닭이 운다 꼬끼오

집집마다 꼬끼오

맛을 낼 땐 닭표 간장

꼭 낀다고 꼬끼오

 

아직도 멜로디가 또렷이 기억나는 오래된 닭표 간장 광고 노래입니다.

광고 가운데 닭 소리를 꼬끼오로 표현했습니다.

닭 울음소리는 성경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베드로야----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그 닭 울음소리를 들리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문자는 세계에 없을 것입니다.

자음 14, 모음 10개로 온갖 글을 만들고 세상 모든 소리를 발음할 수 있다니요.

오늘은 한글날입니다. 많은 수난을 겪으면서 지켜온 한글입니다.

온 세상 젊은이들이 한국어로 떼창부르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어 공부 열풍도 세계 곳곳에 이미 붙었습니다.

 

멀잖아 세계 어디서든지 한국말로 설교해도 많이 알아들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외국인들에게 이렇게 설교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꼬끼오 닭 소리를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성령 충만 받을 때 쉬이익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소리 나는 대로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이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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