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시 78:72)

초등학교 때인데도 공부 성적에는 차이가 꽤 있었습니다.

수우미양가(秀優美良可)로 나눠진 성적표는 같을 수가 없었습니다,

중학교 때 도시락에도 다름이 있었습니다.

도시락에 계란 후라이, 진주햄 쏘세지 반찬을 가져온 친구는 늘 부러웠습니다.

고등학교 때 확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생긴 것도, 성격도, 취미도, 또 진로에 대한 생각도 다 다르다는 것을.

 

그런데 그 모든 차이를 잊게 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다양한 친구들과 어깨동무하고 걸을 때였습니다.

친구들과 어깨동무하고 걸을 때는 어떤 차이도 느껴지지 않았고,

세상의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나 됨과 용기를 가져다주었던 어깨동무 친구들이 그립습니다.

 

어깨동무는 한국인의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디언들에게도 그와 유사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 뒤에서 걷지 말라. 나는 그대를 이끌고 싶지 않다.

 내 앞에서 걷지 말라. 나는 그대를 따르고 싶지 않다.

 다만 내 옆에서 걸으라.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우리에겐 서로의 어깨가 필요합니다.

외롭기에.

힘들기에.

서럽기에.

우리를 친구라고 불러주신 주님과

서로 사랑하라고 모아주신 교우들과 2020년, 함께 걸어요.

그 옛날, 친구들과 어깨동무하고 걸었던 것처럼 함께 걸어요.


그 당시엔 있었죠. 동네 곳곳에 큰 공터가.

그 동네 빈 공터에 이삼일 뚝딱거리면 큰 텐트가 세워집니다.

이제 곧 있을 서커스 공연을 홍보하는 쿵작거림이 온 동네를 몇 차례 돕니다.

아버지를 졸라 들어간 서커스 공연이 드디어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우스꽝스럽게 분장한 사람들이 나와 재미있는 말과 행동을 보여주다가 점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공연을 이어갑니다.

그 중에 압권은 공중돌기입니다.

몇 바퀴를 도는 공중돌기 묘기를 보이는 사람은 영웅과도 같았습니다.

훗날, 아주 훗날에 알게 되었습니다.

공중돌기에서 진정한 영웅은 도는 사람이 아니라 그를 붙잡는 사람이라는 것을.

붙잡아 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런 공연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공중 도는 사람은 붙잡아 주는 사람을 신뢰하며 휙휙 도는 것입니다.

 

“네 손 잡아 주리라”

우리 손을 붙잡아 주시겠다는 분이 계십니다.

벌벌 떨다 아무 것도 못한다 하면서 한 해를 보내시겠습니까,

아니면 놀라운 묘기(?)를 보이며 한 해를 사시겠습니까?

이 말씀을 품고 공중 높이 솟구쳐 휙휙 날아도 됩니다.

공중 도는 우리 손을 실수 없이 붙잡아 주시겠다는 그 분의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결론은 나중에 냅시다.”

이런 말이 잦으면 그 누구도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결론을 미룰 수도 없습니다.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주일인데 올해의 결론을 어떻게 미룬단 말입니까?

 

올해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은혜입니다.

봄의 은혜, 여름의 은혜, 가을의 은혜, 겨울의 은혜가 다 달랐고 넘쳤습니다.

고난도 은혜, 평안도 은혜였습니다. 약함도 은혜, 강함도 은혜였습니다.

 

올해의 또 다른 결론은 이것입니다.

감사입니다.

고맙지 않은 분이 없습니다.

가슴이 뭉클한 시간, 눈시울이 붉어진 시간, 콧잔등이 시큰한 시간.

우리 교역자, 우리 장로님, 우리 성도들이 만들어 주신 감사의 시간이었습니다.

 

올해의 결론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준비입니다.

올해 찾아온 여러분의 죽음.

가족들도 사랑하고 우리 모두도 사랑하던 분들.

올 한 해,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우리 곁을 떠나면서 들려준 외침.

“준비하라. 준비하라. 준비하라. 하나님 만나기를.”

 

그렇습니다. 은혜, 감사, 준비는 미룰 수 없는 올해의 세 가지 결론입니다.


사실, 저도 꿈꾸었었죠. 크리스마스에 눈이 와서 온 세상이 하얗게 되기를.

그래서 이 감미로운 노래를 좋아하곤 했답니다.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

그러나 성탄절을 하얀 눈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혹시, 가보셨나요.

성탄절 전후로 록펠러 센터 앞으로.

크고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번쩍이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아무리 멋있어도 크리스마스트리로 성탄절을 바꿀 수 없지요.

 

간혹, 참여해 보셨나요.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에.

딸랑딸랑 종소리를 좇아가 이웃을 돕는 마음을 담는 것은 좋습니다.

그래도 이웃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으로 성탄절을 바꾸는 것은 아니랍니다.

 

많이, 기쁘셨나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서.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준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정말로 성탄절을 선물을 주고받는 계절로 바꾸자고 하시는 것은 아니지요.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이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비장(悲壯)한 날입니다.

성탄절은 말구유에 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내가 꼭 안아야하는 날입니다.

성탄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전무후무(前無後無) 날입니다.

성탄절은 구원이라는 인류 최대의 소망(所望)이 임한 날입니다.

 

엿 장수 맘대로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고귀한 성탄절을 엿 장수가 맘대로 엿을 바꾸어 주듯 더 이상 다른 것과 함부로 바꾸지 말아요..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 모두에게는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있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1954년,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에 실렸던 이야기입니다.

시골 작은 교회의 젊은 목사님 부부가 낡은 교회의 이곳저곳을 고치며 성탄을 준비하고 있는데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센 바람이 그 마을을 휘몰아치면서 교회의 강단 뒷벽에 큰 구멍을 내었습니다.

목사님 부부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가운데 시장에서 아주 싼 가격에 오래된 금빛과 아이보리색의 레이스를 가진 테이블 덮개를 샀습니다.

덮개로 강단 뒷벽의 큰 구멍을 잘 덮을 수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성탄절 이브 예배가 있는데, 그날 낮 젊은 목사님은 교회 앞 추운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나이 든 여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버스가 오려면 멀었으니 교회에 들어와 계시라고 했습니다.

그 마을에 일자리 인터뷰를 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그 교회 안에 들어온 여인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강대 뒤에 걸려 있는 테이블 덮개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이건 내 것입니다.

예전에 내 남편이 나를 위해 만들어 준 것이지요.

전쟁 때에 남편과 헤어졌는데 훗날 남편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 테이블 덮개를 가져가라는 목사님의 권유를 뿌리치고 그 여인은 떠났습니다.

 

그 날 저녁 성탄 이브 예배를 마친 후 나이 든 마을 남자가 목사님에게 다가와 “저 강대상 앞에 걸려 있는 것은 아내를 위해 내가 만들었던 것입니다.

전쟁 때 헤어졌는데 이제는 하나님 품에 안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서로 죽은 줄 알았던 부부는 살아 있었고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탄의 이야기는 언제나 소망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오후, 헨델의 성탄 이야기를 꼭 들으러 가요.

그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꾼 이야기, 그가 만난 메시아 이야기는 우리 찬양대의 찬양으로 아름답게 펼쳐질 것이랍니다.


 

그 날이 있습니다.

그 날, 뭔가 좋은 결과를 얻는 사람들은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은 시상대 위에서 상 받는 그 날의 모습을 그리며 연습했고, 근육이 살아(?) 있는 사람들은 건강한 그 날을 상상하며 운동했기 때문입니다.

 

그 날이 있습니다.

이후에 주님 뵈올 날이 있습니다.

그때 주님이 물으실 것입니다.

“내가 맡긴 일은 어떻게 하였느냐?”

아무도 숨김없이 대답해야 할 그 날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그 날이 있습니다.

긴 훈련의 시간을 묵묵히 감당하고 오늘 귀한 임직감사예배를 드리는 임직자들이여, 축하도 드리지만 오늘 직분을 맡긴 그분 앞에서 결산할 날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 날이 있습니다.

지난 일 년도 함께 걸어오며 울고 웃었던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회계(會計)의 그날이 회개(悔改)의 그 날이 아니라 상 받는 그 날이 되도록 오늘도 아름다운 수고와 동행을 멈추지 말아요.    


“마이 달링”이란 노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my darling (나의 사랑)

can i call you darling (내가 당신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되나요?)

darling darling darling (사랑, 사랑, 사랑)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저의 칼럼 제목은“마이 달링”이 아닙니다.

“마이 달랑”입니다.

달랑 한 장 남은, 나의 달력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매월 초(初) 하나하나 내 손에 의해 아프게 뜯겨져 나간 달력들.

주어진 한 달에 대한 부끄러움은커녕 대단한 한 달을 산 것 마냥 그것을 교만히 뜯곤 했던 내가, 마지막 달랑 남은 달력 앞에 겸손히(?) 서 있습니다.

여유(餘裕)는 사라지고 초조(焦燥)가 깃든 달랑 한 장 남은 달력 앞입니다.

한껏 가벼워진 한 장 달력이 한 해의 마지막이라는 부담으로 매우 무겁게 보입니다.

 

미안하오. 2019년 달력들이여.

지금까지 열한 장의 그대들에게 매우 무례했음을 고백하오.

이제라도 마지막 한 장 달랑 남은 당신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사랑하겠소.

마이 달랑, 마이 달링이여!


10가지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공산당에 의해 순교한 두 아들 장례식에서 10가지 감사기도를 드리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자가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전도하다 순교당했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감사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7가지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대서양을 건너 신앙의 자유를 찾았던 청교도들이 혹독한 어려움 가운데 7가지 감사를 드렸습니다.

 

80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였지만 그런 배라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항해 중 두 사람이 죽었으나 한 아이가 태어났음을 감사합니다.

폭풍으로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감사합니다.

.....

고통스러운 삼 개월 항해 중 돌아가자는 사람이 없었음을 감사합니다.

 

그들은 극심한 고통의 자리에서도 감사에 감사, 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고난을 넘어서는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았기에 그토록 넘치는 감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내가 만약 그들이었다면 몇 가지를 감사할 수 있을지 스스로 궁금합니다.


내일 모레가 11월 19일, 오는 목요일이 21일이네요.

11월 19일 케이프코트만(灣) 경유(經由), 11월 21일 프로린스타운에 입항(入港).

1602년 9월 16일 영국 잉글랜드 항구도시 프리머스에서 102명의 청교도를 태우고 출발했던 배가 미국 땅에 다다르던 날자와 장소 입니다.

순례자의 조상들(pilgrim fathers)이라고 일컫는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들 앞에는 바다의 파도부터 시작하여 온갖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배는 이듬해 봄에 영국으로 돌아갔지만 그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결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역경 앞에 그들이 외쳤던 말은“힘들다, 죽겠다”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감사, 감사, 감사합니다.”였습니다.

감사는 어떤 역경도 이깁니다.

역경 중의 감사가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습니다.

탱큐, pilgrim fathers!


연말이 점점 가까워오며 바쁜 일들은 더 몰려오지만 문득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한 해를 어떤 걸음을 걸었는가....

모든 걸음에는 발자국이 남는데 나는 어떤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가....

남긴 발자국을 뒤돌아 볼 자신이 없었지만 살짝 돌아보았습니다.

 

한 동안 머뭇거린 발자국, 샛길로 갔다 온 발자국, 거기서 쓰러졌던 것이 분명한 작은 발자국을 덮은 큰 몸 자국, 그래도 다시 일어나 걷고 또 걸어온 발자국.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조선 시대의 이양연 문인이 지은 시(詩)입니다.

짧은 시가 나의 발자국은 나의 것만이 아님을 일깨워 줍니다.

 

되돌아가 그 발자국을 지우고 싶지만, 그리고 다시 반듯하게 걸은 발자국을 남기고 싶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다시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이 바라보시며 기뻐하실 발자국, 뒷사람이 따라오다가 실망하지 않을 나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제 막 들어선 11월도 빨리 지나가겠죠.

오래 붙잡고 싶어도 뿌리치듯 달아날 11월이 분명합니다.

부질없이 가지 말라고 말하기 보단 지나가는 11월을 수채화로 그려 내 마음의 벽장에 오래 걸어 두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흙색 물감으로 한창 땅을 파고 있는 새정전 앞마당을 그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웬일이죠? 제 눈에 뭐가 꼈나요?

그 마당의 흙색이 가을 단풍마냥 형형색깔로 보여요.

붉은 김치색, 노란 튀김색.... 지난 10월 건축바자에서 봤던 수십가지 색상들이 앞마당 흙색깔에 섞여 있어요.

 

그토록 어려운 이민 땅에서 본당과 교육관을 묵묵히 세우시더니만 건너편 새성전을 함께 지어가시는 교우들을 생각하니 11월의 수채화는 물감으로 도화지에 그려지기 전에 제 얼굴에 눈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제 눈의 눈물은 말라도 결코 마르지 않을 사랑의 물감을 각양각색으로 뿜어내는 성도들 때문에 앞마당 흙색은 화려한 색깔이 되어 놀라운 11월의 수채화를 그리게 될 것입니다.


잘 오셨습니다.

아버지 집으로.

아버지가 많이 기다리셨어요.

오시기까지 힘드신 일이 한둘 아니셨죠?

어렵고 힘든 상황을 이기고 아버지 집으로 오셨으니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며 우리의 길고 긴 아픈 이야기도 들어주시고 우리의 깊고 깊은 상처도 만져 주실 것입니다.

 

처음이어서 낯설고 오랜만이어서 어색해도 들여다만 보시고 지나가지 마세요.

여기가 아버지 집, 곧 당신의 집이랍니다.

 

가장 아픈 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고독(孤獨)이라는 병이 가장 아픈 것 같아요.

제겐 울 일이 적지 않은데 같이 울어줄 사람이 없고 제겐 웃을 일이 많은데 같이 웃어줄 사람이 없다면 못 견딜 것 같아요.

 

곧 윙윙 찬바람이 불고 펑펑 함박눈이 쏟아질 추운 겨울이 올 텐데,

또다시 그 겨울을 외롭게 지내지 마세요.

“겨울 속의 고독!”생각만 해도 너무 시리고 슬프지 않나요.

“아버지 집에서 함께!”생각만 해도 너무 따뜻하고 기쁘지 않나요.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 모두의 아버지 집으로, 정말 잘 오셨습니다.


많이 바쁘시지요?

그래도 질문해야 합니다. 가을에는 질문해야 합니다.

윤동주 시인은 가을이 오면 이렇게 물어보겠다고 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이 가을, 우리는 지금 어떤 질문을 가지고 있습니까?

행복에의 초대를 앞두고 우리에겐 이런 질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어디에?”

 

그 사람의 물리적 위치를 넘어 영적인 자리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내 부모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내 배우자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내 자녀는, 내 형제는, 내 친구는, 내 이웃은....지금 어디에 있을까?

확실히 천국 가는 길을 걷고 있는지, 지옥의 나락(奈落)인지.

아무리 봐도 전자(前者)가 아니라 후자(後者)라면

이 가을 펼쳐지는 행복에의 초대는 그를 위한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많이 슬픈데도 아름다운 아픔이 있습니다.

가슴앓이입니다.

가슴앓이해 보셨지요?

사랑하는 자가 몸이 아플 때 가슴앓이합니다.

사랑하는 자가 너무 그리울 때 가슴앓이합니다.

사랑하는 자가 시름시름 가슴앓이할 때도 가슴이 시리고 아픕니다.

 

한국에서 운전면허 시험을 2년 넘게 보던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떨어지고 또 떨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면허시험장을 찾던 할머니에게 직원이 왜 그렇게 운전면허를 따고 싶어 하시느냐고 물었습니다.

용달차를 몰며 배달하던 아들이 교통사고로 다리를 못 쓰게 되었는데 운전을 배워 그 아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답변을 하셨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향한 노(老) 어머니의 가슴앓이는 더 이상 가슴만 쓸어내리지 않고 운전면허를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용기를 갖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식은 것이 있습니다. 굳은 것이 있습니다.

아예 잃어버리고도 찾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가슴앓이입니다.

나에겐 더 이상 사랑의 대상이 없다는 듯이 가슴앓이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를 찾아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그 사랑을 찾기까지 얼마나 가슴앓이하실까요.

이 가을에 펼쳐질 행복에의 초대를 예수님의 가슴앓이를 내 아픔으로 삼고 참여한다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용기가 불같이 일어날 것입니다.


벌써 10월입니다.

가을의 깊은 향취(香臭)가 반가우면서도 뭔가 초조한 시간입니다.

올해 내가 무엇을 했는가를 돌아보니 화들짝 놀랄 시간인 것입니다.

“이러면 안 되지”하면서도 올해도 연초의 결심을 적당히 포기하고 싶기도 합니다.

스스로 궁금합니다.“결심”은 강한데“뒷심”은 왜 이리 약(弱)한 지?

 

약한“뒷심”탓을 하며 남은 두어 달을 보내려 하는데 다가온 글자가 있었습니다.

again!

“다시”라는 글자가 선명히 제게 다가온 것입니다.

얼마 전“다시 복음 앞에”라는 복음 성가를 들었습니다.

 

많은 이들 말하고 많은 이들 노래는 하지만 정작 가진 않는 길

두려운 생각보다 많이 힘들고 험한 길 보단 그저 말로만 가려기에

점점 멀어져만 가네 내게 생명 주었던 그 길

점점 이용하려 하네 내게 사랑 주었던 그 길

다시 복음 앞에 내 영혼 서네 주님 만난 그때

나 다시 돌아가 주님께 예배드리며

다시 십자가의 길 걸으리

 

다시, 다시, 다시로 이어지는 단어가 제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올해도 어려운 가운데 다시 일어 난 많은 교우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10월 마지막 주일 있을 “행복에의 초대”주제를“again”으로 정했습니다.

우리도 다시 일어나 연초(年初)의 결심을 이루고, 장결자들도 다시 일어나 주님 품 안으로 돌아오고, 불신자들이 다시 일어나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그렇습니다.

“again”이라는 단어는 모두에게“희망”이라고 읽혀집니다.


맨해튼에 우뚝 솟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29년 착공되었고 1931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건축가에게 물었습니다.

이 건물을 짓는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었냐고.

그로부터 주저 없는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초공사였습니다.”

 

어느 건물 공사나 건물이 완성된 후 기초공사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공사가 가장 힘들고 가장 중요하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왜 건물뿐 이겠습니까? 모든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소홀히 하기 쉬운 기초.

그 기초에서 이미 모든 승부(勝負)가 결정됩니다.

 

지난 주간에 국제전도폭발 지도자 임상 훈련이 우리 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준비위원들과 여러 분야의 봉사자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합심하여 아름다운 행사를 은혜 가운데 마치게 되었습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전도폭발의 그 유명한 두 가지 진단 질문은 신앙의 기초를 묻는 것입니다.

그 질문은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는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는가를 묻습니다.

이런 신앙의 기초가 흔들린다면 신앙의 높은 경지는 난망(難望)할 것입니다.

 

착공 감사예배를 드린 새 성전은 곧 기초공사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보이지 않을 기초공사가 잘되어지면, 그 위에 다민족과 다음 세대의“하늘의 문, 세상의 빛”이 될 새 성전이 잘 세워질 것입니다.

오는 토요일의 건축 바자를 위한 손길과 발길이 새 성전의 보이지 않는 기초를 든든히, 보이는 건물을 아름답게 만들리라 기대합니다.


손님이 되어 본적이 많으시지요?

따듯한 환대(歡待)가 좋으세요, 차가운 한대(寒待)가 좋으세요?

20년 전 전도폭발 지도자 임상 훈련에 참여하였을 때 낯선 곳에서 받은 따듯한 환대는 아직까지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오늘 저녁부터 우리 교회에는 많은 손님들이 오셔서 몇 날을 머물다 가십니다.

국제전도폭발 지도자 임상 훈련에 오시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에겐 모든 공간, 모든 사람들이 낯설 것입니다.

정중한 영접과 친절한 도움이 그들에게 주어진다면 낯섬이 편함이 되어 오래 동안 잊지 못하실 것입니다.

 

“알로하(aloha)!”

8년 전 하와이에 갔을 때 목에 꽃목걸이를 걸어주던 분이 들려주었던 인사말이었습니다.

그 뜻이 단순히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를 넘어선 인사랍니다.

“당신의 삶을 이해합니다.

저도 함께 무엇인가 나누고 싶습니다.” 라는 의미도 담고 있답니다.

제겐 아직까지 알로하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사인 “welcome!”이 그분들에게 따듯한 환대를 담은 웰컴이요, 알로하 정신을 품은 웰컴으로 기억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누구나 다 행복한 삶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행복한 삶보다 더 차원(次元) 높은 삶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놀라는 삶입니다.

놀라움을 한자로 표현하자면 경이(驚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러보면 모든 것에 다 하나님의 경이로움이 가득 차 있는데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나의 행복만 추구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경이로움이 우리 교회에서도 흘러넘칩니다.

21일, 오는 토요일도 그렇습니다.

오전 7시에는 새 성전 착공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그날 오전 10시에는 킹스 아카데미 개교 예배를 드립니다.

다민족을 위한 새 성전도 몇 년 동안 기도해 왔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킹스 아카데미도 몇 년 동안 기도해 왔습니다.

각각 몇 년의 기도가 같은 날에 매듭짓게 됨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고....”

비전은 안 보이는 것을 보는 힘입니다.

눈에는 안 보였지만 다민족과 다음 세대를 향한 같은 비전을 품고 함께 달려오신 교우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21일은 시작의 비전이 성취되는 날이며 완성의 비전이 새롭게 시작되는 날입니다.

 

전도서 3장에서의 말씀처럼 모든 것에 다 때가 있습니다.

잠잠할 때도 있고 놀랄 때도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오는 토요일은 놀랍고 놀라운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놀라운 날에 그 놀라움을 함께 모여 뜨거운 찬양과 절절한 감사로 표현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을까요?


지난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신학교 개강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강사로 오신 김풍운 목사님은 귀한 말씀으로 신학생들에게 큰 도전과 깊은 감동을 주셨습니다.

신학생들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능력을 나타내는 것보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어느 아버지가 집을 나서다 자기 아들과 이웃집 아들이 다투는 장면을 보았답니다.

자기 아들에게 이웃집 아들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우리 아빠는 시장님과 친해!”

그 말을 들은 자기 아들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우리 아빠는 예수님과 친해!”

그 아버지는 출근길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자녀들이 볼 때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요?

“예수님과 친한 아빠!”“예수님과 친한 엄마!”

자녀로부터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 아닐까요.

교우들이 볼 때 우리는 어떻게 보일까요?

“저분은 예수님과 친해!”

다른 이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최고 명예로운 말이 아닐까요.

 

예수님과 친해지는 가을, 그리고 그 가을이 깊어질수록 예수님과의 친함도 더 깊어지고 싶습니다.


달력을 보고 안 것이 아니었습니다.

병원 심방 길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를 보고 알았습니다.

가을이 살포시 우리 곁으로 걸어온 것입니다.

단기선교와 전교인 수련회로 뜨거웠던 여름, 그 작별의 아쉬움이 가을과의 만남으로 달래어집니다.

 

가을에는 구름이 높아집니다.

하늘을 향해 눈을 더 높이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을은 하늘을 향한 기도의 계절입니다.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집니다.

세상을 향해 몸을 더 낮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을은 세상을 향한 섬김의 계절입니다.

 

가을에는 호수가 파래집니다.

자신을 향해 더 깨끗해지자고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을은 자신을 향한 성찰의 계절입니다.

 

가을에는 철새가 날아갑니다.

목표를 향해 나래를 펴고 날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을은 목표를 향한 전진의 계절입니다.

 

그래서 가을은 반가운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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