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얼마나 아프셨나

 

내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가장 무거운 질문을 고난의 예수님께 던집니다.

예수님, 얼마나 아프셨습니까?”

 

돌아오는 답변은 없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53:7)

침묵이 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아프셨는지 끝까지 말씀을 안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산과 들과 초목은 그 눈물로,

그리고 해는 그 잃은 빛으로 예수님의 처절한 아픔을 절절히 일러줍니다

 

얼마나 아프셨나 못박힌 그 손과 발

죄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 예수님

하늘도 산과 들도 초목들도 다 울고

해조차 빛을 잃고 캄캄하게 되었네

오 놀라운 사랑 크시고 끝없도라

오 주님 사랑에 구원의 강물 넘치네

 

이제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아프신 십자가 위에서 끝까지 침묵하신 이유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봄이 오면

 

산에도 들에도 봄이 왔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짙은 향기를 날리며 여기저기 핀 꽃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모진 겨울바람에도 죽지 않고 견디다가

봄과 함께 꽃들이 아름답게, 굳세게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봄이 내 마음에도 오면 좋겠습니다.

그 꽃이 내 마음에도 피면 좋겠습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꽃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펴~~

 

눈이 시리게 찬란한 진분홍색 진달래 꽃도 좋습니다.

눈이 부시게 고결한 샛노란색 개나리 꽃도 좋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절이 성큼 다가오는데

내 마음에도 봄의 꽃이 어서 활짝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후반전(後半戰)을 달리다

 

얼마 전 지인(知人)으로부터 “Half Time”이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운동 경기에서 하프타임 이후 후반전이 중요하듯이,

인생 후반전의 중요성에 대한 책입니다.

사실 모든 것의 최종승부는 후반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갈렙은 후반전의 사나이들이었습니다.

한나나 에스더도 후반전이 멋있었던 여인들이었습니다.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는 인생의 후반전에 있는 자들의 대결입니다.

윤여정씨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74세 때 수상(受賞)하였습니다.

그들이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더라면 그들과 역사(歷史)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딱 절반, 2024년 사순절 서원 기도회가 어제로 딱 절반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순절의 후반전이 남아 있습니다.

잘 달리다가 멈칫거리면 안 됩니다.

아쉬운 전반전이었다고 후반전을 통째로 포기하면 안됩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설레는 후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늦지 않았습니다.

멋진 후반전을 기대하며 준비하십시오. 다시 신발끈을 잘 조여 매십시오.

그리고 다시 달리는 것입니다. 완주(完走)의 그 날까지.

 

 

 

 

 

 

 


Why Me?

 

“Why me?”

하나님, 왜 내게 이런 고난이 일어난 것입니까?”

우리는 고난의 이유를 묻고 싶고, 또 물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원한 답을 듣곤 하십니까?

 

아니지요.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대답을 듣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질문을 받는 것 같습니다.

너 고난 가운데에서도 나를 여전히 신뢰하니?”

 

고난의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고통 가운데 물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으로부터의 대답은 없었으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으셨습니다.

힘드신 일이 있어 “Why me?”라고 하나님께 물으셨습니까?

대답은 없어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거두거나

우리의 가는 길을 멈추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주 먼 옛날

  

오늘은 퀸즈장로교회 설립 50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충격적이고도 경이로운 50년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 이야기는 50년 전에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아주 먼 옛날까지.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

퀸장을 향한 계획 있었죠

하나님께서 바라보시고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먼 옛날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계획의 첫 50년이 베일을 벗은 것입니다.

그 첫 50년을 돌아보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고난 가운데 성장하는 웅장하고 멋진 것임을 엿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50년의 커튼이 올라갑니다.

어떻게 될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크게 기대하셔도 됩니다.

아주 먼 옛날의 계획은 지난 50년으로 끝난 것이 아니니까요.

 

 

 

 


출발하라고 보낸 것이 아니라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한 탄자니아 선수 존 스티브 아쿠와리.

출발선을 빠져 나가려는 순간 옆 사람과 부딪쳐 넘어졌습니다.

피가 많이 흐르는 큰 부상을 입었고 의료진들은 그만 뛰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어나 뛰었고 쓰러지면 또 다시 일어나 절뚝 거리며 달렸습니다.

 

날이 어두워 결승점에 도착한 그는 따듯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자들의 질문도 받았습니다.

부상을 입고도 왜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끼?”

그는 눈물과 미소로 대답했습니다.

 

나의 조국이 이 먼곳까지 나를 보낸 것은 마라톤 경주를

출발하라고 보낸 것이 아니라 끝까지 완주하라고 보낸 것입니다

 

출발한 모든 자가 아니라 완주자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습니다.

다 이루었다 예수님의 선언이십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렸다 바울의 외침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내일부터 시작되는 사순절 서원 새벽기도회.

같이 출발해요. 힘들어도 모두 완주해요.

그리고 마지막 날, 완주자의 노래를 뜨겁게 함께 불러요.

 

 

 


험한 세상을 이기려면

 

사자와 양은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이 둘이 결코 같이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둘이 멋진 조화를 이루었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5:5-6)

 

예수님은 사자의 위용과 어린 양의 겸손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십니다.

불의 앞에는 강한 사자와 같으셨고 약한 자에게는 부드러운 양의 모습이셨습니다.

그 멋진 조화로움으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세상을 이기려면 강인함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부드러움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그 안에 사자와 양을 동시에 같이 가진 사람이 세상을 이깁니다.

당신은 사자이시면서 동시에 양이십니까?

그러시다면 당신은 이 험한 세상에서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베토벤을 죽였네

 

어느 의과대학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몹쓸 병에 걸려있고, 아내도 심한 병을 앓고 있다.

이들에겐 아이들이 넷 있는데, 하나는 며칠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남은 아이들도 병으로 누워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이 부인은 현재 임신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러자 한 학생이 대뜸 소리쳤습니다.

"낙태수술을 해야 합니다."

교수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는 낙태가 가장 적절한 답변 같지만

이 가정에 다섯 번째 태어난 아이는 다름 아닌 베토벤이었습니다.

베토벤이 아니어도 그래서는 안 되었을 것입니다.

 

카타르에서는 18회 아시안컵 축구 경기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16강 전과 호주와의 8강전은 드라마였습니다.

16강 전에서는 경기 종료 1분을 앞두고 동점골을, 이후 승부차기에서 이겼습니다.

8강 전에서도 패색이 짙어가던 시간에 동점골과 역전골을 넣은 것입니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최후의 시간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제직 수련회에서 강사 목사님은 주옥같은 말씀을 펼치시고 계십니다.

축구에 후반전이 중요하듯 제직에게 반전의 후반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다 이루었다가 예수님의 외침이셨다면,

우리도 끝까지 간다를 외쳐야 합니다. 안 그러면 베토벤을 죽일 수 있습니다.

 

 

 


드디어 의문이 풀리다

 

너무 그리운 교우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휴스턴 한인중앙장로교회 청지기수련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해 주심이 말씀의 현장에서 선명히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청지기수련회는 우리  제직수련회와 내용과 형식이 똑같습니다.

 

45주년 교회의 따듯한 장로님들과 밝은 교역자님들

순박하게 말씀을 사모하는 제직, 순서 맡은 분들이 최선을 다하는 찬양 등이 낯설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몰랐던 담임 목사님께서 저를, 초청하셨는지.

쨔자잔, 드디어 의문이 풀렸습니다. 이곳 교회는 우리 신문사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담임 이재호목사님께서 칼럼을 매주 읽으시면서 저를 초청하고 싶으셨답니다.

 

금요일 저녁 식사대접 해주시던 장로님도 Y 신문방송학과 출신이셨습니다.

자연스레 종이 신문의 역할과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쉽지 않은 가운데 문서 선교를 섬겨오던 제게 위로와 새로운 다짐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문서 선교에 기도와 후원을 아끼지 않으신 교우들과 후원교회, 그리고 필진이 얼마나 고마우신지.

 

이번 금요일부터는 우리의 제직수련회가 열립니다.

혹시 우리 교우들께 무슨 의문이 있으십니까?

수련회 중에 말씀으로 은혜도 받으시고, 의문도 풀리시길 기원합니다.

 

~기대되는 수요일의 일일 부흥회도 있군요. 오는 수요일부터 뵈여요. 저도 갑니다.


고백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있습니다.

고백입니다.

사랑을 고백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언어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능력 있는 말이 있습니다.

고백입니다.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의 용서는 임하고 마귀는 도망갑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익한 말이 있습니다.

고백입니다.

상대방에게 먼저 잘못을 고백하면 모든 것이 회복되고 일이 잘 풀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말이 있습니다.

고백입니다.

고백하기를 주저주저 하다가 후회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선택하십시오. 고백하기를

용기내십시오. 고백하기로

 

 

승리하십시오. 고백하셔서


겨울에 내리는

 

우리가 사는 동네가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겨울이면 눈이 펑펑 쏟아져 사람도 자동차도 며칠씩 다닐 없었습니다.

상점마다 모자, 목도리, 장갑, 부츠 겨울 물품은 없어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그런 정경을 없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비가 계속 내렸습니다.

눈이 와야 때에 비가 내리니 이상 기후에 대한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비를 다르게 생각하고 다시 바라 보았습니다.

새로운 생각으로 바라본 비는 계절을 앞서 찾아온 희망의 전령이었습니다.

 

겨울 틈속에 잠깐 찾아온 비는머잖은 곳에 봄이 있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비는 눈처럼 살포시 내려 앉아있다 슬며시 떠나지 않았습니다.

봄에 틔울 자리를 미리 알아보듯 돌아다니다 기약의 여운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손이 시려워

    발이 시려워

    겨울 바람 때문에----"

 

며칠 손도 발도 시려울 날씨가 예고되어 있긴 해도, 우린 압니다.

 

희망의 봄을 이길 혹독한 겨울이 없음을.


기적의 행진

 

2024년 새해 첫 주일입니다.

첫 주일임에도 신년을 맞은지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작년 마지막 주일 이후 송구영신예배, 신년하례예배,

그리고 닷새 동안의 신년 특별 새벽기도회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어제 새벽 어느 성도께서 짧은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분은 이번 특새를 기적의 행진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금년 신년 특새의 주제로 지금도 기적이 일어난다

그리고 손들면, 드리면, 외치면, 믿으면, 손 떼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퀸즈장로교회는 기적이 일상이 되는 교회,

우리 교회는 오늘도 기적을 체험하는 교회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손들고 기도하는데, 주님께 드리는데, 대적을 향해 외치는데

그리고 믿음으로 행하며, 주님이 일 하시도록 내 손을 떼는데 힘쓰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 빰빰빠-

이제 막 2024년도 기적의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해를 그 어떤 놀라운 기적도 없이 그저 그렇게 사는데 만족하지 마십시오.

날마다 놀라움으로 가득 찰 기적의 행진에, 그대를 열렬히 초대합니다.

 

 

 


그 사람의 뒷모습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낙화, 이형기)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날이듯이, 사람도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 있습니다.

마지막 모습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 그 사람의 뒷모습.

그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 서길웅 집사님. 지난 목요일 교통사고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너무 급작스럽고 안타까운 떠남, 그러나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셨습니다.

집사님이 20년 전(), 교회설립 30주년 아가페 기념호에 이런 글을 쓰셨습니다.

 

직분을 주신 것은 어떤 명예나 권위 의식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청지기 사명의식을 갖고 몸 된 교회를 더욱 든든히 세워 가게

하시기 위한 방편이라고 배웠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동안 표창도 받았는데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받을 상급이 없을 것 같아 두렵고 떨립니다.

 

아니예요, 교회를 이토록 멋지게 섬기시다가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신 집사님을

하나님이 분명히 큰 상급을 준비해 놓으시고 기쁘게 맞이하실 거예요.’

 

 

올해의 마지막 날에 언젠간 남길 우리의 마지막 뒷모습은 어떨지 생각해 봅니다.


휘파람 캐럴

 

작은 강 사이에 프랑스군과과 독일군이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1224일 성탄 전날 밤이었습니다.

프랑스의 한 병사가 휘파람으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습니다.

적막한 강가의 밤에 그 소리는 흘러 흘러갔습니다.

 

두고 온 고향에서의 크리스마스를 그리워하던

전쟁터의 군인들 한명 두명이 따라 부르던 휘파람 캐럴.

아군과 적군 모두가 휘파람으로 캐럴을 부르다가

마침내 같이 성탄 예배를 드렸고, 함께 성탄 파티도 열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성탄 주일이며 성탄 전날입니다.

아직 용서 못한 그 누구가 있습니까?

여전히 다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성탄의 예수님은 싸움을 그치고 그들과 희망과 사랑을 나누라고 하십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포성 대신 찬송이 울려 퍼져야 할 텐데 오늘이 다 지나기 전,

그 찬송을 시작시킬 휘파람 캐럴을 부르시지 않겠습니까?

휘이이익 휘이이익~~~

 

 

 

 

 


사람

 

 

 

올라(안녕하세요)!

 

기도해 주셔서 지난 주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선교회의를 다녀왔습니다.

 

다양한 선교지에서 분투하시던 사역자들이 함께 모여 선교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만나 분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리에서 묵묵히 사역하시는 소중한 사람이셨습니다.

 

 

 

스페인을 사람이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친 표현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끄덕입니다.

 

그는 현재의 정치가도 경제인도 아닌 과거의 예술가입니다.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 바로 사람입니다.

 

그가 건축한 '성가족 성당'  '구엘공원' 등에는 세계의 관광객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는 전차에 치어 치명상을 입었는데 허름한 행색의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택시도 병원도 거절한 그를 간호사가 알아보고 나은 치료를 권했지만 그는 거절했습니다.

 

옷차림만 보고 사람을 차별하는 세태를 온몸으로 꾸짖으며 사고 삼일 만에 죽었습니다.

 

그를 통해 스페인이 벌어들이는 돈은 상상 이상이며 나라 사람들은 가우디에게 끝없이 감사해합니다.

 

 

 

스페인을 살리는 가우디보다 놀라운 분이 계십니다. 세상을 살리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유일한 구원자 한분 때문에 우리는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

 

가는 세월을 그 누구도 잡을 수 없다는 노래도 있습니다.

더욱 서둘러 가는 세월, 연말이 되니 많이 바쁘실 것입니다.

바쁘게 지내다 보면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잊고 지날 수 있습니다.

여기,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잊고 지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문을 열어달라고 계속 두드리시는데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잊어버리고

분주하게 성탄의 12월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올해의 광야길, 얼마나 아팠고 힘들었었나요.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의 이름, 은혜

못 잊어 생각이 나고 또 나야 한답니다.

 

죽는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Memento Mori(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오늘 죽어도 당황하지 않을 죽음,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 죽음을 잘 기억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한 달

 

마지막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단어입니다.

그래도 피할 수 없는 단어, 도망칠 수 없는 시간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마지막 한 달이 남았습니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입니다.

 

연말(年末)의 화려한 유혹과 비열한 변명이

마지막 한 달마저 앗아 가려고 12월이 오기 전부터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차 하면 마지막 12월을 송두리째 빼앗기면서

아무런 열매 없이 12월의 마지막 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한 달, 유혹의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 하늘로 비상(飛上)해야 합니다.

마지막 한 달, 변명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끝까지 도전(挑戰)해야 합니다.

 

최후의 마지막 시각이 멈추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힘내십시오. 잠시 후면 상 받는 그날이 있으니까요.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고전 3:13-15a)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며

 

전쟁으로 천만 이산가족을 남기고 폐허가 되었던 나라.

세계 각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아오다 이제는 원조를 주는 나라.

1988년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을 유치하여 역량을 보여주었던 나라.

경제 10대국일 뿐 아니라 다양한 K콘텐츠를 통해 온 세상을 리드하는 나라.

 

그 나라,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며 1128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일 모레는 프랑스 파리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 장소를 결정하는 날입니다.

시우디아라비아, 이탈리아와 함께 개최 후보지로 나선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처럼

정부, 경제, 시민 단체등이 원팀(One Team)이 되어 유치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다른 나라의 유치전과는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개최지 선정 100일 전, 부산에서 시작된 기도 운동입니다.

한국과 세계의 여러 도시로 기도의 불길을 이어가다가

그제는 뉴욕을 지났고 오늘은 파리에서 역사적인 대장정을 마칩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모든 교회는

자기들의 나라를 위해 애국하는 교회이기도 합니다.

이민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떠나온 대한민국이 잘 되길 바라고

2030 세계 박람회가 세계 선교의 기회가 되길 바라며 기도한답니다.

 

 

 


추수감사절에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오곡백과 황금바다가 넘실대는 들녘을 보아야 합니다.

대추 한알, 곡식 하나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많이 담겼는지.

추수감사절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볼수 없다면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는 만나야 합니다.

오는 목요일 저녁 5시에 만나야 합니다.

밥 한공기에도 벼를 심고 거두고 밥을 짓기까지 여러 손길이 얼마나 많이 닿았는지.

추수감사절에 공동체에 대한 뜨거운 감격이 없다면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는 기대야 합니다.

둘러보니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에 하나님의 경이로운 능력이 얼마나 많이 배였는지.

추수감사절에 능력의 하나님을 겸손히 의존하는 일이 없다면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는 드려야 합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로 드립니다.

전쟁과 사고로 가득한 2023년에도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많이 놀라운지.

추수감사절에 드리는 일년의 감사에 지극한 정성이 없다면 어쩌면 좋습니까.

 

 

 

 

 

 

 

 


주인공과 배경인물

 

주인공이 좋으세요, 배경인물이 좋으세요?

배경인물의 역할은 주인공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니

기왕이면 주인공이 좋겠지요.

그러나 잠깐만요^^

 

저는 지난 주간 그린스보로를 거쳐 LA에 다녀왔습니다.

그린스보로에서는 우리 교단의 목사 장로 기도회가 있었고,

LA에서는 KWMC (The Korean World Mission Council for Christ/

기독교 한인세계선교협의회) 연차 총회가 있었습니다.

 

두 모임에 공통된 주인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셨습니다.

지난 The Way의 주인공도 역시 예수님이셨습니다.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다 배경인물입니다.

 

우리는 배경인물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도 주어진 역할을 성실하게 잘 감당하다가

그만이다 하는 그날에 무대에서 내려가면 됩니다.

무대에서는 주인공이신 예수님만이 영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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